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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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발걸음(종려주일, 2019년 4월 14일)

하늘기차 | 2019.04.14 14:17 | 조회 1037


                          평화의 발걸음

2019414(종려주일)                                                       12:12-19;50:4-9

오늘 말씀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신다는 말을 듣고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꺽어 들고 맞으러 나갑니다. 왜 예수님의 공생애의 마지막은 예루살렘일까? 활동은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고통받는 사람들 속에서 하였는데 말입니다. 예수님은 슥9:9의 예언에 맞추어 베다니에서 나귀 새끼를 타고 평화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합니다. 어찌 보면 초라해 보이지만 이것은 지상 나라인 로마제국을 희화화하는 최고의 이벤트가 아닌가 십습니다. 왕이 백마를 타지 않고 그것도 나귀 새끼를 타고 뒤뚱거리며 예루살렘으로 입성을 합니다. 세상을 뒤뚱거리게 합니다. 이 보다 더 탁월한 해학도 없읍니다.

   신학자 마커스 보그는 예수님의 행열의 반대 편에 다른 행렬이 유월절 절기에 맞추어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다고 상상을 합니다. 바로 가이사랴에 있던 빌라도의 행군입니다. 평상시 빌라도 총독은 골치아픈 예루살렘이 아니라, 풍광이 뛰어난 지중해 연안의 가이사랴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다가 유월절 절기때가 오면 예루살렘 성 안의 안토니오 요새의 로마수비대를 지원하기 위해 매 년 올라왔습니다. 제국의 군대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권세와 위용을 상상해 보면, 말을 탄 기병들, 가죽 갑옷, 투구들, 창과 방패, 깃발들, 그리고 황금독수리 기장, 군화 소리, 마차가 삐꺽거리며 굴러가는 소리들, 진군의 북소리. 제국을 한 번에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이 행진은 단지 총독의 행진이 아니라, 로마 황제, 즉 세상 나라를, 마커스 보그는 제국의 신학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이 신학은 아우구스티누스 황제로부터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아버지는 아폴로 신입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의 비문에는 신의 아들’, ‘주님’, ‘구원자이며, 죽은 후 그가 하늘에 올라 신들 사이에 영원히 거하는 것이 목격되었다고 전합니다. 그 후 황제들은 신의 이름을 가지게 됩니다. 빌라도의 행진은 세상 나라를 주관하는 신의 행진입니다. 예수님의 나귀타고 가는 행진은 야웨 하나님의 행진입니다. 이 두 행진은 십자가에서 맞딱드립니다.

   오늘 말씀에 백성들이 예수님을 맞아 호산나!’하며 환호하는 장면은 어릴적 주일학교 때부터 늘 예루살렘성전 바로 앞, 성전 건물벽 에서 일어난 사건인 줄 알았는데, 누가복음을 보니, 예수님이 올리브산 가까이 예루살렘 동쪽 걸어서 5Km 정도에 위치한 베다니에 이르러 거기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을 향할 때부터 열열히 환호하였는데, 19:37절에 보면 올리브산 내리막길에 이르러, 예수님이 새벽을 맞이할 때 까지 기도하던 감람산인데, 잠시 쉬면서,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하며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을 보지 못한다고 눈물을 흘리신 것입니다. 이 모습은 예수님뿐 아니라, 이미 8세기 전 구약의 선지자 미가에게서 보여집니다. 미가는 유다의 죄가 무엇이냐?물으면서 예루살렘이 아니더냐?”라고 선언합니다. 유다의 죄가 예루살렘이라고 합니다. 충격적인 선언입니다. 하나님이 머무는 거룩한 성전이 자리한 예루살렘이 유다의 죄입니다. 유다도시 전체가 죄입니다. 왕궁의 예언자 이사야 역시

            “들리는 것은 그들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울부짖음뿐이라 합니다.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 역시 예루살렘아!”부르며 

           “바르게 일하고 진실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을 하나라도 찾는다면, 내가 이 도성을 용서하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럼에도 예언자들은 절망 만 전한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거룩한 도시로 다시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이사야는 2:3, 4에서 

             "모든 민족이 물밀 듯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여들 것이며, 백성들이 가자, 가자, 우리 모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며, 주님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온다"고 선포합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군사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미가는 더 나아가 4;4에서

         “사람마다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서, 평화롭게 살 것이다. 사람마다 아무런 위협을

              받지 않으면서 살 것이다. 이것은 만 군의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이스라엘은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이스를 거쳐 로마제국의 속국이 됩니다. 로마는 정치, 경제, 치안, 종교에 이르기 까지 현지의 지배 기득권층을 통해 다스렸는데, 대제사장을 중심으로하는 종교지도자들과 율법학자들, 헤롯을 지지하는 사람들, 거대지주였던 사두개파사람들이 성전을 중심으로 서로 견제하며 로마로부터의 이권을 나누어 유다를 지배하고, 착취하였습니다. 14:53은 그 당시 권력체제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들은 예수를 대제사장에게로 끌고 갔다. 그러자 대제사장들과 장

                        로들과 율법학자들이 모두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이들이 왜 동시에 같은 장소에 모였는가 하면, 예수는 요한도 마찬가지 였지만, 성전의 희생제사를 통해 얻는 용서를 성전 밖에서 회개운동을 일으키며 임의적으로 행하였습니다. 안식일을 여겼다는 것, 신성을 모독했다는 것도 어찌 보면 다 명분이고, 진짜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성전을 통해서가 아니라 성전 밖에서 죄를 용서하는 행위로 성전의 질서, 기득권의 질서를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향한 이유는 바로 이스라엘 모두가 바라보는 예루살렘성전이 더 이상 하나님의 성전일 수 없으며, 이제 그러한 종교는 더 이상 예수가 선포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담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며, 예루살렘이 어떻게 세상제국의 포로가 되었고, 그 주범인 세상나라가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파괴하려 하는지, 그리고 그렇게 폭력을 통해 유지하려는 나라는 결국 하나님 나라의 통치인 평화에의해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예루살렘으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나아갔습니다. 이 평화의 길 위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고난에대해 3번 반복해서 이야기하는데 제자들은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8:34는 첫 번째 예고를 한 다음에 예수님은 나를 따라 오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구할 것이라고 합니다. 1세기 초대 기독교인들에게 십자가는 제국에의한 죽음을 의미하였습니다. 요즈음 같이 개인의 역경이나, 질병, 고난을 자기 십자가로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십자가는 제국의 보복, 예수님과 같은 죽음을 의미하였고, 그러나 한 편으로는 십자가는 부활이요, 새로움의 길이었습니다. 예수의 죽음은 죄의 죽음이요, 세상나라의 죽음이며, 어두운 권세, 사탄 마귀의 죽음이며, 다른 한 쪽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부활이며, 생명이 죽음에서 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요, 새로운 신앙, 눈에 보이는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신앙이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마음의 성전을 건축할 때가 왔다는 것을 눈으로 보여준 사건입니다.

  세 번째 예고 후에 예수님은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 느냐?”고 묻습니다. 이것은 십가와 부활을 의미합니다. 초대교회는 세례를 통해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경험을 하고, 그 삶을 3가지 실천을 통해 믿음의 삶, 성도의 삶을 살았습니다. Belief, Behaviour, belonging, 즉 신앙, 소속, 행동의 삶을 살았습니다. 세례를 받을 때에는 이 삶을 철저히 확인 검증하고 세례와 성찬이 있는 정식 예배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마가는 10:42이하에서 십자가의 길에대해 계속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을 곁에 불러 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희가 아는 대로, 이방 사

                       람들을 다스린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백성 들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백성들에게 세

                       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위대하 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 운데서 누구든지 으뜸이 되

                      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 야 한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

                      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예루살렘에서 하나님 나라의 공생애를 마치셨습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가는 길을 따르라고 하였지만, 모두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오늘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한 길을 복귀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했지만, 교회는, 오늘 교회는 호산나 외치는 환호성에서부터 T.V영상에서 리와인드 하듯이 거꾸로 갈릴리로 돌아가야할 것 같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폭력으로 신음하는가난하고, 병들고, 고통받고 소외된 자리에서 기다리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돌아가면서 예수님이 3번 예고하실 때의 당부를 귀에 담아야 하겠습니다. 교회는 그렇게 해야합니다. 그렇게 리와인드하며 평화의 걸음을 걷는 분들이 있습니다. 바로 송강호 박사님의 개척자들, 그리고 샘터식구들입니다.

    얼마 전 개척자들 공동체가 2-4년 동안 제주도 강정에 둥지를 튼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앞에서 왜 예루살렘인가? 라고 하였는데, 왜 강정인가? 라는 질문을 해 봅니다. 이미 해군기지는 완공되었고 그간에 해군 기지 반대 운동에 뛰어 들었던 활동가들도 하나 둘 강정 마을을 떠나고 있는데 말입니다.

    송강호 박사는 그 첫 째 이유로 제주도가 군사기지화 되면 제주도는 언젠가 전쟁의 잿더미 위에 앉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군사기지 때문입니다. 내년은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 피 해 75주년이 되는 해인데, 제주도의 뜻있는 분들은 제주도가 비무장 평화의 섬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둘 째 한라에서 백두까지라는 말처럼 여기 이 한라는 제주이고 그 출발선은 바로 제주의 최남단 강정이라고 믿는다는 이 어처구니 없는 발상입니다. 참 바보입니다. 이미 강정에 해군기지가 들어왔지만, 그 해군기지에 빌 붙어 보잘 것 없는 해택을 받아 기지촌으로 전락해버리든지, 아니면 해군기지를 구럼비에서 내 쫓아 고향을 되 찿아 세계 평화의 상징이되어 평화를 찿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찿아오는 곳이 되든지 결단해야 할 것이라 합니다. 세 째 공평해(공존과 평화의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라 합니다. 제주도는 한반도의 주변부가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인 중심지라 하면서 제주도민들의 주변부인 의식이 제주도의 미래를 가로막는 장애라 하며, 이 동북아시아의 중심에는 일본의 오키나와와 타이완이 이웃하고 있다고 하면서, 제주의 평화 운동가 조약골은 동북아시아의 세 섬이 둘러싸고 있는 소위 동지나해를 공평해(공존과 평화의 바다)라고 부르는 것에대한 제안에 공감한다고 합니다. 아직도 강정마을에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삼거리 식당을 지키며 평화 활동가들에 따뜻한 밥을 지어 주시는 종환 삼촌이나 해군 기지 때문에 병든 부인을 홀로 놔둔 채 감옥살이를 하신 강부언 어르신처럼 묵묵히 진실을 붙잡고 강정마을을 지키고 있는 억눌린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으려 한다고 합니다. 왜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거슬러 내려가야하는지를 저는 송박사님의 말에서 봅니다. “억눌린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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