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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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함께 교회(부활절일곱째주일, 2019년 6월 2일)

하늘기차 | 2019.06.02 13:54 | 조회 915


                        모두 함께 교회

201962(부활절일곱째주일)                                                                      3:14-21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 1절에서 갇힌 몸이라고 합니다. 1, 2, 3차전도 여행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핍박과 감옥이었습니다. 성전에서 폭도들에게 붙잡힌 바울은 천부장 루이사와 로마 군인들의 출동으로 겨우 목숨을 건지지만 이미 유대인들에 붙잡혀 죽도록 맞고, 22장에서 그를 죽이려하는 백성들 앞에서 어떻게 예수를 만났는지 증언합니다. 23장에서는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24장에서는 총독 빌릭스 앞에서, 그리고 25장은 새로 부임한 총독 베스도 앞에서, 26장은 헤롯 대왕의 증손자인 헤롯 아그립바 2세 앞에서 자전적 증언을 반복합니다. 24:5,6에 보면 유대인들은

                    “우리가 본 바로는, 이 자는 염병 같은 자요, 온 세계에 있는 모든 유

                             대 사람에게 소란을 일으키는 자요, 나사렛 도당의 우두머리입니다.

                             그가 성전까지도 더럽히려고 하므로, 우리는 그를 붙잡았다고 합니

. 유대인들의 증오는 바울을 죽이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니 정치적인 계산을 하는 로마 총독이 바울을 놓아줄리 만무합니다. 2년이나 기다려도 석방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바울은 로마 시민의 마지막 권리를 사용하여 황제에게 호소하기를 결심합니다. 그렇게 사도 바울이 오랫동안 꿈꾸어 오던 로마 전도 여행을 죄인의 몸으로 가게됩니다. 로마에 도착하자 여러 교회에서 발생한 문제들에대해 사람들이 찿아 와 논의하고, 그 해결방안을 서신으로 보냅니다. 에베소, 빌립보, 골로새, 빌레몬서는 그렇게 옥중에서 기록한 것입니다.

   바울은 1절에서 자신이 수감된 것은 로마의 죄수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일로 갖혀있는 것이니, 13절에서 혹여나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영광이라고 합니다. 이방인들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를 아직은 잘 모릅니다. 그래서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박해를 받아 로마에 수감된 것에 낙담하여 복음의 가치를 의심할까 보아, 이것은 오히려 영광이며, 여러분들도 그렇게 십자가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하면서 그러므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무어라고 합니까?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기도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은 이 세상의 주권자이신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향하여 환난에대해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바울은 늘 기도하며, 또한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여러분! 어려움이 찿아올 때, 그것은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또한 교회에 기도를 요청해야합니다. 교회는 기도 공동체입니다. 친교하고, 봉사하고, 선교하지만, 기도하는 공동체요, 기도의 제목을 편하게 내어 놓을 수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합니다. 기도 제목을 나누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냥 집단이요, 단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구역에 기도제목을 내어놓고, 그리고 교회에 내어놓고 기도합시다. 어려운일, 혼자 감당하기 벅찬 일들을 교회에 자연스럽게 기도제목으로 내어놓으면 좋겠습니다. 목사가 하는 일은 기도하는 일이요, 말씀을 전하는 일입니다. 나름 새벽에 기도의 제목을 올려놓고 주기적으로, 그리고 생각이 날 때 마다 성도를 위해, 교회를 위해 나라와, 기후 환경과, 고통 받는 이웃을 위해,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혼자 기도하면 외롭습니다. 바울도 각 교회에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최근 고기교회에 기도제목이 늘어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고기교회를 영적으로 세우시려고 성도들을 기도자리에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부탁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고기교회에 주신 여러 기도제목을 위해 함께 같은 자리에서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세상은 각기 흩어져 도생하며 혼란스러워 나라와 나라, 사람들 사이에, 그리고 내 안의 마음도 모두 조화롭지 못하고, 쪼개져 혼돈 그 자체이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이 무질서한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게 하시며, 그래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아버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속사람이 성령을 통해 능력으로 강건해야 하는데, 그 능력은 하나님의 풍요로움에서 옵니다. 1:17이하에서 하나님을 알고,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영광의 상속이 얼마나 풍요로운지,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알기 바란다고 하는데, 믿음의 조상들에서부터, 광야의 백성들에 이르기 까지 함께하였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생명의 부활로 살리시고 성령을 통해 우리를 모두 함께 교회로 불러 모으신 생명의 풍요로움입니다.

   17절 말씀은 요15장 포도나무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머물러 있으며, 우리가 어떻게 서로 하나임을 알았듯이 사도 바울 역시 주님이 우리 안에 머물러 사랑 속에 뿌리를 박고 터를 잡으라 합니다. 보통 강한 표현이 아닙니다. 그리하여 모든 성도와 함께 라고 합니다.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나 혼자 잘 믿고, 기쁘고, 감사한 것이 아니라, 지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이 함께인데, 어떻게 함께인가 하면 2:21의 말씀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서, 주님 안에서 자라서 성전이되며, 그래서 22절은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도 함께 세워져서 하나님이 성령으로 거하실 처소가 됩니다.” 교회가 먼저 사랑의 띠를 띠우니, 지체들이 역시 그렇게 성전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온전한 모습입니다. 교회는 눈에 보이는 고기 교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1:23절 말씀처럼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의 충만이요, 3:10은 이제 바울을 사도로 세워 교회를 통해 이방에 이르기 까지 모두에게 모든 계획을 밝혀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에게 하나님의 갖가지 지혜를 알리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감옥에 갖힌 이 환난은 오히려 에베소를 포함해서 유럽과 소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에게 영광이 된다고 서슴없이 증언합니다.

   18절은 또한 번 모든 성도라고 합니다. 성서가 바라보는 교회입니다. 아주 단순합니다. 모임이라는 뜻을 의미하는 교회가 무엇인지를 진짜 맛 보려면 교회가 공적으로 이렇게 모입시다 하면 모든 성도가 함께해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원형을 회복하려 할 때, 모범은 바로 생활공동체입니다. 부르더 호프 공동체에서 짧은 시간을 함께하며 느낀 것은 150-200여명 되는 공동체 일원이 아이에서부터 어른에 이르기 까지 공적인 모임에 함께하는 것에 신선함을 느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그 동공체의 삶에서 드러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성도와 함께라고하며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여러분이 충만하여지기를바라고 있습니다.

   우리 반디가 태어난지 100일이 되어서, 지난 주 100일 떡을 먹었습니다. 눈을 마주치고 웃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몸과 마음과 생각이 쑥쑥 자라면서 뒤집고, 일어서고, 걷고, 말하며 자기 세계를 확대해 나갑니다. 또한 눈, , 코 등 오감과 지각을 통해 세계를 보고 느끼기 시작하며 매 순간 경이로워 합니다. 아이들에게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하늘의 구름 한 조각이 다 살아있어서 자연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정말 하나님 나라 사람입니다. 근데 그 새로움, 낯설음이 아이들의 전유물 만은 아닙니다. 모두 함께 교회로 부름받은 우리도 하나님이 세상에서 감추었던 하나님 나라의 경이로움을 드러내실 때 마다 경탄해 합니다. 그러나 이 놀라운 구원의 신비를 맛보려면 다시 태어나야합니다. 니고데모처럼 옛 것에 묶여 난감해하면 안됩니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반디가 세상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것은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경이로움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서 불러 함께하는 교회공동체로 부르신 것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 성령의 내적 감동을 통해 세상에서 하나님을 보고 만나며,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르는 것을 인지하며 이 우주와 역사, 그리고 이 사회 속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모두 함께 고기교회이며, 모두 함께 모든 교회이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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