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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을 바라보며 감사(2015년10월25일)

하늘기차 | 2015.10.25 09:24 | 조회 1697

                

                  희년을 바라보며 감사

추수감사주일                                                                                              레25:8-13;눅4:18-19,21

   '희년'이란 말은 히브리어 요벨(יובל, yobel)을 음역한 것인데, 수양의 뿔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50번째가 되는 해에 수양의 뿔로된 나팔을 불며 희년을 선포하였기 때문이다. 글자 그대로 기쁨의 해입니다. 왜 기쁠까요? 눅15장은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점점 더 예수님에게 찿아오자 그것을 싫어하는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에서 탕자의 비유, 잃어버린 한 달란트를 다시 찿을 때, 그리고 잃은 양을 찿는 이야기를 통해 다시 돌아오는 기쁨, 회복의 기쁨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50년 마다 어떻게 기쁨의 해가 되는지를 보았습니다. 매 7년을 안식년으로 하여 안식년이 7번 지나는 해인 49년 다음 해를 희년이라고 숫양의 뿔로된 나팔을 불며 선포합니다. 땅, 부채, 집, 노예, 가축, 이방인에게 다시 돌아가며, 쉼을 선포하는 제도입니다. 고대, 아니 인류 역사에 이러한 완벽한 사회복지를 제도화한 나라는 없을 것입니다. 왜 이런 제도가 생겼을까요? 이스라엘은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하여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12지파가 땅을 공평하게 나누고, 400년의 이집트 노예의 삶을 떨치고 자유인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왕권국가가 생겨나고 빈부의 격차가 커지고 심지어 종을 사고 파는 일까지 생깁니다. 이스라엘은 땅과 사람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잃어버립니다. 희년은 이러한 사회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땅과 사람을 원래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되 돌림으로 이집트에서의 노예 살이에서 벗어났던 그 자유와 해방을 다시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50년을 주기로 다가오는 희년이 실현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회당에서 선포됩니다. 사람들은 아마 뒤통수를 얻어맞는 충격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동안 잊어버렸던 말씀을 예수님께서 공생애 첫 설교에서 끌어내 밝히 드러낸 것입니다.

                           “주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자유를, 눈먼 사람들에 게 다시 보게 함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고 선언합니다. 놀라운 것은 이 말씀을 선언하시고는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 선포한 말씀을 온 몸을 다하여 십자가에 달리시기 까지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주님이 하신 말씀이 아니라, 이미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된 말씀입니다. 주님은 사61:1-2절 말씀을 들어 읽으셨습니다. 사61:1-3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니, 주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

                   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

                   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

                   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주님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재 대신에 화관을 씌워 주시며, 슬픔 대신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시며,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송이 마음에 가

                   득 차게 하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의의 나무, 주님

                   께서 스스로 영광을 나타내시려고 손수 심으신 나무라고 부른다.”

   저는 이사야 말씀 중에 3절 말씀이 참 와 닿습니다. 가난과 질병과 감옥에서 고통받던 사람들에게 재 대신 왕관을 씌우고, 슬픔 대신에 기쁨을, 그리고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양을 마음 가운데 가득하게 하여, 이렇게 하나님의 회복의 은혜를 기쁨으로 맛 본 사람들에 대하여 사람들이 무어라고 말하는가 하면 의의 나무요, 주님이 손수 심은 나무라고 부릅니다.

   내년 고기교회는 50년 생일을 맞이합니다. 그래서 희년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참 좋고, 가슴 벅찬 말씀이지만, 그 말씀을 어떻게 받고, 그리고 살아 낼 수 있을까요? 레위기서와 이사야서, 그리고 복음서,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 그 백성이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에 대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데, 이제는 성령을 통해 고기교회 공동체로 이어집니다. 제 작년 제가 60년 회갑을 맞이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혹 올 해 50살이 되는 분은 없나요? 제 생일을 성도들이 알아가지구 덕분에 생일을 잘 챙겨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러구 끝이었습니다. 건강하고, 목회 잘 하구, 그렇게 덕담으로 생일을 지냈습니다. 올 해 50을 맞이한 분도 이제 흔이 지나는 구나 할텐데, 그렇게 나이를 먹고, 시간이 지나갑니다. 고기교회도 50주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행사를 말끔하고 풍요롭게 잘 마칠 것입니다. 근데 왜 50주년이라 하지 않고 희년이라고 할까요? 글자그대로 기쁨을 맛보고 나누는 해입니다. 어떤 기쁨인가요? 건강, 사업, 자녀, 집, 교회 잘 나와서, 기도 생활, 성경공부, 주일 성수, 십일조, 축복, 성도의 교제, 교회 봉사 . . . 아닙니다. 그쪽으로 가면 수렁입니다.

   회복의 기쁨, 다시 돌아옴의 기쁨입니다. 구약은 잃었던 땅, 집, 가축, 노예, 이방인들이 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긍국으로 하나님에게 돌아갑니다. 그런데 이 회복의 기쁨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일까요? 예수님이 탕자의 비유를 통해 돌아옴의 기쁨을 이야기 할 때, 그 이야기의 포인트는 사실 두 아들이 아니라 (큰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도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둘째 아들은 벌써 아버지에게서 떠나버렸는데) 그 두 아들을 모두 품으시는 아버지의 연민입니다. 그 연민, 그 긍휼, 그 사랑을 품어야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레위기에 기록된 희년의 말씀을 재해석하였습니다. 이사야는 레위기서의 희년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느끼며, 그 당시 앗수르에 의해 무너지는 남북의 이스라엘을 애통해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바라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이스라엘을 향한, 더 나아가 인류를 향한 탁월한 비죤을 봅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군사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사2:4)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젖뗀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11:8)는 비죤을 봅니다. 고난받는 종의 노래를 4번에 걸쳐 노래합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처럼 피어 즐거워할 것이며, 눈먼 사람의 눈이 밝아지고, 귀먹은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광야에서 물이 솟고, 사막에 시냇물이 흐를 것이라고 합니다. 35장의 비죤입니다. 그리고 그 비죤의 말미에 35:10에 주님께 속량 받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이라, 기뻐 노래하며 시온에 이를 것이라 합니다.

   이 비죤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쳐참하게 전쟁을 통해 황폐해 가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라본 것입니다. 이사야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 그리고 사도 베드로도 양문 곁 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그 희년을 바라는 마음으로, 회복을 바라는 하나님의 긍휼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나에게 은과 금은 없어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일어나라 합니다. 오늘 이시대의 분단과 역사 왜곡과, 아이들을 산송장으로 바다에 빠뜨리는, 사람들을 하늘 꼭대기로 올려보내며, 멀정한 삼천리 금수강산을 파헤쳐 산과 강들이 신음하는, 죄없는 가축들을 인간의 욕망을 배부르게 하기 위하여 살처분하는 비명 소리가 온 나라를 뒤 덮는 아비규한 속에서 살아남아, 회복을 선언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긍휼이요, 자비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생활에서 회복하여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에스겔, 예레미야 등 이사야 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이 세상을 바라보며 받은 탁월한 비죤에 근거합니다. 우리나라의 꿈쟁이 문익한 목사님의 꿈은 남북의 분단을 고착화시켜 자신들의 이속을 챙기려는 어두운 세력들의 음모와 계략을 기필코 무너뜨릴 것이요, 그 절망적인 세상을 담담하게, 감동을 품으며 살아가게 할 것이며, 미국의 꿈쟁이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꿈은 미국의 흑인대통령을 세웠을 뿐만아니라, 여전한 흑백차별의 세상 속에 양과 이리가 어울리는 꿈이 미국 사회를 이끌어 갈 것입니다. 교우여러분! 고기교회 50주년, 희년을 바라며 감사합시다. 이런 영적 탁월함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단지 개인의 영적 갈급함을 푸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을 수 있고,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교회요, 성도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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