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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능력의 손 아래(성령강림후열여섯번째주, 2015년9월13일)

하늘기차 | 2015.09.15 09:20 | 조회 2167


                    하나님의 능력의 손 아래

성령강림후열여섯번째주                                                                                           벧후5:5-11

     사도 베드로는 극심한 박해 속에 있는 유대 기독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성품을 쫓아 그리스도의 구속역사를 믿고 용기를 잃지 말라고 편지합니다. 우선은 지도자들입니다. 새번역이나 한글 개혁은 장로로 되어있는데, 공동번역은 원로라고 합니다. 공동번역이 더 와 닿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소 아시아와 유럽의 유대인 기독인들에게 ‘같은 장로 로서’ 라고 합니다. 여기서 장로는 아주 단순 명료합니다. 장로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을 함께 누릴 사람’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자기 스스로를 장로라고 하는 것은 교회를 세우는 자로서, 어떻게 교회에 헌신하고 봉사하는지에대해 그러니까 디아코니아를 가르치고 권면하는 자로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선 양떼를 먹이라고 합니다. 양을 치는 목자로 비유합니다. 홀로 떨어진 양은 없는지, 병이 들지는 않았는지, 먹이는 잘 먹고 있는지, 오염 안된 풀과 물을 찿아 옮겨 다니며, 양을 잘 키웁니다. 오늘 같이 이단이 극성을 부리는 때에 교회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때에 말씀을 말씀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원로는 무엇 보다 성도들에게 이것이 진리인지, 사이비인지, 말씀인지, 말씀이 아닌지, 그러니까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에 인간의 욕심이 담겨있는 소리를 내는 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억지로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비결은 바로 그 다음에 이어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진하여 그리고 스스로 기뻐서 하라고 합니다. 결정적으로는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본을 보이라 합니다. 윤리적으로 생각하면 이것은 올무입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이야기 했듯이 '이 사람을 보라(Homo Ecce)' 하는 것처럼, 우리가 가야하는 길이 어디인지 성령의 감동과 주신 말씀을 통해 분명히 알고, 그 길을 묵묵히 향해 가면 그것이 마음에 감동으로 와 닿아 본이 되면 함께 가지 않겠나 싶습니다. 말과 행동과 기도가, 그리고 마음 씀씀이가 각기 다르다면 본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 겸손이라는 말은 단순히 유교적인 장유유서의 윤리를 이야기 하기 보다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그 자체가 힘들던 때에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의 삶을 사는 원로들에대한 마음의 자세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또한 복종과 겸손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 앞에서의 모습입니다. 기독인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 담대하며, 당당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먼저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의 능력의 손 아래 자기를 낮추’라 합니다. ‘능력의 손’이라는 말은 바로 출애굽에 그 연원이 닿아있는데, 출6장에 보면 강한 손, 편 팔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1절에 보면 강한 손을 더하므로 바로가 그들을 그 땅에서 쫓아 냈는데, 그 이유를 ‘하나님의 강한 손에 밀려서’라고 표현합니다. 바로는 9가지 재앙을 통해서도 그 마음이 변화가 없었는데,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인 장자의 죽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쫓아냅니다. 출애굽은 오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을 받은 성도들이 세상의 삶, 세상의 나라 속에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 백성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가 라는 것에대해 출애굽기는 ‘여호와 하나님의 편 팔과 강한 손’이라고 거듭 표현합니다. 바로가 두 손을 든 것은 하나님의 손이 역사하였기 때문입니다. 바로의 손 보다 하나님의 손이 강합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힘이 강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기독인은 감추어있는 하나님의 강한 손을 볼 줄 압니다. 출애굽은 하나님의 손이 강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히브리 산파들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살아계심을 드러냅니다. 유아를 살해하는 죽음의 힘이 횡행하던 시기에 바로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생명과 평화를 지켜냅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겸손이 순종하는 히브리산파들입니다. 출애굽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이 됩니다. 창50:20에서 온갖 우여곡절을 격은 요셉이 형을 만나 이야기합니다.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셔서, 오늘과 같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셨다고 합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손이 능력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능력의 손 아래 겸손히 순종한 것입니다. 그리고 6절에서 하나님이 높이실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을 높이셨습니다. 높이시는 일은 아버지 하나님이시지만, 낮추어 순종하는 것은 아들과 자녀들의 몫입니다. 이것이 합력하여 생명의 선한 일을 만들어냅니다. 그 순종과 겸손을 통해 하나님은 생명을 구원하며,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겸손과 순종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에대한 순종과 겸손을 통해 일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순종과 겸손은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하나님께 맡기게 하십니다. 맡기는 순간 내 삶은 누가 책임지시는지요? 하나님이십니다. 내 삶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으면 그 일은 누가 맡나요? 내가 맡습니다. 세상 속에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면서, 내 삶을 맡기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맡기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에게 함께하실 것입니다. 맡기는 순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보기만 하라는 모세의 말이 기억나야 하며, 하나님이 일하실 때 까지 기다려야합니다. 기다림이야말로 하나님의 성품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성품이기도 하며, 그럴 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합력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맡기고 기다리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홍해를 건널 때 보면 밤새 동풍이 불었다고 합니다. 메추라기를 보낼 때에도 밤새 동풍이 불었다고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가 잠든 때에, 우리가 모르는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근데 마냥 기다리는가요? 깨어있으라 하십니다. 정신을 차리라고 하십니다. 정욕에, 술 취함에, 컴퓨터와 핸드 폰에 중독이 되어있지 말고, 세상의 풍조를 본받지 말라합니다. 합력한다고 하였는데,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정신차리고 깨어 기다리며, 악마와 맞서 싸우라 하십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분별하라고 하였습니다. 악에대해, 어두움에대해 가만히 소 닭 보듯이 눈만 껌뻑거리고 있다면, 그것은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악에 함몰되어 그저 사탄 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정함과 불법과 편법과 세상의 폭력에대해, 거짓 평화에대해 폭로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엡5:8이하에서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끼어들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폭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하기 조차 부끄러운 몰래 하는 일들을 폭로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잠자는 자여 일어나라 하셨습니다. 정신 줄 놓지말고 깨어있으라 하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놓치지 말하야 할 단어는 ‘고난’입니다. 고난은 초대교회의 일상이었습니다. 5:1은 교회의 장로에대해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라고 합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 지를 보고 느끼고 만진 사람입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이 회복시키시며, 일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잃어버린 정체성을 다시 찿게 하십니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 지를 본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에게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일을 하십니다. 막1:19에 보면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를 처음 만 날 때, 그물을 깁는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바로 그 ‘깁는다’는 말이 온전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고난이 그렇게 합니다. 마치 망가진 그물을 깁듯이 헝클어진 우리의 삶의 그물망,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짜여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그물망 같은 삶을 다음 고기잡이를 향하여, 만선의 꿈을 품고 나아갈 수 있도록 잘 고쳐 놓으십니다. 바로 고난입니다. 오늘 10절 말씀은 온전하게하시고, 굳게 세워주시고, 강하게 하시고, 기초를 튼튼하게 하여 주십니다.

     초대교회 때에 그 극심한 박해가 없었다면 지금의 복음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지금의 복음이 복음으로 드러날 수 있었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지금의 복음으로 드러날 수 있었던 것은 그 핍박 속에서 간절히 붙잡은 복음의 생명력이 고난받는 형제들 속에서 살아있었기 때문이고, 그 복음으로 그 박해 속에서 기쁨과 감사와 평화로 함께 교회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복음이 우리 안에 살아 있어야, 오늘 물질 만능의 시대에 자유와 평화를 누리는 생명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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