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View Article

선하신 하나님께 구하자(성령강림주일, 2020년 5월 31일)

하늘기차 | 2020.05.31 14:30 | 조회 774


                  선하신 하나님께 구하자

2020531(성령강림주일)                                                              7:7-11;11:13

   지난주에 우리가 인정받는 것은 아버지의 선하심으로 말미암는 것이라 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선하심은 어떻게 드러날까요?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나의 나 된 모습이 그대로 인정이 됩니다. 나를 의롭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선합니다. 그런데 가족, 성도, 직장동료, 이웃을 사랑한다, 인정한다고 하면서 아버지 하나님처럼 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내 안에 선함이 없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서로 상처를 주고 미움과 원망과 분노하기 까지 합니다. 그렇다고 지금 상황 그대로 너는 너대로 살고, 나는 나 대로 살지 하며 서로 등 돌리며 살 수는 없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받은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갈급한 마음으로 구해야지요. 그런데 제대로 구하지 않으면 선함이 아니라 엉뚱한 것으로 체워질 수 있습니다. 종교에, 권력에, 자기 고집 그리고 물질을 구하며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어주셨다고 자기기만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다른 것으로 내 안을 채우며 살다 보면 예수님이 부자청년에게 말씀하였듯이 부족한 것이 생깁니다. 부족한 것이 몇 가지가 있다고 하였나요. 한 가지가 부족합니다. 이것은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체워질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럿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성경 말씀 앞의 수식어 먼저’, ‘항상’, ‘끊임없이등이 복음이라 하였습니다. 십의 일, 안식일도 한 가지입니다. 10개 중에 하나님이 받으시고자 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일곱날 중에 하나님이 받으시고자 하는 날은 하루입니다. 이것은 아버지 하나님이 무언가 부족하여 받으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13:11 이하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조상들과 약속한 땅을 얻게 되면 처음 나온 모든 것을 주께 바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혹 너희 자손들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하는 가?’ 라고 묻거든, 주님께서 강한 팔로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우리를 이끌어 내실 때, 바로가 고집을 부려, 사람을 막론하고 그 땅의 처음 난 것을 모두 죽이셨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도착을 하면 처음 난 것을 주님께 바쳐 맏 아들을 대속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것은 내가 먹어야 하고, 누군가 나를 위해 대신 죽음을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헌금은 생명입니다. 헌금은 내가 지금 호흡하고, 먹고, 마시고, 일하며 활동하는 모든 것입니다. 헌금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순환입니다. 헌금은 이런 생명의 순환 속에 내가 죽음이 아니라 생명의 삶을 살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과 함께 확장되어 희년정신으로 나아갑니다. 10개중에 하나를 드리며 일곱날 중에 하루를 다른날과 구별하여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내 삶의 동인입니다. 그런데 9개 보다 1개가 더 커보입니다. 여섯날 보다 하루가 더 커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생각입니다.

   삼상13장에 보면 사울왕이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블레셋과 전쟁 중에 사무엘이 하나님께 먼저 제사를 드린 후에 전쟁에 임하라 하였는데, 제사장 엘리야는 오지 않고 블레셋은 점점 다가오고, 백성들은 초조해 하며 흩어지기 시작하자 사울왕은 스스로 직접 제사를 드립니다. 제사가 끝나자 바로 사무엘제사장이 전쟁터로 찿아옵니다. 그런데 이미 제사를 드렸습니다. 사무엘이 꾸중을 하자 사울이 삼상13:12입니다.“이러다가는 제가 주님께 은혜를 구하기도 전에, 블레셋 사람이 길갈로 내려와서 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할 수 없이 번제를 드렸다고 합니다.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생각에는 무엇이든지 들락날락 합니다. 좋은 것, 나쁜 것, 온 갖 것들이 둥지를 틉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 생각으로 나아가면 안됩니다. 역사와 우주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우리의 생각으로 만날 수는 없습니다. 근데 우리는 죽을 때 까지 생각하며 다가 갑니다. 그러니 온갖 하나님이 공중에, 교회당에 둥둥 떠 다닙니다.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죽으심을 우리들의 길 한복판에 놓으신 것입니다. 가던 길 멈추라고요. 코로나바이러스19도 우리를 멈추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 문명과 자본을 멈추게 한 것은 코로나바이러스19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어떤 전쟁도, 어떤 경제 공항도 인류의 행진을 멈추지 못하게 하였는데 말입니다. 그런면에서 하나님은 성경 말씀을 통해 오래 전부터 우리가 멈추고, 나눌 수 있도록 소위 프레임을 짜 놓으셨습니다. 6날 중에 하루, 10개 중에 하나라는 멈춤의 프레임입니다. 하루, 하나, 먼저가 우리에게 참 기쁨을 줍니다.

   몇 년 전에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작가 이타루는 인위적으로 빵을 부패하지 않게하여 이윤을 확대하려는 것이 자본의 논리라고 하면서, 정신이 확 깨는 이야기를 합니다. 돈이야 말로 모든 피조물들이 시간이 흐르면 자동으로 부패하는데, 자본은 부패하기는 커녕 끊임없이 돈을 확대하며 끊임없이 불러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타루는 먹거리를 만드는 사람의 노동자의 존엄성, 소비자의 건강을 지키는 자본의 논리와 반대되는 거꾸로의 빵만들기를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본이 지배하는 세계의 밖으로 탈출을 시도하여, 천연의 균들이 만들어내는 기분좋은 빵 만들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빵집경제를 이타루는 부패하는 경제라고 부르면서 그 핵심은 발효, 순환, 이윤남기지 않기, 빵과 사람 키우기 라고 합니다. 그 빵집에서는 빵을 30가지 종류를 만든다고 합니다. 자본과 문명에 자유한 삶을 계획하여 살아낸 것입니다.

   안식일도 우리를 멈추게 하는 지혜의 규례입니다. 혹자는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안식일을 문자적으로 지키느냐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1/10도 폐기하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생각입니다. 진보적인 신학자 월터 브루그만은 안식일은 저항이다라고 책의 이름을 정할 정도로 강력하게 안식일이 단지 계율의 의무 조항이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라는 것을 피력합니다. 자본의 시대에 자본의 속도감을 멈추어 돌아보게 하는 또 다른 하나님의 인류를 향한 축복입니다. 하루를 쉼으로부터 솟아나오는 생명의 에너지가 아니면 어떻게 오늘 물질 만이 유일한 가치라고 하는 자본을 극복하며 나와 이웃, 그리고 동식물들과 함께 생명의 축제와 잔치마당을 펼치며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쉼과 하나님께 바침은 천연의 빵을 만드는 이타루가 자본을 탈출하듯이 우리로 하여금 물질 가치로부터 자유하게 합니다.

   우리의 영적 삶이 생각에 멈추면 오만가지 정보와 생각들과 가치와 뒤 섞여 살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선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너무 인간을 폄하하나요? 성경은 그렇게 없다고 하는데, 좀 누그러뜨려 선함이 있는데 좀 부족하다고 하면 어떨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이 믿음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믿음을 더 하여 달라고 하자 겨자씨 만한 믿음에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래도 예수님 쫓아다니며 들은 풍월이 있다고 믿음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하였지만 믿음이 없습니다. 선함도 그렇습니다. 선함은 있든지 없든지입니다. 나는 선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하나님께서 나를 선하다고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선하니 내가 선한 것입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우리가 선함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나에게선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선하니 나도 선합니다. 말도 안되는 논리인 것 같은데, 우리 자녀들을 보면 부모 따루, 아이 따루가 아닙니다. 부모의 모든 것이 아이의 모든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좋은 것 주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문을 두드려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구하는 사람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사람마다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어 주실 것이라고 하며 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 주신다고 합니다. 선함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눅11:13은 성령으로 되어있습니다. 생각에 붙들려, 생각 안에 머물러 생각과 정보와 관계망에, 자기 경험과 자기 논리에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것에 자기 연약함에 포로된 우리에게 정말 좋은 성령을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성령강림절에 선함을 구한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실 것입니다. 생각에 머물지 마시고 성령의 감동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 같이 교회이기를 기도하겠습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979개(10/49페이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2016년9월4일) 사진 첨부파일 관리자 14488 2016.09.09 08:30
공지 나는 주의 사람이니(가야금, 대금 동영상) 첨부파일 하늘기차 25856 2007.10.16 12:24
공지 망대에 오르라(창립40주년 기념 예배 설교,유경재 목사) 고기교회 26217 2006.05.31 22:16
공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하늘기차 24809 2005.09.02 16:30
795 거룩의 역동성 (성령강림 후 일곱째 주일. 2020년 7월 19일) 사진 첨부파일 마중물 826 2020.07.24 10:49
794 아무도 그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강림후 여섯째 주일. 2020 사진 첨부파일 만지다 831 2020.07.12 23:23
793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성령강림후 다섯째 주일. 2020년 사진 첨부파일 김현식 1142 2020.07.07 13:48
792 '함께' 즐기며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성령강림후 넷째주일, 2020. 사진 첨부파일 mungge 1057 2020.06.29 22:07
791 겨리소 멍에(성령강림후세째주일, 2020년 6월 21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570 2020.06.21 10:14
790 함께하시는 성령(성령강림후두번째주일, 2020년6월14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881 2020.06.14 14:02
789 생명은 꽃처럼, 삶은 향기처럼(성령강림후첫째주일, 2020년6월7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075 2020.06.07 14:18
>> 선하신 하나님께 구하자(성령강림주일, 2020년 5월 31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775 2020.05.31 14:30
787 한 가지 부족한 것(부활절일곱번째주일, 2020년 5월 24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860 2020.05.25 11:48
786 쉬지말고 기도하라2(부활절여섯번째주일, 2020년 5월 17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903 2020.05.17 14:19
785 쉬지말고 기도하라(부활절다섯번째주일, 2020년 5월 10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905 2020.05.10 14:38
784 붙어 있지 아니하면(부활절 네 번째주일, 2020년5월 3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877 2020.05.03 15:05
783 이 지경이 될 때까지도(부활절 세번째주일, 2020년4월26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925 2020.04.26 13:45
782 부활, 말씀, 내려놓음(부활절 두번째주일, 2020년4월19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159 2020.04.18 20:39
781 부활은 변화(부활주일,2020년4월12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053 2020.04.12 06:53
780 침묵, 아브라함, 사람의 아들(종려주일, 2020년4월5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866 2020.04.04 19:02
779 성문 밖(사순절다섯번째 주일, 2020년3월29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546 2020.03.28 17:49
778 멈추게 하시는 하나님(사순절네번째주일, 2020년3월22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164 2020.03.21 21:45
777 두려움과 떨림(사순절세번째주일, 2020년3월15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119 2020.03.14 18:35
776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사순절두번째주일, 2020년3월8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860 2020.03.08 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