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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부족한 것(부활절일곱번째주일, 2020년 5월 24일)

하늘기차 | 2020.05.25 11:48 | 조회 860


                     한 가지 부족한 것

2020524(부활절일곱번째주일)                                                       3:16;1:16,17

   3:16과 롬1:16, 17 말씀은 복음의 핵심입니다. 3:16에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하나 밖에 없는 외 아들을 이 세상에 낸 것은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며, 생명의 힘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멸망하지 않고 영생, 즉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앞에 믿는 사람마다라는 조건이 붙어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세상은 믿음으로부터 오는 것에대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영생은 오래 산다는 양적인 개념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삶을 뜻합니다. 이 영생을 롬1:17 말씀으로 풀어보면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입니다. 3:16 말씀으로 보자면 생명의 의, 영생의 의 입니다. 여기서 의로움이라 하면 안됩니다. ‘입니다. 왜냐하면 의로움이라는 말의 느낌에 행위의 느낌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어떤 것으로도 더할 수도 뺄 수도 없는 하나님의 의, 십자가와 부활의 의, 성령의 감동이 아니면 호리라도 접근 할 수 없는 의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이 베푸시는 의는 공과가 없는 십자가의 구속의 은총으로부터 내리는 의입니다. 영어로 말하면 ‘Rightousness’의 의, 그러니까 의 의가 아니라, ‘Justify’의 의, 인정하는 입니다. 법정 용어이기도 합니다. 죄 없다고 인정을 받는데, 법이 아니라, 법을 뛰어 넘어 믿음으로 인정받는 삶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영생의 삶이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인정하는 삶. 아무도 나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지금도 살아계시며 주권자이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를 인정하십니다. 그래서 평안하며, 자유로우며, 사랑이며 감사합니다. 이 믿음으로 부족하지만 지금 까지 살아왔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동안에 만난 사람들 중에 공의회 의원이었던 니고데모와 레위인이었던 부자청년과의 만남은 인상적입니다. 모두 당시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과 만나면서 자신들이 가진 신앙의 관점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 두사람의 공통점은 삭캐오나 혈루증 앓는 여인 같이 절박함을 가지고 예수님에게 찿아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과연 어떤 사람인지 궁굼해 하며 예수님과 신앙을 논하려고 찿아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풀어낸 이야기를 거부하시며 다시 태어나라, 땅에서 일어나는 일도 모르면서 어찌 하늘의 일을 알 수 있냐고 면박합니다. 왜냐하면 니고데모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라는 것 과 기적을 연결시켜서 자신에대해 말하는 것에 예수님은 거부감을 느낀 것입니다. 2:18에서 유대인들은 대뜸 예수님에게 무슨 표적을 보여줄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23절도 유대인들이 표징을 보고 믿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의 활동을 비쳐줄 만한 권위나 보증을 기적에서 찿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무슨 권위나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아버지 하나님 처럼 나는 나인 자존감 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냥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처럼 예수님처럼 나는 나이기를 바랍니다. 기적은 세상을 사랑하는 창조주 하나님의 선하심이 그대로 예수 안에서 넘쳐나 망가져가는 세상을 긍휼과 자비로 바라봄에서부터입니다.

   그러나 니고데모 역시 당시의 유대인들 처럼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는지를 기적을 통해 확인하려 한 것입니다. 오늘 날에도 마찬가지 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자꾸 눈에 보이는 것으로 신앙을 평가하고, 기준을 삼으려 합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받을 때 사탄의 시험의 첫 마디가 무엇이었나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니 이것도 하고 저 것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사탄이 인정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인정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일을 인정해 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오직 요나의 기적 밖에는 아무 것도 보여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눅11:29에서 이러한 세대를 악하다고 하셨습니다.

   니고데모와 비슷한 사람이 또 있습니다. 부자인 바리새인 청년이 예수님에게 찿아와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으며, 십계명을 잘 지켰다고 자기의 공과를 드러내는데, 그래도 예수님은 이 청년을 눈여겨 보시고 사랑스러워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만한 사람도 흔치 않습니다. 모두들 존경했으니까요. 그럼에도 바리새인 부자 청년에게 한 가지가 부족한게 있다고 하시면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이 청년은 울상을 지으며, 근심하면서 예수님을 떠납니다. 왜냐하면 이 청년은 재산이 많았습니다. 결국 이 청년의 자기됨은 그 바탕이 재산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2%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것들을 얻고, 구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계획과 열심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그러나 그 동안 내가 쌓고, 계획하고, 열심을 다 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한다면, 한 가지 부족합니다. 바리새인 청년의 물질에대한 가치관, 그리고 바리새인으로서의 교리적인 해박함, 그리고 율법에 근거한 도덕적인 행위의 자기 의로움, 자기 정당성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는 믿음의 의, 십자가에서 생명 까지도 내어놓은 의, 아브라함이 보여준 절대 순명의 의로움울 향하는 마음이 부족합니다.

   3:19에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 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합니다. 물질에 붙들린 부자 청년도, 종교에 매인 니고데모도 모두 빛이신 예수님 보다 자신의 것을 더 사랑하여 자신의 가치를 포기할 수 없었고, 또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를 거부한 세상을 정죄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사랑으로 세상을 품으셨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준 십자가의 사랑은 나의 나 된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 줍니다. 의롭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가족, 성도, 직장동료, 이웃을 사랑한다, 인정한다고 하면서 그게 잘 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내 안에 선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나를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으로부터 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선함이 없으니 우선 나 뿐 만이 아니라, 나와 함께하는 것들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인정하는 방법이 생겼습니다. 오늘 말씀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합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여기서 의는 인정받는 의입니다. 바로 십자가가 그 의로움을 확증합니다. 확증은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내가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확증해 줍니다. 그러니 평화하며, 감사하며, 기쁨입니다. 복음입니다.

   1:16절은 이 복음에대해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생명의 능력을 잃어버린 것은 사랑하지 못하고, 불안해 하며, 미워하며, 거짓말하며, 게으르며 하나님이 아니라 돈의 가치와 종교성에 매여 죄로 말미암아 그 선함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정의와 평화, 자유, 나눔, 감사의 모습은 어디로 다 사라지고 괴물같은 인간의 이기적인 욕구만 종교로 덫 칠하여 회칠한 무덤 같이 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기적, 은사, 부흥, 성장 프로그램 등, 종교적으로 보려합니다. 그러한 행위들은 시대에 따라, 유행에 따라 바뀝니다. 욕심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선한 뜻이 아직도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여전히 선합니다. 선하다고 보는 것이 믿음이고, 그렇게 인정을 받으며 영생을 사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윤무진 집사님이 핸드폰으로 자기 얼굴을 찍으면 그 사람이 어떤 꽃인지를 알 수 있는 앱을 깔았다고 자랑하면서 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제가 무슨 꽃으로 나왔을까요? 알아맞히면 500원입니다. 하하 찔레꽃이었습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신의 모습, 정체성을 우리는 무척 알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생명의 본질입니다. 생명은 자기 발현을 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다면 그것은 생명이 아닙니다. 그러니 심한 질병을 앓거나, 핍박을 당하거나, 무엇인가에 중독되었거나, 우상에 매였거나, 갖혀있거나, 종교에 몰입되거나 등등 자유와 평화가 결핍되면 나는 나일 수 없습니다. 최근 N번방, 경비실아저씨의 죽음 등,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특히 범죄 년의 등장은 아이의 실패가 아니라 사회의 실패라고 합니다. 건강하지 못 한 사회, 억압적인 제도와 구조 속에, 거대담론의 도도한 흐름 속에, 특히 자본에 몰입된 세계 속에서 스스로를 지켜나간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믿음의 의로 부르신 것은 축복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교우여러분! 한가지 부족한 것을 주께서 나를 인정하심으로 체웁시다. 십자가에서 보여주셨습니다. 성령께서 확증하십니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한 번 밖에 없는 삶, 생명으로 인정 받는 의로 하나님의 나라 승리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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