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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추시고 죽기까지(성령강림후 열둘째주일, 2016.8.7)

mungge | 2016.08.18 11:38 | 조회 1301


2016. 8. 7.

제목: 낮추시고 죽기까지

본문: 빌립보서 21~11

 

베들레헴에 가면 그곳에 예수께서 나신 곳을 기념해서 주후 4세기에 큰 예배당을 지은 것이 지금까지 있습니다. 돌로 튼튼히 잘 지었고 그 안에 들어가 보면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성화를 그렸고 강단 밑에는 바로 에수님께서 나신 곳이라고 대리석에 별표를 만들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예배당의 특색은 들어가는 문이 하나밖에 없고 그것도 매우 낮으며 작다는 것이다. 이 예배당에 들어가는 사람은 겸손해야 하는 까닭으로 이렇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기독교 진리의 핵심은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입니다. 그리고 이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은 끝없이 쌓아 가는 지식이 아니라 자신을 한 없이 낮추어야 하는 겸손입니다.

오늘 본문 앞부분 1~4절까지는 그리스도 안에서 어떠한 선한 일을 하더라도 겸손한 마음으로 해야 하며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라고 말합니다. 누군가를 격려할 때, 사랑의 위로를 건넬 때, 영적인 교제를 나눌 때, 동정심과 자비심을 베풀 때, 우쭐한 마음으로 자기가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말고 같은 생각과 같은 사랑으로 뜻을 합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좋은 일을 베푸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마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좋은 일을 할 때에 내가 가지고 있는 선을 누군가에게 베푼다고 생각하며 은근히 나를 남보다 높은 위치에 올려놓게 됩니다. 이래서는 한 마음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좋은 일을 하더라도 우쭐한 마음으로 하기 때문에 절대 누군가와 한 마음이 될 수 없습니다.

한 마음이 된다는 것,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과 한 마음이 되고, 이웃과 한 마음이 되는 것, 이것이 겸손이고, 이것이 사랑입니다. 이 진리를 온 몸과 마음으로 몸부림치며 살다 간 사람이 예수님입니다.

6~11절까지의 본문은 초대교회의 찬가였습니다.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이 짧은 찬송가로 들려주고 있습니다. 6절에서 8절까지가 예수님이 하셨던 일의 초절정 요약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마태, 마가, 누가복음 수십 장에 걸쳐 자세히 나와 있지만, 간단히 말해서 자기를 비우고 낮은 곳에 머무는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사랑과 물의 속성 중 닮은 것은 무엇입니까?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사랑은 먼저 된 자가 나중 된 자를 품고 안아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낮아지셨습니다. 그 낮아진 정도가 어디까지이냐 하면 신이 인간의 몸으로 오셨다는 사실도 놀라운데, 그 신이 십자가에 죽기까지 낮아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신화, 힌두교 신화 그 어디에서도 신이 인간을 위해 죽었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신의 만족을 위해, 신의 영광을 위해 인간이 목숨을 바쳤다는 이야기는 있어도 그 반대의 이야기는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지요.

신이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입니다. 3차원의 공간을 의지하여 사는 인간이 2차원의 평면을 살고 있는 개미처럼 되는 것입니다. 아니 그 이상이지요.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진리 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되려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이 우주를 만들고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이 자신의 창조물들을 무한히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했기 때문에 같아지려고 한 것입니다. 한 마음이 되려고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방법으로 하나님이 인간과 같이 되셨을까요? 어떻게 불완전한 인간과 한 마음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비움이라는 신비한 방법입니다. 신이 인간의 몸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다는 성육신 사건은 신이 무엇을 더 채웠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를 덜어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 존재는 우주의 근원일 것이며, 그 자체가 완전함일 것입니다. 그 스스로 완벽하기 때문에 굳이 다른 무엇인가로 채워질 필요가 없겠죠. 신이 우주를 만들었다는 것은 그 자신의 부족한 무엇을 채우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의 완전한 충만을 일부 덜어서 우리에게 내어 주었기 때문에 우주 공간이 만들어 지고, 이 지구가 생겨나고 인간이 숨을 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시기 이전, 창조때부터 이미 우리를 향한 사랑으로 그 자신의 일부를 덜어 내셨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신의 마음 곧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고 5절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면 그의 삶처럼 나를 덜어내고, 나를 낮추고, 겸손해야 합니다.

중국의 유명한 노자는 상창이라는 스승에게서 도를 배웠습니다.

어느 날 노자는 늙어서 죽어가는 스승 상창을 찾아가서 "사부님, 사부님께서 세상을 뜨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게 마지막 가르침을 주십시오" 하고 부탁하자, 상창은 얼마 동안 노자의 얼굴을 보더니 입을 열고는 "내 이빨이 있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노자는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다시 상창은 "내 혀는 있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노자는 "사부님 혀는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자 상창은 ", 이제 알겠느냐?"고 했습니다.

노자는 "사부님 알겠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하고 큰절을 드리고는 물러 나왔다고 합니다. 이들이 주고받은 이야기는 간단명료합니다. 그렇다면 노자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깨달았다는 것일까요?

이 세상에서 이빨처럼 굳고 강하고 날카로워서 입술과 혀를 물어서 피를 내는 것은 나중에 부러지고 깨지고 빠져나가고 없어집니다. 정치권력, 무력, 돈은 사람을 곤두박질 치고, 피눈물을 흘리게 할만큼 강한 힘을 보여주지만, 이내 곧 부러지고 빠져나가서 다 없어지고 말 것들입니다. 그러나 혀처럼 바보스럽게 물리고 피가 나는 것은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 남아있게 됩니다. 노자는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만이 오래 남는다는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비우는 삶, 겸손한 삶, 그것은 나 아닌 다른 이들과 하나 되는 삶입니다. 산을 오르다 보면 우뚝 솟은 봉우리 사이에 큰 계곡이 벌어져 있고 어디에서 솟아나는지 끝없는 물줄기가 계곡을 따라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 산꼭대기에 있던 물은 왜 내려갈까요? 그것은 저 아래 바다에 이르러 모든 물들과 하나 되기 위해서입니다. 갈래갈래 흘러오는 물들과 만나 아득한 수평선을 만드는 고요한 바다, 침묵의 바다, 평화의 바다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도 물처럼 나보다 낮은 사람들을 향해 흘러가서 그들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어떠한 칭찬과 멸시에도 동요되지 않는 상태가 됩니다. 어떠한 탐욕도 우리를 유혹할 수 없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삶을 따라가야 하는 이유는 바로 평화의 바다를 경험하기 위해서입니다.

잔은 채워져 있을 때 가치가 있을까요? 비워져 있을 때 가치가 있을까요? 채워져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한 그 잔은 쓰임을 다 한 것입니다. 더 이상 쓸 데가 없습니다. 잔을 비울 때에 가치 있는 무언가가 채워지게 되고, 그것을 또 덜어내면 또 다른 의미가 채워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을 비워내고 덜어내십시오. 한 주먹밖에 되지 않는 괜한 자존심을 내려놓고, 한 그릇밖에 되지 않는 쓸데없는 욕심도 덜어내고, 남들 앞에 서서 박수 받고 싶은 허황된 교만도 버리십시오. 언제나 그렇듯, 우리 스스로는 이렇게 할 힘이 부족합니다. 우리는 거룩한 영, 성령님의 이끄심을 받으십시오. 낮아지는 삶을 위해 성령을 받으십시오. 그러면 어느덧 여러분들은 여러분들보다 못하다고 여기던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 있고, 여러분의 빈 마음에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남을 여러분보다 낫다고 여기십시오. 그러면 그 낮아짐으로 여러분들은 평화의 바다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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