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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랑(성령강림후 아홉째주일, 2016.7.17)

mungge | 2016.07.19 20:08 | 조회 1606

제목: 어리석은 자랑

본문: 고후 125~10

설교자: 김준표 목사

 

제가 아는 사람을 한명 소개 하려고 합니다.

이 사람은 외모가 그렇게 출중한 사람은 아닙니다. 키가 조금 작은 편이고 머리는 대머리입니다. 안짱다리를 가졌고, 코는 약간 매부리코입니다. 등은 굽어서 곱추라고 불릴 정도였고, 눈은 약간 찡그리듯 해서 어색한 감이 있습니다.

외모는 그리 훌륭하지 않지만 머리는 아주 똑똑한 사람입니다. 인문학에 대한 이해력도 높았고, 어학도 최소 3개국어 정도는 해낼 수 있을 정도로 영특한 사람이지요. 머리가 똑똑하고 글은 잘 쓰는 것에 비해 아쉽게도 말은 어눌한 편입니다. 가끔 침을 튀기며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말하지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서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열정은 얼마나 강한지 뭐 하나가 마음에 꽂히면 목숨을 걸 정도로 그 일에 집중하며 헌신합니다. 논쟁하는 것을 좋아해서 조금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이기도 합니다.

집안은 그리 나쁜 것 같지 않고 유복해 보이는데, 집에 별로 기대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혼자서 이곳저곳을 떠돌며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갑니다. , 이 사람은 가끔 지병 때문에 열이 나서 며칠 누워있기도 하고, 발작 비슷한 걸 합니다. 아마도 많은 성도님들이 이 사람을 이미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눈치를 채셨겠지만, 위에서 말한 사람은 사도 바울입니다. 성경안에는 외모에 대해 쓰여있지 않지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나 그림, 신약에 포함되지 않은 말씀에 언급된 대로 묘사해 보았습니다. 어떠세요. 이렇게 사도바울을 묘사하니 친근함이 더 생깁니까? 매력적인 사람으로 느껴지십니까? 아니면 약간 비호감으로 느껴집니까?

 

요즘 수요일마다 바울서신을 이야기 나누면서 인간 바울에 대해 더 많이 접하고 상상하게 됩니다. 이제 바울은 이전에 제가 알던 바울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옵니다. 이전에는 외모는 어떨지 몰라도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 열정으로 회당과 광장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많은 사람들을 논쟁에서 물리치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가 세운 많은 교회의 성도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는 초대교회시대에 스타와도 같은 사도 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사도들과 함께 바울의 이야기가 적혀있는 사도행전과 자서전처럼 쓰여진 바울의 편지들을 찬찬히 읽어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바울이 아주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치열했던 복음전도의 삶이 우리에게는 칭송과 존경의 대상이겠지만, 바울 자신에게는 큰 형벌을 받은 것처럼, 인간이 참고 견뎌낼 수 있는 한계 그 이상의 고통을 경험하는 하루하루였음을 느끼게 됩니다. 이제 바울은 제게 한 가지 이미지가 더해졌는데, 영화 암살에서 배우 조승우가 잠깐 내비치며 연기했던 의열단의 창시자 독립투사 김원봉을 떠올리게 됩니다.

 

바울은 시대와 불화한 삶을 살다간 혁명가적 기질이 다분한 사람으로 느껴집니다. 바울은 분명 당시 시대와 인식을 같이 하지 않았습니다. 군사력과 폭력적 힘의 논리로 사회를 유지하는 로마제국의 질서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배타적 유대주의를 거부하며 이방인들과 유대인들, 자유인가 노예들, 남자와 여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평등한 관계임을 거침없이 선포하며 실천하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이 전하고자 했던 이 자유와 평화, 평등의 복음은 예루살렘은 물론 로마제국 전 지역에 받아들여질 수 없을 정도로 혁명적이고 시대를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세상과 불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은 분명 천재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세상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행운아는 아니었습니다. 초대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큰 공로를 한 사람이었지만 예수의 동생 야고보가 이끌던 예루살렘 신앙공동체는 그를 기꺼운 마음으로 사도로 인정하기를 꺼려했고, 이스라엘 바깥으로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회당에서는 이단아로 낙인찍혀 온갖 고초와 핍박을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현대의 유대인 랍비들은 예수와 바울, 둘 중에 누구에게 더 호감을 느낄까요? 바울에 대한 거부감이 더 크다고 합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이 배출한 세계적인 유대교 랍비로 인정하는 것에 대해 암묵적인 동의가 있는데, 바울은 이스라엘 바깥에서 유대교의 핵심인 할례와 정결법의 근간을 흔들며 유대교와 회당의 질서를 무너뜨리려 했던 위험한 존재였다고 보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당했던 고난과 고초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고후11:23~28) 그는 감옥살이도 많이하고, 몇 번의 죽을고비도 넘겼습니다. 매도 많이 맞았습니다. 채찍질도 당하고, 심지어 돌에도 맞아 거의 줄을 뻔 했습니다. 전도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언제나 위험에 노출되어 위협을 당했습니다. 강물과 강도, 동족과 이방인, 도시와 광야, 바다와 거짓형제들, 이 모든 것이 바울의 생명을 위협했습니다. 밤도 여러 번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고이것이 인간으로서 감당하며 살만한 생활입니까? 게다가 모든 교회들의 염려를 가득 가슴에 담고 살아야 했으니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겠습니까?

 

고린도 교회는 어떤 문제들이 있어서 바울의 마음을 힘들게 하고, 바울이 전투적인 의지로 편지글을 쓰도록 했을까요? 지난 고린도전서 설교에서 몇 가지를 언급했지만, 오늘 고린도후서의 편지에서 등장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외부에서 들어온 바울을 반대하는 복음 전도자들과의 대립입니다.(12:11) 그들은 아마도 팔레스틴 출신의 유대인 그리스도인이었을 것인데(고후 11:22~23) 그들은 자신들의 사도 직위를 강조하며(11:4~5) 다른 교회의 추천장을 제시했고(3:1) 사도바울의 사도직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고후10:10)바울 겉모습의 변변치 못함과 말솜씨의 어눌함을 들어 비난하고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고린도 교회안에서 유대인으로서의 출신성분을 강조하고, 특별한 계시체험을 하는 것을 자랑하며 사도바울과 자신들을 비교하였습니다. 이들에 대해 사도 바울은 고후10~13장에서 매우 격앙된 어조로 그의 적대자들의 비난을 하나하나 따져 듭니다. 이 연관 속에서 바울은 자기가 겪은 고난과 박해를 하나하나 열거하고, 그 고난과 박해가 참 사도의 표지가 됨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장점으로 고백합니다.(12:9)

 

고린도후서는 바울의 적대자들과의 경쟁구도가 밑바탕에 있기에 자랑하다라는 표현이 그렇게 많이 반복되는 있습니다.(10:17, 11:16, 11:18, 11:30, 12:5, 12:6, 12:9) 바울의 적대자들이 자신들의 화려한 겉모습과 출신성분과 말의 수려함과 영의 은사를 자랑하며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들을 내세울 때, 사도바울은 무엇을 자랑하고 있습니까? 주의 복음을 위해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기고, 거리에 내쫓겨 헐벗도 굶주리고 추위에 떨며 하루하루 근근이 버티며 살기를 반복했던 사도바울이 자랑할 거리가 있기나 한겁니까?

, 바울은 그래도 당당히 자랑합니다. 자신의 무능함과 약점과 어리석음을, 그리고 병약함을. 분명 바울은 기독교의 진리를 꿰뚫은 사도였습니다. (4:7)왜냐하면 자신은 보물을 간직하고 있는 질그릇과 같은 존재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전도여행에서 벌어지는 그 놀라운 결과들과 그 과정에서 병든자를 고치고, 적대자들을 물리치고, 고난중에도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그 기적과 엄청난 능력은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온 것임을 알았습니다. (12:10)“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타인이라는 공간에 머물던 예수라는 청년의 삶과 십자가에서의 죽음, 그리고 부활이야기를 소아시아와 유럽에까지 전했던 사도바울은 기독교에서 가장 위대한 사도 중 한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의 복음에 대한 헌신과 노력이 있었기에 기독교는 이스라엘 땅에서 유대주의라는 협소한 틀을 깨고 땅 끝까지 퍼지는 복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사도 바울은 분명 큰 자랑이 됩니다. 그런데 바울은 스스로에게 그러지 않았습니다. 스스로를 어리석다 여겼고, 베냐민 지파요 바리새파 사람으로 율법에 열심이었던 자신의 옛사람을 해로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사도바울이 그렇게 치열하게 목숨을 걸고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 가장 바라던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아, 부활에 이르는 것”(3:10)이었습니다. 이 복음외에, 이 능력외에 어떤 것도 바울의 자랑이 될 수 없었습니다. 나머지 인간적인 자랑거리는 바울에게는 다 배설물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솝 이야기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마리의 사슴이 목이 말라 호숫가로 물을 마시러 갔습니다. 이때 사슴은 물속에 비친 제 그림자를 바라보았습니다. 나무 가지 모양 여러 갈래로 뻗친 제 뿔을 그는 매우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의 가느다란 다리를 보았을 때, 다리는 왜 이다지도 보기 싫은가 하고 한탄했습니다. ‘이런 다리는 없는 것만 못하다이렇게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데, 때마침 사자 한 마리가 나타나서 사슴을 잡아먹으려고 좇아왔습니다. 사슴은 그 소용없는 물건이라고 핀잔을 주었던 가는 다리에 의지하여, 숲속으로 뛰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뿔이 나무 가장귀에 걸려서 가엽게도 사슴은 사자의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불쌍한 사슴은 다시금 이렇게 한탄을 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욕만 하던 다리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는데 오히려 자랑으로 알았던 뿔 때문에 이렇게 죽고 마는구나.” 하고 말입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세상이 진리라고 외치는 이치와 분명히 다릅니다. 돈과 명예와 지식으로 쌓아올린 아름다움과 강함과 지혜로움은 하나님 나라에서 모두 배설물과도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혜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셨고,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비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셔서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나님은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고전1:27~9)

 

여러분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이며, 자녀입니까? 그럼 여러분들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여러분들이 지혜롭고 강한 사람으로 비쳐지고, 그렇게 비쳐지기를 바란다면 하나님의 부름에 아직 응답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직까지 예수님이 짊어지고 가신 십자가를 멀찍이서 감상만 할뿐이지 여러분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아주 어리석은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자랑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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