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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로 다시 만난 예수님 -단원고 故 유예은양 어머니 증언

하늘기차 | 2016.07.16 09:03 | 조회 1545



민중신학자 서남동 목사의 32주기 기념포럼이 11일 서울 서대문구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총회교육원에서 열렸다. 서 목사는 고난받는 민중의 ‘한의 소리’를 통해 예수의 말씀을 선포하며 한국 민중신학의 길을 열었던 목회자다.
이날 현장엔 80여명의 신학자와 현장 목회자들이 참석해 이 시대 민중신학의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가장 마지막 시대의 증언자로 나선 세월호 참사 희생자 단원고 유예은양 어머니 박은희(사진) 전도사가 참사 전후 자신의 신앙에 대해 담담히 들려줬다. 이 발언이야말로 곧 우리 시대의 민중신학이나 다름없다. 이하 전문(명동 향린교회의 조헌정목사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국민일보 기사를 보고 감동이어서 그대로 퍼 왔습니다)

“피해자의 부모로서 드는 수만 가지 생각과 감정 외에 평생을 교회라는 틀 안에서 살아왔고, 어쭙잖게 신학을 잠깐이나마 배워왔던 저에게 참사 직후 몇 개월의 시간은 폭풍과도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이 상황을 난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앞에 강연에서 ‘텍스트’와 ‘컨텍스트’ 이야기를 하셨는데, 참사 직후 기도하고 성경책 보는 것, 찬송 부르는 걸 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기도와 찬송과 성경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 곧 지켜주신다는 약속이 있었는데 그게 안 지켜졌잖아요.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계속 신이라는 존재를 믿을 수 있을까.

그러다 어렵게 성경책을 보게 됐습니다. 복음서, 사도행전, 서신서 읽으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참사 후 본 성경책은 그냥 현장이었습니다. 더는 텍스트가 아니었어요. 그리고 우리가 겪어내고 있는 삶이 그냥 텍스트였습니다. 그 두 가지가 순간 꽝하고 부딪혀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그다음에 성경 말씀이 더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관한 본문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대속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대신 죽음. 아이들의 죽음은 또 다른 대속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제물로 바쳤다는 어떤 목사들의 말이 아니라 이 세상에 악이 찼을 때 누군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엄연한 현실을 제가 보게 된 것입니다. 그 대상이 때로는 굉장히 제한적이라 누구는 피해가고 누구는 당할 수밖에 없는 부조리한 사회구나, 예수님은 선택해서 가셨지만, 우리는 무작위적으로 죽음을 대면할 수밖에 없다고 느꼈습니다.

 성만찬에 대해서도 이전과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됐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서서히 죽어갔고, 그래서 더 괴로웠습니다. 부모도 국민도 생중계되는 걸 봐야 했기 때문에. 예수님도 십자가상에서 서서히 죽어가셨구나, 그걸 지켜봐야 했던 제자들과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엄마의 고통은 어땠을까. 이건 우리와 너무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 일을 겪고 나서 성만찬에 참여하는 날, 포도주에 적신 빵을 보면서 순간적으로 소름이 끼쳤습니다. 포도주에 젖은 그 빵이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피범벅이 된 모습과 너무 똑같이 보였습니다. 아, 독하다. 제자들, 너무 독하다. 그 빵을 먹으면서 자신들이 비겁하게 숨어서 봤던 예수님의 몸뚱어리를 진짜로 내 몸 안에 새겨 넣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성만찬에 참여하는 게 달랐습니다. 제자들은 그런 마음으로, 비겁하게 도망가면서 봐야 했던 예수님의 죽음, 피범벅이 된 예수님의 몸을 자기 몸에 심었구나.

저희는 ‘쿵’하고 컨텍스트와 텍스트의 구분이 없이 만났습니다. 2000년으로 제가 돌아가 있는 것 같고 2000년 전 상황이 2016년 현재로 쑥 들어와 버린 것 같았어요. 그래서 다시 성경 읽기를 시작했습니다. 엄마들이 처음에는 공부하려고, 배우려고 하길래 그냥 읽다가 만나라고 했습니다. 모태신앙이라 이전에 수많은 설교를 들었습니다. 이제는 그 모든 것을 미뤄놓고 읽습니다. 신학교에서 배웠던 여러 가지, 성경이 나오기까지의 과정, 역사적 배경 이런 모든 것을 미뤄놓고 읽으니 더 생생하게 와 닿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교회가 보였습니다. 저에게 교회는 선한 사마리아인이고, 제자들이고 초대교회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 일을 겪고 나서 보니 교회는 사마리아인도 초대교회도 아니고 거만한 제사장과 레위인이고, 그 제자들을 핍박했던 기득권이었습니다. 내가 이런 상황에서 교회 다니는 게 맞을까. 우리 교회 목사님이 세월호에 관심을 갖고 뛰시기 때문에 제가 그나마 교회에 발을 담그고 있지만 순간순간 고민합니다.

요즘 드는 고민은 그런 것입니다. 분명히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약속하고 가셨는데 아직 다시 오시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의 그런 간절한, 제발 빨리 예수님이 왔으면 좋겠다, 너무나 간절한 소망, 바로 옆에서 신앙 생활하던 형제자매들이 죽어가는 걸 목격하면서도 재림에 대한 소망을 놓지 않았던 제자들의 모습이, 진실규명이 너무나 절망적인 지금의 이 상황에서 그래도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붙들고 있는 저희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무엇이고 재림은 무얼까. 나의 몫은 예수님이 죽음을 바라보고 고통 가운데에서도 재림을 놓지 않은 자로 살아야 한다는 그런 명령이 아닐까. 때로는 너무 고통스럽고 때로는 그렇기 때문에 절대자를 놓을 수 없고, 이렇게 지어진 인간으로서 내가 살아낼 수 있는 순간순간 아이를 보고 싶은 마음에 수백 번도 생각해본 죽음이라는 그 문턱을 넘지 않게 하는, 그 소망. 그걸 가지라고, 살아내라고, 죽지 말라고. 그렇게 말씀하신 게 아닐까.

제자들은 70년 넘는 시간을 견디어 낸 끝에 인정받았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진실은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조금이라도 그 시간을 끌어당길 수 있을까. 예수님의 재림처럼 계속 못 보게 되면 어떡하지 그런 두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살아낸 예수의 제자들, 그들로 인해 2016년 저에게까지 흘러온 복음이 지금도 저의 발을 붙들고 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 중 교회 다니다 떠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거의 지옥 같은 순간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서두에 읽어주신 마태복음 25장,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었다. 경험적으로 2년 동안 맞닥트렸던 말씀이다. 죽고 싶은 순간을 멈추게 한 것은 말씀 속 제자들의 모습 덕분이기도 하지만 사선에서 삶과 죽음 사이에서 위태로운 길을 걸어가는 저희의 손을 붙잡아준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우리 가족들은 그런 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봅니다. (유가족들은) 하나님이 어디 계셔, 그런 말을 많이 합니다. 저는 (손을 잡아주는 이들의) 모습으로 찾아오신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을 타고 하나님이 오신다는 서남동 목사님의 말처럼, 하나님은 무작정 들어와서 교통정리 하시듯 그러는 분이 아니라 주권을 갖고 살아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안에서 어그러지고 삐뚤어진 세상 속에서 절규하는 모습을 우릴 통해 보여주시는 게 아닌가. 저희를 방문해주신 분들이 고통 가운데 저희 울음 가운데 하나님을 본다고 말합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인간 형상은 거기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어쭙잖은 생각도 해봅니다.

얼마 전 이틀간 성공회대에서 참사피해자 증언대회가 있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 위안부 할머니들, 해외에서도 참사가족피해자들이 와서 증언했습니다. 저희 부모 가운데 다녀온 사람이 너무 놀랐다 그래요. 완전히 다른 나라, 다른 상황 속에 있던 사람들인데 우리랑 너무 똑같다고 그래요. 그 엄마는 교회도 안 다니고 신학한 사람이 아닌데도 그걸 알았답니다.

앞에서 (김용복 박사가 한의 신학이 세계적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했는데) 신학에서 시작해서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곳곳에서 들려오는 고통의 소리를 통해서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볼 수 있는 게 아닌가. 신체 일부가 아프면 그것을 통해 몸의 이상 증세를 느끼는데 우리는 바로 그 아픈 고통의 부위입니다. 우리는 절규하면서 이 세상은 잘못됐다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저희를 보시는 여러분들께서 똑똑하게 파악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식 잃고 예전에 어디 이상한 나라의 폴이라는 만화 영화가 있었는데, 그 꿈을 많이 꿉니다. 제가 거기 와 있는 것 같아요. 이상한 세상에서 살면서 내가 땅을 밟고 있나, 내 아이를 건사하고 있나, 그런 것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챙겨내고 살아내려고 우리 가족들은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하는데 (그게) 안 됩니다. 꽉 막혀있는 답답함이 없어지기 전엔 갈 수가 없습니다. ‘왜’에 대한 답을 얻기 전까지는 아무리 용을 쓰고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죽을 힘을 다해도 되지가 않습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저희는 크리스천이잖아요. 제자들이 2000년 넘은 저희에게까지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은 것처럼, 제자들처럼 그렇게 살려고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여기 오신 분들은 서남동 목사님의 신앙을 그리워해서 오신 게 아니라 그렇게 사시려고 온 것이잖아요. 해석을 넘어서 온몸으로 그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익투스, 초대교회 교인들이 사용했다는 그 물고기 표시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누군가가 달고 있는 노란 리본, 누군가의 차에 붙어있는 리본 스티커에 우리 가족들이 숨을 쉽니다. 예수님 믿으면 죽는다는 시대에 그런 표식을 한 사람을 보면서 서로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을까. 그렇게 그 순교를 견디지 않았을까. (세월호) 가족들이 제자들처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협력해주십시오.”

                                                         국민일보 2016년7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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