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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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라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라(성령강림후 여섯째주일, 2016.6.26)

mungge | 2016.06.26 17:15 | 조회 1610

본문: 데살로니가후서 1:3~5

제목: 그 나라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라

 

우리는 지난 두주 동안 말씀을 통해, 교회는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신앙공동체로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며 사랑과 진리로 충만하게 자라나야 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데살로니가후서 1장의 말씀은 교회가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해 분명히 말해줍니다. 사도 바울이 동역자인 실라와 마게도냐(그리스북부)의 가장 중요한 항구도시였던 데살로니가에 머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17장을 보면 바울과 실라가 유럽 최초의 교회 빌립보교회를 세운 후 데살로니가에 내려와서는 세 안식일에 걸쳐 회당에서 성경을 가지고 토론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복음증거에 많은 경건한 그리스 사람들과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따랐습니다.(17:1~4)

당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회당에는 유대교의 유일신론을 받아들여, 유대인의 도덕, 가족윤리, 공동체의 가치를 존경하며 정기적으로 회당에 출석하는 본토 그리스인들과 명문가정의 귀부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고넬료-10:2, 22, 35; 13:16, 26) 혹은 경건한 개종자’(13:43),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루디아-16:14, 17:4, 17)으로 불렸습니다. 이들이 사도바울의 선교전략의 대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을 벗어나서 이방도시에서 전도를 할 때에 항상 먼저 회당에서 성경말씀으로 토론하였고 유대교에 호감을 가지고 회당에 참여하고 있던 이방인들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들 그리스인이자 이방인 크리스챤들이 회당을 벗어나 새로운 종교공동체인, 크리스챤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도 바울이 3주 동안 이 지역에 머물며 회당에서 복음을 전파한 결과로 일부 유대인들과 그리스 본토 사람이 중심이 되어 세운 교회입니다. 오늘 성경본문에서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칭찬을 합니다. 3절 이하에 보면,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가 나옵니다. 온갖 박해와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참아내는 인내와 믿음이 성장하였고,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끼리 서로에게 베푸는 사랑이 풍성해져 가고 있다고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보여주는 인내와 믿음과 사랑이 우리교회에도 있습니까? 인내와 믿음과 사랑이 우리에게도 자라나고 있습니까?

이들이 받았던 온갖 박해와 환난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디아스포라 유대인도 아닌 그리스 본토 출신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던 이들에게 어떤 박해와 환난이 있었을까요? 헬라문명의 풍요로움을 누리며, 당당한 로마제국의 시민으로 살 수 있었던 그리스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크리스챤으로 옮기는 순간 삶에서 어떤 어려움들을 당하게 되었을까요? 데살로니가전서 214, 33,4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이들은 동족에게서 고난을 받았고, 그 고난과 어려움을 미리 예상하며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5절에서 말합니다. “여러분은 참으로 그 나라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고난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통치가 선포되고, 생명과 사랑과 평화라는 새 질서로 움직이는 하나님 나라는 분명 죄 많은 인간들이 만들어 가는 이 세상의 풍조와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두 왕국 속에서 동시에 살고 있습니다. 불의한 권력의 폭력과 억압으로 다스려지며, 개인의 이기심과 무한한 죽음의 경쟁으로 질서가 유지되는 이 세상의 왕국과 사랑과 섬김, 평화와 생명, 하나님의 정의로 유지되는 하나님의 왕국이 그것입니다. 두 왕국은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날이 이를 때까지 함께 존재할 것인데, 누구나 두 왕국의 백성으로 동시에 살 수는 없습니다. 삶의 선택에 순간에 우리는 두 왕국중 하나의 백성임을 증명해야 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이 세상 풍조를 따르는 왕국의 백성인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지 스스로 드러내야 합니다. 초대교회를 살아갔던 그리스도인들도 전쟁과 폭력으로 거짓 평화를 만든 로마황제를 신으로 모시는 제국의 시민으로 살 것인지, 로마제국 식민지 변방의 농촌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어리석게 보이는 예수를 주님이라 고백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 것인지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이 선택의 결과에는 항상 고난과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대교회는 핍박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몸으로 살아냈습니다. 마태복음 510~11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 하늘에서 받을 너희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633절에 이어집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라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표지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된 모습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곳인지 나태내주며, 상징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 나라이지 교회 그 자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즉 교회는 세상에 하나님의 정의로운 통치를 펼치기 위해서 필요한 조직이 되어야만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까지 과정일 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는 스스로를 위해 존재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세상을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 교회가 스스로를 위해 존재하며 자기 조직이나 소유, 자기 울타리 안에 있는 청중 숫자를 목표로 삼거나, 그것을 힘의 근원으로 삼기 위해 존재할 때, 교회는 교회로서의 가치를 상실합니다. 교회가 모여 있는 울타리 안의 청중만을 위해 존재하고 자신만을 위해 봉사한다면, 아무리 복음화와 전도를 외쳐도 그런 교회는 이미 예수와 하나님나라와 상관없게 됩니다.

만물은, 온 우주는 하나님의 집입니다.(3:4, 고전8:6, 시편36:5~9) 예수님은 교회만이 아니라 만유의 머리가 되십니다.(1:22~23)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준 사건이듯이, 하나님께 부름 받은 개인이나 교회는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내주는 존재여야 합니다. 교회는 십자가 사건처럼 자기희생적 결단을 실행하는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교회란 자기를 비우거나 자기를 죽이면서 세상에 보냄 받기 위한 운동체여야 합니다. 교회는 자기가 속한 지역사회와 민족공동체, 나아가 전 세계의 약자들과 연대하여 가장 의미 있게 자신을 던져 내놓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하고, 그것이 선교론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교회론은 종래의 성장이나 발전을 추구하는 교회론과 질적으로 다릅니다. 당장 눈앞에 나타나는 영광이나 성과를 기대하지 않고 가장 의로운 죽음, 십자가의 자리에 서는 것을 목표로 삼는 교회론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설 수 있는 가장 영광스러워지는 자리이며 지금은 죽더라도, 그 열매와 결과는 하나님의 몫으로 또한 먼 역사의 몫으로 맡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부활의 신앙이기도 합니다. 고난받고 핍박받고, 늘 지는 것 같지만 결국 최후에는 하나님의 승리와 부활의 영광이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저는 이번주에 의미있는 두 장소에 함께 있을 수 있었습니다. 화요일에는 경기노회 치유와화해의생명공동체운동10년위원회와 남북한선교통일위원회에서 주최한 [평화통일 염원 기도회]를 다녀왔습니다. 저는 그날 말씀을 전해주신 고등교회 박희영목사님의 설교에 큰 은혜와 감동을 받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북한과 대립하면서 분단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국가보안법입니다. 국가보안법은 한마디로 북한을 미워하라는 법입니다. 우리는 이 법을 하나님의 사랑의 법과 함께 지킬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미움의 법인 국가보안법을 어기면 이 법은 폐기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북한을 사랑하면 됩니다. 이것이 서로 화해하고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렇습니다. 북한은 아직도 1인독재 체제에서 가난과 정치적 억압으로 살아가는 비민주화된 악의 축과 같은 나라입니다. 그렇게 바라보는 것이 어쩌면 정확한 현실인식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현실을 그냥 받아들이기만 하고 남한의 권력자들과 언론들이 하는 것도 똑같이 북한을 저주하고 그들이 죽음으로 내몰려 우리앞에 무릎꿇기만을 바란다면 그것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현실은 암울하고, 어둠의 세력이 창궐하는 듯 보이지만 이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통치와 정의가 들불처럼, 누룩처럼 번져나가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전진기지가 되는 교회는 그래서 현실의 어둠을 저주하기보다, 만물의 주가 되시며 모든 인류를 평화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며 원수를 사랑으로 감싸 안아야 합니다. 그것이 고난의 십자가 길이라면 기꺼이 걸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무서워해야지, 국가보안법을 무서워해서는 안됩니다.

어제 저녁에는 광화문에 다녀왔습니다. 세월호 특별법에 의해 설치된 특별조사위원회가 그 활동기한이 끝났으니 모든 것을 정리하고 어서 사라지라고 위협하는 불의한 권력에게 대항하여 조그마한 촛불 하나 켜는 자리였습니다. 거기에서 세월호 희생자 가족중 한분인 유경근님이 하신 이야기기가 줄곧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800여일동안 진실을 밝히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권력을 상대로 갖가지 투쟁을 해왔다. 농성, 시위, 삭발, 단식, 도보, 삼보일배 등 그런데 하나도 이긴 경험이 없다. 100이면 100, 천이면 천 다 졌다. 그래서 우리 안에서 앞으로도 계속 지게 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믿는다. 만이면 만 다 지더라도 최후 한순간 승리가 우리의 것이고. 마지막 최종적인 승리를 위해 그 수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고 있는 것이다. 결국 진리는 승리하고 모든 진실은 밝혀질 것을 믿는다.”

이것이 십자가의 길이고 우리 교회가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세우는 길이 끝이 보이지 않고 내 앞에는 어둠만이 깔려 있어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데살로니가 교회가 견뎌낸 온갖 박해와 환난을 우리도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참 주인이시고, 온 땅의 왕이시며, 참 평화를 우리에게 주시는 분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모든 고난을 이겨낼 힘을 주실뿐만 아니라 우리가 구하지 않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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