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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피와 성령의 증언(부활네번째주일, 2016년4월17일)

하늘기차 | 2016.04.17 14:17 | 조회 2455


                물과 피와 성령의 증언

부활네번째주일                                                                                                     요일5:4-10

     이 번 총선에서 승리하여 모두들 기뻐합니다. 국민의 승리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에게는 신앙의, 영적인 승리가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승리는 무엇인가요? 4절 말씀을 찬찬히 살펴 보면 세상을 이긴다고 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를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나요? 믿음이라고 합니다. 믿음을 통해서 무언가를 하여서 세상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승리입니다.

     그러면 요일5장이 말씀하고 있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요? 6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과 피를 거쳐’ 오셨다고 합니다. 이 물과 피는 무엇을 상징하고 있나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요한 복음의 기록에 보면 마지막에 로마 병사가 죽음을 확인하고, 제촉하기 위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한 세상을 말합니다. 믿음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밖은 세상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예수를 죄인 취급하여 정치권력과 제도화된 유대교와 물질의 욕망이, 그리고 사람들이 연대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아 참혹한 죽음을 죽게 하였는데, 증언하는 이가 셋이라 하면서 물과 피와 성령이 일치하여 죽음을 증언합니다. 어찌보면 기독교는 죽음을 기념하는 종교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만찬 때 떡과 잔을 나누며, 내 살이요, 피라고 하며, 이것을 기념하라고 부탁하셔서 우리 교회도 한 달에 한 번 그 주님의 죽음을 기념합니다.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마 죽음을 기억하라며 의식을 집전하는 종교는 기독교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사람의 인육을 먹는다고 오해를 받았습니다.

     아까 믿음을 통해서 세상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4절 말씀처럼 믿음이 세상을 이긴 것입니다. 무엇을 믿는다는 것인가요? 물과 피와 성령의 증언을 믿습니다. 왜 믿음이 승리일까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고 무덤에 묻히었을 때, 세상은 또 한 번 권력을 이용해 거짓증언을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가 죽은 후 사흘 만에 부활한다고 하였다고 하면서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가고서는 부활하였다고 말할지 모르는데, 이 전의 것 보다 더 나쁜 속임수여서 그 영향이 클 것이라하며 단단히 무덤을 밀봉하고 지킬 것을 빌라도에게 제안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바리새인들의 거짓을 뚫고 부활하셨고, 그 바리새인들이 거짓이라고 하던 부활의 증언은 바리새인들의 진짜 거짓말을 뚫고 퍼져나가기 시작하여 고기리 까지 전해졌습니다. 이것이 진리의 힘입니다. 믿음이 승리인 것은 물과 피와 성령을 거스르는 모든 거짓과 폭력과 집단 이기심과 욕망과 물질주의와 권력과 종교와 인본주의를 향한 하나님의 증언입니다. 9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과 피와 성령의 증언은 사람의 증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있는 증언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승리인 것입니다. 우리 내면에서부터의 영적 뒤바꿈입니다. 겉으로 외치는 증언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의 내면에서 진리이신 성령이 물과 피를 증언하니 승리요, 믿음인 것입니다.

     지난주 수요일에는 세월호2주기 예배를 안산분향소 기독교 부스 앞에서 드렸습니다. 신앙인들이 세월호의 참사에 마음을 함께하는 숫자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한 400여명이 2주기 기념 예배에 참여하였습니다. 2주기를 기념하는 예배의 성찬집례를 집행부에서 저에게 요청하여 기꺼이 집례하였습니다. 다른 시민 단체들은 몰라도 우리 기독인들의 세월호의 죽음을 기억하는 모습은 남 다릅니다. 바로 성찬입니다. 주님도 그렇게 무고한 죽음을 죽으셨고 그 주님의 죽음을 기념하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그 죽음의 사실을 피와 물과 성령이 증언한다고 합니다. 6절 말씀에 성령은 곧 진리라고 합니다. 성령의 내적 감동이 2년전에 세월호에서 일어난 일에대해 주님의 물과 피를 연상케하며, 세월호에 탄 사람들이 예수님과 똑같이 정치 권력과 물질만능주의에 의해서, 그리고 유대 종교에의해서 처럼 그 이후 가족들이 특히 안산의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이 어떻게 불가촉천민과 같은 내 몰림을 당했는지를 보면 주님의 죽음과 유사합니다.

     집례의 첫 마디는 이렇했습니다. 떡을 높이 들고

               “오늘 우리가 이 곳에서 떡을 떼는 것은, 세월호의 아픔을 함께 아

                 파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회중은

              “주신 떡을 받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행하는 것입

                니다.라고 합니다. 집례는 계속 이어집니다.

              “이 시간 우리가 떡을 나누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본받아 세월

                호의 아픔을 비롯한 이 땅의 고난에 함께 하여,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가기 위함입니다.”라고 하자 회중은

               “주님, 우리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며, 이 땅의 고난과

                함께 하게 하소서.”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잔을 나누면서도

               “우리가 이 잔을 나눔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억하며, 그 기억에

                세월호의 억울한 죽음을 잇대는 것입니다. 또한 이 땅의 고난 받는

                자들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의 기억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라고 하면서

               “신앙의 신비가 크고 놀랍습니다.”라고 하자, 회중들은

               “세상의 고난을 지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여, 우리에게 평화를 내

                 려 주옵소서.”하며 성찬을 나누었습니다.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며 세월호를 기억하였습니다. 이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오늘 사도 요한은 증언합니다. 믿음입니다. 믿음의 고백인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신비입니다. 성찬에 참여한 사람들을 통해 입에서 입으로 물과 피와 성령의 증언을 고백할 것입니다. 믿음의 신비입니다. 지금 교회가 이 믿음의 구원의 신비를 모르고, 다른 것에 빠져있지는 않은지요?

     6절 말씀에 예수 그리스도는 물로써 오신 것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셨다고 합니다. 물로만 오셨다면 그것은 세례 요한의 세례를 의미하는 회개의 거듭남을 의미합니다. 사도 요한이 굳이 물과 피로써 오셨다고 하는 것은 그 당시의 교회에대한 핍박이 얼마나 강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떻게 교회가 처절하게 죽음과 싸워 살아남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물과 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구세주로 오신 것을 증언합니다. 다시말하면 주님이 어떠한 죽음을 당하셨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물로만 이었다면, 교회의 신앙은 그냥 교회 안에 머물러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물과 피입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우리는 허구한 날 물로 오신 주님 만을 내 구주로 묶어둘 것입니다. 자기 만족의 신앙에 풍요로웠을 것이고 스스로 깊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물과 피로 오셨습니다. 가짜는 물로 만 옵니다. 그러나 사랑의 사도인 요한은 주님이 이 세상에 물과 피로 오셨다고 하며 성령이 그것을 증언한다고 하며 성령은 곧 진리라고 하며 이 증언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하시는 증언이라고 못을 밖습니다. 만일 물로만 오셨다면 우리는 세월호의 가족들 곁에 어떤 모습으로 있어야할 지 몰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이미 물과 피로 세월호 가족들과 배에 탄 아이들과, 그리고 인류 역사에 인간이 저지른 무수한 폭력들 속에, 이미 2차대전 당시의 아우슈피츠와, 독일 드레스덴을 향한 연합군의 무차별 폭격의 죽음, 100년 전 오스만터어키 제국의 아르메니안 150만 학살, 지금도 진행되는 시리아 난민들의 죽음, 아직도 풀지 못한 제주도의 4월3일의 억울한 죽음 곁에, 그리고 광주의 고통과 6.25의 피흘림의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아픔의 자리에 주님은 물과 피로 계십니다. 성령이 내적 감동을 통해 증언합니다.

     기독인의 승리는 세상사람들의 승리와 다릅니다. 고백 자체가 승리입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승리하였고, 그 승리를 힘차게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11,12절은 마무리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는데, 그 생명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 아들을 모시고 있는, 즉 믿는 사람은 생명’인 것입니다. 생명이라 했습니다. 이 생명은 물이 아니라, 물과 피의 생명입니다. 그러니까 이 생명은 부활의 생명입니다. 물의 생명이면 부활의 생명이 아닙니다. 그러나 물과 피의 생명이어서 부활 생명입니다. 그러나 생명을 조금도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처음자리 공간에서 끊임없는 생명의 태동을 봅니다. 나물들과 들꽃이 한겨울 꽁꽁 다져진 대지의 흙과 돌과 굳어진 나뭇잎 뭉치를 밀고 올라오는 힘을 보면, 새싹이 중력을 거슬러 위로 태양을 향하여 솟는 놀라운 생명의 힘을 봅니다. 땅이 갈라지고, 돌맹이들이 들려 위로 올려져 옆으로 굴리어지는 모습은 마치 예수를 막아 놓은 무덤의 돌이 부활의 생명을 막지 못하고 옆으로 굴리워지는 것 과 같습니다. 그 땅을 가르는 새싹의 순은 전기톱도 아니요, 망치도 아니고, 연하디 연해 밟으면 뭉게지는 어린아이의 손으로도 상처를 입을 만큼 연합니다. 생명입니다. 부활이 그렇습니다. 부활은 물과 피에서 옵니다. 세상의 거짓과 폭력과 집단이기주의에 단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털 깍는 곳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의 피로서의 물과 피입니다. 믿음은 그렇게 연하고 순합니다. 어제 광화문에 다녀왔습니다. 비를 흠뻑 맞으며 아이들과 시민들과 함께했습니다. 여러 발언자분들이 나오셔서 귀한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런데 발언자들의 공통점은 힘을, 능력을 갖자고, 보여주자고 합니다. 물론 이렇게 대외적인 모습에서는 그렇게 힘을 외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기독인들에게는 감추어 있는 또 다른 힘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저는 그 힘에대해 사53:1-5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느냐? 주님의 능력이 누구에게 나타났

                           느냐? 그는 주님 앞에서, 마치 연한 순과 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싹과 같이 자라서,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훌륭한 풍채도 없

                           으니,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 그는 사

                           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버림을 받고, 고통을 많이 겪었다. 그는 언

                           제나 병을 앓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돌렸고, 그가

                           멸시를 받으니, 우리도 덩달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

                           을 대신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

                           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

                           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고 증언합니다.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피와 물과 성령의 내적 증거가 증언합니다. 그 증언이 믿음으로 나와 성도 여러분 안에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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