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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음으로 기뻐하는 사람Ⅳ(주현절후제4주, 2016년1월31일)

하늘기차 | 2016.01.31 15:36 | 조회 1989


             내가 마음으로 기뻐하는 사람Ⅳ

주현절후제4주                                                                                                    대하7:12-15

     지난 주에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택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행15:14절에서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이방에 복음이 전파되고 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할 때에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가 ‘자기 이름을 위하여 처음으로 한 백성을 택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일하실 때 한 사람을 택하여 일하십니다. 아브라함, 노아, 이사야, 사울, , ,그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인데, 그렇게 일하심으로 이름을 영화롭게 하며, 기뻐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솔로몬이 성전을 완성하자 하나님께서 찿아 오셔서 하신 말씀입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나의 백성이 스스로 겸손해져서, 기도하며 나

                         를 찾고, 악한 길에서 떠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용서하

                         여 주며, 그 땅을 다시 번영시켜 주겠다. 이제 이 곳에서 드리는 기

                         도를, 내가 눈을 뜨고 살필 것이며, 귀담아 듣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솔로몬 왕이 드린 기도에대한 응답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사는 삶에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솔로몬이 대하6장에서 하나님께 두 손을 높이들고 성전건축과 관련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기념하며, 이름을 둘 것이며, 이름을 인정하고, 이름을 알게한다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무려 13번 이나 반복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당연히 하나님의 이름으로 응답하십니다.

     솔로몬은 왕정초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늘 마음의 중심에 두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16절에서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겠다고 한 것은 당연합니다. 쿵짝이 맞습니다. 쿵하면 짝 해야하는데, 하나님이 ‘짝’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짝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온 세상이 모두 우상과 신당으로 가득한 때에 솔로몬이 왕이되어 먼저 한 일이 그 무수한 우상들의 이름들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두고, 기리며, 인정할 만 한 성전을 지은 것입니다. 그러니 기뻐하며 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전이나, 사당의 시대는 지나갔지만 솔로몬 때와는 다른 양태로 온 세상이 우상으로 덮여있음을 인지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듯이 이제는 우리 각 자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구약의 예루살렘 성전에느 율법을 통해 하나님이 성전에 임재하였다면, 오늘의 시대느 성령을 통해 성전인 우리 몸 안에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이 우리 안에 계셔 하나님의 이름을 인정하고, 기리며, 머물러 계실 수 있을까요? 기도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가운데 자리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왜냐하면 기도를 누구의 이름으로 하나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립니다. 우리가 성전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이 ‘내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입니다. 15절 말씀의 ‘이 곳에서’‘예수 그리스도’라고 해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드리는 기도를, 내가 눈을 뜨고 살필 것이

                          며, 귀담아 듣겠다”고 하십니다.

     오늘 13절 말씀을 보면 비가 그치고, 메뚜기 때가 날고, 염병이 돈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회복불가 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출애굽할 때 10가지 재앙이 일어납니다. 그 중 10번 째, 9번 째 말고, 8번째 마지막 재앙이 무엇인가요? 메뚜기 재앙입니다. 가뭄, 염병, 우박으로 모든 것이 다 말라버린 상태에서 그 남은 것 까지 다 쓸어가는 것이 마지막 메뚜기 재앙입니다. 그 다음이 어두움이고, 그 다음이 생명을 앗는 재앙입니다. 어두움과 생명의 재앙 이전의 메뚜기 재앙은 끝 까지 다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가뭄과 메뚜기, 그리고 열병이 돌 때에 어떻게 하라고 하나요? 기도하라고 합니다. 기도하면 찿으신다고 합니다. 위기가 왔을 때 기회가 옵니다. 우리의 삶이 극심하게 힘들고, 곤고하여 답답하고, 낙심이 되어 어두울 때 주께로 나아와 주님께 기도하며, 간절히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회복시켜주실 뿐 아니라, 번성하게 하며, 튼튼하게 하십니다. 순전히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입니다. 하나님과 기도하는 사람이 모두 기뻐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윤도현 밴드’라고 있습니다. ‘신중현과 엽전들’도 있었지요. 이것은 그 이름의 사람과 같이 음악을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옛날 밴드 만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가 요즈음 잘나가는 밴드도 잘 압니다. 우리 아이들 통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아는 것입니다. 올해 가장 잘나가는 밴드가 누구인지 아세요 ‘혁오 밴드’입니다. 이름이 오혁인데, 이름을 거꾸로 해서 혁오밴드라고 재미있게 붙혔습니다. 혁오밴드가 '제13회 한국대중음악상' 최다 부문 후보에 올랐다고 합니다. 원래 인디밴드인데 대단합니다. 요즈음은 빵집, 미장원, 채소 가게, 농장에 이르기까지 이름을 겁니다. 성도들은 누구의 이름을 걸고 살아가나요? 주님의 이름으로 삽니다. 혹시 예수님 이름만 걸고 사는 것은 아닌가요? 우리는 하나님이름으로 모인 고기 밴드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밴드입니다. 성도는 기도 그 이상도, 기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기도만큼 사는 것입니다. 교우여러분! 여러분은 어느만큼 기도하나요?

     저희가 교회 사택에 살 때 수족관이 있었습니다. 물고기들이 물속에서 노는 것이 보기 좋아서 민물고기를 키워 보기도 하였는데, 자꾸 죽어서 더는 못 키웠는데, 물고기 노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편하고 참 좋습니다. 그래서 한 때 교회 논 3, 4째 배미 전체를 앞 쪽에 커다란 유리창을 끼워넣어 민물고기 수족관으로 만들어 볼 욕심도 있었는데, 새들이 자꾸 날라와서 그만 두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물고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기도는 마치 물고기가 물속에서 자유롭게 수영하며 노니는 것과 같아서 입니다. 무언가 신비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물고기가 자유롭게 평화롭게 움직이는 그 ‘물속’공간이 바로 기도의 공간이 아닌가 십습니다. 물고기가 자유롭게 평화롭게 보이는 것은 바로 물 속이기 때문인데, 기도야말로 우리 사람으로치면 고기처럼 물속이요, 자유와 평화의 공간이 아닌가 십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죽어서 생선이 되는 것처럼, 우리 성도가 기도를 떠나서 어찌 자유하며, 평화할 수 있겠습니까?

    매 달 예배 당번을 정하는데,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 기도 당번 입니다. 수요일에는 집사님을 중심으로 기도 당번을 정합니다. 그리고 주일 저녁에는 학생들, 청년들, 일반 성도님들도 기도에 참여케 합니다. 그런데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도가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이해는 가지만 그래도 기도해야 합니다.

     만일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 머리로, 눈으로만 악보를 보고 피아노를 치는 것을 상상한다면 피아노를 칠 수 있을까요? 피아노를 배울 때 어떻게 하나요? 늘 말씀드리지만 피아노를 치면서 피아노를 배웁니다. 피아노를 치지 않으면 피아노를 배울 수 없습니다. 물 속에 들어가지 않고 어떻게 수영을 합니까?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면서 기도를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 교우분들이 “기도를 못하겠어요. 기도가 나오지를 않아요”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기도를 하지 않으니까 기도를 못하는 것입니다. 백건우라는 피아니스트가 이론만 열심히 공부해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된 것이 아닙니다. 어릴적부터 수십년 동안 바이엘, 소나타, 수 많은 발표회, 협연, 독주...도와준 선생님... 그래서 한 사람의 뛰어난 피아니스트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의 언어가 트여야 합니다. 마치 아기가 커가면서 말을 하듯이 말입니다. 아이가 커가는데 말을 하지 못하면 부모는 걱정합니다. 무슨 문제는 없는지? 장애가 없는지? 그러다가 한 마디 두 마디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면 그렇게 기쁘고 좋을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말문이 트이기를 하나님 아버지는 원하십니다.

     오늘 말씀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 다음에 바로 무어라고 하나요? 겸손해져서라고 합니다. 기도 보다 먼저, 악한 길에서 떠나기 전에 먼저 겸손해집니다. 겸손은 나의 몫입니다. 우리가 아니라 나입니다. 나를 낮추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데, 하나님이 먼저 스스로 이 땅에 오셔서 무릎을 꿇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겸손은 내가 나의 의지로, 아니면 무엇을 잘 못 해서, 또는 상대에대해 연민의 감정으로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겸손해진다는 것은 그로인하여 그 높음, 그 영광이 지워지거나 평가 절하되지 않으며, 자기 자존감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겸손 속에는 아버지가 계십니다. 그 겸손 안에서 무릎을 꿇는 나와 무릎을 꿇게 하는 아버지와 하나가 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는 것이고, 아버지의 뜻과 나의 의지가 하나가 되며, 영광과 십자가가 하나가 됩니다. 이것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길입니다. 길이니까 진리이며, 진리이니 생명입니다. 겸손은 우리 피조물이 자존감을 가지고 아버지의 뜻 앞에 설 수 있는 유일한 모습입니다. 겸손 안에 그 영광, 존귀, 권세가 그 자존감이 그대로 온전히 있습니다.

     겸손은 무릎을 꿇게하는 분의 뜻에 내가 머무는 것입니다. 머문다는 것의 의미를 표현하기 쉽지 않은데, 그래서 예수님은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이시며, 우리는 가지입니다. 가지가 나무의 줄기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은 물을 떠난 물고기와 같습니다. 물고기 처럼 자유롭고, 평화하려면 포도나무의 가지처럼 기도의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7절에서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 하였습니다. 6절입니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면, 그는 쓸모 없는 가지처럼

                        버림을 받아서 말라 버린다.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서 태워 버린다고 합니다. 우리가 자존감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택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존감 말입니다. 성도는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요15:16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살아야 자존감이 있게 살아가는지를 잘 말해주십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운 것이다.

                    그것은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

                    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

                    엇이든지 다 받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열매를 맺되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어야 한다고 말씀 합니다. 그래야 그 남은 열매를 새들도 와서 쪼아 먹고, 짐승들도, 그리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도 가지고 가서 먹습니다. 포도나무에 포도열매가 맺히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밤나무에 밤이 열리니 아이들이 나무에 올라가고, 장대로 떨어뜨리고 하면서 즐거워합니다. 밤나무에 포도열리지 않고, 포도나무에 사과 열리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평생에 무슨 열매를 맺었습니까? 심은대로, 가꾼대로 맺는 것입니다. 기도하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십시오, 이름 만 걸지 말고, 아버지의 뜻에 자기를 낮추어 기도하며, 기도한대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무엇이나 다 응답받아 열매 풍성히 맺는다고 주님이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살아감으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여러분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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