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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덤이를 추모함

마법사 | 2008.10.10 18:04 | 조회 1437
저 이상권입니다. 오늘도 들어왔다가 그냥 나가려다가 몇번의 시도 끝에 이곳에 들어왔네요. 글을 좀 올리고 싶어도 종시 올릴 수가 없어서요. 어제 박경장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어찌어찌하라 사셨는데, 그래도 안되네요. 하여 여기에다 그냥 최근 사는 이야기나 올리려고 합니다. 다들 잘 지내시지요? 가을 하늘을 보면서 안부 전합니다. 밤토실 도서관으로 <어린이와 문학>이라는 작고 소박한 잡지가 달마다 도착할 것이니, 많은 관심부탁드립니다. 출판사에서 발행되는 게 아니라 백여명의 작가들 기금으로 운영되고 있고, 한국아동문학사에서 가장 큰 일을 해내고 있는 책이거든요. 이 잡지 출신들이 현재 아동문단의 주류를 이루고 있답니다. 그러니 밤토실에 오시면 꼭 보시기를. 저희집에는 코스모스와 국화꽃이 살판났습니다. 며칠 전 저희 식구인 덤덤이가 죽었습니다. 여기에 덤덤이를 보내면서 제가 쓴 글이나 올릴까 합니다.



유세차 서기 2008년 양력 10월 7일, 용인에 사는 이아무개 놈은 국화랑 코스모스가 살랑거리면서 소풍가는 좋은 날, 갑작스럽게 너를 보내면서 그 슬픔을 누를 길 없이 이 글을 지어 너를 추모하노라.
덤덤이, 개 이름치고는 좀 특별했던 너의 이름처럼 처음 만날 때부터 너는 좀 무덤덤했노라. 마치 시골아이가 서울 낯선집에 온 것처럼 똥오줌도 안 싸고, 꼭 풀밭에 데려가서야 편안하게 오줌을 싸던 너는 영락없는 어린시절 내 모습이었노라. 여기 용인으로 와서도 낯선 사람을 보고도 무덤덤하던 너는 ‘덤덤이’라는 이름이 정말 딱 어울렸노라. 우리 식구들 중에서 나를 가장 무서워했던 개여, 내 일부러 개와 인간의 질서를 강조하였으니, 이것 역시 인간인 내 한계이노라. 식구들이 다 여자이다보니 너를 달래야 하는 내 처지가 그랬노라. 너는 입이 짧고 까탈스러운 개로, 어른이 된 뒤로도 잘 먹지도 않았노라. 너는 늘 자유를 갈망하고, 산을 갈망했노라. 너만큼 산을 좋아한 이는 없었노라. 잡지도 못할 야생동물 쫓아다니는 재미로 살던 덤덤이여, 너의 갑작스런 죽음을 보면서 한동안 숨이 멎었노라.
어젯밤 낑낑대는 개소리에 너의 집에 가서 너를 보고 물을 주고 한동안 보니, 너는 아무 탈없이 물을 먹길래 다른 집 개 소리인 줄 알았노라. 너의 소리라고 하기엔 너무 작았노라. 아침에 집에서 가만히 있는 너의 우울한 표정을 보고도 이런 일이 더러 있어서 오후에 산에 데려가면 괞찮아질줄 알았는데, 불과 몇시간만에 갑자기 숨을 놓아버리니 꿈만 같고, 지금도 믿어지지 않도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나를 원망했을까. 인간이랑 말이 다른 개여, 제발 아프면 아프다고 너희들의 언어로 소리치거라. 어찌 손쓸 틈도 주지 않고 가버린 네가 야속하도다. 내 우둔함을 원망하노라. 내 우둔함을 탄식하노라. 너의 주인이자 벗이었던 내가, 너의 표정 하나 알아보지 못했으니, 아 미안하다 미안하다, 덤덤이여,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우리집에서 기르던 닭도 온갖 약수발을 받다가 생을 마감했거늘, 너무 허망하도다. 응석부림이 심해서 늘 아이같았던 개여, 내가 쳐다보면 똑바로 보지 못했던 수줍음 많았던 개여, 꼬리감고 뛰어다니던 흥이 넘쳤던 개여, 이제 이승에서의 미련이나 아픔은 놓아버리고 잘 거라. 너의 가죽을 벗기고 구탕이라도 해먹고 싶은 마음 없지 않으나, 내 삶의 두께가 얇아 감히 그럴 엄두도 내지 못하고 너를 흙으로 돌려보내노니, 덤덤이여 어서 흙이 되어 푸르른 나무의 살이 되거라. 내 살로 만들지 못하는 것 또한 미안하도다. 대신 나무의 살이 되거라. 영혼이 맑은 나무의 마음이 되거라.
죽은 너의 무게를 온몸으로 감당하면서, 새삼 개와 인간의 삶이 별로 다르지 않음을 느꼈노라. 네 집앞에다 구덩이를 팠다가 이곳에 집이 생길까 두려워 산에다 묻어주노라. 너를 끌고 가기가 벅차 더 가지 못하고, 얼마전 네가 고슴도치를 혼내주었던 바로 그 뒤편 도토리나무 밑에다 너를 묻노라. 비록 상주 하나 없으나 너무 슬퍼마라. 부실부실 땅이 좋아서 비벼먹고 싶을 정도였고, 나무도 마음껏 푸르르니 개로서 삶을 나무가 되어 노래하라. 그곳에 서면 우리집에 훤하게 보이니, 그것 또한 위로할 수 있도다.
덤덤이여, 이제는 편안하게 떠나거라.덤덤이여, 네가 살던 집이 비좁아서 늘 마음에 걸렸는데, 이사가면 새집을 마련해 주려고 궁리중이었는데, 이렇게 불쑥 떠나버리니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덤덤이여, 새삼 너를 묻고 돌아서니 너한테 짝짓기 한번 해주지 못한 게 더욱 미안했노라.덤덤이여, 노란 털에 우리 토종개라서 누구나 친근한 눈길을 주었고, 뾰족한 턱과 날렵한 귀가 여우를 연상시켰던 너는 눈길이 좋았도다. 그 눈길을 어찌 잊을 수 있을지, 밤이 두렵도다.덤덤이여, 우리는 너와 함께 10년 이상을 동고동락할 줄 알았고, 이사를 앞둔 시점에서 너의 삶까지 배려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런 너의 죽음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노라.덤덤이여, 병에 걸렸다면 며칠은 시름시름 앓을 것이고, 누군가에게 맞았다면 상처라도 있을 텐데, 아무런 언질도 없이 불쑥 떠나버린 네가 야속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미련스럽도다.
덤덤이여, 네가 보고 싶으면 그 나무를 슬쩍 돌아다볼 터이니, 너는 바람을 불러 살짝 가지를 흔들어주거라. 이제 혼자가는 산길이 쓸쓸할 때면 너의 모습이 더욱 그리울 테지만, 덤덤이여, 책 표지에도 등장하여 내 삶을 풍요롭게 해준 개여, 네가 죽어서야 풀어준 목줄 족쇄를 버리고 이제 훨훨 날아가거라. 더 이상 너를 부르지 않겠노라. 메아리마저도 슬퍼서 나오지 않을 터이니, 휘파람은 더더욱 나오지 않을 터이니, 더 이상 부르지 않고 그냥 묻어두겠노라.
덤덤이여, 땅을 파고 너를 눕히고, 낙엽으로 너를 가리고 흙을 덮었노라. 너를 밟아주고 돌아서면서 아련히 내려다보는 우리집이 안개속에 흐릿하게 잠겨, 어디선가 네가 꼬리를 흔들면서 달려들 것만 같아, 그 그리움을 아무래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더 이상 돌아보지 않고 내려가노라. 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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