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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의 배후

강민석 | 2020.11.10 02:28 | 조회 840

1

코로나 생각하면 뭐가 떠올라?”


여덟 살 된 딸 예채의 생각이 궁금해서 물었다.


하나님."

?”

하나님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져. 그리고…….”

 

거리에선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그 해맑은 웃음소리에 예채는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 아이들이 자아낸 소리는 여기저기 솟은 건물의 벽 사이사이를 튕겨 다니다 더 재미있는 곳을 찾은 듯 사라져갔다.


그리고 뭐?”


끝나지 않은 예채의 말이 궁금했다.


뭐라고 말하려고 했는지 까먹었어.”


전염병 때문에 불안해하는 아이의 얼굴과 하나님 생각에 평안해진 아이의 얼굴이 한 아이의 얼굴 위에 절묘하게 겹쳐 있었다.




2

언제부터인지 사회에 불안과 슬픔이 생기면 본능처럼 그 배후부터 살피게 된다. 사건의 배후에 누군가의 악의가 도사리고 있지는 않은지, 누군가의 탐욕이나 무지가 빚어낸 결말은 아닌지 살펴본다. 그렇다는 의심이 충분히 차오르면 그 뒤를 따라 경멸과 분노의 감정이 몰려왔다. 경멸과 분노 속에서 불안과 슬픔은 잠시 잠이 들었다. 하지만 언제 다시 깰지 모르는 갓난아이 같았다.


잔혹한 팬데믹 속에서도 뉴스는 그 배후의 소식들을 전했다. 특정 국가를 탓하기도 했고, 사람들의 탐욕 때문이라고도 했다. 향락을 즐기는 사람들의 무개념을 탓하기도 했고 입안에 소금물을 뿌리는 사람들의 무지를 꾸짖기도 했다. 정부의 무능을 탓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도 했고, 터무니없는 말들이 사회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므로 경멸하고 분노하십시오.”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모두 그렇게 듣는 듯했다.



달리 생각하고 싶었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가 겪어온 수많은 아픔의 때와는 달리 아무런 의심 없이 불안해지고 싶었다. 오랫동안 그래 보지 못했다.


일흔이 넘으신 아버지는 불안한 마음에 손녀를 안지도 못하셨다. 장인어른은 가장 친한 친구분을 코로나19로 잃으셨다. 사랑하는 사람을 또 잃을까 불안하다. 익숙해졌지만 여전한 불안과 슬픔이 일상 곳곳에 묻어있다. 이 불안과 슬픔이 누군가의 탓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생각은 접어두자. 그냥 이 불안과 슬픔이 빚어주는 마음과 생각에 오롯이 집중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자 기억나는 말들이 있었다.


기도하면 돼.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거야.”


어린 시절엔 어른들이 하는 그런 말들을 믿었다. 언제부터인지 그런 말들은 생각이 게으른 사람들이 하는 무성의한 말로만 들린다. 하지만 불안을 분노로 잠재우지 않고 가만히 놓아두면, 불안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그런 말들에게 달려가 품에 폭 안겼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셔.”, “하나님께서 너의 손을 붙들고 계셔.”, “하나님께서 너를 눈동자처럼 지켜주셔.”, “괜찮아. 아무 걱정하지 말고 기도해. 너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거야.”, “아무것도 없어도 하나님만 함께 계시면 돼.”, “하나님께서 널 사랑하셔.”


식상하다며 버려두었던 말들을 하나씩 꺼내 음미하다 보니 다시 어린아이가 된 듯도 했고, 불안과 평안이 겹쳐 있던 딸아이의 얼굴을 닮게 된 듯도 했다.


하나님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져. 그리고…….”




3

예채의 눈빛은 미처 다 마치지 못한 얘기를 들려주고 있는 듯했다. 또래보다 걱정과 염려가 지나치게 많은 아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할머니의 죽음을 접해서인지 엄마가 감기에만 걸려도 불안해했다. 학교에서 소방훈련을 하고 온 날이면 집에 불이 날까 걱정했고, 자동차 소리가 들리면 무서운 듯 내게 폭 안겼다. 그런 아이가 내게 하나님과 평안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한 아이의 아빠로서 기도했다. 나를 위한 기도이기도 했다.



하나님,

세상이 평안할 때,

예채는 하나님께서 주신 평화로

평안하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하나님,

세상이 불안할 때도

예채는 하나님께서 주신 평화로

평안하게 해주십시오.



거리에선 여전히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지칠 줄 모르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듣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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