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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다 154번째 모임 안내입니다.

머털이 | 2021.06.05 02:47 | 조회 465

글쎄다 154번째 모임 안내합니다.


 -  2021년 6월 28일 월요일 7시에 비대면으로 만납니다.

     (함께 하시고 싶은 분은 연락주시면 줌(zoom) 링크를 알려드리겠습니다.)

 - 읽으실 책은 아모스 오즈의 '유다' 입니다.

    (책의 분량이 길어서 6월과 7월 두 달에 걸쳐 읽을 예정입니다.)

         

'글쎄다'는 매달 한권씩 책을 선정하여 읽고, 따뜻하게 이야기합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책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현대 히브리 문학의 거장 아모스 오즈가 남긴 최후의 소설 『유다Ha-Besorah Al Pi Yehudah』(2014)가 국내 최고의 히브리학자 최창모 교수의 번역으로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오즈는 현대 히브리어를 모국어로 사용한 1세대 작가이자 이스라엘 건국과 그 전후前後의 역사를 온몸으로 겪은 장본인이다. 그는 조국의 부흥을 위해 힘쓰는 한편으로 아랍 국가들과의 평화공존을 주장했기에 이스라엘 안팎에서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평생을 글로써 행동했던 ‘침묵하지 않는 작가’였다. 이 작품에서 오즈는 자신을 투영한 듯한 두 명의 배신자-이스라엘 건국을 반대한 지식인 ‘쉐알티엘 아브라바넬’과 예수를 팔아넘긴 제자 ‘가룟 유다’를 내세워 작가 생활 내내 천착해 온 질문에 답을 구하는데, 그 과정은 성장소설뿐만 아니라 연애소설, 철학소설, 역사소설, 종교소설, 정치소설을 아우르며, 이 다층적인 소설의 밑바탕에는 언제나 그러했듯 작가의 인간을 향한 사랑이 있다.
 선정 및 수상내역
★ 2015 독일 국제문학상 수상
★ 2017 스위스 시온산상 수상
★ 2017 영국 맨부커 국제상 최종심
★ 2018 러시아 야스나야폴랴나상(톨스토이상) 외국문학 부문 수상
★ 2018 스웨덴 스티그다게르만상 수상
★ 2018 이탈리아 타오북상 최우수문학 부문 수상
★ 전 세계 36개국 판권 판매


출판사 서평

1959년 말의 겨울, 스물다섯 살의 대학원생 슈무엘 아쉬는 사랑에 실패하고 연구에는 진척이 없고 가세마저 기울어 학교를 그만둔다. 그는 일자리를 찾던 중, 학식이 높은 일흔 살 장애인의 입주 말동무를 구하는 공고를 보고 지원하는데, 그를 고용한 아탈리야 아브라바넬은 마흔다섯 살의 아름답고 냉담한 여인이다. 슈무엘은 첫눈에 아탈리야에게 반해 끊임없이 구애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조롱하는 눈빛을 띨 뿐이다. 한편 슈무엘이 돌보게 된 게르숌 발드는 괴팍한 데다 신랄하며 논쟁을 즐기는 노인이다. 시간이 멈춘 듯한 예루살렘의 구석진 옛집에 은둔하고 있는 노인과 여인, 그리고 우연찮게 이들의 삶에 끼어든 청년-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떨어져 나온 것 같은 세 사람은 기묘한 동거를 시작하고, 서서히 이 장소가 품은 비극적인 역사가 드러난다.

“이것은 하나의 실내악입니다. 저마다의 상황에서 불행한 세 사람이 예루살렘의 고립된 한집에 갇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대화하는데, 그것이, 대화하고 차를 마시는 게 그들이 하는 일이지요.”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 인터뷰」에서

이야기의 사건은 주로 ‘슈무엘과 아탈리야의 사랑과 욕망’, ‘슈무엘과 발드의 대화와 토론’을 통해 이루어진다.
소심하고 감상적인 슈무엘은 아탈리야의 관심을 끌게 되리라는 희망을 품고 그녀에게 다가서려 무던히 애쓰는데 이따금 그녀의 동정을 사기도 하지만 대개는 허탕만 친다.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진 아탈리야는 인간 존재에 극도의 염증을 느끼며 특히 남자들에게 진저리를 치는 듯하다. 슈무엘과 아탈리야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에게 일방적이고 변덕스럽게 작용하며, 이는 소설 전체의 흐름을 지루하지 않게 해 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유다』를 주도해 나가는 것은 종횡무진 오가는 슈무엘과 발드의 대화이다. 발드는 성경을 비롯한 수많은 고전에 정통해 있어 이들 구절을 인용하거나 암시하고 익살과 어희語?, 조롱과 비판을 곁들여 자유자재로 상대를 공격할 줄 아는 인물이다. 두 사람은 연령, 이념, 기질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기에, 노인과 청년,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 현실주의자와 이상주의자 간의 대화는 항상 긴장감 넘치게 진행된다. 초반의 대화가 화자와 청자로 뚜렷이 나뉘어 있었다면, 후반으로 갈수록 견해 차이로 인해 논쟁의 양상으로 번진다. 슈무엘의 견해가 주로 서술의 형태를 띠는 반면 발드의 견해는 발화의 형태를 띠는 점은 흥미롭다. 그리고 이들의 대화가 토론으로 변하는 물꼬를 튼 것이 바로 슈무엘의 학위논문 「유대인들의 눈에 비친 예수」이다.

“내가 아는 모든 언어에서,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에서도 유다라는 이름은 배신자와 동의어가 되었다네. 그리고 유대인이라는 말과도 동의어가 되었을 걸세. 수백만 명에 이르는 일반 기독교인들의 눈에 모든 유대인과 유대 민족은 배신이라는 병원체에 감염된 셈이지.”
『유다』 45장, 375~376쪽에서

조토 디본도네, 〈붙잡히는 예수(유다의 입맞춤)〉(1304~1306)
슈무엘은 논문에서 유대 민족의 전 역사를 통틀어 예수에 관한 유대인의 연구를 총망라하는데,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의문을 품게 된다. 왜 유대인들은 예수를 배신했다고 하는 유다에 대해서는 그 어떤 언급도 하지 않는가? 마치 유다의 이름을 입 밖에 내는 것이 금기라도 되는 듯이, 그에 대해 말하기를 꺼렸다는 것이다. 또한 예수는 물론이고 열두 제자 모두가 유대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필 배신자 유다가 유대인의 대표처럼 인식되어 2,000년간 유대인을 미움받도록 만들었을까? 나아가 과연 유다가 예수를 배신한 것이 맞는가? 슈무엘이 보기에 유다는 ‘첫 번째 기독교인’이자 ‘마지막 기독교인’이며 ‘유일한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이다.
유다가 배신자인지에 대한 슈무엘과 발드의 갑론을박은 마침내 이 집과 깊게 얽힌 또 다른 배신자-쉐알티엘 아브라바넬에까지 가 닿게 된다.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유대 국가 설립에 극구 반대하고 아랍과의 공존을 주장했던 유일한 인물인 그는 아랍인들과 자유롭고 폭넓게 교류하면서 개인적인 우정을 쌓아 나갔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에 몇 차례의 무력 충돌이 있은 후, 결국 양쪽에서 배척받고 비방당하며, 모든 이가 경멸하는 사람으로 죽었다.
2,000년의 시차를 둔 유다와 아브라바넬의 삶이 겹쳐지며 슈무엘은 비로소 발드와 아탈리야에게 일어났던 일, 이 집에 새겨진 슬픔을 알게 되고, 고대부터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의 이스라엘 역사가 유대인들에게 남긴 상흔을 목도하게 된다.

“예수는 동시대인들에게 이해되지 못했고, 유다와 아브라바넬 또한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집에서는 세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를 사랑하는 법을 그들은 배웠습니다.”
「야스나야폴랴나상 시상식 후 강연(모스크바)」에서

지금까지 유다를 변주한 작품은 무수히 많았지만 오즈는 유다의 재해석에 더해 새로운 알레고리를 독자에게 제시한다. ‘가롯 유다’의 히브리어 ‘케리오트 예후다’의 ‘예후다(유다)’는 복수형이 ‘예후디’로 ‘유대인’을 의미하며, ‘암하예후디(유대 민족)’와도 관련된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그렇다면 ‘유다가 예수를 팔아넘겼다’는 것은 자연스레 ‘유대인 또는 유대 민족 전체가 예수를 배신했다’라고 읽히므로, 유다와 유대인 또는 유대 민족의 운명이 궤를 같이한다는 맥락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유다』에서 오즈는 무엇보다 ‘배신’과 ‘배신자’에 관한 다채로운 사유를 보여 주는 데 집중한다. 도서 출간 후 있었던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처음 배신자라고 불린 것은 여덟 살 때였다고 밝혔는데, 영국인 점령군 장교와 친구가 되는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했다. 집 한쪽에 검은 페인트로 ‘배신자’라고 휘갈겨 쓰여 있었던 경험이 이후 그로 하여금 ‘충신忠信’과 ‘배신背信’이란 관념에 골몰하도록 했으며, 일흔일곱 살이 된 지금도 여전히 배신자 소리를 듣지만 이제는 명예의 배지처럼 편하게 그 꼬리표를 달고 다닌다고 이야기했다. ‘배신’과 ‘배신자’의 화두는 소설 밖 오즈의 삶과 공명하면서 소설 속에서 인류 역사 전체로 확장된다.

아모스 오즈는 묻고 있다. 과연 누가 배신자인가? 배신이란 충성과 헌신, 확신과 신념의 한 형태가 아닐까? 세상은 충신과 배신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종류의 배신자들로 나뉘는 것은 아닐까? 역사를 통틀어 시대를 너무 앞서 태어난 용감한 사람들에게 배신자나 광인이라는 낙인을 찍었던 예는 많다. 배신자란 ‘세상의 회복’, 즉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이를 지상에 구현하려 했던 모든 천사의 다른 이름이었다.
「옮긴이의 말」에서

그리고 이 모든 요소를 아우르는 것은 오즈가 언제나 작품으로 이야기해 왔던 ‘인간에 대한 연민’이다. 섬세하고 고풍스러운 문장이 차곡차곡 쌓아 올린 서사가 폭발하는 순간, 개개인의 비극과 한 가정의 슬픔은 보편의 영역으로 전환된다.

『유다』 한국판에는 특별히 이스라엘의 운명과 함께하는 아모스 오즈의 상세 연보를 실었다. 아울러 작품의 배경이 생경하게 느껴지는 독자들을 위해 이스라엘의 역사 및 문화, 성경, 유대 문헌과 관련된 300여 개의 주석을 수록했다.


<출처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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