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없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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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30만년 묻어둬야 할 핵폐기물 대책은?

하늘기차 | 2022.02.25 11:45 | 조회 519

후보님들, 최소 30만년 묻어둬야 할 핵폐기물 대책부터 세우셔야죠[전문가의 세계 - 이종필의 과학자의 발상법](26)

이종필 교수 입력 2022. 02. 24. 20:46 

대선 후보들이 알아야 할 불편한 진실

[경향신문]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인류에게 치명적인 사용후핵연료
불행히도 과학적 처리 방법은 없다

반과학적인 언사를 종종 드러내곤 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역설적으로 과학이 국정운영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 대통령이었다. 최고지도자가 과학을 무시한 혹독한 대가를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미국이 똑똑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는 과학과 기술이 너무나 고도로 발달해 있어 대통령이 그 모든 세부 사항을 다 알 수 없다. 그러나 큰 줄기와 흐름은 알고 있어야 최악의 결정은 피할 수 있다. 어쨌든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이다. 예전에는 정치경제학의 담론이 한국 정치를 이끌었다면 이제는 과학기술의 담론 또한 그만큼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과학은 21세기의 필수교양이다. 대통령 후보라고 예외는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의 중요한 요소인 ‘디지털 전환’에 관해서는 적어도 우리가 잘해 온 편이다. 한국은 21세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초고속 정보통신망을 깔기 시작했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구호가 잘 실현된 셈이다. 아직도 도장 찍는 로봇을 만들고 있는 일본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그 차이가 확연하다. 일본이 30년 넘게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데에는 디지털 전환에 실패한 탓도 크다. 그러나 디지털 전환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마지막 모멘텀일 리가 없다. 인류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에너지 전환’이 이전의 ‘디지털 전환’의 역할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는 디지털 전환에는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으나 에너지 전환은 대단히 느리다. 디지털 전환에만 도취해 있다가는 에너지 전환에 실패해 도태할 가능성도 있다.

에너지 전환의 핵심은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화석연료를 퇴출하고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신재생에너지로 바꾸는 것이다. 지금의 세계는 단적으로 말해 20세기의 석유문명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너지 전환은 이 구조 전체를 바꾸는 일이다. 가히 세계사적인 전환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과업이다. 그만큼 쉽지 않다.

RE100은 전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 노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RE100은 Renewable Energy 100의 약자로서 100% 재생에너지만으로 기업 활동에 필요한 전력을 충당하겠다는 자발적인 캠페인이다. 구글, 애플, 메타, BMW,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대기업들과 한국의 SK 계열사들 그리고 LG에너지솔루션 등이 참여하고 있다. 기업들의 자발적인 캠페인이기는 하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기업들이 주도하다보니 이들과 사업관계에 있는 다른 업체들에도 일종의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국내 업체들이 RE100 회원 기업들로부터 RE100을 요구받기도 했다. 즉, 이제는 에너지 전환 여부가 새로운 통상장벽으로 작동할 수 있는 시대이다.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RE100에 핵발전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약 애플이 RE100으로만 생산된 부품을 쓰겠다고 하면 한국에서 핵발전으로 생산한 전력을 이용해 만든 부품은 거부될 수도 있다. 핵발전은 우라늄이 핵분열을 할 때 나오는 에너지로 물을 데워 터빈을 돌리는 방식으로 전기를 생산하므로 발전 과정에서 탄소가 배출될 일은 거의 없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저탄소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핵발전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핵발전에 쓰이는 핵연료는 워낙 위험한 물질이고 사용 후 생기는 핵폐기물 처리도 쉽지 않아 지속 가능한 친환경 에너지 범주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핵발전소 사고를 다른 사고, 예컨대 항공기 사고 등에 견주어 말하기도 한다. 비행기 추락이 무서워서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냐는 식이다. 이는 항공기 사고와 핵발전소 사고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무시한 비교이다. 항공기 사고는 한 번의 사고로 더 이상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지만 핵사고는 그렇지 않다.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에는 오랜 세월 동안 사람이 다시 돌아가 살 수 없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났을 당시 간 나오토 총리는 최악의 경우 후쿠시마에서 주변 170㎞ 이내 주민은 강제로 이주시키고 250㎞ 이내에서는 희망자를 수십년 동안 이주시킬 계획까지 생각했다고 한다. 해당자는 대략 5000만명으로 추정되었다. 최근 원전 부지에서 방사성물질이 오랫동안 누출된 것으로 밝혀진 월성 원전에서 부산(350만)과 울산(110만), 대구(250만)는 대략 100㎞ 이내에 있다. 250㎞ 이내라고 하면 대전(150만)과 광주(150만)까지 포함된다. 핵사고는 레벨이 다르다.

또한 사용후핵연료에는 반감기가 긴 위험물질들이 포함돼 있어 통상 30만년 안팎의 기간 동안 안전하게 보관해야 한다. 탈원전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독일은 무려 100만년 동안 안전성이 담보되는 핵폐기장을 물색하고 있다. 불행히도 아직 인류는 사용후핵연료를 완전히 처리할 기술을 갖고 있지 않다. 그냥 어딘가에 깊이 묻어두는 수밖에 없다. 실제 처분장을 확보한 나라는 핀란드와 스웨덴(건설 예정) 정도에 불과하다.

핵발전 동반되는 문제는 나몰라라
저탄소 맞춰 원전 늘리자는 주장은
적군 막으려 좀비 풀자는 것 같아

그러니까 탄소를 줄이기 위해 핵발전을 늘리자는 주장은 마치 왜구를 막기 위해 좀비군대를 풀자는 어느 드라마 속 주장과도 비슷하게 무모한 측면이 있다. 언젠가 어느 방송에서 나는, 정말 핵발전이 그렇게 친환경적이라면 왜 온 세상 사람들이 번거롭게 파리협약이니 하는 식으로 고통스러운 행동에 나서려고 할까, 그냥 지구 전체를 핵발전소로 도배하면 될 텐데, 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정말 그런 일이 벌어졌다. 지난 2월 초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서 핵발전을 이른바 그린 택소노미(녹색산업 분류체계)에 포함하는 규정안을 확정했다. 국내 언론에서는 핵발전도 이제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돼 저탄소 시대를 이끌 유력한 에너지원이며 핵발전 확대가 세계적인 추세라 치켜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정말 핵발전에 별문제가 없다면 EU는 왜 ‘이제야’ 독일 등 다수 회원국의 반발을 무릅쓰고 분류체계를 바꾸었을까? 이는 역설적으로 지금까지 핵발전이 지속 가능한 친환경 에너지가 아니라고 여겨져 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사실 이번 EU의 규정안에는 핵발전이 그린 택소노미로 분류되기 위한 까다로운 조건을 붙였다. 특히 신규 원전이 포함되려면 방사성 폐기물 관리 및 원전 폐기 기금을 보유해야 하고 2050년까지 핵폐기물 처분시설 운영계획서를 세부 단계까지 포함해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기존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려면 사고저항성연료를 사용해야 한다. 원전에서 사고가 나더라도 핵연료가 위험에 덜 노출될 수 있도록 개선된 핵연료를 사용하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비용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원전이 유럽의 그린 택소노미로 포함된 것이 원전업계에는 희소식이어야 할 텐데, 실제 유럽원자력산업협회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EU가 정한 시한까지 기준을 충족하기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고저항성연료의 확보와 상용화는 업계의 기술적인 문제로 치부하더라도, 핵폐기물 처분시설 부지를 확보하고 세부 운영계획서까지 만드는 것은 사회 전체적으로 큰 논란과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문제이다. 우리나라에서 방사성 폐기물을 처분하는 핵폐기장 위치를 정하려는 시도는 이미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영덕, 울진, 안면도, 굴업도, 부안 등이 후보지로 올랐으나 지역주민들의 격렬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지역주민과 정부 간의 갈등은 물론 주민들 사이의 갈등 또한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되기도 했다. 벌써 30년도 더 지난 일이다. 부안사태의 심각한 갈등을 겪은 뒤 정부는 중저준위 폐기물과 고준위 폐기물을 나누어 처리하는 방침을 정했고, 그에 따라 2005년에야 경주에 중저준위 폐기물만 처분하는 시설을 짓기로 결론이 났다. 가장 위험한 물질인 사용후핵연료는 어떻게 처분할지 아직 뾰족한 대책이 없다.

국내 임시시설 포화 코앞인데
폐기장 물색은 수십년째 제자리
고도의 정치력 필요한 부지 선정
‘탈원전 vs 확대’ 논쟁보다 급하다

지금은 사용후핵연료를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에 보관 중인데 이마저도 시시각각 포화 상태에 다다르고 있다. 2021년 10월 기준으로 월성 원전은 98.8%, 고리·신고리 원전은 83.8%, 한울 원전은 80.8%, 한빛 원전은 74.2%의 저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고리·신고리와 한빛 원전은 2024년에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2021년 상반기 자료에 따르면 원전의 발전 비중은 26.9%이다. 정부가 저탄소 에너지 전환 계획에 따라 제시한 2030년 에너지원별 발전량을 보면 핵발전이 여전히 24%에 이른다. 이재명 후보는 대체로 정부의 이 로드맵을 따를 것 같다. 환경문제에 가장 엄격한 잣대를 갖고 있는 심상정 후보가 제시한 2030 에너지믹스 계획에서도 핵발전이 23%로 정부의 계획과 큰 차이가 없다. 반면 원전 확대를 주장하는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2030 에너지믹스에서는 핵발전 비중이 최대 35%까지 올라간다. 이를 맞추려면 추가 원전 건설이 불가피하다.

차기 정부에서 탈원전을 계속하든 정반대로 원전을 확대하든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50만다발 이상의 사용후핵연료는 어떻게든 처리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것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핵발전소를 운영하면 당연히 뒤따르는 ‘과학’의 문제이다. 현 정부의 탈원전 계획을 계속 추진하더라도 앞으로 수십년 동안 우리는 핵발전소와 함께 살아야 한다. 원전을 확대하려는 정부가 들어서면 사용후핵연료 처리는 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러니까 어느 후보에게도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는 공통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부지 선정에서 관련 지역민들의 극심한 반대가 예상되기 때문에 정말로 조정과 중재의 정치력이 고도로 필요하다. 탈원전이니 원전 확대니 계속 겉도는 싸움에만 매몰되지 말고 모든 후보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사용후핵연료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부터 토론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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