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를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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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담론' 퍼뜨리는 이 땅의 '선장들'

kihyukee | 2014.09.14 22:49 | 조회 1633

세월호 참사 이후 세상이 변하려면  여러 노력들이 오래토록 문화로서 자리잡아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슈를 놓치지 않고, 끊임 없이 질문하고, 지치지 않으며 몸으로 행동하는...

 

"부와 권력은 인간의 행복을 보장할 수 없는데, 그 근본원인은 그것이 인간을 사람답게 변화시키는 공감능력을 감소시키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게는 여러측면에서 매우 와닿습니다.

 

한완상 전 통일부장관의 한겨레 신문 기고글입니다.

 

 

사회

사회일반

‘피로 담론’ 퍼뜨리는 이 땅의 ‘선장들’

등록 : 2014.09.10 22:05수정 : 2014.09.10 22:42

추석 연휴 마지막날인 10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 단식농성장에서 시민들이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에 참여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kr

[세월호 해법 연속기고] 한완상 전 부총리

세월호 침몰은 국가와 시장의 갑들이 빚어낸 참사다. 배가 기울어질 수밖에 없도록 방치한 데는 관피아의 잘못이 크다. 탐욕적 시장의 적자(適者)와 부패한 관료의 결탁이 빚어낸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만큼 그 배를 탔기에 죽은 사람들의 죽음은 억울하다.

온 국민의 가슴을 슬프게 옥죄었던 것은 수백명이 잔인하리만큼 천천히 배와 함께 죽어가는데도 국민의 안전을 마땅히 지켜내야 할 정부가 단 한명의 목숨도 건져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지금 국가는 어디 있는가’ 하는 탄성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아직까지도 청와대 7시간의 ‘국가 부재’는 귀중한 생명들을 삼켜버린 시커먼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은 듯하다.

정부의 무능이 이 수준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대해 정치권이 이렇게 무감각하게 대응하는 것을 보며 국민적 분노는 화산의 마그마처럼 지금도 끓고 있다. 자기 딸과 아들들이 이렇게 죽어가는 순간들을 그렇게 오래 지켜봐야 했던 부모들의 그 아픔에 공감하는 국민들은 오늘도 함께 동고(同苦)하고 있는데, 이 참사의 원인 제공자들은 고집스럽게, 표독스럽게 그 ‘공감 물결’을 질책하고 있다. 아니 그것에 침을 뱉고 마구 욕설을 퍼붓고 있다.

최근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고 분노케 하는 것은 이 땅의 갑들이 교사스러운 언어통치술을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세월호 피로감’을 유난스럽게 강조하고 유포시킨다. 마치 한국 경제의 어려움이 참상 피해자들의 피맺힌 진실규명 절규 때문인 듯 수구언론들이 호도한다.

처절한 단식을 통해 왜 배가 침몰했는지, 왜 그 막강한 국가권력이 억울한 주검 하나도 살려내지 못했는지를 대명천지에 떳떳이 밝혀달라는 너무나 인간적인 요구, 너무나 민주국민적 주장을 ‘피로감 담론’으로 짓뭉개버리려고 한다. 이들의 정당한 절규에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시민들의 그 감동적 공감 움직임마저 경제를 망가뜨리고, 국가를 위험스럽게 뒤흔드는 짓으로 정죄하는 괴이한 언론통치술을 보면서 나는 참으로 서글퍼지지 않을 수 없다. ‘국민 피로감’. 참으로 가증스러운 권력 갑들의 담론이다.

피해자들 진실규명 절규가
한국경제 어려움 원인인가
이들 향한 시민들 공감이
국가 위험스레 뒤흔드나

국민 피로감, 가증스런 권력의 말
참상 본질 교묘히 숨긴
가장 비정한 통치 꼼수이다

억울하게 자식 바다로 보낸
부모들 피로감을 생각해보라

하기야 이들은 그간 ‘피로감 담론’을 생산하여 정치적 이득을 맛보았다. 진정한 개혁을 갈망하는 국민들에게는 ‘개혁 피로감’을 교묘하게 생산·활용하여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도 하고 정치적 이득을 얻기도 했다. 야당의 정권 심판론이 거세게 올라올 때, 갑들은 ‘심판 피로감’을 효과있게 활용했다. 하기야 제대로 심판할 실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야당, 창조적 대안을 선명하게 제시하여 국민을 설득하지 못한 야당의 잘못도 있지만, 갑들의 언술통치는 참으로 교사스러웠고, 또 불행하게도 먹혀들었다.

사실 민생경제는 어렵다. 그것은 국가와 시장의 갑들이 적절하게 그들의 탐욕을 규제하지 못한 데서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억울한 약자들의 정당한 요구 때문이라고 교묘하게 호도하고 오도하고 있다. 마치 피해자들의 절규가 민생경제를 외면하게 하고 국민을 부당하게 피로하게 한다고 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한마디로 ‘피로감 담론’은 이미 공공성을 잃은 갑들의 탐욕적 이데올로기 왜곡이다. 비극과 참상의 본질은 교묘히 숨기고, 그 껍데기는 요란하게 분칠하여 그들의 위기를 넘기려는 정치공학적 꼼수다. 원래 비민주적 권력일수록 이데올로기 왜곡에 능숙하다. 지난날 파시스트들의 그 현란하게 화려했던 정치수사를 보라.

며칠 전 나는 시엔엔(CNN)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접했다. 시인이요 작가인 파리니(Parini)의 기고문을 정독했다. 부와 권력은 인간의 행복을 보장할 수 없는데, 그 근본원인은 그것이 인간을 사람답게 변화시키는 공감능력을 감소시키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진리는 이미 오래전에 예수께서 설파하셨고, 얼마 전 방한하신 교황께서도 강조하신 진리라고 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진리가 최근 두뇌신경과학자들의 실험을 통해 증명되었다는 점이다. 인간의 공감능력과 역지감지(易地感之) 능력이 부와 권력에 의해 훼손되고 약화된다는 진리는 우리에게 소중한 깨달음을 준다. 그것이 오늘 이 땅의 갑들의 그 오만한 불감증세, 불통증세의 원인임을 알게 해준다. 예수, 교황, 두뇌신경과학자들이 한목소리로 외치는 진리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세월호 피해자들의 아픔 그리고 그들과 동고하려는 국민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짓밟는 ‘피로감 담론’ 생산자들이야말로 가장 비정한 인간들이 아닌가. ‘피로감 담론’이야말로 가장 잔인한, 비인간적 통치 꼼수다. 영어의 ‘인휴먼’(inhuman)은 비정함, 냉혹함을 뜻하는데, 문자 그대로 비정함은 인간 아님을 뜻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나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 주범이었던 아이히만의 재판에 참관하여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저술한 한나 아렌트의 예리한 통찰력을 새삼 기억하게 된다. 예상과 달리 너무나 평범하고 정상적으로 보인 아이히만의 모습에 아렌트는 적이 놀란 듯하다. 그러나 그 겉모습의 평범성(banality)의 속살(본질)을 보면, 나치 전체주의하에 완전히 파괴되어버린 공감력, 그 공감력의 부재가 있다. 아이히만은 홀로코스트 희생자들과 역지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그 많은 유대인들을 아무렇지 않게 ‘정상적’으로 학살할 수 있었다. 함께 아파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면, 인간일 수 없다. 더더군다나 지도자일 수 없다. 권력과 부의 갑들이 공감력을 잃게 되면, 잔인한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이다.

나는 ‘피로 괴담’이 스멀스멀 우리 사회에 번지는 것을 보고 서글픔과 분노를 떨쳐버릴 수 없다. 도대체 우리는 어디까지 후퇴해야 이런 반인간적 정치 술수가 중단될 수 있는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민주국가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그 최고지도자, 권력의 정점이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공감적일 때 작동하는 실체가 바로 민주국가가 아닌가. 그렇다면, 광화문의 그 아픔을 그토록 외면하고 무시하는 권력이 국가 최정점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불행이 아니겠는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과연 누가 진짜로 피로한가. 억울하게 자식을 칠흑 같은 바다 밑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부모들의 피로감이 가장 큰 것이 아니겠는가. 제발 이 땅의 갑들이 피로 담론을 정치적으로 오용하여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과 피로를 더 악화시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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