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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국적을 취득한 최초의 이스라엘인, 지휘자 바렌보임

하늘기차 | 2014.08.06 13:53 | 조회 2544


지휘자 바렌보임, 팔레스타인 국적을 취득한 최초의 이스라엘인

                                                                                                         조은아, 피아니스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학생들에게 '다니엘 바렌보임'이란 음악가를 소개할 때마다, 그에 대한 개인적인 인상비평도 스스로 진화해 왔음을 고백하곤 한다. 어렸을 적엔 그가 얄미웠다. 전형적인 천재 음악가였던 그는 하루에 두시간 이상 절대 연습하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밝혀온 터였다. 집중력의 효율을 위해서라는데, 하루 종일 악기에 붙어있어도 될까말까 허덕대는 평범한 음악가들에게는 공분을 살만한 발언이었다. 성년이 되었을 때는 그의 여성편력에 대해 분노했었다. 바렌보임의 부인은 영국이 자랑하는 세계적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였다. 그녀가 근육이 굳어가는 다발성 경화증에 걸려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동안, 그는 바쉬키로바란 피아니스트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었다. 이러나 저러나 정이 가지 않는 음악가였다.

그런데 한쪽으로 기울어 있던 이 인상비평에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온 것은 에드워드 사이드와의 대담집 '평행과 역설'을 읽으면서였다. 바렌보임에게서 고뇌하고 실천하는 지성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한 것이다. 비단 음악 영역뿐만 아니라 역사, 철학, 문학, 사회과학 등을 아우르는 녹록찮은 지식의 깊이에 놀랐고, 사회의 갈등을 통찰하며 그 화해를 위해 직접 행동하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한 사람을 향한 인상비평이 이처럼 진화를 거듭한 것은 개인적으로 퍽 드문 일이었다. 그만큼 부단하고도 치열한 인생의 반증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때부터였다. 서동시집 오케스트라와 관련된 그의 활동에 관심과 애정을 기울였고, 강의의 중요 주제로 다루며 학생들에게 열정적으로 소개했다.

10년 전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울프상의 시상식 소동은 바렌보임의 인생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장면이다. 노벨상의 아성에 도전하며 이스라엘이 야심차게 추진한 울프상은 그 해 수상자로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을 선정했다. 베를린 국립 오페라단과 시카고 심포니를 이끌며 '유대인'의 우수한 음악성을 널리 떨치는가 하면,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통해 인류애를 실천하는 등 '이스라엘이 낳은' 위대한 음악가라는 것이 그 선정 이유였다. 시상식은 이스라엘 의회에서 성대히 거행되었다. 허나 연단에 오른 바렌보임이 수상소감을 결연히 토로하자 식장은 일대 소란에 휩싸였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교육문화장관은 핏대를 높여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그는 이 연단을 국가를 공격할 기회로 삼았다!" 과연 그랬을까? 수상소감의 내용을 밝히기 전에 우선 바렌보임이라는 인물의 각별한 배경부터 언급해 둘 필요가 있다.

그의 태생과 성장은 복잡하다. 부모는 나치의 침략을 피해 아르헨티나로 이주했던 러시아계 유대인이었다. 이스라엘 건국 후 예루살렘에 정착할 즈음 바렌보임은 피아노의 신동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소년은 곧 유럽으로 활동반경을 넓혀 갔는데, 이 시기 베를린 필의 지휘자였던 푸르트뱅글러의 연주 초청을 거부했던 일화가 유명하다. 아직 홀로코스트의 상흔을 잊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청년 음악가로 성장한 그는 영국의 국민요정과 같던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뒤 프레는 이 청년과의 결혼을 위해 유대교로의 개종도 서슴지 않았다. 중동전쟁이 일어났던 때, 바렌보임은 온갖 연주 스케줄을 뒤로한 채 이스라엘로 달려가 전쟁의 참상을 직접 체험하기도 한다. 이후 유대계의 지원을 등에 업고 서유럽과 북미의 주요 오케스트라를 거치며 지휘자로도 세계적 명성을 높여갔다.

이처럼 음악계에서 승승장구하던 유대 민족주의자가 어느덧 팔레스타인 국적을 취득한 최초의 이스라엘인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 테러와 암살, 선혈이 낭자하는 적진의 한복판에서 목숨을 내걸고 음악회를 열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종교와 민족, 언어가 다른 데다 내 가족이 상대편의 총탄에 죽었다는 분노를 뜨겁게 삼키고 있는 중동의 청년 음악가들을 굳이 오케스트라로 규합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렌보임은 이 모든 해답을 에드워드 사이드와의 운명적 만남 덕택이라 회고한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세계적 석학인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이란 명저로도 알려져 있다. 두 사람 사이 경계를 허문 교류와 마음을 나눈 우정이 없었더라면 '서동시집 오케스트라'의 유의미한 역사는 영영 빛을 발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자, 다시 울프상으로 돌아가 수상소감의 몇 구절을 옮겨보자.

"제 나이 열 살 때, 이스라엘로 이주해왔습니다. 그때의 독립선언문을 인용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은 신앙, 인종,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이에게 사회적 권리와 정치적 권리를 보장한다.' 그러나 저는 현재 상황을 반문하고 싶습니다. 남의 땅을 점령하고 그 국민을 지배하는 것이 선언문의 정신에 부합할까요? 고난과 박해의 역사를 겪었다 해서 이웃 국가의 기본권을 침해하거나 고통을 야기할 면죄부를 얻은 것일까요? 오직 군사적 폭력만이 분쟁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전 제 자신을 꾸짖습니다. 왜 진작 평화적인 해결책을 모색하지 못했던가? 우리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합니다."

'자신을 꾸짖으며, 스스로에게 질문한다'는 바렌보임의 언급은 2014년의 우리가 진심을 다해 경청해야 할 대목이다.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지 않으면, 내편이 아니라며 덮어놓고 매도 당하는 작금 이 나라의 실정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을 반성할 줄 모르고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지 않는 사람들에겐 특히나 바렌보임과 사이드의 대담집 <평형과 역설>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아니면 여기 수상식 장면이라도....

울프상 수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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