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정의와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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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수 정혜신의 ‘안산 치유 일기’…한가로운 뜨개질? 그것은 신비로운 진통제
한겨레 기사에서 퍼왔습니다. 원문 링크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7093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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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시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이자 단원고가 인접한 단원구 와동에 자리잡은 ‘치유공간 이웃’은 50여평의 좌식 공간이다. 이 안에 걸려 있는 큰 그림은 김선두 화백이 그린 ‘봄소풍’이다. 이 그림엔 우리와 다른 세상으로 봄소풍을 떠난 아이들의 밝은 모습이 담겨 있다. 지난 23일 오후 치유공간 이웃의 이명수 대표(왼쪽)와 정혜신 치유자가 그 그림 앞에 섰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토요판] 세월호 특집
▶ 정혜신 이명수 부부는 심리치유 전문기업 ‘마인드프리즘’으로 유명합니다. 당연히 아직도 겸직하는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완전히 접었다고 합니다. 이제 안산에서의 치유활동에 모든 것을 걸었다고 합니다. 양평에 있는 자택에는 주말에만 돌아갑니다. 9월부터 안산시 단원구 와동에 연 ‘치유공간 이웃’은 자원봉사자 100여명과 유가족들로 북적거립니다. 두 사람이 함께 그간의 활동을 담은 치유일기를 보내왔습니다.이명수 안산으로 이주한 지 6개월이 지났다. 주소지까지 옮긴 건 아니지만 일주일에 닷새를 안산에서 거주하니 이주가 맞을 것이다. 그녀와 나의 안산 생활은 단출하다. 아침에 숙소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치유공간 이웃’(이하 이웃)에 걸어서 간다. 종일 그곳에 있다가 밤늦게 숙소로 돌아와 하루를 복기한다. 매일이 똑같다. 어제는 오늘 같았고 내일은 오늘 같을 것이다. 이웃에서의 동선도 특별할 게 없다. 그녀는 주로 상담을 하고 나는 (좋게 말해서) 이웃의 멀티플레이어라고 혼자 생각한다. 방앗간에서 갓 배달된 떡을 냉동 보관하기 쉽게 떼기도 하고, 엄마들이 뜨개질을 할 때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기도 하고, 마루에 퍼져 앉아 엄마들과 길게 얘기를 하기도 하고, 밤늦게 청소기를 돌리기도 하고, 이웃의 자원봉사자들에게 싱거운 농담을 건네기도 하고, 이웃을 방문한 후원자를 만나 감사를 표하기도 한다.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일들이고 반복적인 일상이다. 여러 이유로 이웃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하루에 열번 이상 묻게 된다. 그녀와 내 결론은 언제나 같다. 지금 안산에서 세월호 트라우마에 대한 치유적 접근은 가장 일상적인 게 가장 본질적이라는 것이다.우리를 아는 이들은 안산으로 이주했다는 말을 들으면 꼭 묻는다. 왜(혹은 어떻게) 그렇게까지 한 거냐. 세월호 참사 직후 팽목항을 다녀와 양평 집에서 안산을 오가던 그녀는 밤이면 심하게 앓았다. 지난 10여년 온갖 트라우마 현장에 누구보다 가깝게 있었던 거리의 의사였음에도 그랬다. 나는 자면서 팔을 휘젓거나 잠에서 깨어 우는 그녀를 다독이곤 했다. 어느 날 한밤중에 울면서 그녀가 말했다. ‘팽목에서 봤던 아이들이 자꾸 내게 말을 걸어. 아줌마, 우리 엄마 아빠와 동생을 잘 부탁해요….’ 그 말을 하고 들으며 우리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아, 안산으로 가게 되겠구나. 후에 확인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이주가 가능하도록 회사를 비롯해 모든 것을 정리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고통에 반응하는 게 조금 빨랐고 조금 더 과감했다. 어른으로서 죗값을 치러야 겠다는 의무감도 한몫했다. 그래서 안산으로 왔고 ‘아름다운 재단’의 후원을 받아 이웃을 열었다. 그러니까 시작은 팽목항이었다.이명수어서 빨리 털고 일어나라는 건
치유 아닌 어리석은 계몽질
그녀 정혜신은 주로 상담을 하고
나는 냉동 떡을 떼기도 하고
밤늦게 청소기 돌리기도 하고…정혜신
4월23일 팽목항에 갔습니다
발길이 닿은 곳은 신원확인소
놀다가 곯아떨어진 듯한 아이들
나보다 더 생생한 그 생명들이
내게 말을 거는 듯했습니다 일상적 접근의 치유효과를 확인하다 정혜신 4월23일. 팽목항에 갔습니다. 아이들의 생사조차 확인 못한 아비규환의 장소에서 정신과 의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많진 않겠지만 그곳에서 벌어진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알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무작정 갔습니다. 그러다 발길이 닿은 곳이 팽목항 구석에 있는 신원확인소였습니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시신을 수습하는 곳입니다. 제가 들어간 날은 하루 종일 단원고 아이들의 시신이 올라왔습니다. 밤새워 놀다 잠에 곯아떨어진 아이들 같았습니다. 예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장례지도사 자원봉사자들은 하루 종일 아기 목욕시키듯 아이들을 닦아주고 얼굴의 상처를 지워주고 머리도 빗겨줬습니다. 내 자식인지 확인하러 들어오는 부모들이 받을 상처를 줄여주기 위해섭니다. 신원확인소에서 만나는 내 아이의 마지막 모습이란 부모에게는 죽어야만 잊혀질 모습이겠지요. 제가 팽목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이곳에 함께 있어주는 것뿐이었습니다. 진도에서는 시신을 닦아주고, 밥 짓고, 빨래해주고, 화장실 청소를 해준 분들이 궁극의 치유자였습니다.신원확인소에서의 며칠은 세월호 희생학생들과 제가 돌이킬 수 없는 관계를 맺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습니다. 아이들이 내게 말을 거는 듯했습니다. 그곳에서 제가 확인한 세월호 사건의 본질은 ‘어른들이 구하지 않은 그 아이들은 나보다 더 생생한 생명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생생한 생명들을 바다에 처박아 놓은 채 먹고 잤던 우리 덜 생생한 목숨들은 죽을 때까지 그 죗값을 치르게 될 거 같습니다.이명수 ‘치유공간 이웃’은 50여평의 좌식 공간으로 단원고 유가족 부모들을 위한 민간 주도의 심리치유센터다. 공간의 3분의 1은 부엌이다. 이중문이 설치된 상담실이 있고 나머지는 탁 트인 마루다. 그곳에서 밥을 먹고, 뜨개질을 하고, 마사지를 하고, 한방진료를 하고, 간담회를 하고, 개별 상담을 하고, 별이 된 아이의 생일모임을 갖는다. ‘이웃치유자’라고 불리는 이웃의 자원봉사자들이 이 모든 일을 돕는다. 이웃에서는 정혜신도 상담을 주로 하는 이웃치유자로 규정한다. 그럼에도 약물치료나 개별 상담 등만을 치유로 규정하는 전문가 집단에서는 이웃의 치유활동에 대해 반신반의할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로 세월호 일부 유가족도 고개를 갸웃한다. 진상규명 같은 치열한 투쟁의 현장에 있어야 할 이들이 뜨개질을 하고 모여 앉아 얘기를 하는 모습이 한가해 보여서다. 그들의 의견을 이해는 하지만 동의하긴 어렵다. 그녀와 나는 우리의 일상적 접근 방법이 이런 트라우마 현장에서 강력한 치유적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오랜 시간에 걸쳐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치유를 간단하게 정의하면 깨진 일상의 복원이다. 예를 들어 심하게 화상 입은 팔을 치료하는 목적은 600만불 사나이의 무쇠팔을 만들자는 게 아니다. 원래 내가 쓰던 팔만큼 돌아오는 것이다. 그게 그렇게 어렵다. 죽을힘을 다해야 원래대로 복원이 될까 말까다. 흉터는 그대로 남는다. 심리치유의 과정도 그렇다.뜨개질을 하는 순간의 엄마는 죽음 같은 고통을 잠시 잊는다. 편안한 상태가 아니지만 제3자의 눈엔 한가로운 풍경처럼 보인다. 하나뿐인 자식을 눈앞에서 잃고 왜 더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엄마는 겉으론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다. 그저 고요하고 무기력해 보일 뿐이다. 하지만 내부에선 진상규명의 현장보다 더 치열한 삶과 죽음의 투쟁이 진행되고 있다.사람은 24시간 울거나 24시간 분노할 수 없다. 이웃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이 느낀다는 안온함은 겉풍경이다. 밥을 먹다가도 마사지를 받다가도 아이 얘기를 하다가도 토하듯 울음을 쏟아내고 혼절하듯 무기력해지는 게 유가족들의 내면 풍경이다. 이웃에서 치유밥상에 쓰이는 식재료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는 건 휴지다. 상담실에선 이틀에 한통꼴로 휴지를 교체한다. 마루 곳곳에 휴지통이 놓여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심리치유 작업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시간도 많이 걸린다. 이웃의 내부 방침이 ‘천천히. 오래’인 건 그래서다.
정혜신, 이명수 부부는 ‘치유공간 이웃’을 위해 아예 거처를 안산으로 옮겼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치유공간 이웃’의 출입문 유리엔 ‘그들을 위해 우리를 위해 천만개의 바람이 되어주세요’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겉으론 안온해 보이지만
아무 때나 토하듯 우는 사람들
식재료 다음으로 많이 쓴 휴지
상담실서 이틀에 한통꼴 교체
눈에 안 보이는 치유, 천천히 오래정혜신
아이 유품 세탁하지 못하던 엄마
죄의식에 사로잡혀 퇴근 뒤에도
자기 아이를 안지 못하던 선생님
“다 죽이겠다”며 등교 거부하던 형
그 아픔과 아찔하게 만났습니다
위성지도에 표시한 세월호 사고 희생자 분포 현황은 이곳 사무실 벽에 붙어 있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단원고등학교 인근에 거주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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