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정의와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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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범씨의 딸 별이의 돌잔치

하늘기차 | 2015.07.19 18:13 | 조회 2436

 한 남자가 아파트 난간에 매달려 에어컨 실외기를 들고 있다. 


보는 것만으로 아슬아슬하다. 이 남자는 삼성전자서비스의 에어컨 수리기사다. 이렇게 일하다가 한 번은 난간에서 추락했다. 다행히 나무에 걸렸고 허벅지가 깊게 패이도록 찢어졌는데, 사장은 옷값 줄 터이니 수리를 마치고 들어오라고 했다. 남자는 이 사진을 동료들과의 카톡방에 올렸다. 다음 주에 여기에 또 수리하러 갈 건데 유서를 써서 주머니에 넣고 갈 거라고, 죽을 때 죽더라도 삼성이 어떻게 일을 시키는지 조목조목 적어서 남겨놓을 거라고 말했다.


이렇게 일하는 남자는 분급이라는 걸 받았다. 월급이나 연봉이 아니라 분급. 이동시간이나 수리 전후 준비시간, 상담시간 등을 모두 빼고 오직 수리하는데 걸린 시간만 칼같이 계산해 남자는 분급으로 225원을 받았다. 성수기가 지나면 한 달에 백만 원 손에 쥐기도 어려웠다. 비수기에 진 빚을 성수기에 번 돈으로 갚는 악순환. 남자는 악착같이 일해야 했다. 추석 명절이나 아내 출산 직전에도 수리콜을 처리하러 갔다. 처갓집에 얹혀살던 남자는 딸이 태어나던 날 "최종범 인생 끝, 최별로 새로 시작"이라면서 마음을 다잡았고, 신혼인 아내와 하나뿐인 딸을 생각하며 견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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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7월 14일 있었던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조 출범식 모습



그랬던 회사에 드디어 노조가 만들어졌다. 휴일도 밤도 없이, 건당수수료라는 불안정한 돈을 받고 일해야 했던 처지를 바꿔보자는 서비스 기사들의 뜻이 전국적으로 모였다. 남자는 희망을 가지고 누구보다 노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그 꿈도 잠시, 삼성전자서비스 본사는 노조가 만들어진 지점에서 일감을 빼기 시작했다. 노조가 없거나 약한 다른 지점으로 콜을 돌려버렸다. 노조를 해체하려는 공작이었다. 차츰 남자의 일감이 사라졌다. 일 없는 기사들이 회사 앞 공터에 쭈그려 앉아 하릴없이 시간을 때우는 일이 늘기 시작했다.


스산한 바람이 불던 10월 말의 어느날. 일년 365일 중에 340일을 일했던 남자가 처음으로 아무 말 없이 결근을 했다. 밤에 나타난 남자는 동료들과 막걸리를 한 잔 했고, 가장 마음에 맞는 동료 기사와 2차로 맥주를 마시러 갔다. 잔을 앞에 두고 남자는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노조가 생겼으니 잘 되겠지... 근로 기준법도 지켜지겠지. 그런데 비수기가 이제 시작인데... 눈 오기 전부터 이렇게 힘들어서야... 형들도 일감이 없고..." 남자는 계속 술잔을 붙잡고 울먹였다.


그날 늦은 밤 아내에게 남자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내는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전화를 끊지 못하게 하려고 이런 저런 말을 시켰다. 그러면서 종이에 119에 신고하라고 적어서 같은 집에 있던 친오빠에게 서둘러 건넸다. 별이를 바꿔달라던 남자는 아이의 숨소리만 듣고 전화를 끊었다. 잠시 뒤 위치추적이 된 곳으로 아내와 친오빠가 급하게 달려갔지만 남자는 그곳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까지 연락이 끊겼던 남편은 - 고향 근처의 나무 아래에서 싸늘하게 식은 몸으로 발견되었다. 남자의 허벅지에는 난간에서 떨어졌을 때 찢어진 상처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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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31일 세상을 떠난 최종범씨의 유언. 프로필 사진은 돌을 앞둔 딸의 사진이었다.



서른네 살, 갓 태어난 딸을 둔 신혼의 남자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이 죽음을 우리는 자살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아니면 가해자가 정밀하게 감춰진 타살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생각은 자유지만 마치 같은 살인범이 거리를 배회하는 것처럼 비슷한 죽음이 또다시 일어났다. 나이도 서른넷으로 같았고 죽음의 장소도 자신들이 수리 갈 때 몰고다니던 낡은 차 안이었다. 삼성전자의 또다른 서비스 기사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그가 일하던 센터 역시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일감이 다른 곳으로 빼돌려지고 있었다.


두 번째 죽은 남자가 받은 마지막 월급은 41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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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 17일 세상을 떠난 염호석씨의 모습



작년부터 이런 죽음들을 전하는 기사를 보면서는 울컥하는 눈물을 삼킬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 와중에 답답한 마음을 풀어준 하나의 소식이 들려왔다. 최종범씨의 딸 별이의 돌잔치 소식이었다. 딸의 첫 돌도 못 보고 아빠가 떠났지만, 그의 뜻을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별이의 돌잔치를 열어준 것이다. 쓸쓸하게 떠난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주려는 사람들이 돌잔치 장소를 가득 채웠다. 엄마뿐만 아니라 모여 있던 사람들이 서로를 보면서 감동받고 눈물지었던 자리였다. 


그 돌잔치는 단순한 일회성 행사가 아니었다. 죽은 사람에 대한 부채감을 가슴에 무겁게 담아놓던 사람들이 연대의 손길을 겹겹이 포개어 내놓은 자리였다. 뜻있는 변호사들이 평생 법률 지원을 약속했고, 한 출판사에서는 평생 별이에게 책을 무료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어느 지역의 여성농민회에서는 별이 가족에게 평생 유기농 쌀을 보내주기로 약속했다. 쌍용차 해고자 가족들이 잔치 장소를 섭외하고 음식을 만들었으며, 쌍용차 해고자들은 직접 나서서 돌상과 떡을 냈다. 이윤 추구에 눈이 멀어 자사 노동자들의 죽음도 모른척하는 삼성 같은 더러운 자본이 있는 이 사회에는, 여전히 인간성을 지키고 서로를 보듬어주려는 사람들이 이렇게 버티고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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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가장 감동적인 돌잔치. 별이 돌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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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동료들이 별이의 아빠가 돼주기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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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자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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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잔치에서 최종범 열사의 영상이 상영되자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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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 위영일 지회장



최종범, 염호석. 두 분의 노동자가 죽고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싸웠으며, 결정적으로 전국 천여 명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서초동 삼성 본관 앞에 모여 노숙 농성을 한 결과로, 삼성은 반 걸음쯤 움직여 양보를 했다. 삼성이 변칙적인 방법으로나마 노조를 인정하고 협의를 하기로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렇게 세상은 깨어있는 사람들의 실천에 의해, 그리고 먼저 떠난 사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잊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움직여간다.


누군가 죽어야 비로소 바뀌는 사회라는 것이 안타깝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지명하는 내각의 모습을 보면 세월호가 가라앉으며 수백 명이 죽었던 일도 이미 그들의 기억 속에는 사라지고 없는 것 같다. 죽어야 바뀐다는 것도 지독하지만 사람이 그렇게 죽어도 모른 척 밀고가는 권력을 보는 것은 더 섬뜩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 일상에서 밀려들어오는 걱정과 불안, 현란한 자극의 홍수에 맞서 그 먼저 간 사람들의 이름을 잃지 않기 위해 내 어지러운 내면과 싸워야 한다.


지난 주말 청계광장에 가니 기억을 놓지 않으려는 적은 수의 사람들이 모여 촛불을 들고 있었다. 아무 언론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지만 누군가들은 그렇게 자신의 양심에 따라 분투하고 있다. 죽은 이들이 묻고 있다.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부끄러운 마음으로, 그 죽음들을 잊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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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청계광장에서 촛불집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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