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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힌 거인>을 읽고(108번째 글쎄다)

하늘기차 | 2016.03.17 15:55 | 조회 974


파묻힌 거인(2016년3월 글쎄다)

     이야기의 제목 ‘파묻힌 거인’은 맨 뒤 443쪽에나 가서야 과거 아서왕의 신하로서 브리튼족의 전사였던 액슬과 앵글로 색슨족의 전사인 윈스턴이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마침내 등장한다.

                       “윈스턴이 말했다. ‘고이 잘 묻혀 있던 거인이 이제 깨어나고 있어

                       요. 분명 곧 거인이 일어날 텐데 그렇게 되면 우리 사이의 우호적인

                       유대는 어린 자아들이 한낱 작은 꽃줄기로 만든 매듭에 불과했다는

                       게 증명될 겁니다. 남자들은 밤마다 이웃 마을의 집을 불태우고, 새

                       벽이면 나무에 아이들의 목이 매달리고, 며칠 동안 강을 떠내려 오

                       느라 퉁퉁 불어터진 시체들로 강에는 악취가 진동할 거예요. 군대가

                       이동하는 동안에도 복수를 향한 갈망과 분노로 병사들이 점점 늘어

                       나겠지요. 당신네 브리튼족 입장에서는 불덩이가 자기들을 향해 굴

                       러오는 거예요. 도망가거나 아니면 죽을 겁니다. 이 지역 저 지역이

                       새로운 땅, 색슨족의 땅이 되고 아무도 돌보는 이 없이 언덕을 돌아

                       다니는 양 떼처럼 당신네 종족이 이곳에 살았던 시간의 흔적들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될 거예요’”

     브리튼족 왕인 전설의 아서왕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전쟁을 끊기위해 앵글로 색슨족을 대상으로 학살의 잔인한 전쟁을 치른 후에 또 다시 복수의 피를 흘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용<케리그>의 입김에서 흘러나오는 안개를 통해 사람들을 망각의 잠에 취하게 한다. 그런데 그 용을 앵글로색슨족의 전사 윈스턴이 죽인다. 그러자 기억의 안개가 사라지면서 파묻어 놓았던 거인, 즉 기억이 깨어난다.

     이야기는 브리튼족과 앵글로 색슨족 사이의 처참한 싸움과 액슬과 비어트리스 부부 간의 갈등의 두 구조가 조화를 이루며 펼쳐지는데, 용이 내 뿜는 안개는 이야기의 처음부터 계속 소설 전체를 감싸며 망각의 근원을 제공한다. 부부가 아들을 찿아 떠나면서 색슨족의 전사 윈스턴을 만나고, 브리튼족의 전사 가웨인경을 만나 함께 길을 가는데, 서로의 목적이 다르다. 가웨인은 용을 통해 만들어진 아서왕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용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색슨족의 전사 윈스턴은 용을 죽여 망각에서 기억을 일깨워 종족의 복수를 하려 하고, 부부는 아들을 만나려 한다. 그리고 색슨족 마을에서 도깨비에게 물렸다가 윈스턴에의해 살아 돌아온 12살 아이 에드윈이 등장하는데, 에드윈은 엄마를 구하려고 윈스턴을 따른다. 에드윈은 도깨비에게 납치되어 상처를 입었지만, 죽음에 직면하여서도 전혀 그 죽음을 회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로운, 보다 강력한, 윈스턴를 능가하는 전사의 태동을 암시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여행을 떠난다. 로드 무비같은 소설 이다.

     기억과 망각은 지금도 끊임없이 힘겨루기를 한다. 위안부, 아니 광주학살, 그리고 세월호, 용산 참사, 제주 강정마을 . . . 월남전 당시 한국군인에의한 퐁니퐁넛 양민 학살. 제주 4.3 . . . 역사는 망각하여 지워버리려는 자와 기억하려는 자 와의 싸움이 아닌가? 레드툼이라는 다큐는 해방 이후 국민보도연맹에대한 수를 헤아릴 수도 없는 민간인 학살을 조심스럽게 기억해 내는 다큐이다. 국가는 자꾸 망각하려고 한다. 시상과 애도로 그 날을 기념식 정도로 추모를 한다. 작년 5.18기념식 때에는 기억을 되살리고자하는 ‘님을 위한 행진곡’도 부르지 못하게 하는 기념식을 통해 기념식을 망각의 장으로 변질시킨다.

   밀란 쿤데라는 <웃과 망각의 책>이라는 자서전적 소설에서 "권력에 맞서는 인간의 투쟁은 망각을 거스르는 기억의 투쟁"이라고 외친다. 1968년8월21일에 소련은 체코 프라하에 탱크를 앞세우고 진주하여 '프라하의 봄'을 무력으로 진압한다. 반체제 인사로 몰린 쿤데라는 모든 공직에서 해직당하게 되고, 그의 책은 도서관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 날 이후로 그는 숙명을 얻게 되고, 숙명이 원하는 바 대로의 삶을 살게된다. 그리고 프랑스로 망명을 떠나<웃음과 망각의 책>이 출간되던 1979년 체코 국적을 상실한다. 조국 체코로부터 영원히 망각되어진다.

     색슨족 전사 윈스턴은 왕이 꿈꾸는 거대한 제국을 세우기 위해 용을 죽이는데, 유아시절 브리튼족에서 성장한 윈스톤은 색슨족인 액슬이나, 가웨인경에게 그리 잔인하지 못하다. 그래서 이 거대한 제국을 위한 전쟁에서 스스로 역할을 해 내지 못할 것이라는 암시를 주는 반면, 윈스톤이 구출해 준 아이 에드윈은 보다 강력한 전사로 거듭나, 색슨족을 거대한 제국으로 이끄는 전쟁의 영웅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그렇게 전쟁은 점점 더 잔인해 지며, 더 폭력적이며, 그 파괴력을 더 해 간다. 인류 역사는 그렇게 전쟁을 더 강력하게 잔인하게 치른 역사이다. 원폭 투하 71년이다. 원폭2세 환우회의 김형률은 자신의 병에대해, 이 병이 원폭에서 비롯된, 유전적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1)원폭투하는 왜 일어났는지, 2)왜 우리 어머니는 히로시마 근처의 농촌에서 살게 되었는지? 3)왜 한국피해자들은 일본 사람들처럼 치료, 보호, 보상을 받지 못하고 방치된체 지금까지 살아왔는지 알아가기 시작한다. 원폭피해가 단순히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쟁, 민족, 식민지, 가난, 소외, 편견 등의 문제라는 것을 기억해 내며 3년, 30살이 된 이후 33살 까지 딱 3년 동안 망각을 기억으로 되살리는 삶에 자기 삶을 다 바치고 죽음을 마지한다.

     올해 세월호2주기가 다가온다. 세월호 가족들과 여러단체에서 힘겹게 망각에서 기억을 찿아내려 한다. 역시 망각은 세월호참사를 일으킨 국가가 주도한다. 아무런 진실규명도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단원고 교실을 없애고, 진실특위도 없애려 하고, 세월호의 귀증한 증거가 될 닻도 잘라버리고, , , 끊임없이 흔적을 없애려 한다. . . 밀란 쿤데라의 말대로 "권력에 맞서는 인간의 투쟁은 망각을 거스르는 기억의 투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브리튼족과 앵글로 색슨 족과의 망각되어진 기억들과 함께 또 하나 액슬과 비어트리스를 통해 개별적인 삶의 망각도 함께 이야기되어지는 것이 이 소설의 백미이다. 두 사람 사이의 갈등과 아픔도 용이 뿜어내는 안개로 아득히 잊혀진채로 함께 살아가는데, 문득 먼 기억들이 어렴풋이 살아난다. 확실치 않은 부부간의 갈등으로 아내는 다른 사람의 품으로 갈 수 밖에 없었고 그 와중에 아들이 치명적인 마음의 상처를 받고 떠나버렸다. 그리고 아들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전염병이 돌 때 죽게 되는데, 액슬은 그때 왜 아내 비어트리스가 아들의 무덤에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었던지 하는 기억이 되 살아난다. 이제서야 함께 아들에게 찿아가는 중에 그 아들이 머무르다 죽은 전설적인 섬에 도착한다. 그런데 이 섬에는 한 사람만이 탈 수 있는 배가 있어, 부부가 그 섬에 가서 함께 살려면, 지나간 부부의 삶 속에 가장 기억에 남을 사랑의 추억을 같이 기억해 내어야 먼저 섬으로 떠난 사람에 이어서 배를 타고 한 사람도 건널 수가 있다. 많은 부부가 그 섬을 앞에 두고 헤어져 홀로 섬에서 떠돌아 다니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용의 안개가 거치면서 기억들이 살아나는데, 비어트리스가 먼저 배를 타고 아들이 있는 섬으로 떠나려고 하는데, 과연 이 부부는 가장 사랑했던 날의 추억을 똑 같이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서로의 아픔과 상처 만이 남아 있어, 그 아름다운 추억을 끝내 나누지 못할까? 그래서 헤어질까? 이야기는 그렇게 거대담론의 마지막을 개별적인 기억과 망각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어찌보면 부부의 삶 자체가 또 하나의 신화일 것 같다. 얼마나 깊고, 넓고, 높은 스펙트럼이 부부의 삶 속에 담겨져 있나. 생명이 잉태도 되고, 또 죽음을 맞이하는 삶의 여정은 또 하나의 신화이다.

     만일 부부간에 치명적인 갈등의 아픔이 있었는데, 그렇게 이야기처럼 망각되어 평화를 유지하며 살아왔는데, 안개가 걷히며 기억이 되살아난다면? 그래서 유지되던 부부간의 평화가 깨어진다면, 차라리 망각 속에 살아가는 것이 좋지않을까? 그래도 과거의 진실은 드러나야 하는 걸까? 그 아픈 기억을 감당해 낼 수 있을까? 그래서 부부가 깨어지기 보다는 망각 속에서 평안하게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 글쎄다 가족은 이 문제로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민족과 국가간의 망각과 기억과는 또 다른 . . .

    성경은 구약 이래로 끊임없이 기억하는 기억의 종교이다. 출애굽을 기억하고, 종살이를 기억하고, 어떻게 요단강을 건넜는지를 기억한다. 가장 인상적인 기억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나눈 유월절 만찬이다. 역사 이래 망각하지 않기 위해 기억하며, 돌이키는 행사들이 많이 있지만, 빵을 뜯으며 이것은 내 살이라 하고, 포도주 잔을 들며 이것은 내 피라 하며 살과 피를 기억하라고 하는 충격적인 경우는 없다. 무슨 좀비나, 드라큐라 영화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나 주님은 이 세상에 남아있는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죽음을 나누어야 한다는 마지막 유언을 남겨놓았다. 이 죽음의 만찬은 바로 인류가 끊임없이 반복하여 저지르며, 점점 더 상상을 넘어서는 폭력으로 서로를 해 하는 싸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가장 실제적이고, 구체적이고 유일한 기념이요, 상징이다. 이 죽음을 죽지 않으면 모두 거짓이다. 이 죽음을 따르는 흉내라도 내자. 그리고 죽음을 죽지 못하면 못한다고 솔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바로 종교로 넘어간다. 그래야 그나마 이 만찬의 기념, 죽음을 나누는 기억을 통해 거짓 평화의 망각에서 참 평화의 기억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을 죽어야 죽음에서 자유할 수 있다. 죽음을 살려놓으면 우리는 평생, 아니 나 개인 뿐 아니라, 인류가 죽음에 붙들릴 수 밖에 없고, 끝내 죽음의 냄새들이 진동하는 죽음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바울은 환락의 도시 고린도에 살고 있는 기독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라고 일갈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죽음을 죽었는지를 드러낸다. 감추어 있는 죽음의 일을 드러내 정체를 밝힌다. 죽음의 독침이 죄라한다. 인류가 죽음의 폭력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것은 그 죽음이 죄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그 죽음을 제공하는 죄의 하수인이 율법이다. 논리요, 합리성이요, 이성이요, 윤리이며, 선악의 판단이다. 가치 중립적이다. 이세상 누구도 쉽게 죽음의 하수인 노릇을 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인간의 연약함이다.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연약함이 결코 결핍이거나, 불완전한 것이 아니다. 충만하며, 완전하다.연약하며, 유한한 것은 아름다우며, 선하다.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이다. 여기에는 연대와 사랑과 공감과 조화가 있다. 무한하면 존재 자체의 자기실현의 충만의 선함은 없다. 유한함과 연약함에서 오는 그 아름다움을 죽음이 죽지않으려고 자꾸 건드려 무한하며, 강력해 지라 부축인다. 앵글로 색슨족의 전사 윈스턴이 용을 죽이러 나서는 것은 왕이 보다 강력한 제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용을 죽여만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잊혀졌던 전쟁의 학살을 다시 기억하며, 또 상대 국가가 용을 군사력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고 먼저 용을 없애는데, 그러면서 잊혀졌던 거인이 다시 깨어난다. 피조의 세계의 아름다움 중에 하나는 죽음이다. 하나님은 이 유한함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드러내지 못하신다. 오직 피조물들을 통해 드러내신다. 무한하면 다시 볼 수 없는 아련한 아름다움도, 색도, 맛도, 향도 없다. 조화도 없다. 모든 우주의 피조물들의 유한함이 서로 조화하여 형형색색의 생명의 잔치를 벌이는 아름다움, 선함(좋다)말이다. 유한과 연약의 생명의 잔치를 온누리에 펼치며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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