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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집 안에 있었다"(대성당 후기)

하늘기차 | 2015.09.05 12:29 | 조회 1756


        통증이 늦게 올 때가 있다. 상처가 생겼는데, 한 참 후에 아프다.  단편집‘대성당’은

      나에게 그렇게 다가온다. 어떻게 아픈가 하면 산자락이 도로를 내기위해 절개되면

      토사가 흘러내리지 않게 마대나 노끈으로 된 그물망 같은 것으로 덮어놓기도 하는데,

         마치 상처에 붕대를 감아놓은 것 같이, 아픈 느낌을 단편들을 통해 느꼈다.


   ‘글쎄다’가 고마운 것은 씨너지 효과다. 미쳐 책을 다 읽지 못하여도, 그리고 뭔 이야기를 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시간에 맞추어 나갈 때에도, 함께하는 동료들과 몇 분의 전문가들은 나의 상상력과 이해력을 업그레이드 시켜준다. 내 이야기도 쪼깨 그 시너지에 보탬을 줄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고 ‘글쎄다’에 갈 때와 ‘글쎄다’를 마치고, 어쨌든 복기를 할 때 보면 예기치 못한 해석과 ‘이거다’라는 느낌이 온다. 상상력을 잃어가는 이 때에 ‘글쎄다’는 감추어 있는 나를 풍요롭게 하는 자리이다.

  ‘레이먼드 카버’ 아마 ‘글쎄다’가 아니었다면 평생 내 머리 속에, 내 귓가에 찿아오지 않았을 손님인데, 전세계의 독자들의 마음을 흔드는 작가를 덕분에 만나게 되었으니, 돈 들이지 않고(밤토실 검색해서 책을 대출받고, 오후에 친구 만나, 천연효소 빵이라고 무화과, 건포도 빵을 간식거리로 준비하여 ‘글쎄다’에 참여하였으니, 더할나위 없다) 마음 하나 가지고 시공을 초월하여 ‘카버’와 첫 만남을 가졌다.

     ‘리얼리티’작가라 한다. ‘후기 리얼리티’이다. 소위 ‘리얼리즘’과는 다르다. 통칭 ‘사회적리얼리즘’ 말이다. 이념의 아픔, 질곡 속에서 삶을 지탱해가는, 또는 그러한 사회적 모순 구조 속에서 척박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아니 민중이라고 해야 ㅎ, ㅎ)의 참담한 삶, 사회를 변혁하는 등의 리얼한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 이 번에 새로 함께한 전홍표님께서는 참여 동기가 ‘대성당’을 번역한 사람이 ‘김연수’작가라는 것을 보고(교회 홈피를 섬세하게 보신다는 증거) 기대감을 갖고 책도 읽고, 참여하였다. 전홍표님의 뇌리에는 김연수 작가의 ‘밤은 노래한다’의 감흥을 가지고 ‘글쎄다’에 참여한 것이다. 이 작품은 성공회대학의 한홍구 교수의 논문주제인 ‘민생단 사건’을 시적 상상력과 시어로 만들어졌는데, 소위 ‘리얼리즘’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게 홍준표님은 기대감을 갖고 책을 읽고, 모임에 참여 동기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박경 : 우리나라의 문학계에서 최근의 가장 인기가 높은 트로이카로 김연수, 김연하, 박민규 인데, 미국에서는 폴 오스터(1947년생~, 사실주의적인 경향과 신비주의적인 전통이 혼합되고, 동시에 멜로드라마적 요소와 명상적 요소가 한데 뒤섞여 있으며, 문학 장르의 모든 특징적 요소들이 혼성된 ‘아름답게 디자인된 예술품'이라는 극찬을 받음), 줄리안 빈스(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와 함께 레이먼드 카버가 트로이카를 형성하는 체홉과 헤밍웨이를 잇는 인기 작가이다. 학교에서 통상 문학을 소개할 때 고전을 소개하는데, 레이먼 카버의 소설을 추천할 정도로 동시대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용숙 : 왜, ‘대성당’일까? 등장인물 인 ‘맹인’은 보이지 않지만 들을 수 있는, , , 그러니까 우리는 보통 말 하기 좋아하는데, 들어주는 것, , , 화자인 ‘나’와 ‘맹인’과의 소통하는 과정이 찬찬히 잘 그려진다. 처음으는 ‘프르스트’같은 ‘dark', 같은 느낌으로 읽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 .

    : 보통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중, 하층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보는 사람들의 우주와 보이지 않는 사람의 우주는 누가 더 클까? 보고 듣는 것 같은 오감과 보지 못함의 간극과 그 내적 차이의 깊이는 어느 정도일까? 주인공 흑인은 일반 정상인과 어떤 일상의 차이 없이, 불편함 없이 살아가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집으로 초대한 여자가 ‘편안하게 계세요’ 하니까 맹인 로버트는 ‘지금도 편안해’라고 합니다. 서로 거실에서 술과 담배와 마리화나로 이어지며 시간을 보내지만 접촉점은 없다. 근데, 대화가 끝나갈 무렵 T.V에서 성당르뽀 프로그램을 통해 유럽의 성당들이 리포터와 함께 스쳐 지나간다. 흥미가 없어 다른 체널로 돌리지만, 역시 재미가 없어 성당 체널로 돌렸다. 그러자 볼 수 없는 맹인 로버트가 ‘괜찮아’, ‘난 아주 좋아’라고 하면서 네 가 뭘 보든지 상관 없다고 하면서 자기는 항상 뭔가를 배운다고 한다. 오늘 저녁에도 뭔가 배운다면 나쁠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겐 귀 있으니까”라고 한다.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말하는 느낌이 든다(이건 내 강박 ㅎ, ㅎ)그러던 중 성당에대해 설명을 해 달라고 하는데, 기껏 건물의 모습 만을 이야기 한다. 그러자 로버트가 성당 그림을 그리자고 제안을 한다. ‘내’가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릴 때 맹인 로버트가 내 손을 꼭 웅켜잡고 함께 그려나가기 시작한다. 네모, 지붕, 첨탑, 아치 모양의 창문, 높은 고딕 성당을 지지하는 역할의 측면 벽날개, ‘나’는 미친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로버트는 ‘자네 인생에 이런 일을 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겠지’ 하면서, ‘그러기에 삶은 신비롭다’고 한다. 그렇게 열심히 둘이 하나가 되어 끝까지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러던 중 로버트가 ‘나’에게 제안을 한다. 눈을 감고 그려보라 한다. 눈을 감는다. 그리고 그리기 시작한다.

“내 손이 그림 위를 움직이는 동안 그의 손가락이 내 손가락에 딱

붙어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 내 인생에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

다“고 한다. 다 그리고 나서 로버트가 눈 감고 그린 그림을 보라고 하는데,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조금만 더 계속 그렇게 있어야겠다고 나는 생각

했다”

“어때?”그가 말했다. “보고 있나?”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우리집 안에 있었다.

그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어디 안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나는 말했다.

                         ‘우리 집 안’을 눈을 감고 본 것이다.

     복남 : 짧은 이야기들이지만 전체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이 이야기들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런데 어느 부부의 아이가 생일 날 어느 빵 가게에서 생일 케익을 맞추었는데, 그만 교통 사고로 생명을 잃고, 그리고 정신없이 아이를 위해 병원과 집으로 왔다 갔다 하는 동안에 빵집에서 전화가 오는데, 서로 이해가 엊갈려 소통이 안되고 욕이 나오고 하는 와 중에 부모들이 빵 가게에 찿아가, 아이의 죽음을 말하고, 빵 집 주인의 사과를 받는 중에 빵집 주인이 막 구워낸 따뜻한 검은 빵을 내어주자, 시장기가 돌아 그 빵을 정신 없이 먹는다. 바로 그 ‘따뜻한 빵’이 나에게 와 닿았다.

     경장 : 서구의 문학전통을 잇는 미국의 대표적 작가로 체홉, 그리고 헤밍웨이가 있는데, 특히 헤밍웨이의 문장은 절제, 간결하여 감정을 철저하게 억제한다. 스토이시즘의 영웅적인 절제의 미를 보여준다. 그래서 소설 속의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내용들은 빙산의 일각이고, 그 아래 수면 밑에 그 대화 속에 드러나지 않은 메시지가 가득 담겨있다. 초기 리얼리즘에서는 작가가 신처럼 이야기를 도덕적으로 선과 악으로 나누지만, 지금은 이야기의 과정 속에서 작가는 사라지고, 어느 한 등장인물 속으로 사라진다. 특히 체홉의 소설은 ‘impressionism'이라 해서 그 사건의 인상을 마치 스케치 하듯 그 현장을 보여주는데, 그 나머지 몫은 독자이며, 그것이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개인은 개인의 옷차림으로 말투와, 식사와 그 일상들 속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나’라는 화자가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헤밍웨이는 문체가 이 보다 더 건조 단순하며, 거의 수식어가 없이 짧막 짧막하다. 그러니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얼마나 말도 안되는 소설이요, 서구 소설의 전통에서 보면 금기시 한 것들을 보여준 것이다.

     00 : PLOT이 매우 불친절하다. 기승전결이 없다. 첫 작품 <깃털들>을 보면 그냥 어느 부부가 직장 동료의 부부를 초청하여서 ‘나’인 잭과 아내 플랜이 초청자인 버드와 아내 ‘올라’의 집에 도착하여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두 부부의 만남 속에 몇 가지 장치들이 있다. 제일 먼저 초청자 ‘버드’의 집은 시골이다. 그것도 으슥한 사람들이 살지 않는 곳이다. 이 자체를 플랜은 거북스러워 한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공작새 ‘조이’가 끊임없이 잭의 부부에게 다가서고, 집으로 들어오려고 한다. 버드는 그 공작새가 거실로 들어오지 못하게 겁을 주어 막는다. 여기서도 T.V는 켜져있는데, 자동차 경주가 진행되지만 그렇게 흥미롭게 보지는 않는다. 그리고 T.V곁에 비뚤비뚤 고르지 못한 치열의 모양을 본뜬 석고가 놓여있다. 그 흉측한 모양의 치형에는 노란 잇몸처럼 보이는 것 안에 이만 박혀있다. 이 치열은 지금 살고 있는 남편과 만나며 ‘이빨 교정하자’고 해서 교정하며 뜬 본이다. 전 남편은 자기 외모에는 신경도 안 쓰고 그저 줄창 술만 먹어댔다는 것이다. 지옥 같았다고 한다. 올라는 자기 이빨교정 치열을 들어서 벌리며 우리에게 보여주는데, 도무지 부끄러운 기색이 없다. 버드는 그 치형을 잡아 아내 ‘올라’뺨에 들이데면서 ‘비포 앤 애프터’라고 한다. 그러면서 버드와 올라는 윙크를 한다(따뜻한 부부애가 느껴지는 장면) 식사를 하려고 하는데, 마침 8개월 아기가 울기 시작한다. 프랜이 같이 가자고 하지만 낯을 가린다고 하면서 거절을 한다.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플랜은 버드와 올라의 집에 올 때부터 탐탁해 하지 않았고, 잭과 버드는 통상 도시인의 삶을 살아가는, 여행 좋아하고, 그러기 위해서 멋진 자동차가 필요하고, 해서 아이를 가질 생각이 전혀 없는 부부이다. 프랜에게 변화의 징후가 보인다. 올라가 아이를 보러 올라가는 동안 올라의 부엌을 찬찬히 살펴본다. 근데 아기가 자지 않고 간간히 칭얼대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공작새 조이가 지붕에서 널판을 또각또각 쪼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는 그 특유의 ‘메이오!’라고 울어댄다. 들어오고 싶어서 라고 올라가 말한다. 그러자 버드가 ‘깃털들’의 주제를 풀어낼 실마리 같은 이야기를 한다. <들어오면 안되, 손님들은 새가 집에 들어오는 것을 싫어해, 더러운 새에다가, 석고 치형이라니> 그러자 올라가 버드에게 ‘더럽다니요, 당신이 언제부터 조이더러 더럽다고 말하기 시작했냐’ 라고 한 마디 한다. 그러자 버드는 ‘조이가 깔개에다 똥을 싸갈긴 뒤부터’ 라고 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아기가 깨어 큰소리로 울기 시작한다. 그러자 공작도 같이 소리내어 운다. 올라는 이층에 올라가 아기를 데리고 내려와 소파에 앉는다. 잭의 이야기이다. “장담하건대, 그렇게 못 생긴 아기는 여태 본 적이 없었다” 얼마나 못 생겼는지 덩치는 산 만한,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아기가 칭얼대며 운다. 아! 늘 아기는 공작새와 놀다가 잠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낯선 손님들에 의해서 그 일상이 깨진 것이다. 그래서 <못생긴 아기와 더러운 공작새가 서로 만나려고 그렇게 울며, 소란을 피운 것이다> 의외로 변화의 조짐을 보이던 프랜이 그 더러운 공작새 조이를 거실로 들어오게 하라고 남편 잭을 본다. 그 못난 아기 헤럴드를 안고 얼러댄다. 더러운 공작도 아기를 보러 프랜에게 다가온다. 거실이 이제는 뒤죽박죽이 된다. 질서와 정돈은 사라진다. 못난것, 더러운 것, 그리고 끔찍한 치열. . . 집으로 돌아간 프랜이 그 스웨덴식의 금발의 머리를 자른다. 침실에서 버드에게

                                “여보, 당신 알로 내 몸을 꽉꽉 채워줘!”

     <‘체프의 집’> 웨스는 알콜중독자인데, 체프라는 사람의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자, 이혼한 아내 에드나에게 재결합하여 살 자신이 있다고 전화를 하여 드디어 다시 결합한다. 근데, 아 글쎄, 주인인 체프가 자기 딸이 남편을 잃어 자기 집에 와서 살아야한다고 하며 집을 내어달라고 한다. 좋은 집을 얻어 전 아내와 새 출발을 한지 얼마 안되어,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집 근처에서 잡은 물고기 몇 마리를

“. . .오늘 밤에 다 먹어치워야겠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게 마지막

이 될 것 같다”며 끝을 맺는다. 그 다음은 독자들에게 넘기고 있다.

이 단편에대해 이상권님은 90년대에는 이러한 글을 사회구조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보면, 문체가 갑갑하게 여겨진다고 하자, 용숙님은 청년 때에 ‘난쏘공’을 읽으며 그 상황을 리얼하게 다 보여주어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고, 그래서 외면하고 도망가고 싶었다고 하자, 상권님은 그 당시는 참 치열했던 시대였는데, 그래서 소위 (사회적)리얼리즘에 필이 꽂히어, 다른 것을 보지 못했는데, 김연수(대성당을 번역한 작가)는 그 때 리얼리즘이 아닌 다른 세계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대성당 과 같은 작품세계 말이다. 그러자 오늘 처음 참석한 전홍표님께서 참석의 변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신다.

     홍표 : 이 번 글쎄다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번역자가 김연수 때문이다. 김연수는 ‘밤은 노래한다’는 소설을 썼는데, 1930년대 초, 항일무장투쟁이 치열하던 때, 간도에서 일어난 민생단 사건을 한홍구 성공회대 역사학자의 논문을 바탕으로 사실적 방법으로 그 시대 아픔을 사실적 기술이 아니라, 시적으로 노래로 기술하였다. 그래서 그러한 역사의식을 가진 작가의 번역서를 보고 싶어 참여하였는데, ‘대성당’은 전혀 번지수가 틀립니다.

     00 : 작가 레이먼드 카버는 인간의 한계 속에서의 죄, 무기력함으로 부터의 구원, 그리고 그러한 일상의 삶 속에서 어떻게 소통하며 살아가는지를 잔잔하게 표현한다. 그런데 작품에 나오는 사람들의 삶을 보면 본인 역시도 그러했지만 알콜중독, 집 없는 사람, 굴뚝 청소부, 보험사 직원, 집 없는 삶들, 그리고 등장인물의 대부분이 이혼한 사람들이고, 가정이 대부분 붕괴되어진 상황이지만, 이것을 구조적으로 그러니까 사회적 리얼리즘으로 보지 않고, 삶의 리얼리티를 그대로 과감없이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상권 : 우리 문학의 위기는 이 작품을 보며 느낄 수 있는데, 평론가가 이 작품을 분석하면 답을 내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나: 박경장님 답을 한 번 내 보시는 것이 어떨런지요?) 90년대 한국 작가들을 보면 소설 속에 정답을 쓰려고 하는데, 그러니까 진정한 리얼리즘 작가가 없다. 이러한 경계의 선상에 있을 때에 모든 것에대해 다 표현하는 그러한 리얼리즘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대부분 주류가 되었고, 김연수 같은 작가는 마이너리티가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일상의 삶의 리얼리티를 그려내지도 못하고, 구조적 삶의 문제를 진정한 리얼리즘으로 승화시키지도 못한 것 같다. 외국문학을 가지고는 답이 없다. 우리는 우리식의 리얼리즘을 찿아내야 하는데, 그저 신경숙 같은 글이 잘 팔리는 것이다. 전달하고자하는 의도가 확연히 드러나는 글 말이다. 어떤 공백, 상징, 은유, , , 등의 한템포 멈추고 돌아보는 여유가 글 속에 없다. T.V의 드라마도 주제가 분명하고, 선명하다.

용숙 : 심볼헌팅에 익숙해 있다.

   <칸막이 객실> : 아이의 아빠가 8년 동안 서로 헤어져 살던 아이의 편지를 받고, 아들을 만나러 기차 여행을 떠난다. 헤어질 때, 아이의 멱살을 움켜잡고 숨통을 끊어주겠다는 욕질과 주먹질을 해 댔던 아이이다. 이태리에서 프랑스로 향하는 기차 여행 중에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난다. 화장실에 들른 그 잠깐 사이에 객실 외투 안에 두었던 시계가 없어진 것이다. 혹시 하면서 열차 칸을 휘둘러 본다. 아무런 흔적이 없다. 입에서 욕이 나온다. 그런데 문득 내가 아이를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그 생각이 떠오른 것에 충격을 받고, 이렇게 독백한다. “그 비열한 생각에 잠시 움찔했다.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살아오면서 수 많은 바보짓을 했지만, 그 여행은 그중에서도 가장 멍청한 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에게는 정말 오래전에 이미 자신의 애정을 거둬들이게 행동했던 그 아이를 만나고 싶은 욕망이 없다는 점이었다” 처음 아이를 만나러 갈 때의 설레임이 한 갓 시계 하나 잊어버린 것으로 인해 없던 일이 되어 버린다. 이것이 인간의 연약한 마음이다. 후에 어느 역에서 잠간 앞 쪽의 다른 칸을 들러보는 사이에 쿵 하는 흔들림이 있었고, 그리고 기차가 출발하면서 자기 자리로 돌아 갔는데, 자기 칸이 아니다. 알고 보니 이 전 역에서 열차 칸이 바뀐 것이다. 가지고 온 가방, 옷 등이 다 사라져 버렸다. 이 사람은 그 객차에 들어가 자괴감 속에 잠에 빠져드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그야말로 ‘칸막이 객실’에 스스로 고립되어 있는 모습인데, 배 아래에 깊이 잠든 요나, 아니 내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아주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들이어서 어느 주제 하나를 잡을 수가 없다. 무언가 주제를 찿으려고 하면 그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을 놓칩니다. 이전에 읽은 ‘잉고 슐체’의 ‘심플 라이프’라는 장편 소설도 역시 심플하다. 일상 자체가 테마이고, 주제이다. 통일 이후 달라진 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심플하게 풀어내는데, 그제목 그대로 ‘심플 라이프’이다. 이러한 소설의 동향 속에서 느끼고 공감했던 것은 우리의 삶이 그렇게 주제가 확연히 드러나는 삶이 아니라는 것이다. 옷차림, 먹는 음식, 타고 다니는 차, 직장, 자녀들, 결혼 등등, 그것이 인생의 전부이다. 그 소소한 이야기들 속에 삶의 진정성, 긴장감, 갈등, 행복과 기쁨, 애뜻함 등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 

   <보 존> 남편 샌디는 신축 건물에 지붕 얹는 일을 하는 노동자인데, 석달 전에 회사에서 잘렷다. 실업수당 받는 이야기, 발렌타인데이에 초코렛을 안주 삼아 부부가 위스키를 먹고 . . .그 후 남편은 늘 소파에서 먹고 자며 자기가 빌려준 책을 읽기도 하며 소일한다. 배달된 신문을 1면부터 마지막 면 까지. 아내는 그럼 남편을 바라보며 작장에 나선다. 무언가 남편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끼지만 그래도 아내 샌디는 남편을 사랑한다. 직장 동료에게 남편같은 삼촌이 있었는데, 20여년을 소파에서 생활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겁을 한다. 근데 하루는 샌디가 직장에서 돌아와 냉장고 문을 여니까, 냉장고에서 따뜻한 공기가 밀려온다. 냉장고 안에서 물이 줄줄 흐른다. 냉장고 안의 온갖 식자재들이 녹아버리고,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알고보니 프레온 가스가 새 나간 것이다. 냉장고를 새로 사야겠다고 하면서 남편과 중고장터에대한 이야기를 한다. 신문을 한참 살피던 아내가 ‘창고경매’라는 광고를 보고 그녀가 말한다.

“가보자. 어때? 밖에 한번 나가보는 게 당신한테도 좋을 거야. 가서

살 만한 냉장고가 있는지 없는지 살펴볼 수도 있잖아. 일석이조지”

라고 한다. 남편이 ‘평생 경매에는 한 번도 안 가봤어, 이제 와서 그런 곳에 가고 싶지 않아’한다.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재미있잖아. 요 근래 나도 안 가 봤지만 어렸을 때는 아빠랑 자주 갔었어. ‘아빠’하고 남편이 말한다. ‘응 우리 아빠’ 아내 샌디는 남편이 ‘아무 말이라도 해주길 바라며 그녀가 남편을 바라봤다. 한마디라도.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렇게 신경이를 벌이다가, 나는 ‘니가 가든 말든 난 갈거야’하자 언제 안간다고 했느냐 하면서 자기도 간다고 한다. 그리고 남편은 다시 소파에 누워 잠이 든다. 아내 샌디는 냉장고에서 녹아내리는 돼지고기를 후라이팬에 볶는다. 그러면서 아빠와 경매장에 갔던 일들을 회상한다. 그러다가 아빠와 엄마가 이혼하고, 그 후 아빠에게서 온 마지막 편지에 경매에서 멋 진 차를 200달라를 주고 샀다고 한다. 그리고 석 달 후에 아빠가 산 바로 그 차의 바닥에서 일산화 탄소가 새어나와 운전석에서 의식을 잃고 며칠이 지난 뒤에 차 안에서 발견이 되었다. 프라이팬에서 고기 볶는 연기가 올라와서 환풍기를 돌린다. 오늘 경매에 가려고 한다. 마음이 설렌다. 엄마, 아빠가 그립다. 지금의 남편과는 늘 티격태격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먼저 썩기 전에 돼지고기를 볶아야한다. 소파에 누워있는 남편에게 ‘밥 다 됐어’한다. ‘알았어’. ‘앉아’, ‘이걸 먹어야해’ 남편은 접시를 받는데, 그대로 서 있기만 한다. 그녀는 자기 접시를 가지고 오려고 몸을 돌리는데, 식탁에 물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된다. 물소리도 들린다. 식탁에서 바닥으로 물방울이 떨어지고, 남편의 맨발에 물이 떨어지는 것을 본다.

“이런 이상한 광경을 보는 일은 남은 평생 한 번도 없을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걸 어떻게 해야 할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립스틱을 살짝 바르고 외투를 챙긴 뒤, 경매에 가는 게 낫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남편의 발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식탁 위에 자기 몫의 접시를 놓은 뒤, 그 맨발이 부엌을 떠나 거실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홍택 : 후기를 쓰다 보니 이런 기가 막히는 구절을 찿아낸다. 남편의 발에 떨어진 물은 돼지 고기에서 녹아내린 물인데, 작가처럼 나도 더 이상 이야기. . .

            ‘. . .평생 한 번도 볼 수 없는 광경을 아내 린다는 보았다.’가  모든 것을 다 담고 있다.

     00 : 이렇게 작가는 미국사회에대한 저항의 메시지를 중하류 시민들의 일상의 삶 속에 녹아내린다. 정말 전율이 느껴진다. 이전에 느끼지 못한 전율이다. 오늘 이 시대는 리얼리즘의 시대일 수 밖에 없다. 인문학이 사라진! 아이들이 노동에 붙들린 세상. 성인이 되어도 성인이 될 수 없는 세상이다.

 

                           홍택 : 글쎄다에 다시 감사한다. 이런 세계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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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거리에 핀 시 한송이 글 한 포기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635 2020.11.2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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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순교자(김은국, 문학동네) 글세다, 2019년 11월 11일 사진 첨부파일 곽문환 433 2019.12.23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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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文學은 1대1로 대결하는 예술… 떼거리로 하는 게 아니다(마루야마 겐지)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989 2017.08.19 13:30
115 택시운전사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116 2017.08.18 13:19
114 부끄러움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811 2017.02.11 14:55
113 대형서점엔 없고 독립서점에 있는 것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685 2016.09.04 07:08
112 여름 제사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832 2016.08.28 1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