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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를 읽고(66번째 글쎄다... 그냥 꿈이야)

하늘기차 | 2012.04.10 16:45 | 조회 5290


꿈과 이미지, 그리고 일상에대한 이야기이다. 보고, 듣고, 만나고, 이야기하고, 먹고, 마시는 우리들에게 꿈은 낯이 설다. 그런데 그렇게 일상적인 평범한 영혜가 꿈을 꾸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삶이 달라진 것이다. 우선 그 남편이 그 달라진 아내 영혜를 이해할 수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남편은 지독히도 일상적인 것을 좋아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것을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고 편하기 때문이다. 소설은 그래서 영혜와 결혼했다고 까지 한다. 그런데 꿈은 정반대이다. 영혜는 가만히 있는데 남편이 견디지 못해한다. 영해가 아니라 꿈이다. 꿈이 모든 것을 흔들어 놓았다.

주인공은 꿈을 꾸면서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 바로 고기를 먹지 않기 시작한다. 남편회사 사장님 내외를 포함한 핵심직원들 부부동반 회식 자리에 함께하는데, 오직 영혜는 함께할 수가 없다. 고기 때문이다-내 생각에 고기를 먹으려면 서양식으로 보면 포크와 나이프, 그러니까 칼과 창, 그래서 폭력이요, 전쟁이다. 고기는 폭력이다-남편은 이 일로 큰 낭패를 당한다.

영혜가 꾸는 꿈은 시뻘건 고깃덩어리, 뚝뚝 떨어지는 피, 출구가 보이지 않는 건물 안, 가족들과 연관된 살인, 죽음, 맹수, 자신을 물은 개를 오토바이에 메달고 동네를 돌아 죽게하는 잔인함, 폭력. . .

그런데 언니의 집들이에서 일이 터지고 만다. 가족들이 고기를 먹지 않아 쇄약해진 영혜를 나므라면서, 결국 아버지가 강제로 고기를 영혜의 입 안에 쑤셔 넣는 일이 발생하고-그러니까 폭력-극구 거부하는 와중에 식칼을 든 영혜가 스스로의 팔뚝을 그어 자해하는 소동이 일어나고 형부의 등에 엎혀 병원으로 옮기어져 치료를 받고,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영혜는 독백한다.
“손목은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아픈 건 가슴이야. 뭔가가 명치에 걸려 있어. 그게 뭔지 몰라. 언제나 그게 거기
멈춰 있어. . . 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이 뭉쳐져, 거기 박혀있어. 고기 때문이야. 너무 많은 고기를 먹었어.
그 목숨들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걸려 있는 거야. . . 한번만, 단 한번만 크게 소리치고 싶어. . . 그러면 이 덩어리
가 몸 밖으로 뛰쳐나갈까. 그럴 수 있을까.
<아무도 날 도울 수 없어. 아무도 날 살릴 수 없어.
아무도 날 숨쉬게 할 수 없어>

P63에서 환자복 상의를 벗어 무릎위에 올려놓은채 분수대 옆 벤츠에 앉아있는 아내에게 다가가며 남편은
‘나는 마치 타인인듯, 구경꾼들 중의 한 사람인 듯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고 독백을 한다. 그리고 ‘나는 저 여자를 모른다’고 하는데, 아내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꿈을 모르는 것이다. 그것은 남편 뿐만아니라 영혜도 마찬가지이다. 영혜도 그 꿈을 모르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 꿈을, , , 글쎄. . . 몰라야 하는 건가?

그런데 2부의 ‘몽고반점’ P142에서
“자기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고기 때문이줄 알았는데, 그래서 고기란 안 먹으면 그 얼굴들이 나타나지 않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 .이제 알았어요. 그게 내 뱃속 얼굴이라는 걸. 뱃속에서부터 올라온 얼굴이라
는 걸”이라고 한다. 그의 꿈은, 그래서 고기를 먹지 않으려는 것은 단순히 고기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근원에대한 문제이다. 우리 모두는 그 근원에 다가가기 싫어한다. 두렵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이해 할 수도 없고, 그러나 불쑥, 불쑥, 뱃 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내, 아니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 . .저~끝의 뱃속에서 올라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꿈이 형부의 이미지와 이어진다. 형부는 이미지를 쫓으며 살아가는 전위예술가이다. 소위 비디오 아티스트이다. 여기서 형부는 눈에 보이는 현상들에서부터 다가오는 추상을 형상화하는 작업을 한다. 83P에서 그는 택시에 오르면서 자신이 작업했던 숱한 광고와 드라마, 뉴스, 정치인의 얼굴, 무너지는 다리와 노숙자와 난치병에 걸린 아이들의 눈물들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밤새도록 씨름했던 작업의 순간들이 일종의 폭력으로 느껴졌고, 그가 작업했던 이미지들이 견딜 수 없다고 한다. 그러한 욕망(내 생각,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마모되고 찢긴 인간의 일상을 3D그래픽과 사실적 다큐 화면으로 구성)의 이미지들을 다루면서, 아마도 그러한 이미지들을 통해 무엇인가 예술적인 것을 도출해 내 보이려고 했지만 그것이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소위 매너리즘에 빠져 꼼짝없이 갖혀있는 상황이었다.
“. . .그것은 그가 그것들을 다룰 수 있었을 때, 그는 충분히 그것들을 미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것들로부터
위협당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 .”

그런데 그 순간
“처제의 피비린내가 코를 찌르는, 푹푹 찌는 여름 오후의 택시 안에
서 그 모든 것들이 그를 위협했고, 구역질나게 했고, 숨을 쉴 수
없게 했다”고 한다. 그 느낌, 피비린내 나는 느낌이 아내의 ‘몽고반점’이야기에 퍼떡 살아난 것이다. 10여년 동안 해 온 작업이 그에게서 조용히 등을 돌릴 때, 처제의 그 꿈에서부터 흐른 피가 형부의 이미지와 만난 것이다.

꽃과 나무, 나비의 이미지를 형상화하며 비디오를 찍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외설이며, 인륜의 파괴이다. 본의 아니게 현장이 목격되고, , , 아파트 발코니로 다가가는 영혜와 눈이 마주치는데
“어린아이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 모든 것이 담긴, 그러나 동시에 모든 것이 비워진 눈이었다. 아니,
어쩌면 어린아이도 되기 이전의, 아무것도 눈동자에 담아본 적 없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고 한다. 또한 현장이 외부에 노출되며 앰블런스와 아이들 소리, 비명. . .속에서 그는
영혜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발코니를 넘어 날아올라, 삼층 아래로 . . . 그러나 날지 못한다. 바로 그렇다. 우리는 날 수 없는 것이다. 글쎄. . . 날 수 없는 것인가?

3부인 나무 불꽃은 화자가 언니 인혜이다. 그녀는 꿈과 상관없이 지금 껏 살아왔다. 꿈 이 쪽의 삶을 열심히 성실하게 살았다. 그런데 역시 그 꿈이 인혜를 깨운다. 영혜는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꿈 속에 머물러 있다. 영혜는 스스로 나무가 된 것이다. 이제 먹을 필요없이 물을 맞아야한다고
“꿈에 말이야 내가 물구나무서 있었는데. . .내 몸에서 잎사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 . .
땅속으로 파고들었어. . . 사타구니에서 꽃이 피어나려고 해. . .나는 이제 동물이 아니야. . . 이제 곧
말도 생각도 모두 사라질 거야” 라고 독백을 읊조리는 영혜 앞에서 인혜는 이렇게 하루 하루 바둥대며 살아가는 자기를 뒤로하고 상의도 없이 이 곳의 경계를 넘어 저쪽 꿈 속으로 들어가버린 동생을 도저희 용서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일상 속에 머물러 있다. 동생 영혜를 큰 병원에 입원시키기 위해 앰블란스에 몸을 실고 숲 속의 정신병원에서 빠져나오는 마지막 장면에서 인혜는 남편의 영상을 생각해 본다.
“충격적 영상. 꽃과 잎사귀, 푸른 줄기 들로 뒤덮인 그들의 몸은 마치 더 이상 사람이 아닌 듯 낯설었다.
그들의 몸짓은 흡사 사람에서 벗어나오려는 몸부림처럼 보였다. 그는 무슨 마음으로 그런 테이프를 만
들고 싶어했을까. 그 기묘하고 황량한 영상에 자신의 전부를 걸고, 전부를 잃었을까" 자신이 넘어 갈 수 없는 그 넘어로 넘어간 두 사람. . .그러나 끝내 날지 못한 남편. . .

앰블란스 안에서 딸 지우의 꿈 이야기를 생각해 낸다. 슬픈 꿈을 꾸었다며 눈시울을 붉힌다. 새가 날아가고 있는데 엄마새라고 한다. 새 몸에서 손이 두 개가 나왔다고 한다. ‘그게 왜 슬퍼’하니까 지우가 엄마의 품에 안긴다. ‘엄마새였구나’한다.
“엄마는 여기 있잖아 하얀 새로 변신하지 않았지”한다. 그러면서
“. . . 거봐, 그냥 꿈인걸”한다. 그렇다. 인혜는 딸 지우의 꿈 속에서도 엄마이다. 일상인 것이다. 그 경계 안의 사람이다. 난 그래서 난 인혜가 좋다.

지난 번 환영에서도 그런 글이 나온다. 경계. 도와 시의 경계를 넘나든다는, 그런데 채식주의자에서도 거듭 경계에대한 이야기이다. 아! 문학이 소재로 다루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느낀다. 지난번 핑퐁이었던 것 같은데, 못에대한 이야기에서 소외당한 것들에대한 관심, 관찰로 감동을 받았는데, 경계에대한 것에서도 나름 느낌이 다가온다. 문학은 그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그 끝 자락의 이야기들인 것 같다. 너무 섬세해서, 아니면 너무 커서, 미쳐 우리의 감각에 걸리지 않는 것들을 마치 보물찿기 하듯이 찿아내는 것인 것 같다.

그런데 채식주의자에서 다루는 그 경계의 끝 자락에 걸쳐있는 모습을 꿈을 소재로 풀어나가는 것을 보면서, 목사의 직업의식이 발동한다. ㅎ, ㅎ, ㅎ 꿈 말이다. 성경에 꿈쟁이들이 있다. 야곱의 아들 요셉.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 . . 우리 평범한 사람들은 꿈을 간직한 사람들에게 접근하기가 쉽지않다. 채식주의자의 영혜도 그 꿈 이후 가까이하는 사람들이 힘들어하며 함께하지 못한다. 꿈의 다른 쪽에 계시가 있다. 채식주의자에서는 꿈과 이미지가 만나는데, 성경에서는 꿈과 묵시가 만난다. 이거 참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할지 난감!@#$%^&

그러니까 근원적인, 아니 근원 끝에 있는 이야기이다. 최근 ‘바울의 정치신학’이란 책을 구했는데, 그 표지글에 이렇게 쓰여있다.
“‘궁극적인 전제’에대한 것이었다. 인간에게 궁극적인 전제란 무엇인가? 그것은 세계 자체, 삶 자체이다. 타우베
스(작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 앞서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
다. 그러나 저 궁극적인 전제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은 반드시 ‘계시’에 대한 성찰에 다다르게 된다. 끝마저도
완전히 끝내는 것, 썩어 가면서 썩어 가는 모든 것을 완전히 썩기까지 사랑하는 것. 이것은 역사 바깥에서 역사
와 싸우는 행위이다. . .”

꿈과 이미지에대한 이야기라고 했는데, 꿈과 이미지 뒤에 더 큰 웅덩이 속에 계시가 있다고 겸손히 이야기하고 싶다. 전혀 다른 꿈, 전혀 다른 이미지 말이다. 성서의 꿈은 퇴행적이지 않다. 근원적이지만 역사 적이며, 철저히 실존적이다. 성경의 이야기들이 인과율이나, 또는 결과론적인 본질에 접근하고 있는 것 같지만 철저하게, 아니 처절하게 실존적이다. 또한 역사현실에 뿌리를 깊이 박고있는 나무이다. 문학이 역설이요, 반전이라고 하는데, 성서야말로 근원부터 우리 뒤통수를 친다. 그 뒤통수를 한데 맞으면 정신을 차릴 수 없다. 내 존재의 근원전체가 디비진다(깅상도말로)내가 나무처럼 깊이 뿌리내려 어느 것도 뽑아낼 수 없는 내 존재의 근원을 뽑아 흔든다. 그것참, 허 허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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