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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에 의한 고정희를 위한 變奏

박경장 | 2008.08.01 18:03 | 조회 1212
<밥과 자본주의>

먹으려면 우리는 먼저 죽여야 합니다.
먹이란 모두 본래적 의미에서 주검입니다.
도대체 생명은 생명을 죽여
비로소 지탱하는 괴물입니다.

죽어야 살고 살리는 생명

당신께서 쓰신 "밥과 자본주의" 연작에서
밥이 곧 하느님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사람의 밥이 되신 하느님의 주검
밥은 나누는 힘일 뿐이라는
살림의 하느님

하늘을 혼자 가질 수 없듯이
혼자 받은 밥상을 물립니다.


<손이 여덟 개인 신의 아내와 나눈 대화>

신이 버림받은 시대에
오고 있는 역사는 언제나 개벽세상이고
와 있는 역사는 언제나 남자세상이었으니

개벽세상을 끌어당길 역사는 오로지 여자세상
자(慈)씨 성을 가진 미륵어미세상
아픈 곳에 먼저 손을 뻗으려
천개 손에 천개 눈이 달린 천수관음보살세상입니다.


<농사꾼이 머리노동자에게>

이 반도 땅에서는
땅은 같은 땅이되
농민의 땅에서는 밥이 나오고
도시민의 땅에서는 돈이 나온다더군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도시 땅 한 평만 잘 팔면
일 년 먹을 밥을
도시 땅 백 평만 잘 팔면
평생 먹을 밥을 번다나

그걸 다시
수 천 수 만 평 농민의 땅을 사서
모 대신 돈을 심는다는 군

땅은 붙여 먹는 것이지
파는 것이 아닌디

몹쓸놈의 세상
하늘 팔 날도 멀지 않았구만


<그대가 두 손으로 국수사발 들어올릴 때>

받아 쥔
하얀 봉투에
비칠 듯
꺾일 줄 모르는 당신의 순수가
빳빳하게
우리 가족 한 달 양식으로
내밀어 진 날

뼈 시리게
찬바람 맞으며
새벽 우물을 긷습니다

쏴아
한 되 박의 마음을
물로 채우고
맑은 우물 바닥에
욕심의 두레박을
내려놓습니다

두 손 가벼운 시장길
막 나온 따끈한 두부와
노란 웃음 빈틈없이 벙근
개나리꽃 같은 콩나물을
바구니 가득 담습니다

오늘 저녁엔
두부 지짐과 콩나물국을
끓일 겁니다

차마 넘지 못한 신발 가게 높은 턱이
내 발바닥 끌리게 해도
품에 안은 막걸리와 배추 한 포기
겉저려진 처녀 가슴처럼
제 가슴
뿌옇게 한 사발
부풀어 오릅니다


<당한 역사는 잠들지 않는다>

채찍질하는 주인이 노예의 아픔을 어떻게 알겠냐며 고통의 구급상자를 메고 제국주의의 총과 칼에 베이고 잘린 아시아 민중의 가슴과 목을 더듬는 하느님. 아픔이 아픔을 더듬고 코에 숨을 불어넣으며 일어나라, 부활하라 목놓아 외치는 하느님. 주검들 하나하나 씻김을 하며 '"십자가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승리는 네 것이 아닐지 모르나 저항은 네 것이다. 당한 역사는 잠들지 않는다. 당한 사람들은 죽지 않는다" 혼자말로 중얼거리는 혀 짤린 하느님.


<전봉준이 서울에게>

척왜 척화 외치며
천민자본주의 사생아들 멱을 따러
낫, 죽창, 곡괭이 들고
서울로 향하는 전봉준

마침내!
서울의 미끈한 목을
꽉 부여잡고는

아!
차마 하마 차마 하마
낫을
죽창을
내려놓는
녹두장군 전봉준



<성곽에 둘러싸인 외로움 건드리기 혹은 부활>

나는 오늘밤 혁명을 꿈꾸네
동반자적 부활을 꿈꾸네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인 사람들
모두는 가슴속에 혁명 불을 켜든
천둥벌거숭이들이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무덤에 잠드신 당신은
내 책장에 큰 여백을 꽂아두셨다.

뱀사골에 벗어둔 당신 신발 한 짝은
내 길 앞쪽으로 큰 여백을 뻗어놓으셨다.

오! 모든 사라지는 것들 뒤로, 당신은
높고(高) 고요하고(靜) 빛나는(熙) 여백을 남겨놓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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