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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의 죽음> 우연이라는 인생 희비극

박경장 | 2008.05.26 12:19 | 조회 1582
<관리의 죽음> 우연이라는 인생 희비극


영어에서 기회라는 뜻의 ‘chance’는 우연이라는 뜻의 ‘happen’과 어원이 같다. 그래서 영어에서 우연히 만나다를 ‘meet by chance’나 ‘happen to meet’ 라고 한다.

이 단편 속 주인공인 러시아 중 하위급 관리 이반 드미트리 체르비야코프는 바로 이 ‘우연’의 희생양이다. 희극 오페라 공연을 보는 도중에 재채기를 하다 튀긴 침이 하필이면 자기보다 상급공무원의 얼굴이었던 것이다. 이 웃지 못 할 사건으로 우연이라는 드미트리의 인생 희비극이 전개된다. 그것도 놀라움으로 가득한.

희극 오페라를 보면서 그가 깨달은 코미디의 본질은, ‘그러나 갑자기‘에 있다. 우연에 의한 급반전이 코미디를 코미디답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에서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코미디의 본질을 인생의 보편적 의미까지 확대시킨다. “그래 작가 말이 옳아, 그러나 갑자기, 그래서 인생은 놀라움으로 가득한 거지.“

코미디의 본질인 ‘그러나 갑자기’라는 우연이 그의 단조로운 공무원의 일상을 놀라움으로 가득 차게 만든다. 단 그 놀라움이란 아이러니하게도 희극에서 비극으로의 급반전이었다. 재채기를 하다 입에서 나온 타액이 우연히 상급관리의 얼굴에 튀긴 사건이 결국 그의 심장을 놀라게 해 마비시키게 한다는 비극으로의 급반전이다. 얼마나 놀라웠으면 ‘꺼져버려!“라는 말 한마디에 심장이 멎고 정말로 생명의 불꽃까지 꺼져버렸을까? 놀라움으로 가득 찬 인생의 극단은 죽음의 공포라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한 탓일까?

드미트리 같이 소심한 사람만이 우연으로 인한 인생의 놀라움을 즐기지 못하고 우연의 희생양이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희극이든 비극이든 삶이라는 우연의 드라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생은 없을 것이다. 삶이라는 우연 속에서 우리 모두는 ‘그러나 갑자기’ 누군가 혹은 어떤 일을 만나게 된다. 그것이 희극 또는 비극으로의 급반전이든 우연으로 인해 우리 인생은 죽음 같은 일상의 ‘반복’에서 벗어나 생동감 넘치는 ‘변주’의 인생을 맛본다. 하루아침에 인생이 놀라움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나 갑자기’라는 인생의 우연을 나는 기꺼이 받아드린다. 때로는 산다는 것도 이렇게 낯선데, 죽음은 또 얼마나 갑작스러울 것인가? 나고 죽는 것이 남의 일이라면 놀라울 것도 없겠으나 생로병사가 내 일 일진데 어찌 놀랍지 않겠는가? 드미트리 같은 소심함 때문에 ‘그러나 갑자기’가 우연의 비극으로 몰고 간다고 하더라도 어쩌겠는가? 우연히 만난 게 ‘나’인 것을 이렇게 낯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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