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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번째 글쎄다 _ 이제 스스로 걸을 수 있다?

한동우 | 2007.08.06 14:47 | 조회 1131
돐이 지난 글쎄다는 이제 뺀질거리기 시작한다. 이제 겨우 일어설 수 있게 되었고, 무작정 앞으로만 걸으려다 넘어지기 일쑤지만, 그래도 작은 두발로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이른바 토들러(toddler)시기가 된 것이다. 발달심리학자 Erikson에 의하면, 유아기에서 토들러 시기로 넘어가면서 아기들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을 달리하게 된다. 간난쟁이들은 그저 등을 대고 누워있을 뿐이다. 아무 힘없는 손과 발은 허공에서 허둥대기만 하고 오로지 입만 살아있다. 눈과 귀와 코로 입력되는 세상의 모든 신호는 입을 통해 확인된다. 아기들에게 소리를 내는 곳이면서 동시에 양분을 받아들이는 곳이다. 그것도 100퍼센트 수동적으로! 그러니 아기들은 세상을 믿을 수 밖에 없다. 만약 세상을 믿지 못하면 아기는 입으로 양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Erikson은 유아들이 생후 1년간 (Freud는 이 시기를 critical period라고 했다) 세상에 대한 신뢰(trust) 와 불신(mistrust)의 선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때 아기를 키우는 (주로) 엄마가 아기들에게 맛있고 영양가있는 양분을 지속적으로 공급한다면, 아기들은 세상에 대해 한없는 신뢰를 형성하게 된다. 물론 엄마의 냄새와 목소리, 모습에 대한 각인이 동시에 필요하다. 세상에 대해 신뢰를 형성한 아기들은 세상을 따뜻한 곳으로, 살만한 곳으로, 맛있는 곳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런 아기들은 이제 스스로 발에 힘이 생겨서 일어서게 될 때, 세상에 대해 한없는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돐잔치를 수원화성에서 한바탕 즐겁게 끝낸 글쎄다는 제 다리 힘으로 일어서게 되었다. 두발로 섰다는 것은 무엇인가. 역설적으로 손을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손이 자유롭게 되면, 말을 안듣는다. 세상은 자기의 것이 되었고, 입을 통해서만 살 수 있었던 과거는 영영 올챙이시절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만져본다. 코에 가져다가 냄새를 맡아본다. 등을 대고 버둥대며 누워있던 시절에 할 수 없이 먹어야 했던 맛없는 음식은 이제 먹지 않아도 된다. 손사래를 치며 거부하고, 뒤돌아 뛰어 도망간다. 그 댓가는 무엇인가. 넘어지는 것이다. 이마가 깨지고, 무릎이 긁힌다. 고개를 들어보면 엄마가 비웃고 서있다. 쪽팔린다. 다시 Erikson은 말한다. 걸음마 시기에 아기들은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생각 (autonomy)과 수치심과 의심 (shame and doubt)사이에서 선택을 하게 된다.

열세번째 글쎄다는 이제 막 걸음을 떼기 시작한 아기가 먹기 싫은 이유식을 피해 뒤돌아 뛰어가다가 넘어져 하는 수 없이 엄마 손에 다시 붙들리는 것 같은 모양이었다고나 할까. 벗나무 아래 벤치에 아무렇게나 앉아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며 놀다가, 찐 감자와 떡볶이를 입에 문 채, 그저 생각나는대로 지껄이는 것이 전부였다.
"조정래, 너무 심한거 아냐? 대하소설로 써야 할 이야기를 짧게 쓰려니 이렇게 나오지..."
"나는 이게 소설이 아니라, 무슨 영화 시놉시스같아요."
"게오르규하고 너무 비교된다."
"이거 언제 나온 책이에요?" "최근작이죠." "뭐요? 그래요? 이 사람, 왜 이케됐지...?"
"아, 빨리 먹고 들어가서 영화나 보죠."
"다음에 읽을 책은...뭐에요?"
"아, 우리 아직 이야기도 안했잖아요."
"뭐, 이정도면 됐지."
"..."

잽싸게 밤토실로 들어온 우리들.
"저, 오늘 영화를 여러 편 가져왔는데요... 25시, 영혼의 집..."
"어... 피아니스트의 전설도 있닷!!!!!!!!"
"예. 인터넷에서 다운 받았는데, 70원이면 돼요. 아, 그리고 이 영화는 음악영환데, 블루스 브라더스라고, 당대 최고 재즈 뮤지션들이 대거 출연해요. 레이 챨스, 제임스 브라운, 아레싸 프랭클린...조금만 볼까요?"
"아, 그냥 그거 봅시다. 재밌겠다. ㅎㅎㅎ"

2시간 넘게 블루스 브라더스에 매달려 히히덕 거리던 글쎄다.
연만하신 두 어른이 먼저 가시고, 곁에 앉아 함께 보시던 장로님도 가시고. 체력 딸린 누이도 한분 가시고... 이미 10시가 넘은 시각에 영화 한편 (영혼의 집) 더 보고 헤어졌네.

집에 돌아오던 길
"우리 오늘 뭐 한거야?"
"..."
"다음 모이는 날짜는? "
"뭐...9월 첫주...."

박경장님 목소리가 크게 울려 온다. "어... 다음 번 한번만 더하고... 그 다음에는 다시 고전으로...어..흐...그러니깐...민음사..."

넘어진 아기 손 붙잡아 주던 엄마도 주저 앉아 우는 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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