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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자질하는 심장 - 에드가 앨런 포

한동우 | 2009.10.19 18:10 | 조회 1917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인가>
옆 방에 사는 노인네를 단숨에 해치운 사내는 마룻바닥을 뜯어내고 토막낸 시신을 감춘 다음, 마루에 묻은 모든 얼룩을 완벽히 지우고는 원래대로 붙여 놓았다. 푸른 눈에 희뿌연 막이 덧씌워진 눈을 갖고 있던, 흡사 독수리의 눈으로 사내의 몸과 영혼을 얼어붙게 했던 노인은 이미 돌처럼 굳어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사내는 그 노인의 눈빛 - 뼛속까지라도 뚫어보는 듯한 - 의 공포에 사로 잡혀 있었다. 사내는 밤마다 노인이 자고 있는 방에 몰래 들어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한참 동안이나 숨어 있다가 나오기를 일곱번이나 한 끝에, 여덟번째 밤에 노인을 질식시켜 죽여 버렸다. 아마도 앞을 보지 못했던 노인은 민감한 청력을 갖고 있었으며, 조용한 밤에 곁에서 벌레가 지나가는 소리 조차 들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 노인에게 유일한 소통 수단은 그의 청력 뿐이다. 노인에게는 적막속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가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노인은 죽기 전까지 다시 잠들지 못했으며, 작은 소리의 정체를 두려움 속에서 식별해 내려다가 죽고 말았다.
사내는 흰 막이 씌워져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노인의 그 눈을 두려워 했다. 여덟번째 밤에 노인을 마침내 죽이러 들어 갔을 때, 사내의 소리에 잠을 깬 노인의 심장 소리는 마치 솜에 싸인 시계소리처럼 둔탁하게 들려왔다. 사내는 노인의 심장소리 - 멀리서 들리는 듯한 - 를 참아내지 못하고 일거에 노인을 쓰러뜨려 죽인다. 그리곤 노인의 눈빛으로 부터의 공포에서 벗어난다.
경찰이 들이 닥쳤을 땐, 살인이 일어난 실내는 완벽히 정리되었고, 사내는 경찰에게 최대한의 친절과 편의를 베풀면서 수사에 협조한다. 그러나 마룻바닥에서 들려오는 심장소리는 다시 사내를 괴롭힌다. 정작 경찰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그 심장소리가 사내의 귀에 이명을 일으키며, 더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의 큰 소리로 들린다고 느껴졌을 때, 사내는 소리를 지르고 만다. 사내는 미친 것이 아니다. 경찰들은 그가 그 노인을 죽였다는 것을 알았다. 경찰들은 그의 공포를 조롱하며 그의 공포를 갖고 그를 데리고 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일어나 의자로 마룻바닥을 비비고 욕설을 퍼붓는다. 그래도 경찰은 태연자약 농담이나 지껄이고 있다. 그는 외친다. "그래. 내가 죽였다. 마룻바닥을 뜯어봐. 이 소리는 그 심장소리란 말이다."

사내는 자신의 심장소리와 노인의 심장소리를 구별하지 못한다. 노인을 죽일 때 들렸던 심장소리는 어쩌면 자신의 심장소리였을 것이다. 극단의 공포 속에서 죽는 노인과 노인을 살해한 후의 극단의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고 마는 사내는 사실은 분리되지 않은 자아일 지도 모른다. 인간은 앞을 보며 사는 것일까. 사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자신의 심장소리만을 듣고 살아가는 것이다. 앞을 보는 것처럼 속 깊은 눈은 희뿌연 막으로 가려져 있고, 그래서 그 눈(eye)은 나(I)의 몸과 영혼을 두려움에 떨게 한다. 내 심장소리는 끝없는 깊은 공포의 근원이기도 하고, 희망의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상관하지 않는, 그래서 들리지도 않는 자신의 심장소리만이 인간에게 공포를 안겨주는 유일한 조건인 것이다. 지금 내게 들리는 것은 오로지 내 심장이 외치는 소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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