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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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

강기숙 | 2009.04.11 10:07 | 조회 931
지난 번엔 나의 책읽기에 관해 썼다면 오늘은 아이들의 책읽기에 관해 쓰고 싶다. 이 아침에 갑자기? 안 갑자기! 늘 마음 한 켠에 불편하게 자리하고 있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올해 여섯 살이 된 내 딸 민주에게 난 참 여러모로 다정하지 못한 엄마인데 다른 엄마들과 비교할 때 유독 못 해주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책 읽어 주기이다. 엄마 책 읽어 주세요하며 다가오는 아이를 뿌리친 적이 수도 없이 많다. 뭐 피곤해서이기도 했고, 내 책 읽는데 방해가 되서이기도 했고, 아이 책 읽는 자체가 아주 재미가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도대체 왜 난 책 읽어 주기에 그렇게나 인색한 것인가를 오랜 시간 연구한? 끝에 발견한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쓸 데 없는 짓이라는 생각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쓸 데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나쁜 짓이라는 생각이 내 마음 깊숙히 자리잡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뭔 소린가?

책을 읽으면 상상력이 풍부해진다?
라는 말에 난 동의하지 않는다. 어차피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일이라는 게 신의 영역이지 인간의 영역이 아닌 바에야, 인간의 상상력이라는 것은 자연을 모방한 응용력일 터인데, 책을 통해 얻는 상상력이란 작가가 응용한 상상력의 재응용일 뿐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자연을 모방하는 응용이 책을 통한 모방보다는 더 일차적이고 원초적이며 우리가 상상력이라 표현할 때의 상상과 더 가까운 개념일 것이다. 그렇다면 난 어릴 때에는, 특히 취학전 아이들에게는 책을 통한 간접 경험보다는 역시 자연과 교감하고 인간과 교감하는 직접 경험이 훨씬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쓰다보니 다 아는 빤한 얘기가 되어가는 것 같다는...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지나치게 어릴 때부터 과도하게 책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여기서 내 문제의식이 시작한다. 책도 좋지만 지나치다는 것이다.

난 얼마전부터 한 도서관에서 대출반납 서비스를 돕고 있는데, 그 빌려가는 책의 양을 보면 기절할 지경이다(좀 과장해서^^). 가족 한 명당 다섯 권을, 그러니까 4인 가족이면 스무 권을 이 주간 빌릴 수 있는데, 스무 권 전부를 그림책으로 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스무 권 이상을 빌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다른 사람의 대출카드를 이용하는 것이다. 책 욕심에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도 개운치가 않다. 난 최대한 밝게 웃으며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친절한 목소리로 말하기도 한다, '어머니 책도 좀 빌리시지요'. '그러게요' 하신다.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안타깝다는 거다. 난 잘못했다고 누구를 비난할 수 없다. 내가 겨냥하는 말의 상대편 맨 앞에는 항상 내가 있다. 비난한다면 가장 혹독하게 내가 비난 받아 마땅하다. 그렇기에 안타깝다고만 할 거다. 비겁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비겁함을 무릅쓰고 한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에게는 책이 그저 장난감으로 쓰이면 좋지 않을까? 네모낳게 생기고 딱딱한, 열어 보면 그림이 나오는 장난감. 조금 더 커서는 그 안에 이야기가 있다는 걸 알게되고, 까맣게 점점이 있는 게 글이라는 걸 알게 되고 그렇게 아이가 크면서 자연스럽게 책도 커갔으면 좋겠다. 책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기도 전에, 너무 이르게 책을 들이미는 모습을 볼 때마다 멀미가 난다. 배고프기도 전에 밥 차려주면 그 밥 틀림 없이 맛 없다. 물론 배 고프다고 징징대는대도 밥 안 주면 그건 더 나쁘겠다. 말하면서 찔린다. 더 쓰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마무리를 어떻게 한담? 누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왜 이 글은 시작해가지고 스스로 부끄러웠다가 찔렸다가 사서 고생인지 모를 일이다. Too seriously! 이게 내 병 맞다. 아니면 합리화? 아니, 솔직히 내가 쓰는 이유가 나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인가 하는 고민은 늘 글 쓰기 전에 이미 한다. 그건 최소한의 내 양심이다. 합리화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의 무엇이 있을 때만 난 글을 쓴다. 망했다. 뭔 소리람.

내 말을 뒤집으면, 지나치지 않다면 아이들에게도 책 읽기는 좋다는 말이다. 밤토실의 사진 한 장, 아니 세 장, 참 예쁘다. 개구쟁이들이 책을 본다. 꼭 엄마가 아니어도 좋다. 아니 엄마가 아니어서 더 좋다. 내 아이만이 아니어서 더 좋다. 윤채, 윤빈, 하원, 민주가 제 각각의 표정으로 책을 본다. 그런 책 읽기가 나는 좋다. 억지스럽지 않은, 교묘한 꼼수가 숨겨져 있지 않은, 교훈을 강요하지 않는, 완전히 자유로운 책 읽기가 좋다. 밖에서 뛰어놀다가 넘어졌다가 코가 깨졌다가 개미도 보고 꽃도 봤다가 서로 싸웠다가 삐졌다가 울다가 보채다가 아줌마랑 놀다가 언니랑 소꿉놀이 하다가 밤토실에 들어왔다가 책도 한 권 보다 재미 있어 두 권 보다가 책 보다가 또 싸우다가 하는, 자연과 함께 사람과 함께 책도 분명 그 속에 있어야할 것 중의 하나일 뿐이다.

죄송해요. 이 글 읽는 여러분. 제가 글 쓰다 밥하다 왔다 갔다 하면서 써 가지고 산만해요. 너그럽게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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