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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 완장 완장들

강기숙 | 2009.01.31 22:45 | 조회 1334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를 읽고, '완벽하게 글을 잘 쓰시는군!'하고 생각했다. 이렇게 덤덤하게 이렇게 자분자분히, 하고싶은 말을 과장되거나 격앙되지 않은 목소리로 '다' 말할 수 있다니!!! 내공 더하기 실력이겠지. 이렇게 맘에 꼭 맞는 작가들을 만나는 기쁨이 참 크다. 구두연작을 포함한 단편집은 다른 분들께 맡기고 여기서 난 <완장>에 대해 말하려한다.

무엇이 완장인가?
'권력화 될 수 있는 모든 것', 그러니까 돈도 완장이요, 땅도 완장이요, 지집(계집)도 완장이다. 설명이 필요없는 말일 것이므로 패스.

누가 완장을 찼는가?
폭력전과가 있는, 더러워서 피하고 무서워서 피하는 임종술 혹은 미스타림, 일차적으로는 그가 완장을 찬 주인공에 틀림없다. 현란하고도 반딱거리는 그의 완장, 누가 보아도 우스꽝스러운, 비웃음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 마치 선술집 작부 김부월의 희번덕거리는 화장 덧칠과 같은 가장 싸구려 완장을 찬 사람은 분명 임종술 그가 맞다. 쳇, 그게 다 무어냐. 십원짜리도 안되는 권위가 있을 뿐인 그 따위 완장, 그런데 20페이지를 보라: '완장이란 말에 무너져내리는 자신을 그는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볼 뿐이었다'(책을 빌려줘서 정확히 못 옮깁니다, 죄송) 윽! 서푼짜리도 안되는 완장에 자신을 내어주는 그 장면, 그도 모르지 않았으리라, 완장의 허세와 허위를. 그럼에도 그 앞에 무너지는, 속수무책인 자신을 바라보는 그는, 그와 다르지 않은 나는 비참하다...
그건 그렇고, 그럼 진짜 권력이 있는 진짜 완장을 찬 사람들은 누구인가? 저수지 주인 최사장과 그의 조카, 생각이 안 나므로 임의로 박씨라고하겠다, 박씨다. 밉고 싫다. 교활하게 숨어서 권력을 휘두르는 그들이 싫다. 임종술을 전면에 광대요 총알받이로 내어 놓고 자신들의 더러운 잇속만 챙기는 최사장과 박씨, 얼굴에 깐 철판의 두께를 가늠할 수 없는, 썩은 권력의 소유자 구태으연, 구케의언들(김용택,세한도), 이십년된 아끼는 목도리를 서슴없이 풀러주는 정많은 우리의, 우리가 뽑은 높으신 곳에 계신 그 장로님 밉고 싫다.
그러니 허울뿐인 완장을 찬 임종술을 너그럽고 안된 맘으로 보아주자. 실은 가짜인 경찰복을 입고 마을을 지키는 자위대? 방위대?를 그저 고마운 마음으로 좀 더 넉넉한 시선으로 보아주자. 분노해야할, 역겨워해야할, 적극 미워해야할 완장의 주인공들은 따로 있으므로.

인상 깊은 한 컷?
완장의 또 다른 한 축을 이루는 임종술과 김부월의 로맨스를 빼먹으면 섭섭하므로.^^
역시, 김부월이 한 밤의 달빛 아래 온통 벗은 몸으로 저수지를 돌아 뛰며 기우제를 지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신분이 비록 작부일망정,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이해불능의 행위라도 기꺼운 마음으로 저리한다면 사랑스럽지 않을까싶다.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포악을 떨면서도 한 여자, 김부월에게만은 멋져보이고 싶고, 그녀 앞에서만은 작아지는 우리의 종술씨도 작부집 주인의 패물을 반만 훔치자고 했을 때는 뭐야, 제법 괜찮아 보였다. 반이나 훔쳐 달아난 양딸 삼은 김부월이를 원망은 커녕 불쌍히 여기는 작부집 여주인도 마찬가지고. 여하튼 완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들이다. 허위와 허세에서 원천봉쇄 당하는 가난한 사람(돈이든 마음이든)이 그래서 복이 있는 것이리라.
위의 장면도 인상적이었지만, 내게 가장 강렬했던 한 컷이라면 단연, 작품의 가장 마지막 장면이다. 저수지에 버려진 임종술의 완장이 저수지의 물이 방류되면서 소용돌이치는 물결에 휩싸이는 그 장면, 수로의 끝에서 빠져나갈듯 빠져나가지 못하며 휘휘 돌아만가는, 마치 목에 걸린 무엇인가가 넘어가지 못하고 걸려있는듯(이은주, 욕망), 그래서 조용히 지켜보고있는 그의 어머니를 못내 안타깝게하는 그 마지막 장면, 압권이다. 완장을 벗어버리고 방류되는 물처럼 자유를 얻어 떠나간 임종술의 그 자리엔 자신의 생떼같은 피붙이를 떠나보내고 수치와 외로움을 벗 삼아 살아야하는, 羊으로 살아왔고 다시 또 羊으로 살아야하는 어머니가 대신 남았다.

끝입니다.
단편집은 새글로 올려 주세요.
정작 태워야할 불연성의 것은 태우지 못하고 구두만 태워대는
모자란 기숙이가 썼습니다.
졸필이라도 여기서만큼은 부끄럽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완장 떼고 만나는 곳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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