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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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설의 환영을 읽고

하늘기차 | 2012.01.28 15:15 | 조회 1493


지난 책읽기 모임에서 ‘환영’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주인공 윤영은 어느 물가 낚시터에서 일하는 여 종업원입니다. 그런데 그냥 여 종업원이 아니라 손님을 상대하여 접대를 하는 여인입니다. 한 때는 똑똑한 여 동생이 장차 자기 가족을 일으켜 새울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 여 동생의 대학등록금을 댑니다. 그러나 그 여동생은 결국 강원도 카지노로 도박으로 흘러 마지막에 끊임없이 돈을 재촉하더니 부채에 떠밀려 마지막 죽음을 당합니다. 고시원에서 만난 남편을 통해 남편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것에 희망을 걸고 왕백숙집에 일하러 도와 시의 경계를 드나들지만 남편은 무능하여 번번이 시험에 떨어지고, 아예 한 날 허송 세월을 보내는 무능력자입니다. 그 와중에 아이가 생겨 그 아이에게 희망을 걸고 일하러 다니는데 그 아이가 걷지 못하는 아이인 것을 뒤 늦게 발견합니다. 그뒤에 남편은 이제 공무원 시험을 접고 자신이 얻어준 일자리에서 노동을 하기로 마음을 굳히지만 그래서 희망의 불씨를 피우지만 얼마 안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불구가 됩니다. 이 절망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나중에 슬그머니 나타난 남동생은 엄마를 꼬드겨 그나마 장만한 집 문서와 인감을 가지고 도주합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저는 이 환영에서 다른 환영을 봅니다. 마치 사도바울이 에베소에 있을 때 빌립보에서 구해달라고 손짓하는 손길의 환영을 봅니다.

그는 한 순간 자기에게 다가오는 삶의 족쇄를 받아들이며 “언제나 처음만 힘들었다. 처음만 견디면 그 다음은 참을 만하고, 견딜 만해지다가, 종국에는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P58)그렇게 매일 그녀는 왕백숙집으로 가는 봉고 합승차를 탄다. 시도의 경계를 넘어, 그 경계에서 ‘어서오세요’와 ‘안녕히가세요’를 읽으며 마치 다른 세계로 가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시도의 경계는 그녀에게 환영(歡迎)의 인사를 해줄지언정, 삶은 그녀를 환영해 주지 않습니다. 그녀도 자기 앞의 삶을 환영하지 못합니다. 마지막 장면에대해 작가는 이렇게 기록을 합니다.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경계 표지판이 심하게 흔들렸다. 시에서 도로 들어섰을 때, 안녕히 잘 가시라는 말 때문에 다른 세
계로 들어간 것 같았다. 금세 물가가 나왔다. 곧 얼음이 얼 것이었다 왕백숙집으로 출근하던 첫 날 아침의 풍경은 바뀌지
않았다. 나는 누구 보다 참는 건 잘했다. 누구보다도 질길 수 있었다. 다시 시작이었다.(P193. 마지막 문단)”그 자리에서 그녀는 다시 시작하지만 그 다시 시작하는 자리는 어느 저수지인지 강인지하는 낚시터, 산 계곡의 시원한 맑은 물소리, 물내음이 아닌 썩고 오염된 움직이지 않는 물안개 피어 어디인지를 분간할 수 없는 물비린내 가 나는 물가의 어느 닭백숙집에서의 일상입니다.

‘환영’이라는 제목처럼 ‘다시 시작이었다’는 것이 환영일 수 밖에 없는 한 여인의 삶의 굴레를 어느 물가, 쾌쾌히 물비린내 나는, 물 안개 피어나는 낚시터의 종업원 과 같은 인생. 희망하지만 다시 희망이 없는, 닭백숙집 물가와 같은 바램이 거듭 반복되는 꿈과 같은 환영에 붙들린 주인공의 모습에 가슴 아퍼할 수 밖에 없는 정황인데, 이전 박민규 작가의 핑퐁이라는 작품을 통해서도 문학의 끝자락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지난번 한진중공업 김진숙님이 85호 타워크레인 꼭데기 벼랑 끝에 서 있는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 만나는 자리인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 여주인공의 다시 시작한다는것은 문학에서는 제목 그대로 환영일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문학입니다. 휴머니티이지요. 그런데 신앙은 바로 그 시점에서부터 출발을 합니다. 아주 쉽게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한 아기가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을 애기 엄마가 보았습니다. 애기 엄마가 어떻게 할까요. 후다닥하고 놀래 달려가면 아기는 엄마의 호들갑에 놀라 자칫 벼랑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엄마는 아이에게 이전처럼 팔을 한 껏 벌리고 사랑의 눈짓으로 방긋 웃으며 아이를 기다릴 것입니다. 아이는 조금씩 그 벼랑 끝 자리에서 조금씩 벗어나 사랑스러운 엄마에게 다가갈 것입니다. 마치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습입니다. 믿음의 시작이 그렇게 값싸지 않다는 것입니다. 거칠지 않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바로 그렇게 환영일 수밖에 없는 ‘다시시작하였다’는 자리에서 팔 벌리고 벼랑 끝에 서 있는 아이를 엄마의 품으로 웃음 가득히 품어 안는 자리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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