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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귄터 그라스의 "넙치"

이호정 | 2011.07.01 00:18 | 조회 1809
넙치

횟감으로 유명한 가자미목 넙치과의 바닷물고기.
두 눈이 비대칭적으로 머리의 왼쪽에 쏠려 있고 몸이 납작한 이 물고기는 넙적한 물고기라는 의미의 광어(廣魚)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비슷하게 생기기는 했지만 두 눈이 오른쪽으로 몰려있는 가자미 종류와는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단백질 함량이 높고 지방은 적어서 맛이 담백하고 개운해서 신선한 횟감으로 많이 이용된다. 쫄깃쫄깃한 배쪽 살과 더불어 지느러미 밑부분에 위치한 근육 또한 회로 많이 먹는다. 신선한 회로 가장 인기가 많지만 이 밖에도 튀김이나 찜, 탕을 만들어 먹기에도 좋다.

넙치의 특징인 한쪽으로 몰려있는 눈은 어린 시기에는 나타나지 않다가, 자라면서 점차 오른쪽 눈이 왼쪽으로 이동한다.

첫째 달부터 아홉째 달까지 총 아홉 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이 세상에 처음부터 존재해 온 인물인 <내>가 현재의 아내 일제빌에게 -세 명의 페미니스트에게 잡힌 넙치에 대한 심문과 재판에 관한내용을- 아내의 임신기간인 9달동안 들려주는 이야기로 되어있다. 바익셀강 어귀의 늪지대를 배경으로, 신석기 시대부터, 철기 시대, 중세, 바로크 시대, 절대 왕정기, 혁명의 19세기와 20세기, 제3제국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내>가 만났던 여자 요리사들에 대한 이야기가 시대 순으로 전개된다.
“넙치”는 오토룽게와 그림형제들에 의해 수집되어 그림형제동화집에 수록된 ‘어부의 아내이야기’가 모티브가 되었다.
욕심 많은 아내와 사는 착한어부가, 잡은 넙치를 놓아주는 댓가로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는데 끝도 없는 어부아내의 욕심에 넙치는 결국 그들을 가난뿐인 처음의 생활로 되돌려버리고 사라졌다는 이야기로 어부는 착하기만한 남자로 어부의 아내는 권력에 눈이 멀고 무한한 소유욕에 사로잡힌 심술궂은 여인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작중 화자는 그 동화를 여성을 비하하고 가부장제를 지키려는 남자들의 음모라고 말하며, 원래 「어부와 그의 아내」는 두 가지 판본이 있었는데, 남성들의 끝없는 욕구가 파멸을 초래하는 내용으로 된 판본은 남자들이 불태워 버렸다고 말한다. 그 불타버린 판본을 토대로 한 작품이 바로 “넙치”인 것이다
그라스는 한 인터뷰에서 “그때 나는 우리의 역사 서술에서 빠진 부분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여성들이 역사 형성에서 이름없이 이루어낸 몫을 말합니다. 요리사로서, 가정주부로서, 식량 구조를 혁명적으로 개선할 때, 즉 기장을 감자로 대체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서 말입니다” 이렇게 작품 속의 여성들은 민족 대이동 시절에는 순무를 재배했고, 7년 전쟁 시기에는 감자를 도입했으며, 공산주의 혁명 시기에는 양배추를 들여오는 등, 식량 문제 해결을 통해 인류의 생존에 지대한 역할을 한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그라스는 이 작품에서 <백과사전과도 같은 풍부한 지식의 소유자>라는 찬사에 걸맞게 인류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뛰어난 상상력을 바탕으로 또 하나의 역사를 재구성하고 있다.

등장인물

<나>
처음부터 이 세상에 존재한 인물로 아우아에서 마리아 까지 작품속의 여자요리사들과 관계를 맺는 남자들의 대부분으로 현재의 아내 일제빌에게 자기의 기억 속에서 “뛰쳐나오려 야단"인 여자요리사들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말하는 넙치>
기나긴 역사의 흐름을 움직여온 존재로 모권사회에 안주해 있던 남자들을 일깨워 역사의 흐름을 남성중심으로 돌려놓는다 그러나 자기가 남자들에게 지식과 권력을 주었으나 결국 역사는 전쟁과 기아로 치달았을 뿐이라며 여성을 다시 역사의 중심에 세우기 위해 여자들의 낚시대에 걸린다 넙치를 잡은 세 여자는 넙치를 여성배심법정에 넘겨 신석기시대이래로 남성의 편에만 서있던 그의 죄과를 묻는 재판을 시작 한다

<아우아>
신석기시대의 권력자였던 세 개의 유방을 가진 신화적 존재로 하늘의 늑대에게서 불을 훔쳐와 날것을 익혀먹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당시는 모든 여성이 세 개의 유방을 가진 아우아라 불렸으며 남자들은 아우아의 젖을 먹고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가는 존재로 아우아의 통치아래 평화롭게 살았다
남자들이 아우아의 도움 없이는 살아가기도 힘들고 기발한 생각도 하기 드물었던 시절, 바로 모계중심의 사회가 당연시 되던 그 시절에 나는 우연히 바구니어살 속에 걸려든 넙치를 만난다. 나는 넙치의 요구대로 넙치를 살려주었고, 새로운 세상에 눈 뜨기 시작한다.
나를 보호해주고 있던 아우아는 유방이 셋 달린 자신의 그림은 허용하면서도, 뱀장어 어살 속에 잡힌 넙치의 그림은 그리지 말라고 명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넙치를 몰래 그렸고, 필요할 때마다 넙치를 불러 조언을 듣는다.
"그 여자는 자기 존재를, 언제나 자기 존재만을 확인하려고 해. 그 여자의 손길 밖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금기로 되어 있어. 하지만, 젊은 친구야, 예술이란 금지 시킬 수 있는게 아냐." 그렇게 우유부단하고 의존적이나 평화롭던 남성들의 삶에 넙치의 남성중심의 세계로 가는 충고가 계속되고 갈등과 굶주림의 비참함이 시작된다

평론가들에 의해 아우아의 젖이 세 개인 이유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기 쉬운 상황을 부드럽게 바꿔주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균형의 젖이 하나 더 있는 것으로 모자람과 대립이 아닌 평화로움과 균형의 미학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비가>
철기시대의 통치자로 이시기 여자들에게서 한 개의 유방이 사라진다
이시기에 고라니와 물소가 많이 줄어들어 모든 남자들은 어부가 되어야했다
비가는 남자들이 잡아온 물고기를 요리하고 아직 기장이 알려지지 않았던 시대라 늪에서 자라는 풀씨를 빻아 넣어서 물고기스프를 만든다 이후 비가에 의해 최초로 순무재배가 시작되었고 이시기에 민족대이동이 시작되었다

<메스트비나>
포메라니아인들의 여사제.
원시적인 신앙을 갖고 있던 그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러온 아달베르트주교에게 호박구슬이 들어간 생선스프를 끓여주어 금욕주의자였던 주교는 육욕을 느끼게 되고 그녀도 그를 좋아한다 그렇지만 아달베르트주교가 생선대가리를 버드나무가지에 매달고 행진하는 종교의식을 방해하자 쇠로 만든 국자로 그의 머리통을 내리쳐 죽인다

<몬타우의 도로테아>
14세기 고딕시대 요리사
여성으로서의 독립적인 자유를 갈구하던 그녀를 남자들은 자신들의 권위와 욕심으로 성녀로 몰아 도로테아 스스로 죽음의 길로 가게 만든다 결혼생활과 육아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오직종교적인 열정만으로 일 년 내내 기름기 없는 사순절요리만을 했으며, 집안일에 신경 쓰지 않는 그녀로 인해 설거지는 누가 하나하는 문제가 생겼다

<마르가레테 루쉬>
성비르기르트수녀원의 원장으로 뚱보 그레트라고도 불린다
본인의욕구대로 남자들을 자신의 침대로 불러들이고 교황,군주,기사 등 겉으론 진리를 표방하면서 자신들의 욕심대로 서로에게 칼을 휘두르는 모든 남자들을 비웃는다
'평등한 만인'이라는 루터의 가르침에 고무된 농민들의 봉기가 실패하여 대장장이인 아버지가 사형 당하자 그에 대한 복수로 귀족 페르버는 침대에서 엄청난 몸무게로 질식시켜 죽이고 수도원장 예쉬케는 자꾸 먹여 살을 찌워 죽게 만든다

<아그네스 쿠르비엘라>
17세기 바로크시대의 헌신적인 요리사
화가 묄러와 시인 마틴 오피츠를 위해 헌신적으로 요리를 해주며 그들의 난로에 불을 지펴주었다.
넙치는 아그네스를 통해 그들의 예술혼에 불을 지피려 했다고 변명한다.
아그네스는 이전의 요리사들 에게선 발견되지 않는 위대한 사랑의 감정을 지닌 최초의 여성으로 뮤즈의 여신으로 표현 된다.
그녀의 사랑은 “헌신적이고 희생적이며, 말없이 겸손하고, 넘쳐흐르는 마음에서, 죽음을 초월하여 자신을 버리는, 의심을 하지 않는, 불평하지 않는”같은 뒷날 사랑을 말할 때 관용구로 굳어진 표현들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훗날 뮤즈에 대해 적대적이거나 무관심한 사람들에 의해 마녀로 지목되어 불에 타 죽었다.

- 1권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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