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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속으로'를 읽다.(166번째 글쎄다)

가는 길 | 2023.01.04 20:57 | 조회 347

     










빛 속으로







『빛 속으로』는 역사적 비극으로 인해 모국어가 아닌 적의 언어로 작품 활동을 했을지언정, 모국에 대한 끝없는 애착을 보였던 김사량의 작품을 하나로 모은 작품집이다. 

추천해 주신 봄바람님께 모두가 감사했을 만큼 놀랍고 좋은 작품으로 기억된다.

고단하고 무더운 여름날에 1900년대 초반 정서의 소설을 읽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 시대에 일본어로 쓰인 소설이 현대의 언어로 번역된 데에서 오는 간극이 주는 긴장감도 재밌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에서 자꾸 작가의 실제 모습을 발견하고 싶은 유혹이 있기도 했다.



* 천마

주인공 현룡은 광기라고 느껴질 만큼의 기이한 행동을 한다.

광기일까, 허세 혹은 허영일까?

식민지 시대에는 이런 류의 캐릭터들이 많았다. 당시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존재할 법한 심리적 조건이 아니었을까. 그런 인물을 작가는 다채롭고 드라마틱하게 드러낸 것 같다. 그래서 작가의 소설 속 다른 인물들을 더 확인해보고 싶게 하고, 작가의 장편소설 태백산맥또한 궁금하게 된다. 작가가 처한 환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되는, 당시 친일파 지식인들에 대한 연민의 시소도 느낄 수 있었다.

달빛 아래에서 복사꽃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려고 하는 시골의 촌부에게서 현룡은 복사꽃을 사는 장면이 나온다. 꽤나 연극적인 무대가 연출되는데, 왜 '복사꽃'일까? 왜 제목은 '천마'일까?

재밌는 상상을 펼쳐본다면, 복사꽃과 벚꽃은 구분이 어렵다. 특히 주인공이 술에 취해있다면. 그렇다면 주인공 현룡 자체가 복사꽃인 것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겠는가. 일본인인 척하지만 일본인도 아닌 그런 존재.

소설 전반에서 도도하게 흐르는 기조가 당대 지식인을 희화화하는 정서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희화화하는 것이 아닌 연민이 흐르는 희화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아마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고 차마 악마화시키지는 못하는 자기 고백일까.

이 소설에는 현실이 있고, 또 하나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이 나오는 것 같다. 하나는 사창가이고, 다른 하나는 사찰인데, 마지막 장면에서 현룡이 자기 몸은 이제 사찰을 향해서 가고 있지만 사실 자신은 오히려 그 사창가에 있는 모습이 실제 자기 모습인 것 같다고 느낀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주인공은 아무런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혼란을 그대로 둔 채 소설이 마무리되는데, 어쩌면 김사량이라는 작가가 겪었던 자기 존재에 대한 고민들을 그대로 풀어낸 것 같아서 이 소설에 대한 만족감이 더 커졌다.



 

*풀이 깊다.

소설 속 등장인물인 이장이 일본어로 말을 하고 통역을 시키는데, 일본어로 글을 써서 번역을 해야 하는 작가의 상황을 희화화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하고, 지식인들이 외국어를 숭배하면서 자기 나라의 언어를 무시하는 위선적인 부분을 지적하는 것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144페이지에서 이장이 일본어로 연설하고 코풀이 선생이 통역하는데, 누구 한 사람 일본어를 알 턱 없는 조선인들을 향해 일부러 통역까지 세워가며 불쌍할 만큼 우스꽝스러운 연설을 한다. 작가 본인이 조선인이면서도 일본어로 쓰고 조선어로 번역해서 읽을 독자를 생각하면서 쓴 장면일 수도 있지 않을까.

또는, 일제 강점기 조선을 살아가는 조선인들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이 저변에 깔려 있는 것으로도 느껴진다.




*빛 속으로

주인공 남선생은 자기가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지만 좀 더 융통성있게 현실에 뭍혀서 살아가려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고

하루오의 엄마는 조선인의 피가 흐르지만 그 정체성을 외면하고 싶고 자신의 아들은 일본인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캐릭터이고

그 상황에 폭력적일 만큼 혼란스러운 나머지 어둠 속에서 홀로 춤을 추는 어린 하루오가 등장한다

빛 속으로라는 제목은 그 어둠 속에서 춤을 추는 하루오에게, 조신인도 일본인도 아닌 하루오 그 자신으로서 춤을 출 수 있는 빛을 상상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굳이 조선인임을 표현하지 않았던 남선생에게 마지막에 하루오가 남선생이죠?’라고 조선인 이름을 불러주면서 자기를 억압하고 있던 현실이 깨지고 빛 속으로 가게 된 것 같은 장면도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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