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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삶'을 읽다.(165번째 글쎄다)

eventhere | 2022.07.23 21:43 | 조회 351








 

165번째 글쎄다 

임솔아 ‘최선의 삶을 읽고 모임




 

 

*자전적인 소설인 것 같은데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좋은 관찰자로서 문장 하나하나를 꾸려나가는 게 인상적이었다. 이 소설의 소재인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겪는 암울한 현실에만 집중하게 되면 별 매력 없는 소설일 수 있는데, 그 상황들을 매력적이고 잘 정돈된 문장들로 담담하게 서술해 주고 있어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내 이야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 본질적으로 갖게 되는 아픔들이 다양한 삶의 모습과 상관없이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 지점이 이 작가가 가진 문장의 힘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결국 나의 이야기처럼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첫 표지를 딱 펼쳤을 때 나오는 왜 나는 같은 악몽을 꿀까를 궁금해하다가 왜 나는 이 악몽을 쓰려고 할까를 궁금해했다. 이 악몽 속에 평생 갇혀 살까 봐 무서웠다. 소설을 완성하고 한 가지를 알게 됐다. 그토록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녔던 악몽은 왜냐고 묻길 바라지 않았다는 사실. 내가 악몽에 시달려온 것이 아니라 악몽이 나의 질문에 시달려 왔다는 사실. 오랜 내 다그침으로부터 내 악몽을 풀어줄 때가 되었다. 나는 나의 악몽에 최선을 다했으니까.’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가 자신의 악몽과도 같은 삶을 살아내고 이제 마무리를 지으려는 시절을 곁에서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등장인물인 소녀들 한 명 한 명이 언어화하지 못한 질문을 가졌고, 그 질문에 어찌할 줄 몰라서 혼란했던 삶을 보냈다. 그리고 독자는 책을 읽으면서 그들에게 대답하고 싶게 하는 것 같다.


 

*나의 자전적인 경험과 맞닿은 측면이 있다. 어릴 때 도심으로 이사를 오면서 그동안의 생활과 달라지는 상황, 그때 겪은 위화감, 인정받지 못하던 느낌이 다시 생각이 났다. , 어렸을 때부터 여한 없이 놀았는데, 소설 속에 노는 모습이 충분히 이해가 됐고, 아이인 소설 속의 인물들이 벗어날 수 없는 악몽에 빠진 모습을 보게 된다. 도대체 내가 악몽을 꾸는 건지, 악몽이 나에게 질문을 계속 던지는지. 끊어지지 않는 굴레 속에 빠진 존재의 모습. 오늘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삶 속에서도 여전히 계속 진행될 수 있는 어떤 탁월한 표현에 가슴이 아렸고, 누구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지만, 그냥 살아내야지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주인공 강이가 소영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을 보는 게 참 힘들었다. 분명히 잘 읽히는 소설인 것 같은데, 캐릭터들을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다. 삶에서도 분명히 이런 관계가 있다. 삶 속에서 끊으려야 끊을 수도 없고 쳇바퀴처럼 돌아가고, 강이 있고 약이 있고 중간에 머무는 사람이 있고……. 인간의 관계들이라는 게 다 비슷하고 모양만 다를 뿐이지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것 같은데, 이렇게 학생이라는 캐릭터로 상정하고 바라보니 어른으로서 괴로웠던 것 같다. 그 시기를 관통한 사람으로서 미성년자의 아이들을 바라보고 흡수한다는 게 그래서 어려웠던 것 같다.


 

*소설 속 인물인 아이들은 언어화하기 힘든 질문을 가졌다면, 이렇게 현실이 힘들 수밖에 없었던 건 그 질문의 답을 자기들 안에서만 구했기에 벗어날 수 없는 미궁 속에 머물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나 또한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 질문하면 명쾌한 답을 들을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없었던 것 같다.



*1여 년 전에 김영하 소설을 읽었을 때의 그 낯섦, 이후 지연수의 소설을 읽었을 때 낯섦, 이제 임솔아의 소설을 읽었을 때. 뭘까, 이게 현대소설이 주는 것인가. 성장이라는 큰 주제인데 여기에 악몽이 섞인 성장이다. 어쨌든 이 성장이라는 것은 굉장히 보편성을 띤다. 다만 우리를 고문하고 불편하게 하는 부분들이 나온다. 이런 악몽 섞인 성장의 과정은 누구나 겪는 거라고 생각을 하면 균형 있게 쓰인 현대소설이다

여기서 보편성은, 어떤 친구는 입시 앞에서 부모와의 갈등, 주변인들과의 갈등 등을 사실적으로 풀어내면서, 주제 의식이 분명해서 너무 좋았다. '눈'이라는 상징. 그다음 '스노우볼'이라는 상징, 그다음에 나오는 '투어'라는 물고기 이 세 가지의 상징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주제 의식이 눈에 띤다. 김현이 얘기한 정신적 고문이 좋은 문학 작품의 전제조건이라면, 사회성을 담보한 정신적 고문도 분명히 이 안에는 발견할 수 있고, 우리 사회의 치부도 엿볼 수 있어서 잘 읽었다.


 

*이 책 읽고 그 양날의 검을 본 듯한 느낌이 있었다. 너무도 장점도 뚜렷했고 그 장점이 또 단점으로도 보였다. 첫 느낌은 굉장한 텐션이었다. 긴장감 10대 가출 소녀들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데서 오는 긴장감, 그리고 무엇보다 그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문장의 힘과 문체, 아마도 이것이 여타 유사한 소재를 다루는 소설과 이 소설을 구별 짓는 가장 큰 변별력이 아닐까. 변별력이야말로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일 거라고 생각이 들었고, 읽으면서 작가가 수없이 퇴고했구나, 그런 고투가 절절하게 엿보였다. 이 책이 작가의 첫 장편 소설인데 앞으로 굉장히 성장하고 대작가로 발전할 수 있는 기본기가 정말 잘 돼 있다. 이유는 작가의 문장력과 문체인데, 긴장으로 가득한 날 선 검처럼 어설프게 읽는 독자의 눈을 단칼에 베어 버릴 것 같은 그런 문장력과 더불어 불편하게 만드는 그 시적인 문장력, 그게 이 소설의 장점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작가의 그 탁월한 문체 때문에 10대 소녀들의 비행담이 줄 수 있는 긴장감에서 조금은 자연스럽지 못한 위악적인 악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이 소설을 읽고 3주가 지났는데 소설의 이강이라는 인물보다는 임솔아라는 작가만이 남아 있다. 그리고 아주 깔끔한 문장, 문체에 대한 인상. 그런데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니, 시점에 대해서 굉장히 불편했고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선택했기에 소설 속의 이강과 임솔아 작가를 도무지 처음부터 끝까지 떼어낼 수가 없었던 것.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 이 문체인데 그 문체가 성장기의 10대 가출 소녀의 이강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건 이강의 탈을 쓴 임솔아의 문체이지. 그래서 다 읽고 나서 이강은 남아 있지 않고 임솔아의 문체만 남은 것이다. 시점을 관찰자 시점을 했다면 작가의 매력적인 문체로도 이강의 의식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고, 현대소설에서 중요한 작가와 인물 사이의 미학적 거리를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이 소설을 왜 읽는가 한참 생각을 했다. 흔히 예전에 한 기행을 후일 영웅담처럼 듣게 되는 것에 불편함이 늘 있었다. 소설의 전반부에서는 병신이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그 꽃들이 모두 정상이 아니고 병신인 채로 된다.’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병신에 대해 얘기를 하지 않겠냐는 기대가 있었다. 그래서 조용히 있는 사람들의 병신적인 모습을 웃어대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하고 읽었는데 그 기대가 조금 어긋나서 그랬던 것 같다. 12페이지 무서운 것에 익숙해지면 무서움은 사라질 줄 알았다. 익숙해질수록 더 진저리쳐지는 무서움도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익숙해질수록 더 진저리치는 무서움'이 등장한다. 그 무서움의 대상이 가족일까, 아니면 자기가 앞으로 나올 꿈에 대한 걸까, 아니면 삶에 대한 걸까.


 

*나는 탁월한 문장은 기술력이라고 생각한다. 몰입할 수 있는 진정성 같은 종류를 느끼고 싶었다. 소설에서 어떠한 진정성을 가진 것이 문장으로 묻힐 때가 있기도 하다. 어떤 경우엔 부재한 진정성을 문장으로 잘 읽히게 만드는 게 작가들의 특징이라고도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 작가가 잘 읽히게 하는 문장력을 가진 능력이 있긴 하지만, 그 능력 다음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 살펴보면, 성장 이야기 끝에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뭘까 계속 고민하게 되었다.



 


 

이 전에는 작품에서 느끼는 감상이 비슷한 부분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서로 다른 생각들이 많이 엿보인다. 왜 그렇게 생각을 했는지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들어보자.

 



 

Q. 10대들의 인위적인 악행이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동의하기가 어려운 게 읍내동과 전민동이라는 신시가지와 구시가지 아이들의 구성 세팅이 이미 돼 있어서 이게 과연 인위적일까? 두 번째는 등장인물의 나이가 16세이다. 가만히 있어도 그냥 폭발할 수 있는 그런 나이라는 부분, 그리고 또 하나는 비행 청소년이지만 어떤 의미로는 보편성이 있다. 내면의 상처들이라든지.


A. 인위적이라는 거 할 때 악을 얘기했다. 위악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그 연장 선상에서 자연스럽지 못한다는 점에서 인위적이라고 언급하게 되었다.


Q. 그건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주인공이 고백하는 문장들이 있다. 자기가 왜 그런지, 왜 이렇게밖에 할 수가 없는지. 또한, 10대는 어떤 합리적인 이유를 댈 수 없는 일탈 같은 걸 하기도 하고, 할 수밖에 없기도 한데 스스로가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 쉽지 않은 시기가 아닐까.


A. 사회적 구도로 두 개의 동이 나오는데 그건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 이유로 일탈이 일어난다는 등장인물의 의식도 그리 드러나 있지 않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상해를 입히는 장면, 그리고 교도소에 가고, 처음부터 끝까지 부모에게 대못을 박으면서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는 부분들. 그런 서사를 가지고 마지막에 최선의 삶이라는 마무리에서 화가 났다.


Q. 소설을 도덕률의 기준으로 읽을 수는 없다는 것과 설사 그것이 작가의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 소설을 읽을 수 있는 예의 있는 독자라면 그건 분리해 주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닐까?


A. 도덕 가지고 따지는 건 전혀 아니다. 그 감정에 충실했는데 그게 자연스럽지 못하고 위악적이라는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어떤 힘이 먼 곳으로 몰아간 것, 그리고 그 소영이라는 인물의 힘에 강렬하게 끌린 것, 그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엄마의 이야기까지 주인공이 평가를 하는데 맨 마지막에 엄마도 그게 최선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이 비록 소설 속의 강이의 판단이라고 하더라도 독자가 전혀 분리가 안 된다고 한다면, 작가는 시점을 다르게 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렇게 끝난 부분을 보면 성장 소설인데 전혀 성장이 없었다고 바라보게 된다.





*나는 탁월한 문장의 제일 중요한 요소가 진정성인 것 같다. 진정성을 해하면서 어떤 멋을 부리는 문장이 탁월한 문장이 아니고. 예를 들면 소리는 들리는데 내용은 들리지 않았다.’라는 부분이나, 중간중간 눈에 대해서도 무서운데 이상하게 그것이 좋은 대상, 내가 너무 좋아하는 대상이면서 무서워하는 대상으로서 눈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스노우볼 나올 때도 맨 끝에 다시 그 이미지를 사용하는데 이런 부분이 정확한 표현으로 여겨졌다.

 


*내가 생각하는 문장력은 쉽게 읽히는 문장, 그러한 문장들로 구성된 이야기 속에서 감탄하게 하는 표현들을 작가의 문장력, 재량이라고 생각을 한다. 이 소설의 문장은 잘 읽힌다. 작가가 시인이기도 해서 만날 수 있는 매력인 것 같다. 그러나 그 문장에 상응하는 내용을 잘 담았는지에는 의문이 있다.


 

*시의 마지막 구절처럼 마지막 행을 기가 막히게 담아낸다. 그 부분에서 평론가 신영철도 체급이 다르다는 표현을 하지 않았을까. 방금 얘기했듯이 좋은 문장은 그 적합함과 더불어서 진실하면 그건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히려 좋은 것들은 한 호흡에 읽히는 것과 상응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읽을 때마다 나를 숨 막히게 하고, 생각하게 만들고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이런 것이 나한테는 훌륭한 작품이고 오래 남는 작품이다. 시인 이성복은 문학은 불편하게 하는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라는 말을 하였다.

이 작품에서 아쉬운 점은 작가와 인물 간 거리의 조정이 실패한 부분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을 생생히 살아남게 하도록 그 인물들에게 맞는 문체와 캐릭터에 맞는 문장을 살려내었고, 지금도 작품 속의 인물들이 생생히 살아있다.


 

*등장인물 3명 중 주인공이 제일 이해가 안 간다. 왜 그러겠냐는 의문을 오늘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되었는데, 주인공 시점으로 얘기하고 있는데 정작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왜 그런 일을 하고, 그런 감정이 드는지에 대한 설명이 드러나지 않아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이 횟집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 부분도 나중에 나오는 투어라는 물고기 이야기를 위해 억지로 설정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다소 억지스러웠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강이라는 캐릭터에 채 연민을 느끼기도 전도 이 인물이 최선을 살았다는 것을 독자로서 납득해야 하나 의문이 먼저 들었다. 이게 최선인가? 강요받는 느낌이 있다.

 


*중간까지 주인공 강이는 그냥 다 좋다고 하는 인물이다. 아름이가 뭘 해도 좋고, 소영이가 뭘 해도 좋고, 소영이와 섹슈얼한 관계일 때도 그냥 받아들인다. 그러다가 소영이와 대립하는 장면이 나온다. 읍내동 사는 주제에.” 이때부터 강이에게 혼동이 왔을 것 같다. 이후 강이는 소영을 피하기 위해 살고 또 싸운다. 식칼을 사고, 가지고 다닌다. 휘두르는 상상을 한다.

강이가 성장을 하지 않은 것 같은 4년을 보낸다. 4년 동안 병신 주제에, 읍내동에 사는 주제에. 라는 말에 갇혀 살았을까. 그러나 소영을 찌르고 난 이후부터 마지막까지의 부분에서 강이 나름의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는 생각이 좀 들었다.


 

*주인공의 일탈에는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변명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이해를 해준다면 맨 마지막에 성장하는 것은 주인공 강이가 아니라 작가 임솔아의 성장이 있다. 그것 때문에 나는 끝까지 시점에 대한 불만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은 작가의 첫 작품이기 때문에 다음 소설에서 작가의 작품이 기대되는 측면이 있다. 작가의 자전적인 이 강렬한 경험을 어떻게 하든지 풀어내지 않고는 소설가로서는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아마 강이라는 인물을 앞세워 마음껏 가보지 못했던 10대를 토해내었고, 이 경험이야말로 이 작가가 할 수 있는 자양분일 것이다. 무궁무진하게 성장할 수 있는 이런 문체를 가진 신진 소설가는 드물다.

 


* 나는 오히려 개연성 있게 성장하는 소설이라면 이 작품을 읽지 않았을 것 같다. 또한, 이 소설의 끝에 가서 성장한 모습을 보았다면 이 소설을 잘못 읽었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그 이유 중에 첫 번째는 이 문체를 이끌어가는 힘 중에서 청소년들이 쓸 법한 어휘들(은어, 비속어)이 나온다. 이 개연성이 약해도 너무 약하고, 마지막 부분보다도 더 약한 부분들 때문에 감동하였다. 어떤 여학생의 일기를 엿보는 듯한 기분으로 읽었는데, 사건이 뭔가 크게 발생할 것 같은데 이렇게 시시하다. 보통의 가정에서 알뜰한 부모님 밑에서 사는 주인공, 나는 그래서 이 소설이 더 성장 소설로 가슴에 와 닿는 것이다. 만약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면 내가 이걸 끝까지 읽었을까!

그리고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 그 상처가 아물어 있었다면 이것이야말로 인위적이지 않나.


 

*강이가 죽을 것 같아.” 이 첫 문장이 전체적인 흐름으로 다가왔다. 정말 죽을 것 같은 돌파구가 없는 모습들이 지속되어서 마음이 아팠다. 나도 역시 그런 틀 속에 갇힌다면 과연 이게 벗어날 수 있을까? 10페이지에 강아지는 너무너무 멍청했다. 너무너무 탐욕스러웠다. 한 가지 생각밖에 할 줄 몰랐다. 그 점이 나랑 똑같아서 내 이름을 붙여주었다.’라는 부분이 나온다. 강이는 4년 동안 성장하지 못하고 식칼을 들고 다니는 것은 한 가지 생각밖에 못 하는 강이의 캐릭터라고 생각된다.


 

* 강이가 소영을 통해서 자아 인식을 하게 되는 계기를 가지게 되는 것 같다. 강이가 소영이에 대한 생각을 표현한 부분이다. 110p 나는 소영이 되고 싶었다. 소영만이 소영을 이길 수 있었다.’ 161p 소영 앞에 무릎을 꿇은 내 모습이 센서 등의 불빛 아래서 가장 선명했다. 소영의 얼굴에 점점이 맺혀 있던 핏방울은 가장 아름다웠다. 소영과 싸웠던 날에 들려왔던 명령의 목소리는 가장 웅장했다. 야릇한 증오가 담겨 있던 소형의 입줄은 나를 가장 무력하게 했다.’ ‘낮잠 속에 묻어 나온 성욕처럼 나를 옭아맸다.’ 그다음 식칼을 들고 소영의 집에 찾아가 번째 두 번에 걸쳐서 소영을 찌르려고 하는 그 장면, 나는 소영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174p 떠나거나 버려지거나 망가뜨리거나 망가지거나 더 나아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더 나빠졌다. 이게 우리의 최선이었다.’

강의가 소영을 바라보는 그것이 소설의 위기이자 절정이며 이 소설의 전부인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로부터 최선만 다하면 인정하겠다는 메시지를 받으며 자랐는데, 어디까지가 최선인지 늘 어려웠다. 어른이 되고 한참 지나서 각자의 최선은 다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이 소설에서 등장인물로서 강이보다 작가 임솔아가 남기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썼다는 것만으로도 이 사람은 최선의 삶이라는 제목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의 이야기가 자전적인 고백이기에, 작가 자신만이 자신에게 건네줄 수 있는 제목이지 않을까.


 

*표지가 많이 와 닿았다.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삐쩍 마르고 이렇게 연약하게. 여자아이가 손에 힘을 주고 그냥 치지도 않고 그냥 주름만 지고. 그냥 겪는 게 요즘의 우리의 삶인데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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