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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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챙이 연못

sinawy20 | 2020.05.19 12:52 | 조회 653
올챙이 연못

20년 전 우리 가족은 전북 김제 이서면 농촌으로 귀촌했다가 1년여 만에 다시 귀경했다. 준비도 철저하지 못했고 모든 면에서 어설펐다. 돌아왔지만 도심 속으로는 못 가고 경계지점인 용인, 성남, 의왕 세 개 시를 에두르고 있는 광교산 골자기 초입에 전세 7천만원 유원지 상가 3층에 살림 짐을 부렸다. 일 년 뒤 둘째 아이 초등학교 졸업하면 철저히 준비해 다시 내려가리라 마음먹고.

하지만 인간사가 어디 마음먹은 대로 되는가. 고기리 옛마을 정에 묶여 18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8년 전 광교산 골자기 초입 유원지에서 차로 10여 분 내려와 또 다른 작은 골자기 전원주택으로 이사왔다. 그동안 이 옛마을에도 개발의 광풍이 불었다. 한 시간에 한 대였던 마을버스가 20분의 한 대로, 마을버스노선도 세 개로 늘었다. 용서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고기리IC까지 생겼다. 고기리에서 강남까지 차로 30분대라니!

이 광교산 골짜기에 작년부터 남판교 아파트단지 건설이 한창이다. 자연히 전셋값이 해마다 치솟아 처음 들어올 때보다 세 배, 네 배나 뛰었다. 8년 전 이웃이라곤 다섯 집 밖에 없었고, 집 옆 골짜기엔 다랑이 논이 있었다, 논 주인에게 한 다랑이를 빌려 2년 동안 벼농사를 짓기도 했었다. 다랑논에 논물을 대기 위해 파놓았던 둠벙에는 물고기도 많아 주변 저수지에서 오리가 수시로 날아왔다. 비 내리는 밤만 되면 개구리 울음소리로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는데. 다랑이 논자리에 전원주택 단지가 들어선 것이다. 마을 입구에는 차단봉을 설치해 ‘산들마을’이라는 푯말까지 세워놓았다. 둠벙이 사라지자 개구리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리도 날아오지 않았다.

우리 집은 마을 끝에 자리해 바로 산골로 이어진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올 봄 어느 밤,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개구리소리가 왁자지껄하게 들려왔다. “둠벙도 매워졌는데 어디서 우는 소릴까?” 개구리 구애소리를 들으며 스르르 잠들었다. 며칠 후 산책길에서 녀석들이 울고 간 자리에서 목 놓아 울어대던 구애의 흔적들을 발견했다. 집 뒤 묫자리 배수로에 빗물이 고여 수십 젤 덩이 속 개구리 알이 깨알같이 박혀있었다. “으~ 귀여운 점들!”

그 후로 아침에 눈을 뜨면 집에서 불과 십여 미터 떨어진 그 점들과 눈맞춤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이 주 쯤 지났을까. 점들이 젤 속을 나와 '작은따옴표들'로 변해있었다. 처음엔 수십 개, 하루 이틀 지나자 수백 개의 작은따옴표들이 무수한 생명을 그 속에 묶어두고 있었다. 며칠 뒤에는 긴 원통모양의 젤에 도롱뇽 알까지 '작은따옴표들'로 둘러싸여있었다. “으~ 귀여운 따옴표들!”

코로나로 인간문명이 멈추자 한층 맑아진 하늘, 구김 없는 햇살과 봄바람에 한층 건조해진 대지. 배수로에 갇힌 물이 하루하루 눈에 띄게 말라갔다. 어쩌나 어쩌나! 안쓰러운 눈맞춤만 하다 돌아선 날들. 그러기를 며칠, 외출하고 돌아와 걱정돼 저녁 때 녀석들에게 갔는데, 이런! 바닥이 거의 드러나 배를 뒤집고 가쁜 숨 몰아쉬고 있는 '마침표 입들'. 서둘러 집 안에서 대야로 물을 담아 날랐다. 그러기를 또 며칠. 안 되겠다 싶어 30미터 고무호수를 마련해 아침 저녁으로 물을 댔다.

그렇게 열흘 정도 주야로 물을 대다가, 이건 뭔가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 뒤 계곡 초입에는 이순신 장군 문중의 덕수 이씨 묘가 하나 있는데, 이 씨 문중에서는 묘지기를 두어 관리하도록 했다. 묘지기 가족은 계곡 초입에 비닐하우스로 집을 지어 십 수 년 동안 살림을 했다. 그러던 중 문중 땅을 전원주택 개발자에게 팔아버리는 바람에 묘지기도 비닐하우스 집을 헐고 이사를 가버렸다. 헐린 집터에는 잡초 무성하고 풀섶에는 버리고 간 몇몇 세간들이 흉물처럼 숨어있었다. 그 속에서 큰 고무 다라를 아침 산책길에 발견하고선 끌고 내려왔다.

“이 놈들, 꿈의 궁전, 그래 수궁을 만들어주마!” 작은따옴표들을 바가지로 떠다 다라에 담고, 진흙 펄에서 버둥거리는 놈들은 손바닥에 담아 옮겼다. 물만 있으면 허전하겠다 싶어, 근처 도랑에 자라는 미나리를 캐어 녀석들이 태어난 배수로 진흙과 함께 퍼서 다라에 심었다. 조약돌 몇 개도 넣어주니, 어림잡아 5, 6백 마리쯤 돼 보이는 올챙이들.

황금빛 아침을 여는 꾀꼬리 소리에 귀를 닦으며 녀석들에게 눈맞춤하러 가는 오월. 이젠 제법 커진 대가리와 꽤 길어진 꼬리를 흔들며 '따옴표들'이 바닥에서 수면으로 부지런히 오르락내리락한다. 중간따옴표 정도로 커진 괄호 안에 녀석들은 무얼 묶으려는 걸까? 그래! 그랬었구나! 2012년 이상권 『우리동네 올챙이 연못』 작품해설 ‘천성산 도롱뇽과 우리 동네 올챙이’에 내가 묶었던 작은따옴표, 중간따옴표. 바로 너희들이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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