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View Article

김수영, 온몸의 시학

sinawy20 | 2016.07.01 19:43 | 조회 1799

김수영 온몸의 시학

 

현대성(modernity) 시학

 

김수영에게 현대성은 새로움이다.

(시인)는 언어를 통해서 자유를 읊고, 또 자유를 산다. 여기에 시의 새로움이 있고, 또 새로움이 문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생활현실이 담겨 있느냐 아니냐의 기준도, 진정한 난해시냐 가짜 난해시냐의 기준도 이 새로움이 있느냐 없느냐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새로움은 자유다. 자유는 새로움이다." <생활현실과 시>

 

김수영에게 새로움이란 다른 사람들의 문화적 코드(서구의 모더니즘)에 무임승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감관과 정신으로 온몸을 던져 새롭게 창조해 내는 것이다. 그건 자유를 향한 시인의 양심의 문제이기도 하다.

 

김수영은 비판의식을 결여한 채로 형식주의에 빠져 있던 당대 한국 모더니즘의 허위와 기만성을 깨닫고 이를 통렬하게 공격한다 (당대 모더니즘의 상징이었던 박인환을 곡마단의 원숭이에 비유하며 허영에 들뜬 전위예술가의 표본으로 비난한다.)

 

김수영은 해방 후의 우리문학을 단지 필터만 갈아 끼운 식민지문학으로 자유 없는 노예의 언어, 지성 없는 무식한 언어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판하며, “우리 문학은 아직도 출발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한탄한다.

 

김수영은 자신의 시력(詩歷)의 대부분을 현대성의 쟁취를 위해 싸웠다. ‘현대성이라는 이념적 가치를 내걸고 자신의 시와 삶, 그리고 한국문학 전체와 한국의 현실 전체를 그 가치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려고 했다.

 

몇 번이고 말하지만 기술의 우열이나 경향 여하가 문제가 아니라 시인의 양심의 문제다. 시의 기술은 양심을 통한 기술인데 작금의 시나 시론에는 양심은 보이지 않고 기술만 보인다. 아니 그들은 양심이 없는 기술만을 구사하는 시를 주지적이고 현대적인 시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사기를 세련된 현대성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지금바로 지금 이 순간에- 해야 할 일은 이 지루한 횡성수설을 그치고, 당신의, 당신의, 당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다. 당신이, 당신이 내 얼굴에 침을 뱉기 전에...., 자아 보아라, 당신도, 당신도, 당신도, 나도 새로운 문학에의 용기가 없다. 이러고서도 정치적 금기에만 다치지 않는 한, 얼마든지 새로운문학을 할 수 있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시여 침을 뱉어라>

 

진정한 시는 다른 무엇보다도 바꿀 수 없는 절대성, 즉 단독성을 가져야만 한다. 시는 오직 자신만의 제스처로 살아가는 데 성공한 사람의 자기표현인 까닭이다.

 

온몸의 시학, 움직임의 수사학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의 형식은 내용에 의지하지 않고, 그 내용은 형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민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 공헌한다. 바로 그처럼 형식은 내용이 되고 내용은 형식이 된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시여, 침을 뱉어라>

 

온몸에 의한 온몸의 이행은 안정되고 확고한 주체의 자기동일성의 여정이 아니라 미결정 상태의 주체의 계속적인 변혁의 여정이다. 시와 의식의 끊임없는 혁신의 과정이다. 김수영에겐 순간의 주체가 있을 뿐 단일하고 확고하며 영속적인 주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창조생활은 유동적인 것이고 발전적인 것이다. 여기에는 순간을 다투는 어떤 윤리가 있다. 이것이 현대의 양심이다.” “시도 시인도 시작하는 것이다. 나도 여러분도 시작하는 것이다. 자유의 과잉을, 혼돈을 시작하는 것이다. 모기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시작하는 것이다. 모기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그것을....”

 

김수영의 시는 의미와 무의미,’ ‘삶과 죽음,’ ‘드러냄과 숨김사이에서 부단하게 움직이면서 다른 무엇에로 이동 중에 있다. ‘움직임, 이행의 시학은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자기발전이 어떻게 시화될 수 있는가에 대한 고투의 흔적이다.

 

<시여 침을 뱉어라>의 부제는 힘으로서의 시의 존재이다. 또한 <생활 현실과 시>에서도 도대체 시라는 것은 그것이 새로운 자유를 행사하는 진정한 시인 경우에는 어디엔가 힘이 맺혀 있는 것이다. 그러한 힘은 초행에 있는 수도 있고, 종행에 있는 수도 있고 중간의 어느 행에 있는 수도 있고 행간에 있는 수도 있다이것이 시의 긴장을 조성하는 것이다. 진정한 시를 식별하는 가장 손쉬운 첩경이 이 힘의 소재를 밝혀내는 일이다.”

 

온몸의 시학이야 말로 김수영이 서구로부터 들어온 그 어떤 문화코드의 껍데기를 빌리지 않고 자신의 온몸으로 자신을 밀고나가면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변혁시켜 창조한 현대성이다. 그건 자유를 향한 시인의 양심이며 새로움을 향한 고투의 결과이다.

 

"나는 시의 형식 문제에 대해서 지극히 등한하다. 나의 경험으로 비춰 볼 때 형식은 '투신(投身)‘만 하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종교적이거나 사상적인 도그마를 시 속에 직수입하고 싶은 충동을 느껴 본 일은 없다....나는 시의 내용에 대해서 고심해 본 일이 없고, 나의 가슴은 언제나 무(), 이 무 위에서 파괴와 창조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앞으로 남은 문제는 어떻게 하면 생활을 더 심화시키는가 하는 것." <시작 노트 2>

 

 

 

설움의 시학

 

김수영 시세계에서 설움이나 비애만큼 복합적인 감정도 드물다. 그것은 한편으로 떨쳐버리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판단과 예지의 한 형식이자 정신이 시적 상태에 이르렀음을 말해주는 김수영 특유의 심리적 반응이다. 즉 마음의 움직임, 감동의 상태에 이르렀음을 말해주는 하나의 은유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그에게 "설운 일이다." 남들과 다르게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 그것은 두렵고도 슬픈 일이다. 그러니 시작(始作)하는 시작(詩作)은 두렵고 슬프다. 하지만 극복해야 할 문제를 정확히 포착했을 때, 온몸으로 그것을 극복해야만 하는 것이 시인의 숙명임을 김수영은 직감한다.

 

그에게 설움이란 세계사적 위치 속에 있는 한국의 서러운 지위이기도 하고, 국가 혹은 집단과 개인 사이에서의 끝없는 투쟁운동이 야기하는 피로의 설움이기도 했다. 그는 설움이 무엇인가를 말하기보다 설움이 어디에 놓여 있는가를 보여준다. 이것이 그의 설움의 수사학이자 시의 방법론이다. 그리하여 김수영의 시세계에서 설움이 없는 삶은 시체와 다름없는 것이다.

 

 

산문시학

 

김수영은 이를테면 시와 행동의 중간쯤에 있는 산문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 참여를 실천해갔다. 산문을 통해 자유와 지성을 절실히 갈구하며 현대성 쟁취를 위한 투쟁을 가속화시켰다. 그의 현대성 쟁취투쟁의 기치는 단연 자유. “우리들은 평온한 노예보다도 위험한 자유를 택한다,” “언론의 창달과 학문의 자유는 이러한 자유로운 비판의 기회가 국가적으로 보장된 나라에서만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이나 예술가와 같은 특수한 사람들은 자유롭게 제작에 종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이 달라져야 할 것인가? 언론자유다. 첫째도 언론자유요, 둘째도 언론자유요, 셋째도 언론자유다. 창작의 자유는 백퍼센트의 언론자유 없이는 도저히 되지 않는다.” “자유가 없는 곳에 무슨 시가 있는가.”

 

그의 정치적 이상은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적인 것이다. 그의 자유를 향한 갈구는 불온성의 옹호에 이를 정도로 격렬했다. “모든 진정한 새로운 문학은 기존의 문학형식에 대해서만 아니라 기성사회의 질서에 대해서도 위협이 된다.” “불온성은 예술과 문화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고 인류의 문화사와 예술사가 바로 이 불온의 수난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김수영 시의 산문성--묘사보다는 서술 혹은 진술 위주로 한 산문성이 두드러진 김수영 시의 특징 때문에 절제된 형식미를 중심으로 시적 완성도를 파악하려는 한국시의 한 관성에 의하면, 그의 작품들 중 상당수는 확실히 완결되어 있다고 하기 어렵다.

 

산문이란 세계의 개진이어서 시의 본질이라 여겨진 고도의 지적 절제나 응축된 수사의 시적 형상화에서 일정 거리 벗어나 있다. 김수영의 산문정신이란 의식의 통제를 벗어난, 혹은 의식의 통제 이전의 정서를 요설, 비약, 과장 등의 어법으로 장황하게 쏟아놓는 것을 말한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시적 논리나 완결조차 무시하는 태도로 이 산문정신을 밀고 나갔다. 왜냐하면 모호성과 우연이야말로 무한대의 혼돈에의 접근을 위한 도구로 유용했던 것이다.

 

한국현대시사에서 이러한 산문정신의 시적 성취는 김수영 문학이 보여준 중요한 미덕의 하나이다.

 

 

의미로서 리듬의 시학

 

김수영 시의 리듬은 일차적으로는 같은 어휘, 같은 구절, 같은 문장의 반복 같은 외부에 드러나는 요소로 만들어진다. 이차적으로는 외부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시 해석 과정에서 시 전체의 맥락과 연결되는 의미 자질, 모티프, 이미지 등의 반복으로 리듬을 형성한다. 또한 같은 의미를 지니는 어떤 부분들이 반복되는 경우, 의미 자질의 반복에 의해 형성되는 리듬도 있다. 같은 모티프나 이미지의 반복으로 이루어지는 리듬도 있다. 이런 경우 시 전체의 의미 맥락을 고려해야만 그 내재적 리듬을 파악할 수 있다.

 

김수영의 시 가운데 해석이나 분석이 어렵거나 불가능해 보이는 시의 대부분은 리듬이 해석의 핵심 장치로 작동된다. 그럴 때 김수영의 언어는 현실모사, 사물지시 기능보다도 리듬구성을 더 중시해 사용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 리듬은 곧 의미단위로 대치된다.

 

리듬에 의해 씌어지는 김수영의 시는 시적인 경험이 따로 있고 그러한 경험에 적합한 표현 양식이 뒤에 온다는 식의 시작법에 정면으로 반대한다.’ 언어들이 차지할 자리를 리듬이 만들고, 이 틀에 맞춰 무의식에 가까운 언어들이 비어 있는 소리 단위에 맞춰 배열된다.

 

 

문학사적 의의

 

김수영 문학은 우리 문학이 구축해 왔던 담론적 대립쌍들 참여/순수, 리얼리즘/모더니즘, 근대/탈근대, 소시민/민중 등의 구도에 대한 근본적인 재해석 코드를 끊임없이 제공해주는 원천이다.

 

김수영은 자본주의적 일상의 구체성을 투시하면서도 그 속에 은폐되어 있는 자기소외와 자기혁명의 가능성을 동시에 사유했다. 근대를 긍정하면서도 근대 이후와 근대극복을 치열하게 고민했던 시인이다. 억압과 해방의 양극단을 지양하여 우리 민족문학이 추구해왔던 해방의 현대성의 실천적 진경을 보여주었다.

 

김수영 문학은 시의 사회학시의 미학이 일치하는 한국의 정신사에 새로운 몸을 만들어놓았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133개(1/7페이지)
문화산책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책과 영화 하늘기차 5751 2005.09.02 16:36
공지 채식주의자를 읽고(66번째 글쎄다... 그냥 꿈이야) 첨부파일 하늘기차 5423 2012.04.10 16:45
131 '엘레나는 알고 있다'를 읽고(182번째 글쎄다)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47 2024.02.02 09:50
130 '빛 속으로'를 읽다.(166번째 글쎄다) 사진 가는 길 346 2023.01.04 20:57
129 '최선의 삶'을 읽다.(165번째 글쎄다) 사진 첨부파일 eventhere 350 2022.07.23 21:43
128 반클라이번의 임군 사진 첨부파일 하늘바람 284 2022.07.09 12:06
127 답글 RE:반클라이번의 임군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97 2022.07.28 06:33
126 8번째 글쓰기 작품들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62 2022.05.02 18:01
125 사랑일기(김광석, 박학기, 하덕규)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00 2022.04.27 07:42
124 장 그르니에 '섬'을 읽다. (163번째 글쎄다) 사진 첨부파일 가는 길 587 2022.04.26 23:59
123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162번째 글쎄다)를 읽고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415 2022.03.13 14:14
122 모바일 가을 사진 첨부파일 [1] 지선 312 2021.10.28 11:19
121 풍경 사진 첨부파일 [1+1] 하늘기차 473 2021.03.24 13:06
120 거리에 핀 시 한송이 글 한 포기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641 2020.11.20 19:20
119 올챙이 연못 첨부파일 sinawy20 648 2020.05.19 12:52
118 순교자(김은국, 문학동네) 글세다, 2019년 11월 11일 사진 첨부파일 곽문환 436 2019.12.23 09:14
117 작가 한강의 뉴욕타임스 기고문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712 2017.10.11 12:09
116 文學은 1대1로 대결하는 예술… 떼거리로 하는 게 아니다(마루야마 겐지)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995 2017.08.19 13:30
115 택시운전사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121 2017.08.18 13:19
114 부끄러움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815 2017.02.11 14:55
113 대형서점엔 없고 독립서점에 있는 것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688 2016.09.04 07:08
112 여름 제사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833 2016.08.28 1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