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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망각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하늘기차 | 2015.07.08 17:37 | 조회 1284



                                나는 망각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고. . .

   이 전에 읽었던 어떤 소설 보다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몇 시간 밖에 안 걸린 것 같다. 살인자는 알츠하이머, 즉 기억상실증에 걸린 70세 노인이다. 16세에 시작해 30년의 연쇄살인 행각을 멈춘지 25년이 흘렀다. 이렇게 빨리 읽히다니. . . 근데 책의 마지막(119)에서 팔굽혀 펴기를 100회하며 박주태를 죽이기 위한 체력 단련을 하면서 이야기는 반전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온 몸이 뻐근하고, 손과 팔에 상처가 나 있고, 방바닥에 모래가 밟힌다. 지난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70살 주인공 김병수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딸 은희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행동을 확인하기 위해 수시로 녹음해 두었던 녹음기를 틀어 보았는데, 아무 것도 녹음되어 있지 않다. 혹 박주태를 죽인 것은 아닌가?  T.V를 보고, 동네를 돌아보아도, 혹여나 살인을 벌였을 법한 흔적은 없다. 근데 들랄날락하는 동네 개 누렁이가 마당을 파 헤치더니 거기서 허여멀건 여자의 손이 나온다.

   25년 전 살해한 문화센타에서 사무보는 여자의 딸 은희를 지금 껏 키어 왔는데, 박주태가 딸 은희를 죽이려 한다. 주인공은 딸 은희를 보호하기 위해 먼저 박주태를 죽이려고 하는데, 박주태의 주소도, 전화번호도,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근데 그렇게 은희가 들어오지 않은 다음 날, 방 바닥에 모래가 밟히고, 마당에서 묻혀있던 손이 발견되며, 또한 냉장고에서 비닐 봉투에 담겨있는 손이 보인다. 아! 은희의 손 인 것 같다. 설마, 내가! 아니 박주태가 살해하고 몰래 냉장고에 집어 넣은 것인가? 신고해야지.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들이 들이닥친다. 그런데 그 뒤에 박주태가 있다. “저 사람이 범인이요!” 경찰들이 웃는다. 이 사람은 경찰입니다. “경찰도 살인할 수 있지!” 헛소리가 된다. 영장을 보이며 가택수색을 하는데, 마당에서 아이의 유골이 나온다. “내 딸을 죽인건 박주태입니다.” 젊은 형사가 더 이상 못 참겠다며
   “아저씨, 김은희 씨는 아저씨 딸이 아니라 재가 요양보호사 잖아요”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주인공 김병수는 16살 때에 엄마를 폭행하는 아빠를 베게로 입을 틀어막아 살해 한 이 후 45살이 되는 동안 근 30년 연쇄살인을 한 번도 들키지 않고 진행시켰다. 그가 연쇄살인을 하게된 동기는 더 완벽한 쾌감이 가능하리라는 희망에서였다. 살인을 멈춘 것은 그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p7) 바로 은희 엄마의 살인이 그렇게 아무 쾌감 없는 살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암매장 후 교통사고가 났고, 뇌 수술 후 기억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처음, 이 책을 읽고 나서 느낀 소감은 굉장히 불쾌했다. 속은 기분도 들고, 그렇게 속도감 있게 독자들을 집중시켰는데, 나중에 반전이 일어나는데, 그러니까 속도감 있게 책을 읽었지만, 그 이야기 속에 툭 툭 던지는 코드들을 연결시켜 보려고 애를 쓰며 마지막 까지 읽어내려 간 순간, 은희, 박주태, 그리고 안형사에대한 그 모든 것들이 다 70먹은 알츠하이머 병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연쇄살인범인 초로의 김병수의 기억의 혼란에서 왔다는 것이다. 그 순간 독자인 나로서는 스피드 있게 책을 읽어 나가면서, 그래도 저자가 계속 들먹거리는 오딧세이, 니이체, 반야심경, 죄와 벌의 한 사람 죽이는 것은 죄인이고, 전쟁을 일으키는 살인자는 영웅이라는 등의 코드를 연관지어보려고 해 보았으나, 전혀 연관성이 없는 것이다.

   근데 장세정님이 쿨하게 작가는 아마 그것을 원했을 걸요 한다. 기억 못하는 주인공을 온전한 정신을 가진 독자가 쫓아가는 구도는 계속 난감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자 우리 글쎄다의 ‘길안내자’인 박경장님께서 미국의 헨리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에 사용된 기법을 소개해 주었는데, 독자들로 하여금 ‘모호성’(ambiguity)’에 빠지게 하는데,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관과 계급의식을 주인공 가정교사의 ‘타락한 여성’과 ‘천사같은 여성’의 양면을 통해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 느낌이 온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살인범이 기억을 되찿으려고 애쓰는 과정에 우리 독자는 빠져들었고, 그러니까 낚인 것이다. 주인공의 혼돈 속에 독자들도 같이 빠져들어간 것이다.
    “혼돈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p135>
이렇게 몰입하게 도와주는 것이 뜬 금 없이 등장하는 발췌문들이다. <p62>
   “혼돈을 오랫 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혼돈이 당신을 쳐다본다”-니체.
또 오딧세이를 인용하여 고향으로 그러니까 과거로 돌아가려 사투하는 과정<싸이렌,  칼립소>, 그리고 오이디프스를 등장시켜 자신과 다른 살인의 과정을 이야기한다. 또 오셀로도 등장시킨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평행 우주론 까지 등장시킨다.

   이 많은 코드들을 어떻게 작품 속에 녹아내리게 할 수 있을까? 마치 그물망 처럼, 잘짜여진 옷감처럼 윤기나게 말이다. 근데 거칠며 군데 군데 실밥이 튀어나온 것이 보이는 것 같다. 마지막 인용하는 반야심경은 전혀 아닌 것 같다. 모든 것을 공으로 돌리는데, 그동안 알츠하이머에 걸린 주인공이 녹음을 하면서 까지 치열하게 현재를 과거와 미래와 연결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던 진정성은 온데 간데 없다. 공이요, 무라고 하는 암시가  전혀 없는 것 같다.

   중간에 어느 소설을 인용하면서 노 작가가 강변을 산책 중에 한 젊은이를 만나 벤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중에 돌아보니 강변에서 만난 그 젊은이가 바로 자신이었음을 깨달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이 이야기는 자기가 죽이려 하는 박주태가 사실은 본인의 젊었을 때의 모습이 아닌가? 그리고 딸 은희도 함께 아빠를 살해한, 그래서 차라리 자기 혼자 살인을 했으면 보다 깨끗한 살인이었을텐데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때 아버지의 발을 동생 영숙이가 붙잡았는데, 그 때 나이가 열 세 살이다. 은희는 동생 영숙이를 투영하고 있지 않나? 은희에대한 애뜻함은 바로 엄마와 여동생 영숙에대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반전으로 다 뒤집어진 것이다. 혼돈이다.

  박주태가 타고 다녔다는 집차와 접촉사고를 일으키는 장면이 있다. 차 지붕에 서치라이트를 달고, 범퍼 위에 안개등을 단 개조한 차량 이었는데, 나중에 반전에서 박주태는 자기는 아반테를 타고 다닌다고 하는 것을 보면 서치라이트가 번쩍번쩍하는 것이 아마도 주인공이 암매장하고 달아나다가 교통사고를 일으킬 때의 경찰차의 무의식적인 투영(이 용어가 심리적으로 맞는지 모르겠다. 혼돈이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아버지가 죽은 나이가 45세이고, 자신이 기억력을 잃기 시작한 나이가 45세라고 하며, 자신이 죽인 아버지를 자기 안에 투영시킨다. 그러니까 지킬박사와 하이드, 미녀와 야수, 콩쥐 팥쥐 같은 이중적인 인격의 투영 등 다양한 장치들이 이어지는데, 연관이 잘 되지 않는다.  

   이해가 안되는 것 중의 하나가 치매에걸린 노인네가 어떻게 그 많은 글들을 인용할 수 있는가 라는 문제제기이다. 중증 치매에 걸린 사람들이 보통 지금 현재의 자기정체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주인공은 자기 정체성을 무수히 많은 망각 속에서 잘도 찿아간다. 이 상황은 그냥 무시하고 읽어야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혼돈이다.

   주인공은 기억을 잊지 않으려고 녹음기를 구입한다. 그리고 미래기억을 한다. 그러니까 30분 후에 약을 먹는다는 것을 녹음하여 미래에 할 일을 잊지 않으려 한다.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야말로 살아있다는 것의 증거이다. 그런데 주인공은 과거는 참 잘 기억한다. 자신이 살해한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해 내며 산다. 또 엄마가 자기를 목욕시킬 때 고추를 잡아 뺄 때 엉덩이가 왜 아펐었는지를 회상한다. . .

   세월이 흐르고 재판이 진행된다. 근데 주인공은 죄책감이 없다. 죄책감이 없으니 무슨 형벌인들 두려울 것이며, 그에게 벌이 되겠는가? 그런데 한 가지 벌이 있다. 사람들은 주인공 김병수에게 과거의 일은 잘 기억하면서, 최근에 저지른 일은 기억하지 못하냐고 묻는다. 그게 말이되는가, 예전 일은 공소시효가 지나서 자백하고, 최근에 일은 처벌받을까봐 털어놓지 안는 것 아니냐고<P144> 그러자 

 
        “사람들은 모른다. 바로 지금 내가 처벌받고 있다는 것을. 신은 이
        미 나에게 어떤 벌을 내릴지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나는 망각 속으
        로 걸어들어간다.”
고 대답한다.

   선과 악, 죄와 벌, 삶과 죽음, 행복과 불행. . . 그 모든 것이 망각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망각은 70 노인 김병수에게 죽음이다. 그에게 유일한 생명은 죄책감 없는 살인이다. 그러면서 반야심경을 이야기 한다. 모든 것이 공이라 한다.

   그러면 <망각>이 <공>에 흡입이 되는가? <공>이 <망각>에 흡입이 되는가? 흐, 흐, 흐  혼돈이다.

   그런데 작가는 <살인자의 기억법>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혼돈인가? 공인가? 망각인가? 그런데 주인공 김병수는 과거는 잘 기억하면서 현재의 일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혹 작가는 오늘 이 시대를 <알츠하이머>에 걸린 시대로 보고 있지는 않는지? 세월호를 잊으려하는 지금의 사람들을 보며, 오래된 과거의 광복 해방, 3,1절, 4.19, 5.18의 혁명의 투쟁은 잘 기억해 기념식을 치르면서, 왜 지금 우리에게 다가오는 불의와 부정에대해서, 그러니까 4대강, 강정마을, 부정선거, 사드배치, 미군부내 탄저균, 세월호, 쌍차, 용산. . .등 최근의 일들을 기억하려 하지 않는지? 주인공 김병수는 오늘 이 시대의 투영인가? 좀 오버했나? 오버라도 하지 않으면 이 책의 코드들이 작가로서는 치밀하게 기획하여 다양한 장치들을 설치하였겠지만 마음 속에 와 닿지가 않는다.

   근데 왜 이 주인공이 잔인한 연쇄 살인범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그리고 마지막에 생명은 기억을 통해 확인한다, 존재증명한다는 이야기를 하며, 인간은 기억, 기억력이 좋아야 인정을 받는다고 할 때, 이상권님이 뼈 있는 말 한마디를 하신다. 우리가 보통 닭대가리 라고 하는데, 닭의 생명력은 머리, 즉 기억력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상권님 말이 맞다. 생명이 어디 기억에서 오는가? 이 책을 읽다 보니 잠시 ‘혼돈’에 빠졌다.

   또 이상권님의 이야기. 요즈음 몇 권의 책을 읽는 중에 살인과 관련하여 너무 잔인하게 쓴다는 것이다. 그렇게 연쇄, 토막 살인이 그냥 기록되는 것을 보며 좀 섬뜻하고, 지금의 시대가 이렇게 폭력적인데. . . 하며 안타까워한다. 옛 날 개울에서 도랑치고, 가재 잡고, 투망으로 고기잡아 매운탕 끌여 먹고, 느티나무 아래에서 한 잠 자구 나면 정신이 맑아지고. . . 뭐 그런 기억들 되 살려, 서로 나누고, 배려하고 뭐 그럴 수 없나. 되 돌아갈 수 없는 것인가. 그런데 왜 우리는 또 자꾸 되 돌아 가려구만 하나, 마치 주인공 처럼. 여기가 바로 거기인데. 그래! 여기가 거기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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