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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다시 읽기

하늘기차 | 2014.11.12 14:56 | 조회 2675

 【권두 대담】


                                                 김수영 다시 읽기

 

                                                                                                    <푸른사상>, 2014년 겨울호.

일시 : 2014년 9월 27일 저녁 8시

장소 : 화이트쇼콜라(성신여대 앞 카페)

참석자 : 김명인(문학평론가, 인하대 교수), 이영준(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김응교(시인, 숙명여대 교수), 맹문재(시인, 사회)

 

 

 맹문재 : 안녕하세요. 김수영에 관한 탁월한 연구 업적을 가진 세 분의 선배님을 모시고 말씀을 들을 수 있어 기쁩니다. 잘 알다시피 김수영은 격랑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헤쳐나간 시인입니다. 어느덧 시인이 타계한 지 46년이 되었는데, 아직 시인이 추구한 사회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김수영 시인의 삶과 시세계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김명인 선배님의 말씀을 들어보도록 하지요. 선배님께서는 김수영에 관한 연구들을 엮은 『살아 있는 김수영』(창비, 2005)이며 『김수영, 근대를 향한 모험』(소명, 2006)을 간행했을 뿐만 아니라, 김수영 시인 타계 40주년(2008)을 맞이하여 『창작과비평』(여름호)에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시 15편과 일기 30여 편을 공개했습니다. 이렇게 귀중한 자료들을 어떻게 발굴할 수 있었는지요?

김명인 : 제가 직접 발굴한 것이 아니고 우연한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어느 날 평소 친분이 있던 연세대 중문학과 유중하 교수가 김수영 시인의 부인 김현경 여사가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는데 만나보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해왔어요. 연세도 많으신데 자료 정리가 안 되어 걱정을 하신다는 거지요. 유중하 교수와 김현경 여사는 멀지 않은 인척 관계더라구요. 그래서 김현경 여사를 만나 뵙고 김수영 시인이 남긴 상당 분량의 자료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를 김수영 시인 타계 40주년에 맞추어 『창작과비평』에 공개를 한 것이지요. 아무튼 덕분에 김현경 여사가 가지고 있는 자료들은 모두 살펴보았는데, 김수영 시인을 연구하고 좋아하는 후배 문인으로서 영광이었지요.

맹문재 : 김수영 시인의 동생인 김수명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자료들도 보았는지요?

김명인 : 김수명 선생님은 그동안 만난 적이 없으니 그럴 기회가 없었지요. 오늘 ‘김수영과 신동엽 그리고 한국 시문학’ 공동 학술심포지엄의 자리에서 처음 만났어요.

이영준 : 『김수영 전집』(민음사)에 실린 원고는 모두 김수명 선생님이 보관하고 계시던 것들입니다. 민음사판 전집을 간행하는 일에 김현경 여사님은 관여를 하지 않았어요. 김수영 시인이 타계한 뒤 원고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두고 가족회의가 있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고의 출판에 관한 일은 편집자였던 김수명 선생님이 맡기로 결정된 것이었구요. 김현경 여사님은 김수영 시인의 일기 등 전집에 포함되지 않은 나머지 자료를 소장하고 계셨던 것이고요.

김수영 시인이 타계한 뒤 백낙청 선생님이 대부분의 원고를 일람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중 일부를 1968년『창작과비평』(가을호)에 실었지요. 그 뒤 신구문화사에서 김수영 전집을 간행하려고 했답니다. 잡지에 광고까지 나왔어요. 그런데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전집이 나오지는 못했습니다. 김수명 선생님에 의하면 조연현 선생님이 현대문학사에서 내자고 했었고 조판도 했지만 역시 잘 안 되어 나중에 민음사에서 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전집을 간행한 것이 아니었고 선집으로 거대한 뿌리를 간행했는데 예상 외로 독자들의 반응이 좋아서 달의 행로를 밟을지라도가 나왔고 뒤이어 전집을 간행한 것이랍니다. 그래서 김수영문학상도 제정하게 되었지요. 김수영문학상의 상금은 유족의 뜻에 따라 전집의 인세로 마련하기로 했는데, 제가 편집주간으로 일할 때 인세가 충분하지 않아 가족들이 상금을 보태기도 하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맹문재 : 이영준 선배님께서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김수영의 연구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으셨을 뿐만 아니라 『김수영 육필시고 전집』(민음사, 2009)을 엮으신 경력에서 보듯이 자타가 공인하는 김수영 전공자입니다. 저는 육필시 전집이 나오자마자 구입했는데, 730쪽이 넘는 분량과 특이한 판형과 15만원이나 되는 책가격 등 여러 모로 흥미와 감탄을 가졌습니다. 이 책을 기획한 의도를 들을 수 있을까요?

이영준 : 김수영 시인의 육필 원고를 처음 보았을 때 충격이 컸습니다. 감격스러웠지요. 그래서 저의 감격을 다른 연구자들과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활자로 본 김수영의 작품과 원고의 차이는 김수영의 문학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결정적이라는 생각도 있었구요. 가령 김수영 시인의 시 행갈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김수영 시인의 시는 동시대의 다른 시인들과 다르게 행이 긴 것이 꽤 있어요. 그런데 그것이 시인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 원고지가 꽉 차니까 행갈이를 한 것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습니다. 당시에는 일본식 400자 원고지나 200자 원고지로 썼지요. 뿐만 아니라 띄어쓰기 문제도 있어요. 띄어쓰기가 맞춤법 규정에 따른 것이 아니라 호흡 단위로, 즉 문맥 덩어리로 나뉘어져 있는데, 낭독용인 셈이지요. 실제로 1950년대까지 시인들은 술집이나 다방에서 낭독을 하곤 했는데, 지금의 묵독 분위기와는 달랐던 것 같습니다. 거기다 김수영 시인은 한때 연극을 한 사람이라 시의 운율 문제가 간단하지 않습니다. 행의 길이와 낭독의 호흡에 관한 연구가 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운율에 관한 고려가 없다면 행갈이를 할 필요가 없지요. 현대시에서 행갈이를 시각적 고려에서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운율 문제에 관한 척도는 아직도 없지 않나 싶은데 연구되어야 할 분야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육필시고는 숙고의 대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김수영의 시에서 어떤 작품을 최종본으로 삼을 것인가 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김수영 시인의 원고와 지면에 발표된 원고가 다른 경우가 많아요. 가령 원본에는 마침표가 없는데, 발표된 작품에는 있는 경우가 그렇지요. 편집이나 인쇄인들이 손을 댄 것인지, 시인이 새로 수정한 것인지 고찰해봐야지요. 이밖에 한자 표기, 외래어 표기 등도 원본을 보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오오무라 마스오 등이 펴낸 『사진판 윤동주 자필시고 전집』을 보고 김수영 시인의 육필시고도 책으로 만들어야 하겠다는 용기를 내게 되었습니다. 

이밖에 김수영 시인의 육필 원고를 책으로 묶는 것은 분실에 대한 대안도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한번은 김수명 선생님의 집에 불이 나서 김수영 시인의 원고를 가지고 뛰쳐나온 적이 있대요. 이와 같은 경우를 대비해 육필 원고를 사진으로 찍어 책으로 만들어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맹문재 : 잘 들었습니다. 선배님께서는 새로운 『김수영 전집』을 간행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간행 계획이 어떤지요? 이번 전집이 기존의 전집과 다른 점이나 보충되는 점이 무엇인지요?

이영준 : 우선 누락된 작품을 보충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김명인 선생께서 발굴해 『창작과비평』에 공개한 작품들이나 『푸른사상』(여름호)에 수록했던 작품들과 같이 기존의 전집에서 빠진 것들을 최대한 모아야겠지요. 그동안 발표되었는데도 전집에 누락된 작품들이 꽤 많아요. 그런데 제목이 없는 채로 완성되지 않은 작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했는데, 부록으로 수록할 생각입니다. 한자 표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고민이에요. 원문 그대로 살려야 할지, 괄호 처리를 해야 할지, 선별해서 해야 할지 등 좀 더 생각해봐야지요. 수록 순서도 좀 바뀔 것이구요. 조만간 원고를 출판사에 넘길 생각입니다.  

김응교 : 한자를 넣어 의미를 정확하게 강조한 시인은 윤동주와 김수영이라고 생각해요. 최대한 한자를 살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맹문재 : 김응교 선배님께서는 근래에 김수영 연구를 가장 열정적으로 추구하고 있지요. ‘김수영 연구회’를 결성해서 한 달에 한 번 논문 발표를 하고 있는데, 대단한 열정이지요. 저는 뜻하지 않은 일들이 겹쳐 참석하지 못하고 있는데, 앞으로 열심히 나가 공부할게요. ‘김수영 연구회’를 결성한 동기나 의도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김응교 : 제가 만든 것이 아니라 그전부터 연구자들 사이에서 필요성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김명인, 이영준 두 분께 연락을 드렸는데, 흔쾌히 동의하셔서 지금 운영되고 있어요. 지난 5월 17일 집담회가 처음 열렸어요. 12명이 참석했고, 30여 명이 참여 의사를 전달해왔어요. 그 후 연구자들이 자신의 관심 분야를 돌아가면서 발표하고 있어요. 오늘(9월 27일)은 김수영 신동엽 공동 학술심포지엄을 김수영문학관에서 가졌지요. 앞으로 정기적인 논문 발표는 물론 원전 강독, 시민 강좌, 김수영 평전 작업 등을 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오오무라 마스오 등이 펴낸 『사진판 윤동주 자필시고 전집』(민음사, 1999)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윤동주의 「서시」가 원본에는 제목이 없어요. 원본을 제대로 확인 안 하고 확정된 정본(定本)은 엉터리였어요. 그러다보니 썩은 생선을 요리한 격으로, 정본이 아닌 시로 연구한 많은 윤동주 관련 논문들이 폐기될 상황이에요. 이영준 교수님이 엮어낸 『김수영 육필시고 전집』(민음사, 2009)을 봤을 때도 비슷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전집을 보고 김수영 연구는 혼자가 아니라 공동 연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각자 자기 시각에서의 김수영 연구 발표를 한 번씩 하고 나서는 원본 실증주의에 입각한 육필시고를 꼼꼼히 검토하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명인 : 다시 말해 김수영에 관한 협업적 연구 방식이 필요한 것이지요. 지금까지 김수영 연구가 너무 산발적으로 수행되어 같은 연구를 반복해서 하는 등 불필요한 낭비가 많았어요. 그러므로 김수영 연구의 공유가 필요해요. 연구사 정리도 필요하고, 난해한 시에 대한 보다 설득력 있는 해석도 필요하고, 김수영 시어 사전도 필요해요. ‘김수영 연구회’의 역할이 중요하지요.

이영준 : 앞으로 김수영 연구는 김수영 식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시 몇 편을 외국 이론에 끼워 맞추어 연구하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어요. 김수영의 시는 우리 현실에서 온몸으로 밀어붙이며 쓴 것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연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의 문화적 맥락을 참조하면서 김수영 전집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은 뒤에 논문을 써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김수영 시가 발표된 신문 지면을 보면서 김수영의 시를 읽으면 아주 다른 세계에서 쓰인 작품으로 읽힙니다. 탈고 날짜가 원고에 적힌 것이 지시하는 바가 바로 그런 독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외국 이론이 우리에게는 추상적인 것이지만 그들에게는 자생적인 것이고 절실한 것이에요. 김수영의 시는 한국 사회와 문학을 정직하게 맨몸으로 부딪쳐 나온 작품이니까 내적인 일이관지가 철저합니다. 난해한 작품이 많은데 그걸 피하지 말고 연구자도 온몸으로 덤벼서 그걸 통째로 뚫고나가는 구멍을 발견하게 된 때에야  논문으로 썼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김수영 시어 사전』에는 “꽃” 같은 보통명사가 빠져 있는데, 주제에 관한 관심이 부족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꽃”이 김수영의 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인데 말입니다. 김수영의 생애도 아직 미지의 영역이 많습니다. 한국전쟁기의 행적은 이제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그 이전은 아직 깜깜합니다. 평전을 쓰셨던 최하림 선생님이 작고하기 직전에 찾아뵙고 평전을 쓰시면서 아쉬웠던 것이 무엇인지 여쭈어본 적이 있습니다. 최하림 선생님은 김수영 시인이 동경과 만주에서 무엇을 했는지 알고 싶었으나 방법이 없었다고 아쉬워하셨습니다.

김응교 :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얼마 전에 김수영의 시 「미인」에 관한 연구를 찾아보았는데, 깊이를 가진 논문이 한 편도 없었어요. 한 편의 시도 꼼꼼하게 연구하는 것이 필요해요. 그래서 김수영 연구사를 검토해 보면 두 가지 문제점이 큰 것 같습니다. 첫째는 4․19를 기점으로 전과 후를 나누는 고정된 구분이 그렇고요, 둘째는 특정 시에 편중해서 해석하는 경향입니다. 연구되지 않고 있는 시까지 넓게 그리고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맹문재 : 김수영 시인이 선린상고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성북고등 예비학교를 다닌 뒤 동경상대에 시험을 보았는데 합격하지 못해 미즈시니 하루키 연극연구소에 들어가 연출 공부를 하다가 징용을 피해 서울을 거쳐 만주로 갔고, 그곳에서 목재공장에 취직해 일을 하면서 연극운동을 했다고 김현경 여사님께 들은 적이 있는데, 좀 더 확인해보겠습니다.

다음으로 김수영의 시세계를 한마디로 규명하기는 어렵겠지만, 가장 관심을 가졌던 면이 무엇인지, 다시 말해 주제 의식은 무엇이었는지 들어보고 싶네요.

김명인 : 한국적 모더니티를 위한 고투, 다시 말해 한국적 근대성을 추구하기 위한 고투라고 볼 수 있지요. 한국적 근대성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복잡한 것이지만 김수영 시인은 이를 자기 온 생애를 던져 추구했어요. 우리 역시 여전히 한국적 근대성의 확인과 추구, 그리고 나아가 그 극복이라는 문제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김수영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에요. 김수영 시인이 고민한 많은 문제들, 이를테면 언론자유의 억압, 남북분단, 전통의 단절과 계승, 각종의 후진성 등의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아니겠어요?

이영준 : 김명인 선생님의 의견에 동감입니다. 한국인들이 자신의 세계를 상상하는 근대적 주체성을 표현하는 언어, 김수영 식으로 말하자면 언어의 주권 회복이 김수영의 평생 주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직 노예의 언어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 전에 없었던 세계가 펼쳐지는 충격을 주지 못하면 시가 아니다, 라는 김수영의 발언은 시의 주권 회복을 요청하는 말로 지금 시를 쓰는 사람들에게도 고통스럽게 살아 있는 말이 아닌가 합니다. 아직도 김수영을 예외적인 시인으로 보는 경우가 있는데, 김수영 시인이 1957년, 한국전쟁 후에 시인들이 모여 처음 제정한 제1회 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신문 기사를 보면 서정주 유치환 신석정 김현승 등 내로라하는 시인들과 경쟁해서 받은 것입니다. 물론 김현승 시인이 선배들을 대신해서 받을 수 없다고 거부해 차점자인 김수영이 받은 것이지만, 시집도 한 권 없는 시인이 받았으니까 그의 위치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지요. 김수영 시인은 4․19혁명 이전에도 이미 중요한 시인이었던 겁니다. 다시 말해 김수영 시인은 한국적 모더니티를 최전선에서 추구하고 있었고 서정주를 비롯해 동시대의 시인들은 김수영을 의식하고 시를 썼다고 생각합니다. 20세기의 현실을 온몸으로 감당하면서 시를 쓴 김수영의 시정신을 이어받은 오늘의 시인이 누구인지 가늠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김명인 : 소위 창비나 문지 계열의 시인들이 김수영을 양분해서 가져갔을 뿐이에요. 가령 김지하나 조태일 등은 김수영의 정치적인 면을 가져갔고, 황동규나 정현종이나 오규원 등은 김수영의 언어를 가져갔어요. 어느 누구도 김수영의 양면을 가지지 못한 것이지요.

김응교 : 저는 김수영 시인의 시세계는 한마디로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사랑의 폭이 굉장히 크지요. 한 여인에 대한 사랑도 있지만, 그것만이 김수영의 사랑이 아니지요. 가령 “삶은 계란의 껍질이/벗겨지듯/묵은 사랑이/벗겨질 때/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라는 「파밭가에서」(1959)에 나오는 “묵은 사랑”은 ‘집착’으로 바꾸어 읽을 수 있어요. 또 “여자는 집중된 동물”(「여자」, 1963)이라고 할 때 설움을 이겨내는 사랑의 힘을 느낄 수 있지요.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라며 “번개처럼/번개처럼/금이 간 너의 얼굴”(「사랑」, 1961)을 사랑하는 태도도 특이하죠.

김수영의 시에서 나오는 사랑의 대상은 우선 특정인으로 생각할 수 있겠어요. 아내 김현경 씨를 연모하는 연애시로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둘째는 사랑하는 대상으로 조국이니 민주주의로 읽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연애시나 참여시 이전에 김수영의 무의식에 어떤 힘이 사랑을 역동시키고 있느냐가 중요하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김수영의 사랑은 “죽음이 없으면 사랑이 없고 사랑이 없으면 죽음이 없다”(「나의 연애시」)는 고백처럼, ‘사랑 곧 죽음’이기도 하거니와 “그들의 생명을, 그들의 생명만을 사랑하고 싶다”(윗글)는 고백처럼 ‘사랑 곧 생명’이기도 해요. 김수영에게 사랑은 곧 죽음이면서 동시에 사랑입니다. 죽음의 극한에까지 이르는 절실한 생명 그 자체가 사랑인 것이죠. 그 사랑은 윤동주가 "모두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서시」)라고 했던 사랑과도 가까운 거리에 있을 것 같습니다. 죽어가는 극한의 것을 사랑하는 사랑 말입니다.

맹문재 : 김명인 선배님께서 발굴한 작품 중에서 「김일성 만세」(1960)는 단연 주목되는 것이지요. 이 작품은 4․19혁명이 일어난 뒤인 10월 6일 탈고했지만, 이념 문제 때문에 발표하지 못했어요. 선배님께서는 김수영 시인이 이 작품을 쓴 의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김명인 : 4․19혁명으로 고무되어 한 번 갈 때까지 가본 것이지요. 시 제목을 「잠꼬대」로 고치기도 했지만 끝내 발표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 작품은 김일성 만세를 노래한 것이 아니고 언론의 자유를 추구한 것이라는 점을 인지할 필요가 있어요. 시가 없는 질서보다 시가 있는 무질서가 필요하다고 본 김수영은 이 시를 한국 사회라는 정체된 호수 속에 던져 넣음으로써 한국 사회의 정신적 문화적 내성을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에게는 이 시가 공개적으로 게재될 수 있는가 여부가 곧 한국 사회의 건강성을 확인하는 실험이었는데 결국 혁명 직후라는 상황에서도 이 시를 게재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 대해 큰 실망을 하게 됩니다.

맹문재 : 김수영의 소설 「의용군」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점이 많아요. 비록 미완성의 작품이기는 하지만 김수영 시인의 이념을 읽을 수 있잖아요. 김수영 시인이 의용군에 납치되었다기보다는 자의적으로 행동한 것으로 볼 수는 없을까요?

김명인 : 자원했다고 볼 수도 있지요. 그 사실을 발표하지는 않더라도 소설로 정리해나간 것이지요. 김수영 시인은 임화에 경도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환상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피난도 안 가고 의용군에 지원한 것이지요. 그런데 직접 북한에 올라가보고는 바로 실망했던 것 같습니다. 한국적 상황에서 제대로 된 사회주의 사회를 이루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것이지요.

이영준 : 언젠가 고은 선생님은 눈이 커다란 김수영 시인은 겁이 많아서 생존해 있었더라도 반정부 투쟁으로 감옥은 못 갔을 것이라고 사석에서 농담으로 말했어요. 한국전쟁 중 반 강제로 의용군 체험은 했지만 공산주의자는 아니었지요. 그렇지만 거짓말은 안 했어요. 가령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김수영 시인이 의용군에 나간 사실을 조사받으면서 당신은 빨갱이였군요 등으로 질문을 받았지만 아니라고 대답하지 않았어요. 양심상 그렇게 말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전향서 성격의 글을 쓰기를 주위에서 권유받았지만 쓰지 않았어요. 거짓말을 조금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생각하면 김수영은 참으로 위대한 인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사창가에 다녀온 것을 숨김없이 작품으로 쓸 수 있었던 문학인은 한국문학사에서 김수영이 처음이지요. 김수영은 자신의 시 정신이 세계와 전면적으로 대응한다고 생각했어요. 욕을 포함한 일상어가 시 속에 들어올 수 있게 된 것도 김수영 시에서 처음 나타난 것인데, 자신의 일상은 물론이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체를 온몸으로 돌파하는 것, 그것이 진짜이고 시는 거기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꿈을 표현한다고 생각하는 관점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지요. 한국어의 가능성을 넓혀서 일상어에다 정치적 비전은 물론이고 종교적인 영역까지 끌어들인 것, 개인이 갖고 있는 정직성과 그것에 걸맞는 미적 형식과 정치를 포함한 외적 규범을 기적적으로 일치시킨 것이 한국문학사에 김수영이 기여한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러니까 김수영은 한국적 모더니티가 도달한 하나의 모범을 제시한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맹문재 : 김응교 선배님께서는 신동엽 시인에 관한 연구를 많이 하셨는데, 김수영 시인과의 영향관계가 있다면 어떠한 점을 들 수 있을까요? 그동안 김수영 시인과 박인환 시인의 관계는 많이 언급되었는데, 신동엽 시인도 동시대에 작품 활동을 했으므로 관계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김응교 : 김수영을 비롯한 박인환, 신동엽 시인의 맥은 동시대의 다른 시인들과는 달랐다고 생각해요. 세계 인식의 지평이 달랐던 것이지요. 박인환의 아시아 인식, 김수영의 거대한 민중 인식을 신동엽 시인이 최대한 증폭시켰다고 볼 수 있지요. 시집『아사녀』에 나오는 「풍경」이라는 시를 보면 고원과 대륙에 대한 시인의 지향성이 명확히 드러나죠. 신동엽은 노트에 지도를 그려가지고 다닐 정도였어요. 이렇듯 세 시인의 세계 인식은 우주적이었다고 볼 수 있어요. 우주적인 시각에서 역사와 혁명을 추구한 것이에요. 김수영이 신동엽의 시세계를 좋게 평한 것은 볼 수 있지만 인간적으로 서로 교류를 했다는 기록은 없어요.


맹문재 : 세 분 선배님들의 말씀을 듣다 보니 시간가는 줄 모르겠네요. 언제 시간을 마련해서 또 듣도록 하겠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김수영에 관한 연구를 더욱 많이 보여주세요. 저도 ‘김수영 연구회’에 나가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명인 :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인하대 대학원에서 김수영 연구로 석사와 조연현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희망의 문학』『잠들지 못하는 희망』『불을 찾아서』『김수영, 근대를 향한 모험』『자명한 것들과의 결별』『조연현, 비극적 세계관과 파시즘 사이』『환멸의 문학, 배반의 민주주의』등이 있다. 현재 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이다.

이영준 :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김수영 연구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대학교 한국학 연구소 연구위원 및 동아시아학과에서 한국 문학을 가르쳤다. 편저로 『김수영 육필시고 전집』 등이 있다. 현재 경희대 교수이다.

김응교 :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한국사와 사회적 상상력』『박두진의 상상력 연구』『시인 신동엽』『이찬과 한국근대문학』『그늘―문학과 숨은 신』『한일쿨투라』 등이 있다. 와세다 대학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숙명여대 교수이다.

 

맹문재 : 고려대 국문과 및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저서로 『한국 민중시 문학사』『지식인 시의 대상애』『현대시의 성숙과 지향』『시학의 변주』『만인보의 시학』『여성시의 대문자』 등이 있다. 현재 안양대학교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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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답글 RE:반클라이번의 임군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96 2022.07.28 06:33
126 8번째 글쓰기 작품들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60 2022.05.02 18:01
125 사랑일기(김광석, 박학기, 하덕규)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97 2022.04.27 07:42
124 장 그르니에 '섬'을 읽다. (163번째 글쎄다) 사진 첨부파일 가는 길 585 2022.04.26 23:59
123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162번째 글쎄다)를 읽고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414 2022.03.13 14:14
122 모바일 가을 사진 첨부파일 [1] 지선 311 2021.10.28 11:19
121 풍경 사진 첨부파일 [1+1] 하늘기차 472 2021.03.24 13:06
120 거리에 핀 시 한송이 글 한 포기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639 2020.11.20 19:20
119 올챙이 연못 첨부파일 sinawy20 645 2020.05.19 12:52
118 순교자(김은국, 문학동네) 글세다, 2019년 11월 11일 사진 첨부파일 곽문환 434 2019.12.23 09:14
117 작가 한강의 뉴욕타임스 기고문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710 2017.10.11 12:09
116 文學은 1대1로 대결하는 예술… 떼거리로 하는 게 아니다(마루야마 겐지)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993 2017.08.19 13:30
115 택시운전사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118 2017.08.18 13:19
114 부끄러움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814 2017.02.11 14:55
113 대형서점엔 없고 독립서점에 있는 것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687 2016.09.04 07:08
112 여름 제사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832 2016.08.28 1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