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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내가 찍은 짧은 세 컷

박경장 | 2006.08.14 14:46 | 조회 1289
어제 저녁 교회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영화를 고기교인들 틈에 끼어 함께 보았다.
오랜 만에 다시 보는 영화도 감동적이었지만 그 감동 못지 않게 잔영처럼 남아있는
'살아있는 공동체'의 명장면이 쉽게 지워지지 않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 자판기를 두드린다.

도서관에서 잠시 담소를 나누다 영화가 시작된지 20여 분 지나 교회당 안으로 들어갔다.
짙은 어두움에 채 적응하지 못한 동공탓으로 잠시 출입구 벽면에 기대어 어둠 속에 사물들이
식별될 때까지 기다렸다. 곧이어 교회 단상 옆 벽면의 스크린으로 쏘아진 영사빛의 여명으로
사람들의 모습이 희미하게 하나 둘 동공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여기 저기 남녀노소의 희미한
옆 얼굴모습과 섬처럼 떠있는 까만 머리들....아! <시네마 천국>에서 시칠리아의 작은 섬마을
성당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보고있는 어촌 사람들의 모습을 토토의 눈을 빌려 잡은 흑백필름의 컷
바로 그 모습이었다.

어둠에 적응 돼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몇 분 지나니 동공은 완전히 어둠에 적응되어 방금 전까지도
떠있었던 주위 사람들의 머리가 누구의 것인지 하나 둘 들어나기 시작한다. 나는 아이들 예닐곱이 앉아있는
중간을 파고들어 앉았던 것이다. 헌데, 이 놈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내 앞뒤를 무단 가로질러가며 앞, 뒤, 옆놈들의
뒤통수를 슬쩍 손으로 찌르며 숨죽인 웃음놀이를 즐기고 있다. 그까짓 나이 핑게대며 놀이에 소외될 내가 아니다.
년석들! 내가 뒤통수 찌를 거라고는 누가 감히 상상할 수 있겠는가? 난 마치 <씨네마 천국>에 토토의 영원한 친구이자 스승인
영사 기사 알베르토 노인이 된 기분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감동적인 장면이 박수소리와 함께 막을 내린다. 교회문을 통해 삼삼오오 빠져나오는 마을 사람들의
환한 모습. 난 초등학교 삼학년 보영이와 함께 걸어나온다. "영화 재미있었니?" "예,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마지막 장면에서 울음이 막 나올라고 했어요! 서영이 언니도 울라고 그랬어요. 으~.."
보영이란 아이의 얼굴은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을 감동으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직 말이 되지 않았지만, 아직 꽃이
되지 않았지만, 아직 시가 되지 않았지만 누군가 손 대면(어쩌면 시간에 익어) 툭하고 터질 것만 같은 표현되기 이전의
무엇이었다.


카르페 디엠! 내가 어젯 밤 저녁 잡았던, 즐겼던 세 컷의 순간은 단지 순간으로 산화해 버리는 것들일까? 아니면 죽은
시인들(쏘로, 휘트만, 셰익스피어...)이 키트 선생에 의해 그의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손댐에 의해 그의 제자들을 통해 다시 살아날 것인가? 비온 뒤 항아리에 고이는 빗물마냥 조용히 세월에 가라앉도록 기다려 볼 일이다.


영화 끝나고 목사님과 몇몇 사람들이 모여 쉽게 가라앉지 않는 영화의 감동을 나누면서
교회 뒤 숲에 뻐꾸기 둥지를 짓자. 그 곳에 밤토실 아이들의 "죽은 시인의 사회" 아지트를 만들자.
그 곳에서 우리 아이들이 시인, 화가, 음악가, 만화가, 영화감독, 선생님, 목사, 우체부, 의사, 평화운동가, 생물학자,
농부....가 되는 꿈을 꾸자고 모의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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