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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성 』 - 불안과 우울의 실존 K

한동우 | 2009.11.09 20:32 | 조회 1591
K에겐 이름이 없다.
이름이 없다는 것은 결국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름이 없다고 해서 그 존재의 필연성(necessity), 다시 말해서 존재의 본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존재의 필연성에 이름이 붙을 때에라야 비로소 실재하는 존재(being real existence)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이름은 존재를 드러낸다. 신이 창조한 인간은 아담이라는 이름을 얻고, 아담으로 부터 창조된 여자는 이브라는 이름을 얻는다. 이름을 갖는 각각의 인간은 인간이라는 필연적 속성을 갖지만, 그의 존재는 이름을 통해서만 유효하게 확인된다. 그런데 이름은 내가 갖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부여하는 것이다. 아담이 짐승들을 부르는 이름이 바로 그 이름이 되었듯이. 그래서 언어는 이름과 필연으로 나뉜다. 인간이 몸에 갇혀 있듯이, 인간은 이름에 갇힌다. 그래서 이름이 없는 사람은 결국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성』에서 K는 다른 모든 등장인물과는 달리 이름이 없다. 그것은 그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K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K의 존재는 프리다, 조수들, 가르데나, 바르나바스와 올가, 그리고 페피에 의해 서로 다르게 지각된다. 그러난 K에 대한 이들의 인지 중 어떤 것도 K를 지시하지 못한다. K는 그 누구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동시에 그 누구에게도 배척되지 않는, 마치 있으나 없는 것 같은, 그런 존재이다.

미디안 광야에 숨어 살던 모세는 40년간의 도피와 은둔 생활에 지쳤거나, 익숙해졌다. 본디 어눌해서 말보다 주먹이 앞섰던 그에게 하나님이 나타난다. 떨기나무에 타지 않는 불꽃으로 나타난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집트로 돌아가 백성들을 이끌고 탈출하라고 이른다. 모세는 걱정이 앞섰다. "도대체 누가 나를 보냈다고 할까요?" 하나님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나이다. (I am who I am.). 나의 이름은 “나는 나”다." "I am who I am." 이는 나는 언제나 나라는 뜻이고, 다시 말해서 “나는 나다”의 “나”는 언제나 현재형이다. “나는 나였다(I am who I was, 나는 변하지 않았다.).”이거나 “나는 나일 것이다 (I am who I shall be, 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가 아니라, 나는 나이고, 나는 언제나 현재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시간에 속박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현재로서 존재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존재를 벗어난 존재, 즉 ”초존재“라는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모든 실존은 시간에 속박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스스로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드디어 인격신으로 등장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집트의 압제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할 자신이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린다. 창조주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이 되는 순간인 것이다.

K의 자기정체성은 “측량사(land surveyor)"라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가 측량사라는 것을 확증할 수 없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측량사로 여기거나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그를 측량사로 인정하거나 하지 않는 것은 그가 측량사라는 사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건 K자신도 마찬가지다. 이 소설 어디에서도 K는 측량사로서 행동하지 않는다. K는 자신이 측량사이며, 성으로부터 초청을 받았다는 사실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는 성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 줄 것을 요구한다. K가 측량사라는 사실은 그가 성으로부터 받았다는 편지에만 씌여 있을 뿐인데, 그것도 그에게 전달된 것인지, 게다가 그 편지가 성으로부터 발송된 것인지 조차 알 수 없다.

아브라함의 불안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죽여 제물로 바치라는 목소리가 하나님의 목소리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가 들은 목소리가 하나님의 목소리라는 외적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는 그저 그 목소리를 들었을 뿐이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을 양처럼 죽여서 불에 태워버리는 “끔찍한 실수”를 범했을 수도 있다. 그 소름끼치는 목소리 앞에서 아브라함이 경험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 목소리가 하나님의 목소리라는 확증을 갖기 위한 치열한 자기 불안, 바로 공포와 전율인 것이다. 모든 실존의 인간이 경험하는 이 불안은 바로 인간이 부여받은 자유의 댓가이다. 그래서 싸르트르는 말한다.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되었다.”

K는 성으로 들어가 자신이 초대받은 측량사라는 것을 확증해야 한다. 그러나 성은 멀리 있고, 종종 구름과 안개 같은 것에 휩싸여 있으며, 성으로 가는 길은 마치 일부러 그런 것처럼 돌아나 있다. 마을 사람들 중에서 성에 가 본 사람은 성의 관리들로부터 편지 심부름을 하는 메신저들뿐이다. 성의 메신저 바르나바스가 가 본 성의 모습은 끝없는 문과 사무실들이 이어져 있고, 모든 관리들이 서류를 접수하거나 발송하고 있고, 누가 무슨 일을 담당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런 곳이다. 그래서 바르나바스가 정말 성에 다녀 온 것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 그는 허깨비들에게 허깨비 편지들을 받아 온 것일지도 모른다.

K는 자신이 측량사라는 것과 성에서 초대 되었다는 것을 동시에 증명하기 위해 성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성으로 들어가는 길은 사실 없는 것 같다. 그는 성에서 나온 관리들을 만나 심사를 받지만, 그 누구도 그를 성으로 안내하거나, 그가 측량사라는 점을 확증하거나, 그가 성으로부터 초대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게다가 성에서 파견되었다는 관리들이 실제로 성에서 온 사람들인지 조차 알 수 없다. 아무것도 확실한 것은 없다. K는 성의 관리들이나 마을 사람들 중 누구로 부터도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완벽한 이방인이다. 그가 들어가고자 하는 성은 그에게 있어서는 그의 존재를 입증해 줄 유일한 "초존재"이다. 그러나 그는 초존재로서 성을 찾지 못하고, 그리로 들어가는 길을 발견하지도 못한다. 들어가는 길도 없고, 들어갈 방도도 없는 성은 없는 것이다.

K는 불안에 휩싸인다. 그에게 확실한 것은 그가 그곳에 있다는 것뿐이다. 그가 사랑했던 프리다는 K를 떠나 K의 조수였던 예레미아스에게 가 버렸다. K가 성에 들어가기 위해 그토록 만나기 원했던 클람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그에게 남은 것은 클람이라는 자가 실제로 존재하는 자였던가 하는 의심뿐이다. 마을 사람들과 성의 관리들은 성에 들어가고자 하는 K의 열망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K에게 주어진 일은 마을의 학교 관리인 자리였다. K는 도대체 왜 그리도 성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일까. 누군가 K에게 성으로 들어가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가 성에 들어가서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K에게 성은 자신의 존재증명인 것이다. 그러나 성에 들어가는 길은 없다. 그러니 성도 없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신의 의식 밖에 없다.

칼을 들어 아들을 죽이려던 아브라함에게 천사가 말한다. 하나님이 제사에 쓸 제물을 따로 준비해 놓았다고. 아브라함은 누구의 말을 따라 모리아산으로 온 것일까. 그가 들은 목소리가 하나님의 목소리라는 것을 증명할 유일한 사람은 그 자신 뿐이다. 그는 자신에게 들려온 그 목소리를 끊임없이 자기 내부에서 공명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끝으로 자신의 의식을 밀어 넣고, 그 목소리가 어디에서 들려오는 것인지 집중해야 한다. 그것만이 자신에게 닥친 불안을 극복하는 길이다. 그렇다. 인간은 결국 그 목소리의 끝에 서있게 된다. 그것이 실존의 인간이다.

* 카프카는 다른 작가들과는 확연히 다른 무게와 깊이를 느끼게 했습니다. 악마적 우울함과 불안함이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성을 가리고 있는 뿌연 안개와 흩뿌리는 눈처럼, 한 순간도 걷히지 않고 드리워져 있습니다. 극지의 블리자드 속에서 white out 되는 주변 사물들처럼 주변 인물들과 상황은 언제나 모호하고 다중적입니다. 이야기의 방향은 K의 가느다란 의식을 따라 가까스로 관철됩니다. 아마도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이 들 것 같습니다. 마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K를 만날 때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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