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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숙 | 2009.03.04 14:00 | 조회 1214
'책을, 난 좋아하나 싫어하나'란 주제를 놓고 몇몇 해를 고민했는지 모르겠다.
도서관을 들락거리면서도, 심지어는 독서회를 하면서도 책에 대한 나의 고민은 지나치게 진지한 것이어서 그것에 대한 양가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기 일쑤였던 것이다. 물론 책은 재밌고 지혜와 지식이 담겨있고 등등 그 효용성이야 두말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헤아릴 수 없이 크다. 그러나 한편, 책을 읽을수록 드는 생각, '머리만 커지고 있다'는 그 생각은 나의 책읽기를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다. 소위 책을 많이 읽었다는 사람들중 태반은 전혀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보다 얼마나 더 못난 행태(행동하지 않는 양심, 말만 청산유수)들을 보이는지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양심을 일깨울 수 없는 책이라면, 에잇, 읽어 무엇하랴하고 책하고 담을 쌓았었다. 나는 책이 싫어요라고 말하면서... 그러나 난 정말 책을 싫어했을까?

지난 몇 해동안 실제로 난 책을 거의 되도록이면?? 안 읽었다. 이말은 사실 슬금슬금 내가 내 눈치 보면서, 핑계 대가면서 읽었다는 말과 같다^^ 어쩔 수 없이 책에 눈이 가고 손이 갈 때마다 짐짓 난 모른척해주었다. 이 무슨 미친 짓인가? 그러다가 얼마 전부터는 아예 작정을 하고 읽어댄다. 책을 이따만큼 쌓아놓고 죽어라 읽어댄다. 읽다지쳐 잠이들고 때문에 어깨죽지가 아플만큼. 이제는 정말 솔직할 때가 된 것같다. 난 책이 좋다.

요사이 햄릿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마흔이 넘어 읽는 햄릿은 전혀 새롭다. 우유부단의 대명사 햄릿에게서 내 모습을 보며 그의 고민은 곧 나의 고민과 같다. 고전을 새로 읽는 기쁨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이 크고 값지다. 몇 년간의 책으로부터의 유배가 나쁘지만은 않았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책으로 유턴한 지금 그러나 책만 읽는 바보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결심은 여전하다. 실로 간서치라 불리웠던 이덕무는 책만 읽는 바보가 전혀 아니었다.
책을 통해 선인들의 지혜를 배우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읽고 배운 것을 실천하고 살았던 이덕무와 그의 벗들처럼 나도 그렇게 되고, 그렇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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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글은 느티나무도서관에 독서회 후기로 올린 글 중 일부이다. 책에 대한 나의 양가감정은 아주 오래된 것이어서 난 정말이지 내가 책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싫어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이제와서야 내가 할 수 있는 고백은 난 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절실히. 나의 방어기재는 주로 억압과 회피이기때문에 책도 일종의 그러한 수단일 수도 있겠지만, 요사이 책만큼 내게 소중한 존재가 없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김수영의 시를 읽으며 난 위로와 감정의 치유를 받고, 이덕무에 대한 소설을 읽으며 그의 우정, 꿈, 삶을 동경하며 동시에 대리만족한다. 햄릿과 동시다발적으로 읽고있는 <비합리성의 심리학>이라는 책에서는 재미를 느끼고 새로운 자각을 하게된다. 이만하면 난 책을 좋아하는 게 분명하겠다.

싫고 좋은 것의 구분이 지나칠 정도로 선명한 내게 책은 너무 진지한 무엇이었다. 위의 심리학책에서 오스카와일드의 금언이 나온다; "인생은 진지하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중요하다(Life is too important to be taken seriously)."
나같은 사람의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책도 인생도 너무 진지하게 또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난 확실히 문제가 있다. 난 미쳤다고 하기에는 너무 정상이고 정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비표준적이며, 너무 진지하다. 어쩌면 요즘 내게 필요한 책은 '책독에서 빠져 나오는 법' 뭐 이런 책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실로 오랫만에 햇빛이 짱짱하다. 오늘같은 날 쳐박혀서 책 '따위'를 읽는다면 난 정말 제 정신이 아닌 거다.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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