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View Article

부조리의 시학: 고도를 기다리며

박경장 | 2008.10.14 01:31 | 조회 1942
부조리의 시학: 고도를 기다리며

‘부조리.’ 조리가 없다. 도무지 말이나 사건 정황의 앞뒤가 맞지 않다는 부조리. 20세기 초반 시대의 전환기에 서구지성사를
휩쓴 실존주의 철학을 극이라는 문학 형식을 빌어 표현하려했던 부조리극(Absurd Theater). 카프카, 카뮈, 싸르트르와
더불어 부조리극의 선구자인 사뮤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부조리’라는 단어를 가장 ‘극적’으로
떠올리게 하고 동시에 가장 대중화시킨 작품이다.

부조리는 조리에 反(Anti, Against, Counter)해서 나오는 문화현상이다. 부조리극이라는 20세기 초반의 문화현상을
밝히려면, 먼저 '조리극'의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그 이유는 조리, 합리, 이성은 서구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까닭이다. 그리스문명은 바로 서구 조리문화의 근원이다. 그리스문명은 로마를 통해 지중해 연안과 유럽
전역으로 퍼져 헬레니즘 문명공동체를 형성했다. 이후 약 1000여 년의 중세 기독교 종교공동체를 거쳐 르네상스
문예부흥운동으로 그리스의 조리문화가 재탄생하여, 근대 이성 중심의 계몽주의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오랜 기간
동안 함께 공유해온 그리스 헬레니즘의 조리문명은 집단무의식(잠재의식)처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유럽인들의
생각에 거대한 뿌리가 되어왔다.

수많은 조리 있는 생각의 뿌리 중 서구 유럽인들의 문학과 예술의 뿌리로 간주되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Poetics>이다. 최초의 문예비평론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문예활동에
대해 최초의 정의를 내린다. 그는 인간의 모든 문예활동은 ‘모방’에서 나오고, 모방은 인간 본성에 내재하고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이런 모방을 통해 무엇보다 즐거움(쾌락)을 느끼고 세상을 배워간다. 시(문학)는 인간의 언어를 통해
모방하는 것인데, 최고의 문학 장르 (시 중에 시)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비극’에서는 언어(운율을 갖춘 시적
언어로)로 인간의 행동을 모방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모방’은 유럽인들에게 인간은 왜 예술 행위를 할 수 밖에 없는가
(본성에 내재), 예술을 통해 인간은 무엇을 얻는가 (쾌락과 교훈)에 대한 생각의 뿌리다. 모방(Mimesis)은 서구 유럽의
모든 문화예술에 내재하고 있는 의식과 무의식(잠재의식)의 뿌리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에서 모방의 대상으로 삼은 인간의 행동이란 ‘진지하고 일정한 크기를 가진 완결된 행동’이었다.
여기서 완결된 행동이란 인간의 행동 중 사소한 모든 것을 서술식으로 나열 모방하는 것(story)이 아니라, 그 중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선택해 서로 긴밀한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구조적으로 짠 행동을 말한다. 구조적으로 완결된
행동처럼 보이도록 짜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에서 사건의 구성원리이자 비극의 영혼이라고 정의한 ‘플롯
(plot)’이다. 사건과 사건, 행동과 행동, 인물과 인물, 성격과 성격 사이의 갈등과 발전을 이끌어가는 극적구성의 내적
원리가 플롯이고, 개연성(plausibility)은 플롯의 핵심이다. 개연성이란 실제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법한 일을 수긍이 가도록 극 요소들 간에 내적 필연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꾸민 이야기라도 ‘조리’에 닿도록 극을
짜는 것이 플롯인 것이다.

이런 플롯은 유럽 서사문학(극, 소설)의 내적 원리로 지금까지 작동하고 있다. 내용(message)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에
대한 형식(form)이 된 것이다. 형식이라는 그릇에 담긴 내용으로서 문학의 전언(message)은 철학, 윤리, 역사 속에 담긴
전언과는 그 내용의 질이 완전히 다르다. 문학의 전언은 역사(History)에서 전달하려는 편년체(선형적)식 스토리라는
왕조 역사의 전언이 아니라, 플롯으로 짜여진 입체적 스토리의 반권력 탈권력의 전언이며, 철학에서 추구하는 보편적
진리(眞理)에 대한 전언이기보다는, 구체적 인간 삶 속의 일리(一理)를 제시하려는 전언이며, 선과 악에 대한 개인과
사회의 보편적이며 시대적인 윤리(善)의 전언이기보다는, 개인과 사회, 시대와 보편에 갇혀 있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는 아름다움(美)의 갈구와 욕망에 대한 전언인 것이다.

모든 예술에서 전언은 예술의 시작과 끝 그 사이(과정)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시작 이전 또는 끝 이후 어딘가에
있는 것이다. 예술의 시작과 끝, 그 사이에 있는 예술 창작과 행위는, 시작과 사이 그리고 끝을 있게 하는 예술의
내적원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예술이라는 그릇에 담겼을 때 비로써 완결되는 인간 행동의 아름다움과,
그것을 모방함으로써 느껴지는 쾌락이야말로 예술의 존재이유인 것이다. 철학, 역사, 윤리에서 전하려는 전언은 같은
내용일지라도 예술 속에서는 단지 한 부분에 불과한 것이다.

서사문학(narrative literature)을 철학, 역사, 윤리에서 서술적 전언과 구별되도록 만드는 구조적 플롯은 말하자면
꾸며낸 인물과 사건, 행동(희곡)사이를 ‘조리' 있게 짜는 것이다. 이야기의 개연성이라는 조리는 서구 생각의 뿌리를
이루는 그리스인들의 현실성, 합리성에서 연유된 것이다. 그리스의 자연철학, 정치, 사회철학, 수사학, 예술철학 등이
모두 현실성, 합리성에 철저하게 기반을 두고 있다. 이런 생각의 기반은 신념과 신앙의 종교에 철학이 시녀로 전락한
천년 중세시대의 혹독한 생각의 암흑기도 견뎌낼 정도로 튼튼한 것이었다. ‘Return to or Rebirth of, Greek-Roman
Thought and Culture'의 기치 아래 탄생한 르네상스 문예부흥운동은 현실과 합리라는 그리스 정신과 문화의 화려한
부활이었다. 그 부활의 정점에서 서구 ’근대 이성‘이라는 주체가 탄생한 것이다.

현실과 합리성에 근대 과학적 사고까지 장착한 서구 근대 이성은 세상에 모를 것이 없었고 두려울 것이 없었다.
이성적 주체는 모든 물체를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단위로 환원해 원소기호로 분류해 자기 통제 하에 두었다.
지구를 넘어 우주에 있는 모든 물체의 운동까지도 수학과 물리 법칙의 수 개념으로 파악하고 자기 통제 하에 두었다.
자연의 모든 주술은 사라지고, 신까지도 인간의 이성 영역에서 해석되었다. 신의 신비한 영역은 근대 이성의 주체
안에는 더 이상 머무를 곳이 없었다. 국가와 사회도 이성적인 합리성 하에 조직화 제도화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조리에
닿는(Be Reasonable)' 이성의 힘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이 서구 근대역사였다.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서구 생각의 원류인 ‘조리’를 그 기반으로부터 흔들어버린 혁명극이다. 등장인물의
대화, 사건, 행동, 그 어느 것도 조리에 닿는 것이 없다. 극을 이끌어 가는 기본 요소인 인물, 사건, 행동에 어떤 의미
있는 갈등도 없다. 당연히 행동과 이야기를 극적으로 짜나가는 플롯도 없다. 극의 발단-전개-클라이막스-급반전-파국이라는
고전극(Well-made play)의 오막극 형태는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이막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이막의 시작도
그 장소, 그 시간, 그 인물, 그 무대로 변화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진정한 의미에서 어떤 갈등도 없으니, 인물들의 성격
변화나 사건의 진전은 애초부터 기대할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인물들이 하는 말과 행동이란 의미 없는 지껄임이거나
익살스런 몸짓에 불과할 뿐이다. 한마디로 총체적인 ‘부조리’다.

그렇다면 베케트는 조리에 닿지 않는 상황을 왜 무대 위에 ‘재현’해놓으려 했을까? 그 답은 작가에게는 이 극을 쓰기 전
그리고 관객에게는 극이 막을 내리고 난 뒤 어딘가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재현이란 이미 본 것을 다시 나타내는 것이다.
베케트는 분명 자신이 보았다고 혹은 깨달았다고 생각한 인간의 어떤 행동을 무대 위에서 재현하려고 했다. 그것은
19-20세기 전환기에 인간 실존의 모습이었다. 인간 이성에 전폭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지상 낙원을 이룩할 것이라고
기대된 근대의 정점에서, 베케트와 일군의 실존주의자들은 오히려 인간 실존의 '부조리'와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베케트가 본 또는 깨달은 전환기 인간 존재의 부조리는 어떤 것인가? 그와 생각을 공유한 20세기 초반의 실존주의
지성들이 공통으로 느낀 시대현상을 한마디로 압축한다면 ‘불안과 권태’로 표현할 수 있다. 인간 주체이성에 대한 무한
신뢰는 필연적으로 신의 죽음을 초래했다. 신의 죽음 뒤에 인간존재에 대한 ‘불안’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근, 현대 산업
사회에서 인간은 기계에 예속되어, 노동의 기회와 즐거움을 박탈당한다. 소위 노동으로부터 소외라는 낯선 상황을 접하게
되고, 주체 상실감에 의한 ‘잉여존재라는 권태’가 몰려왔다. 그런 사이에 근대의 사생아인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속의 무뇌아
같은 근대국가의 국민이 탄생하고, 히틀러와 무솔리니 같은 파시스트가 등장한다. 조리로 시작한 근대이성이 부조리로
근대의 막을 예고하게 된 것이다.

베케트는 자신이 이해한 시대현실(reality)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내용을 담을 그릇 또한 부조리한 형식을
선택한 것이다. 내용과 형식의 일치다. 부조리한 현실의 인간 행동을 부조리한 형식으로 모방했다는 점에서 베케트는 서구
예술의 기본이 되는 모방(Mimesis) 전통을 따랐다고 말할 수도 있다. 다만 베케트가 모방한 현실의 부조리는 아직 일반
독자나 관객에게는 너무 낯설었다. 자신들은 아직 조리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조리는 인간 주체가 세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질서를 부여하게 해준다. 일견 무질서해 보이는 자연과 세상에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인간은 자연에 대한 아름다움을 느끼고 동시에 자신에 대한 주체의 안정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베케트가 재현하는 부조리한 인간 세상과 행동은 근대 주체를 그 뿌리부터 뒤흔들어놓는다. 부조리에 존재의 뿌리가
흔들린 주체는 세상과 자연에 어떤 질서를 부여할 근거도 능력도 상실한다. 부조리극의 무대 배경으로 어떤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주체성을 부여할 수 없는 인물들에게서는 자연히 안정감도 찾아볼 수 없다. 무대 위에는
실존에 대한 불안과 의미 없이 되풀이 되는 행동으로 권태만 만연할 뿐이다.

이런 부조리한 실존의 불안과 권태라는 인간 행동을 모방한 것이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던 에스트라공, 지금도 이유 없이 자살을 하려고 하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머, 하지만
끈이 짧아 실행하지도 못한다는 무의미에 무행동은, 실존의 불안에 대해서도 권태감을 느낀다는 실존에 대한 철저한
무력감의 반증이다. 반평생을 함께 붙어살았어도 의미 있는 관계를 찾아볼 수없는 소통의 단절. 끊임 없이 반복되는
무의미한 말과 행동들. 단 한치도 나가거나 발전이 없는 사건. 이 막에서 포조와 럭키 사이에 뒤바뀐 관계의 반전에서
갈등구조를 보일 것 같았으나, 극의 구조나 인물 간의 갈등이나 성격의 변화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끝나버린
무의미한 해프닝 등등은 한마디로 플롯을 상실한 부조리극의 권태감이다.

이극의 모든 부조리한 행동 속에서도 유일하게 조리한 행동을 보이는 것이 블라디비르와 에스트라공이 고도를 기다리는
행동이다. 하지만 이 행동도 기다리기만 했지 그 이유를 모른다. 그냥 이유 없이 기다리는 것이다. 막연히 고도가
오면 자신들을 구원해줄 걸로 믿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자신들을 어떤 상황에서 구원해준다는 이유도 설명도 없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나 비판의식이 철저하게 결여되어있는 것이다. 다만 이들이 의식하는 존재에 대한 불안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못 견뎌 하거나, 침묵을 견뎌낼 수 없는 아주 가볍고 사소한 불안이다. 불안에 대한 의식이
커졌다면 자살이라는 존재에 대한 가장 의미 있는 행동을 발휘했었을 것이다. 이렇게 조리에 기반을 둔 인간주체가 송두리째
무너지면서 한 없이 가볍고 작은, 존재 의미조차 상실한 벌레 같은 인간이 무의미한 행동과 소리만 무대 위에서 지껄여
댈 뿐이다.

유일하게 조리에 닿아 보이던 '고도를 기다렸던' 행위가, 끝내 고도가 오지 않음으로써 역으로 이들이 어떤 깨달음
(조리에 닿을)에 이를 기회가 엿보인 장면이 있었다. 그것이 참 깨달음으로 이어진다면 이는 극적인 반전이며, 성격의
발전으로 조리극의 전통적 플롯을 갖춘 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깨달음이란 '혹시, 자신들을 이곳에 붙잡아 놓았던
것이 고도가 아닐까? 자신들을 구속한 것이 실은 고도가 아닐까?'라는 일말의 극적 반전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이들의 여느 다른 생각들처럼 지속되지 못하고, 행동으로도 옮겨지지 못하고 만다. 그들은 다시 제 자리에
주저앉고 막이 내린다.

막이 내려지고 난 다음에 관객에게, 책을 다 읽고 덮은 이후에 독자에게 물음이 던져진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재현한 세상이 내가 사는 세상일 수도 있겠는가?' 만약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베케트가 반연극의 형식으로 채택한
부조리극 형식은 개연성이라는 역설적인 '반플롯의 플롯'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부조리극이라는 형식에 부조리한
현실이라는 내용을 담으려했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조리에 닿는 행동의 모방(Mimesis)을, 완결한 행동의 모방을 달성
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베케트 또한 서구 정신의 뿌리인 그리스문명의 현실과 합리성이라는
튼튼한 '조리문화'의 전통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코즈모스(질서)가 카오스(혼돈)의 배를 가르고 나오듯, 부조리의
씨앗은 원래부터 조리의 배속에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서구 지적 전통의 뿌리인 플라톤 이데아론의 근간인 이원론이며,
서구지성사의 발전 진보를 가져온 방법론으로서 변증법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조리 시학'에서 배를 가르고 나온
'부조리의 시학'인 것이다.

베케트가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재현한 것이 인간세상의 행동모방에 전혀 개연성이 없다면 그래서 내가 사는 세상과
아무 관련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고도를 기다리며>는 부조리극도 아니다. 그냥 넌센스요, 해프닝이다. 읽어볼 가치도
필요도 없는 휴지다.



후기: 조르바에 대한 글 이후로 글 써놓고 두번 째로 후회한다. 내 글이 점점 길어지면서 '교설'이 돼간다.
글이 점점 약해져간다. 어쩔거나.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133개(4/7페이지)
문화산책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책과 영화 하늘기차 5763 2005.09.02 16:36
공지 채식주의자를 읽고(66번째 글쎄다... 그냥 꿈이야) 첨부파일 하늘기차 5448 2012.04.10 16:45
71 [책] 카프카 『성 』 - 불안과 우울의 실존 K [3] 한동우 1591 2009.11.09 20:32
70 [책] 고자질하는 심장 - 에드가 앨런 포 [2] 한동우 1917 2009.10.19 18:10
69 [책] 뫼르소와 프레디: 시간이란 무엇인가 [261] 한동우 26823 2009.07.13 11:09
68 [책] 늦은 독후감 - 행복에 비틀 비틀 [1] 이은주 1068 2009.06.08 04:37
67 [책] 글쎄다 특강 - 심리학자에게 듣는 행복 [6] 한동우 1124 2009.04.18 12:33
66 [책] 책 2 [3] 강기숙 931 2009.04.11 10:07
65 [책] 결혼은, 미친짓이다 [1] 여행바람 1013 2009.04.01 12:33
64 [책] [13] 강기숙 1215 2009.03.04 14:00
63 [책] 열 켤레의 구두를 가졌던 사내 [3] 박영주 1682 2009.02.12 00:18
62 [책] 완장 완장 완장들 [7] 강기숙 1333 2009.01.31 22:45
61 [책] 안부 2 [5] 강기숙 1142 2008.12.23 11:49
60 [책] 울프를 읽고... [8] 채현숙 1099 2008.12.02 18:00
59 [영화] 지하실과 매잡이 [3] 하늘기차 1258 2008.11.05 13:51
58 [책] 200년대의 금서를 갈망하면서 [2] 마법사 1234 2008.10.24 14:09
>> [영화] 부조리의 시학: 고도를 기다리며 [2] 박경장 1943 2008.10.14 01:31
56 [책] 웃을 수 밖에^^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081 2008.10.08 16:07
55 [책] 욕망 [1] 이은주 980 2008.10.05 20:38
54 [책] 다시 誤讀이다. [3] 한동우 999 2008.10.02 17:31
53 [책] 글쎄다 2주년 기념 잔치 사진 첨부파일 [2] 하늘기차 958 2008.09.23 15:53
52 [책] 장미의 이름 [1] 한동우 1123 2008.09.14 2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