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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오 영감(글쎄다 50번째 책)을 읽고

하늘기차 | 2010.11.30 11:35 | 조회 1609


오노레 드 발자크는 1789년 7월14일 프랑스 파리의 바스티유 감옥이 열린 프랑스 대혁명이 있은지 10년 후에 태어났다. 그래서 <고리오 영감> 속에도 당시의 귀족 계급이 몰락하며 새로운 부르조아 계급이 탄생하는 시대적 전환기의 사회상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글자 그대로 realism의 태동이다. 고리오 영감은 바로 그 신흥 부르조아 계급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는 1789년 혁명의 소용돌이로 인한 식량의 절대 부족한 상황 속에서 잔꾀를 부리고 또 적절한 connection을 통해 곡물 장사로 떼 돈을 번다. 오늘로 치면 땅을 팔아 불로소득한 졸부가 된 것이다. 그는 그 부를 이용해 큰 딸은 귀족에게, 그리고 작은 딸은 당시의 자기와 비슷한 신흥 부르조아 계급의 청년에게 시집을 보낸다.

그런데 여기에 코가 꽨 것이다. 돈을 좀 벌고 그래서 아내 사랑의 싹이 피어날 즈음 그만 아내와 사별하게 된다. 메울길이 없는 그 허전함이 두 딸에게로 향하여 끝없는 딸 사랑으로 이어져, 자신의 모든 재산을 소위 당시의 파리의 살롱을 중심으로한 사교계에 드나드는 두 딸을 위해 모두 탕진한다.

당시의 사교계에대해p148은
“출세하기 위해서 자네가 해야 할 노력과 필사적 싸움이 어떤 가를 판단해 보게. 항아리 속에 들어있는 거미들처럼
자네들은 서로를 잡아먹어야 하네. 왜냐하면 좋은 자리가 오만 개밖에 없기 때문이야. 이 곳 파리에서 사람들이 어
떻게 출세하는지 알고 있나? 천재성을 떨치든지 아니면 능수능란하게 타락해야 하네. . .”
또 P153은
“. . .잘 알듯이 파리는 마치 신대륙의 밀림 같아서 일리노이족과 휴론족 같은 스무 종류의 야만족들이 우글거리며
여러 가지 사회적 수렵의 수확물을 먹고사네. 자네는 수백만 프랑을 잡으려는 사냥꾼이야. 이 돈을 잡으려면 자네
는 덫과 끈끈이와 피리를 사용해야만 하네. 사냥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 . .”라고 한다. 욕망과 허영과 타락을 먹고 마시며 서로를 물고 뜯고 하는 관계의 틀이다.

고리오 영감은 딸들을 통해 몰락해 가는 귀족들의 놀이에 자기 딸들을 보내어 대리 만족을 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 후원자는 마치 개미귀신 같은, 블랙홀 같은 약육강식의 사교계의 덫에 걸려 자기 가진 것, 자기의 생명 까지도 다 잃어버리고 만다. 그렇게 헛된 딸 사랑을 부르짖으며 죽어간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라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새로운 계급 상승의 욕망을 딸에대한 무모한 집착으로 해결해 보려다가 몰락하는 고리오 영감과는 달리, 고리오영감이 묵고 있던 하숙집에는 몰락한 귀족 계급의 장래가 총망한 20대의 법대 대학생 <으젠 드 라스티냐크>가 하숙을 하고 있다. 작가는 이 청년을 새로운 부르조아 세계의 새로운 가치를 세울만한 청년으로 묘사한다. 그는 돈은 없지만 자신의 학문적 기반과 외모 그리고 가문의 이름을 가지고 사교계에 입문한다. 친척인 보세앙 자작 부인을 통해 레스토 백작 부인인 아나스타지를 알게 되고, 또 그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늬싱겐 남작 부인인 델핀을 알게 된다.

불나비 같은 사랑을 위해, 그리고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지참금을 가난한 시골의 어머니와 누이들에게 요청하는 모습은 참으로 뻔뻔스럽기 까지 하다. 그래도 시골의 가족들은 오빠의 출세를 위해 모든 희생을 감내한다. 비뚤어진 삶의 모습이고 시대상이다. 그래도 이 라스티냐크는 같은 하숙집에 묵고있는 탈옥수 보트랭이 맺어주려고 하는 재력가의 상속녀 빅토린을 마다하고(사실 아버지에게 외면당하여 한푼의 상속도 받을 수 없는 처지이지만 보트랭의 음모와 살인으로 일확천금을 얻게 된다)몰락해가는 델핀을 끝까지 사랑한다.

발자크는 이 라스티냐크를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인물로 묘사한다. 그러나 독자가 볼 때 이 대학생은 자기 욕망을 위해 가족을 희생 시키며 사랑을 불태우는 단순한 청년에 불과하다. 발자크는 아직 때 묻지 않은 청년의 도덕성, 양심, 의리, 사랑을 높이 평가하는데, 오늘 이 시대적인 흐름에서 볼 때, 그의 사고, 삶의 자세는 마지막 대사 “이제부터 파리와 나와의 대결이야”라고 외치는 것 처럼 입신출세를 위해 강남으로 뛰어드는 무모한 청년에 불과하다. 이러한 사교계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 강남 한 쪽에서는 우리 일반인들과 상관없는 욕망의 거래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겠지라는 쓴 웃음을 짓는다.

한편 지난번 글쎄다에서 읽어 어렴풋한 동시대의 영국 작가인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에 등장하는 변호사 시드니가 사랑하는 루시를 위해 그녀가 사랑하는 찰스를 감옥에서 탈출시킨 뒤 혁명군에게 끌려 단두대에서 사라져 가는 인물은 어떤가?

과연 새 시대를 바라보는 참 인간상은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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