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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_죄의 삯은 사망이다, 그게 죄라면

한동우 | 2009.11.22 23:46 | 조회 1115
아무 것도 다를 것이 없던 어느 날 아침 K는 낯선 사람들의 방문을 받고, 그 자신이 체포되었음을 통보받는다. 그는 낯선 사람들로부터 그가 심리를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듣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죄목을 모른다. 심지어, 그는 구속되지도 않았다. 그가 들은 사실은 그가 죄인이라는 것이고, 그래서 재판을 받게 된다는 것 뿐이다. 그는 재판소를 찾아간다. 재판소에 있는 예비 판사들은, 그러나, 그의 재판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는 유명한 변호사를 찾아 간다. 그는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만큼 판사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오래된 한 화가를 찾아가기도 한다. 성당의 사제를 찾아가 자신의 문제를 상의한다. 그러나 그는 사형 집행관들의 방문을 받고 아무런 항변도 없이, 심지어 끝내 자신의 죄목도 알지 못한채, 그리고 그들이 말했던 대로 재판도 받지 않고 ‘개처럼’ 죽는다. 그가 죽는 날은 그가 체포되었던 날과 아무 것도 다를 것이 없었다.

인간 존재는 누구의 책임인가
동방의 의인으로서 부자였던 욥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재산을 잃고 자식들마저 죽어 버린다. 온몸에는 견딜 수 없는 부스럼이 나고, 기왓장으로 긁던 상처를 개가 와서 핥는다. 그의 아내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소리를 지른다. 욥이 의인이라는 사실은 그 내기를 하나님과 겨뤘던 마귀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욥은 억울한가? 괴로움에 치를 떨던 욥은 “주신 분도 하나님이고,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자신에게 닥친 그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카인은 아벨을 죽이기 전에 이미 죄인이었다. 살인은 그가 죄인이 된 이유가 아니라, 그가 죄인이라는 증거인 것이다. 그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후에 아벨을 죽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왜 죄인이 되었는가? 그가 죄인이 된 것에 그의 책임이 있는가?
예수는 말했다. “몸이 옷보다 중요하지 않은가? 들의 꽃이나 하늘의 새들은 수고하지도, 옷을 짓지도 않는다. 오늘의 걱정은 오늘에 족하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걱정하지 말라.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세상의 어떤 사람이 자신의 생명에 대해 책임이 있는가? 자신의 생명을 선택한 사람은 없다. 당연하게도, 가족, 민족, 심지어 국가를 선택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존재의 의미를 질문 받는다.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이유를 추궁당하는 것이다. “너는 누구인가?” “너는 왜 사는가?” 인간은 창세 이후 신으로부터 죄인의 낙인이 찍혀 저주받는다. 인간과 함께 땅도 저주받는다. 신은 자신이 창조한 세상과 자신의 형상을 따라 빚은 인간을 저주했다. 그리고는 모든 사람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어느 누구도 이 저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한번 태어난 것은 정한 일이고, 이후에는 심판만이 있을 뿐이다.”

자유: 신이 인간에게 내린 저주 혹은 그가 죄인이라는 증거
자유로운 사람은 죄인이다. 그가 스스로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다는 사실을 통찰하는 순간, 그는 죄인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체포된다. 이것이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극적인 아이러니다. 그러나 그는 인신 구속되지는 않는다. 그에 대한 구속은 감옥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가두는 것이다. 왜냐 하면, 세상은 이미 치밀한 감옥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통보받는 것은 아니다. K가 체포되던 날 집행관들을 따라왔던 사람들은 K가 다니던 은행의 부하직원들이었다. 그들은 무슨 영문인지 K를 체포하러 왔던 사람들을 동행하며 K가 심문받는 과정을 구경할 뿐이다. 집행관들을 포함해서, 그들은 K의 아침을 대신 빼앗아 먹고, K의 옷을 강탈한다. K의 옆방에 살고 있던 여인의 순결한 옷을 더럽히고, 그 방의 가구들을 이리저리 옮긴다. 이들은 마치 “성(城)”의 조수들처럼 K에게는 전혀 의미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존재는 K와 관련해서만 의미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K가 중요하지만, K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K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 자신의 죄목 뿐이다.

세상: 감옥 또는 재판소
K는 자신의 죄목을 알기 위해서 혹은 재판을 받기 위해서 재판소를 찾아 가지만, 어느 곳에서도 재판이 열리지 않는다. 그저 재판이 열린다는 사실만을 알릴뿐이다. 이른바, 그가 찾아간 재판소는 어떤 곳인가. 재판관이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재판관이라는 사람이 읽는 책은 법전이 아니라 외설적인 음란 소설에 불과하다. 재판관들은 그저 - 카프카는 재판관들을 모두 남성으로 가정했다 - 여자들에게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재판관들의 모습은 어떻게 묘사되는가. K가 재판에 도움을 얻고자 찾아간 화가는 그 아버지때부터 재판관들의 모습을 그려왔는데, 그 그림들은 하나같이 재판관들의 모습을 처벌자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재판관은 이미 옳고 그름을 재판하는 사람이 아니라 처벌하는 사람인 것이다.
모든 인간은 신과 단독으로 만난다. 신과 만난다는 것은 자신과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신이 만든 세상에서는 신과 나 밖에는 없다. 그렇다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무엇인가? K에게 있어서 세상은 그저 허구에 불과하다. 아무것도 확인되는 것은 없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헛것에 불과한 세상의 내부는 지독하게도 치밀하다는 것이다. 내가 한 번도 그곳에서 살기로 동의하지 않은, 그래서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 세상은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밤에 잠이 드는 순간까지 나를 규정한다. 마치 아침이면 깨어날 꿈속에서 사랑을 하고, 돈을 벌고, 집을 사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침이면, 기억조차 나지 않을 그 꿈속에서 약속을 하고, 그것을 어긴 것에 대해 분노하고, 용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꿈보다 허황한 그곳에는 규칙이 있고, 절차가 있으며, 제도가 있다. 가는 곳마다 재판소가 있고,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기소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디에나 내가 재판에서 이길 수 있도록 돕겠다는 사람이 있다. 나는 한 가지만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이 모든 것에 대해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이 죄다. 그러니 체포되는 것은 당연하다.

희망
희망이라는 것은 없다. 믿음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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