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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에 대한 개신교의 디아코니아적 책임

하늘기차 | 2019.02.03 13:32 | 조회 797


               

                난민에 대한 개신교의 디아코니아적 책임

-제주 예멘난민사태를 중심으로                                                                                     홍주민(한국디아코니아)

 2018.12.4..2시 기독교회관에서 4대종단 이주 인권협의회 심포지움에서 발표한 졸고입니다. 가톨릭. 원불교, 불교, 개신교의 난민관련 종단별 입장과 이일 변호사의 난민일반론 기조발제가 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동두천 난민공동체 휜다씨가 발표하였습니다. 난민 이웃을 통해 한국사회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한국사회는 평화이전에 자비의 능선을 지나야한다는 명제앞에 서있습니다. 천박한 민족주의나 순혈주의에서 벗어나 세계시민으로서의 보편감각을 익히는 학습이 필요한 때입니다...

 I. 들어가면서

   나는 난민과 관련하여 비전문가이다. 그런데 이 자리에 난민주제로 서있다. 원래 연초에 계획한 연중 계획에는 없던 일이다. 지난 반 년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지구의 반대편 예멘이란 나라는 우리에게 전혀 생경한 나라였다. 하지만 올 한해 이 나라의 존재는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지난 100년간 지구상 이처럼 지옥같은 상황은 없었다고 유엔은 공표할 정도로 위기속의 나라가 예멘이다. 그리고 그 나라에서 난민으로 신청하기 위해 5백 여명이 우리에게로 온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리고 지금 한국에 온 예멘인들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가? 앞으로 되어 질 상황에 대한 전망은 무엇일까? 특히 한국의 개신교는 어떻게 대응해왔고 앞으로 어떠한 전망을 할 수 있는가? 세계는 난민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이 글은 이러한 물음에 대해 정리하면서 한국 개신교의 난민에 대한 디아코니아적인 책임에 대해 비판적 성찰을 하고자한다.

 II. 난민 그리고 이주민에 대한 개인적 소회

   개인적으로, 난민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한국전쟁이후 나의 부친은 지방의 피난민 수용소에 급식소와 교육의 장으로서의 디아코니아 교회를 세워 평생 목회를 하시다 하늘나라에 가셨다. 어린 시절 나에게 있어 교회는 가난한 이들의 공동체였으며 나의 친구들 역시 수용소 아이들이라 낙인찍힌 아이들과 고아원 아이들이었다. 전쟁의 상흔은 처참한 가난과 실업 그리고 혈육의 이별속에 살아가는 아픈 이들로 남겨졌다. 다른 나라로부터 보내온 구호물자는 어린 시절 쉽게 접할 수 있었고 길게 이어진 난민 가옥에 구호물자를 전해주는 것은 교회의 일상이었다. 전쟁은 모든 것을 제로섬으로 만들어 사람들을 영도의 세상으로 내몰아 갔다. 내 기억속에 난민은 그렇게 투영되어있다. 그러니까 우리의 가까운 과거에 난민은 우리 자신이었다는 사실이다.

  독일에서 십년간 유학생활을 하면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애환을 경험한 적이 있다. 모든 것이 생경한 이국땅에서 버텨내는 일은 언어적인 문제를 비롯하여 경제적인 문제 등 수 많은 문제가 중첩된 고난의 행군이었다. 특히 경제적으로 넉넉한 형편이 아닌 내 경우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였다. 체류 내내 노동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여러 우여곡절을 경험한 바 있다. 가는 날부터 오는 날까지 이주노동의 세월이었다. 잊혀지지 않는 사건중 하나는, 기거할 방을 얻는 문제부터였다. 이방인으로서 부딪히는 문제는 당연히 피부색이었다. 방을 선듯 나서서 내주는 사람이 없어 곡예를 하듯 방을 얻었지만, 나올 때 보증금 문제로 집주인과의 마찰로 반년을 법정에 서기도 했다. 얼마 안되는 보증금이었지만 안준다는 주인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독일 친구의 형 변호사의 도움으로 1년간 법정투쟁을 통해 독일국민의 이름으로보증금을 돌려받았다. 이방인에게 옆에서 동반해주는 것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낀 사건이었다.

  또 하나의 비참은 체류연장의 문제였다. 가난한 유학생의 통장을 매 해 검증을 받으면서 계좌의 가난을 의심받아 석 달이 찍힌 체류허가를 받았을 때의 비애감은 존재에 대한 상실로 이어지는 경험이었다. 국적국이 아닌 곳에서의 체류허가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어서 그것에 대한 부정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임을 경험한 것이다. 언어적 장애로 장애인 취급을 받았을 때의 기분도 기억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하여튼 이주해서 살아가는 이주민의 삶은 하나부터 열까지 만만한 것이 없었다. 마치 갓난아이가 옹알이를 하고 배를 뒤집고 일어서고 걸음마를 하는 지난한 과정이 이국땅에서의 삶이라는 사실을 젊은 날 먼 이국땅에서 체득한 바 있다.

  이주생활의 아픔과 공부한 내용이 그런지라 한국에 온 후 5년여를 이주민센터 관련 일을 했다. 특히 이주민에 관계된 민관 협력기관에서 일을 했는데, 그 이유는 독일 디아코니아(개신교 사회실천기관) 현장이 민관협력에 의한 기관이었기에 한국의 민관협력 현실을 알아보고자 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당시 반()공무원 신분이었던 내게 난민과 미등록이주노동자는 손길과 눈길을 줄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이었다. 오로지 합법적으로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과 이주여성들의 권익에 관여할 수 있었다.

  민관협력 이주민센터의 생활을 접고 자유한 상황에서 올해 초여름 내게 닥친 난민의 문제는 내 중심을 바꾸어 놓았다. 2018430일 제주에 상륙해 난민신청을 한 예멘인들을 출도제한(섬 밖으로 못나가게 함)61일부터는 아예 예멘인들에 대한 무비자 입국 금지 조처는 나에게 의문을 가져오게 하였다. 들려오는 소식이 심상치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접하게 된 프랑스 기자가 만든 다큐멘터리 50분 용 예멘 관련 영상물, 그것은 독일 TV에 방영된 것인데, 예멘 내전에 대한 구체적이고 생생한 영상을 담고 있었다. 나라 전체가 정지되어 아비규환의 하루하루를 보내는 예멘 상황은 말 그대로 충격 그 자체였다. 그 후 나는 예멘에 빠져들었다.

 III. 난민디아코니아 직접행동

  날짜도 기억난다. 621일 페이스북을 통해 하루 한 끼로 연명한다는 예멘친구들을 위해 한 끼에 5천원, 1천 끼모금운동, ‘난민 디아코니아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난민디아코니아 직접행동이 시작된 것이다. 단 엿새 만에 모금액을 달성하고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제주에 가서 직접 맞닥뜨린 현실은 처절했다. 정부도 지자체도 손을 놓은 상태에서 전쟁의 사선을 넘어온 예멘 친구들의 안타까운 현실들이 널려 있었다. 예멘친구들이 가장 많이 기거한다는 곳으로 가서 하룻밤을 지내며 밤늦도록 대화를 했다.

  독일 TV를 통해 예멘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았지만, 친구들의 헤진 옷과 부상당한 상처와 자국 그리고 회색으로 변색된 깡마른 얼굴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세월호 세대같은 연령의 친구들이 무국적자로 이역만리 떨어진 이곳까지 온 사연을 들으며 눈물도 났다. 이제 돈도 떨어져 거리에서 노숙해야할 상황이란 말에 다시 누울 자리모금을 전개하여 엿새 만에 이층침대 20개를 모금하여 다시 제주에 갔다. 그 후 세 번 더 갔으니 총 다섯 번의 제주행 비행기를 지난 반년동안 탄 셈이다. 이러한 실질적인 도움을 위해 힘닿는 껏 노력도 했지만 그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특히 가짜뉴스의 정도는 도를 넘어 폭력적으로 비화되기도 하였다. 세 번째 방문 시 포럼에 참여를 했다. 포럼이 진행되는 내내 반대자들의 소요는 가관이었다. 마친 후 여성들이 대부분인 반대자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폭력도 불사하려는 것을 보고 기가 막혔다. 또한 청와대에 난민반대 청원이 삽시간에 70여만이 낸 것은 이 문제가 단순히 국민들의 개인적인 동기가 아니라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갖기에 충분하였다.

  결국은 에스더 기도운동 이라는 수구 개신교인들의 댓글부대의 조직적 개입이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증명되었지만, 당시 절박한 상황에 일탈한 개신교의 모습은 큰 아픔으로 각인되었다. 하여 내국인들에 대한 인식개선 작업이 절실하다는 생각에 포럼과 방송 토론 그리고 신문기고, 알자지라 방송과의 인터뷰 등을 통하여 진실을 알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반대기류를 인식해서 일까. 정부는 1017일 난민심사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실망스러웠다. 난민인정을 한명도 안한 것이다. 그 후 긴박하게 돌아가는 예멘 친구들의 거취와 결정에 부응하여 1031일 오산에 디아코니아 쉼터를 열고 6명의 첫 예멘인들이 보금자리에 안착하였다.

  한국사회의 뿌리깊은 난민 거부감은 어디서 기인할 것일까. 혹자는 우리 민족의 유전자안에 타자에 대한 깊은 거부감 인자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일까? 독일은 자신들의 게르만 우월주의, 아리안주의를 강조하다가 역사적 참사를 경험한 이후, 타자에 대한 환대교육 집중하여 오늘 날 난민 최대 환대국이 되었다. 유전자 운운하면서 인종차별의 정서를 은연중에 주사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일이다. 이는 우리에게도 요구되는 사안이라 할 수 있다.

 IV. 거짓뉴스와 거짓 신학은 동전의 양면

   가짜뉴스, 거짓 뉴스의 이면에는 가짜신학, 거짓 신학, 사이비 신학이 있다. 이번 난민 혐오, 난민 마녀사냥의 공로에는 일탈한 개신교의 약진이 돋보인다. 거의 한국교회를 노획하다시피 선전을 했다. 가을에 개최된 한국 개신교 교단의 총회에서 난민문제는 구체적으로 거론된 바 없다. 성명서의 한 줄로 나타낸 교단이 있을 정도이다.

  난민은 이제껏 한국사회의 금기어였다. 교회마저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이번 예멘사태는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거짓정보 뉴스에 힘입어 난민문제에 대한 무관심과 혐오로 일관하였다. 마르틴 루터가 500여년 전 기술한 <교회의 바벨론 포로>를 통해 당시의 교회의 상태를 비판한 것이 단지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21세기의 백주에 한국에서 벌어진 것이다.

  여기에는 에스더 기도운동이 주도적이었는데, 필자는 물음을 제기해 본다. 에스더 기도운동이라는 특정한 단체만의 문제인가? 성소수자, 동성애에 이은 난민, 무슬림, 이슬람에 대한 무차별 혐오와 배제, 그 뒤에는 수구정치 세력과 수구개신교의 암묵적인 동거가 있었다는 합리적 의심을 갖게 된다. 이 특정한 단체만이 연루된 것이 아니라 개신교 우월주의에 빠진 상당수의 개신교인들이 암묵적으로 이러한 배제와 혐의에 동의한 것이라 생각된다. 마치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이 지난 날 이 땅에서 진행된 것이리라.

  한국개신교는 지난 130년간 근본주의 신학에 포로가 되어 비정상적인 유사 개신교의 행태에 익숙해져있다. 이번 제주 예멘 난민사태가 전개되면서 초반부터 개신교 교회는 다른 어떠한 종교보다 극단적인 혐오와 무관심 정서를 유지하였다. 그 이면에는 신학이 있었다. 약자를 사랑하고 연대하는 신학이 아니라 배제하고 혐오하는 신학이 저변에 강하게 흐르고 있음을 쉽게 감지할 수 있었다.

  필자는 초기에 제주 첫 방문 시 제주 교회지도자분들께 한 교회나 여러 교회 시찰단위에서 예멘 친구들을 돌보는 것을 제안하였다. 지역의 문제는 지역에서 풀어내야 하는 원칙으로 제주 도지사를 만나 면담하기도 했다. 개신인인 그는 반대편을 인식하여 시민들이 앞장서면 돕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가 선제적으로 임시주거공간을 마련하여 난민심사 진행과정에 시행착오를 마련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필자는 세계의 곤경상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한국사회에 물음을 제기한다. 소위 골든타임이라는 것이 있다. 4년 전, 세월호 참사를 생각하면, 아직도 그 골든타임에 대응하지 못한 우리의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골든타임은 때가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V. 예멘 현재 상황

   예멘 상황을 적시하면 어린 아이도 공감한다. 예멘은 내전이 격화된 2015년 이래 5-6만 사망하고 200만 명 정도가 삶의 터전 잃고 19만 여명이 나라밖으로 몸을 피했다. 29백만 인구 중 4분의 322백만여 명이 외부의 식량지원에 의존하여 살아간다. 그 중, 800만 명이 아사위기에 처해 있고 콜레라로 100만 감염이 되어있는, 현재 예멘 상황은 유엔의 발표대로 지난 100년 이래 지구상의 최악의 인도주의적 참사지역이다.

   예멘은 왜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일까? 평화스러웠던 나라가 한순간에 나라가 정지된 이면에는 아주 복잡한 인과관계가 있다. 예멘은 왕정을 뒤엎고 공화정을 1962년에 수립한 나라이다. 하지만 공화파와 왕당파가 대립하게 되었고, 공화파는 이집트가, 왕당파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지원을 하여 내전으로 비화되고, 70년 정전협정을 체결 할 때까지 수십 만 명의 사상자가 나온다. 1939년부터 영국식민지였던 남예멘이 1967년 독립하자 남북예멘 사이에 국경분쟁이 생겨 1979년 무력충돌로 이어진다. 노선 갈등과 내전으로 불이 붙은 결과, 수천 명이 부상당하거나 숨진다.

   19905,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룬 예멘, 하지만 다시금 내전이 일어나 남예멘이 19945월 분리독립 선언을 한다. 그리곤 북예멘은 군사력으로 제압하고 남예멘은 대항한다. 설상가상으로 2004년부터는 북예멘에서 이슬람 시아파 반군과 정부군 사이의 내전이 발발한다. 2011년 아랍의 봄 사태는 북부 시아파,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 남부 분리주의 세력, 동부 남부 이슬람 무장세력이 개별적으로 정부와 대결한다. 네 개의 전선이 형성된 셈이다. 34년 장기집권하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은 2012년 결국 물러난다.

   하지만 시아파 후티 반군은 20151월 대통령궁을 점거한 이후, 사우디가 주도하는 수니파연합군이 개입한다. 이란은 반군쪽에, 사우디는 미국과 영국의 지원아래 무기와 장비를 제공받는다. 우리나라도 여기에 무기를 공급하였다. 117, 사우디가 주도하는 연합군은 남서부 호데이다 항구를 봉쇄하려고 100회 이상의 공습을 퍼부었다. 식량과 의약품 그리고 연료의 80%를 민간인에게 전달되는 통로인 호데이다를 집중공략하는 사우디의 작전으로 예멘은 더욱 지옥으로 변하고 있다.

   여기서 앞으로 난민의 행렬은 줄어들지 않고 늘어날 것이란 예측을 할 수 있다. 더욱이 이란에 대한 미국의 압박으로 이란마저 내란이나 미국과의 전쟁이 시작된다면 걷잡을 수 없는 난민의 행렬은 증폭될 것이란 전망을 한다. 이러한 21세기의 난민러시에 독일은 그 한가운데에서 난민을 수용한 나라로 소개된다.

 VI. 독일의 난민 수용

  2015년 독일은 90만 여명의 난민은 수용했다. 필자는 그 해 여름 독일 중부 도시 하이델베르크 난민보호시설을 방문한 적이 있다. 엄청난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침착함과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201668만 명을 수용하고 26만 명을 인정하고, 201760만 명을 수용해 현재 140만의 난민이 독일에 거주하고 있다. 독일은 가히 난민 수용의 모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 65백 만명의 난민이 현존하는 지금, 난민의 문제는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독일 개신교의 사회 실천기구인 디아코니아의 역할이 주목된다.

   독일의 난민수용을 맡고 있는 디아코니아는 170여년의 역사를 지닌 사회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곳이다. 바이마르공화국 이래로 민관협력의 전통이 지속된 독일 사회국가는 디아코니아가 단연 선두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디아코니아는 전국에 31천개의 기관이 있고 45만여 명의 실무자와 70만 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국내문제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곤경의 문제에도 깊이 있게 관여하여 이번에 갑작스럽게 발생한 난민사태도 디아코니아가 선도적으로 직접적인 행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시민사회의 주도적인 역할의 뒤엔 국가의 보충적 도움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연방이나 주가 난민의 문제에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번에 제주예멘 사태과정에서 필자는 안타깝게도 한국 정부나 지자체가 그러한 역할을 하는 것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엊그제 119, 바이마르공화국 100주년 기념 의회연설에서 독일 대통령 슈타인마이어는 의회에서 다음과 같이 열변을 토했다: 축포속에 시작한 공화국이 히틀러의 광기로 무너진 것을 기억해야 한다. 히틀러가 성소수자, 장애인. 유대인, 이주민, 난민 학살로 몰고 간 지난날 역사, 공화국 설립 축하 세레모니 이후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식어가면서 한순간에 가축을 실어 나르는 차에 유대인과 약자들을 가스실로 보내는 광기로 이어졌음을 기억해야 한다. 한순간이다.

   우리의 시계는 어디쯤 있는가...촛불혁명의 축포가 얼마 되지 않아 반동세력과 기득권 세력의 탐욕이 가관이다. 성소수자, 난민신청자, 이주노동자 등 소수자를 마녀사냥 하듯, 몰고 가는 광기가 보이지 않는가. 이번 제주에 온 예멘 난민들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이를 방증한다.

 VII. 나가면서: 난민에 대한 개신교의 디아코니아적 책임

   현재 한국은 이방인들에 대한 환대가 세계적으로 극히 소극적인 수준의 나라이다. 2017년 한국 인구대비 난민수용률 세계 139위이며, 2017년 난민인정률 1.51%(전세계 24.1%, 유럽연합 33%, 미국 40%)가 이를 방증한다. 박해받을 수 있다고 인정할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를 가지고 있는 내란도 난민인정으로 유엔에서는 정하였지만 우리는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전쟁으로 생긴 참상에 국제사회가 맺은 1951년의 유엔 난민 협약에 한국은 1992년에 가입하고 2013년에는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번 제주예멘사태로 비추어 볼 때, 한국은 난민들을 환대하는 나라가 아니라 거부하는 나라로 비칠 가능성이 높다. 더 나아가 인도적 체류허가라는 체류허가도 여러 제약을 담은 허가이기에 비인도적인 견디어 내는 삶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시 말해, 유엔 협약에 가입만 했고 난민법만 만들어 놓은 것이지 난민을 실질적으로 보호하진 않는다. 한국사회가 국제사회의 평화기여에 대한 기대치에 못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다섯명의 국회의원들이 난민법 개악에 나서는 일은 너무도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을 말해준다.

   교회는 어떠한가? 난민반대집회에 동원된 개신교의 물결이 세계의 조소를 자아낸다.더 이상 부끄러운 행렬은 멈추어야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약자를 섬기는 디아코노스로 오셨다. 제자들이 상정한 큰 자나 군림하고 지배하는 모습이 아니라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시중드는 그리스도로 오셔서 몸으로 본을 보여주셨다.

  성장과 번영의 영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철저히 약한 이들에 대한 긍휼과 자비 그리고 사랑의 영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이시다. 우리가 신앙하는 그리스도는 디아코노스. 시중드는 이다.(누가22.27) 성조기나 이스라엘기를 들을 것이 아니라 철저히 나무에 매달려 죽으신 예수의 십자가, 난민으로 와서 난민과 함께 하신 고난의 십자가를 들어야 한다.

   이러한 디아코노스 주님을 따르는 제자됨의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구체적으로 행동해야한다. 55천개의 교회가 전국에 포진되어있다. 지역에서 난민, 인도적 체류자, 난민소송중인 나그네에 대한 신학적 실천, 신앙적 실천, 성서적 실천으로 다가가야 한다. 난민은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무조건 껴안을 대상이다. 마태복음 25장 최후의 심판비유에서 예수는 명토박는다: 너는 내가 나그네되었을 때 나를 따듯하게 영접하였다. 너는 천국에 이르리라. 너는 내가 나그네가 되었을 때 나를 받아주질 않았다. 너는 지옥 영영 형벌에 처해지리라. 이 말씀에 의하면, 우리가 구원을 위해 영웅적 행동을 하라는 요구가 없다. 단지 이 땅의 약자들, 특히 난민처지가 되어 이 땅에 온 나그네에게 손을 건네고 동반하는 것,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지금 난민처지로 배회하는 이들이 난민인정 받은 이들 8백 여명과 인도적 체류자인 19백 여명 그리고 여기에서 제외된 난민소송 단계에 있는 3만 여명의 견디어 내는 이들이 이 땅에 있다. 이들은 한국사회에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비존재들이다. 어쩌면 유령과 같은 존재로 버텨내는이들이다.

   필자는 난민수용국가 중 대표적인 독일이 난민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이유를 알고 있다. 특히 개신교의 디아코니아와 가톨릭의 카리타스가 적극적으로 나그네 된 난민들을 구체적으로 돌보고 있는데, 그들을 움직이는 동기는 전술한 바처럼, 약자로 오는 그리스도, 다시 말해, 난민신분으로 오는 그리스도를 따듯하게 맞이하는 신앙행위이기 때문이다. 마르틴 루터는 1523년 라이스니히 공동함 규정의 서문에 마태복음 25장의 최후심판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인용하며 명토박는다: 지금 곤경에 빠진 이를 섬기는 것보다 더 큰 예배는 없다.

   신앙과 사랑은 별개가 아니다. 사랑실천은 신앙행위에 속한다. 한국의 개신교가 이 땅의 가장 약자인 난민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다가가야 할 이유는 알량한 자선이나 시혜가 아니다. 난민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따듯하게 맞이하는 것, 그것은 구원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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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요한복음 10:1-42(나는 선한 목자이다)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72 2023.10.19 06:06
109 요한복음 9:1-41(눈 뜬 사람의 변화)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63 2023.10.11 18:40
108 요한복음 8장:1-59(“나는 세상의 빛이다”)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51 2023.10.04 19:22
107 요한복음 7장:1-53(“목 마른 사람들은 다 내게로 와서 마셔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69 2023.09.27 19:21
106 요한복음 6장:1-71(“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다.”)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65 2023.09.20 18:32
105 요한복음5장:1-47( “낫고 싶으냐?”)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71 2023.09.06 17:58
104 요한복음 4:1-54(변 화 : 버려진 땅, 사마리아로 부터)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76 2023.08.30 18:40
103 요한복음 3:1-36(니고데모와의 대화-성령으로 다시 태어남)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64 2023.08.23 18:27
102 요한복음 2:1-25(가나의 혼인 잔치, 성전정화)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82 2023.08.17 16:23
101 요한복음 1장(1-51)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78 2023.08.09 1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