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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원음을 복원하라

하늘기차 | 2017.03.07 11:14 | 조회 781


                종교개혁의 원음을 복원하라(송용원 목사)

(에스라가) 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8:8-9)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둔 최근 10년 동안 우리 한국 사회에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증대되었다. 그중에는 대중적인 관심을 넘어서서 전문적인 단계로 진입하려는 교양인들의 출현도 엿보인다. 지난달에도 한 전직 외교관이 이탈리아 인문기행 서적을 탈고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탈리아 대사를 지낸 그는 3년 동안 로마와 각 지방을 순회하였는데, 전국 간선국도로 활용되는 2,000년 전 로마의 길들과 여느 동네 경로잔치처럼 평범하게 치러지는 로마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의 사후 2,000주기 추모행사를 보면서 머릿속까지 하얗게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러한 체험이 미국이나 일본을 거치지 않고 이탈리아의 토양이라는 발바닥에 자기 손가락을 직접 뻗어 힘껏 긁어보고 싶은 열망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재미있게도 그는 일본이나 미국이 그동안 우리 한국과 유럽 사이에 있는 끼여 있는 밑창과 같았다고 지적했다. 밑창 댄 발바닥을 아무리 손가락으로 긁어댄들 무슨 시원한 맛이 있었을까!

    밑창 제거하기

결국 종교개혁도 중세라는 밑창을 제거하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근원의 샘으로 돌아가는 것’(ad fontes)의 진의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종교개혁은 천 년간 짙게 드리운 중세의 커튼을 걷어내는 작업이었다. 신약성서의 복음이라는 발바닥에 직접 자신의 손가락을 갖다 대고 긁기 시작한 이들이 바로 종교개혁의 선구자들이다.

 

   500년 전 유럽교회의 개혁가들은 원전에 능한 학자들이었다. 인문주의는 그런 점에서 종교개혁에 큰 기여를 했다. 개혁가들은 헬라어 신약 원전과 히브리 구약 원전으로 직접 되돌아가 성서가 본래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에 자신의 귀를 직접 갖다 대었다. 그리고 복음의 원음을 생생히 들었다. 그것은 마치 80년 만에 복원된 <동래아리랑>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우연히 찾아낸 고() 음반을 수년간 고증 작업한 끝에 구전으로 희미하게 추정되던 가사와 곡조가 온전히 복원된 <동래아리랑>! 이를 통해 1930년대 강제노역에 동원되어 대한해협을 넘어 일본으로 끌려간 선조들의 가슴 속에 응어리진 아픔과 사연이 고스란히 재연되었다. 루터가 시작하고 칼뱅이 끌어올린 종교개혁은 예수 부활을 목도한 초대교회 복음의 오리지널 사운드를 복원하고자 하는 열정과 실력에서 나왔다. 그 작업을 끈기 있게 밀고 나간 결과, 그들은 중세 천 년이라는 역사의 오랜 먼지를 털어내고 본래의 빛깔을 되찾았다.

    우리 한국교회는 대다수가 종교개혁의 후예라 자처한다. 그리고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2017년을 준비하며 다양한 교계행사도 마련하고 신학 프로젝트들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교회가 종교개혁의 원조인 루터와 칼뱅의 사상과 얼마나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혹시 둘 사이에 쌓인 퇴적물 때문에 서로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구리거울을 통해서나 안개 한가운데서 보는 것같이 희미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온전히 알아야 할 많은 것들을 부분적으로 아는 데 그치거나, 심지어 왜곡되고 굴절된 지식에 갇혀 지내지는 않는지 되짚어볼 일이다. 종교개혁과 오늘날 한국교회 사이에 있는 구리거울은 아마도 지난 300년 동안에 진행된 개신교 정통주의, 루터주의, 칼뱅주의, 청교도주의, 경건주의, 학생 부흥운동, 미국의 근본주의 신학에 깊이 영향을 받은 영·미 선교사들과 신학자들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칼뱅은 칼뱅주의자가 아니다

   먼저, 칼뱅주의는 칼뱅의 고유한 신학적 입장이었을까? 즉 칼뱅은 칼뱅주의자였을까? 그들 사이에는 구두 밑창 같은 것이 없었을까 하는 질문이 있다. 리처드 멀러(Richard Muller)는 칼뱅은 칼뱅주의자일 수 없다고 말했다. 밑창이 있었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도 자기 자신의 추종자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칼뱅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성 버나드와 같은 오래된 신학 전통과 연결되어 있고, 마르틴 부처(Martin Bucer)와 같은 동시대 개혁가들과도 상호 영향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칼뱅의 신학사상은 1559기독교 강요최종판 외에도 그의 여러 소책자, 논문, 주석, 설교 및 기독교 강요초판, 중판에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

    멀러에 따르면, 칼뱅주의자들(Old Calvinist)은 칼뱅을 포괄적으로 성찰하는 지적인 범위와 깊이를 지니지는 않았다. 18세기와 19세기 개혁파 정통주의 시대에 스스로를 칼뱅주의자로 규정하는 이들은 많았지만, 그들이 칼뱅의 신학적 핵심을 충분히 이해하며 뿌리를 내린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단지 칼뱅의 진술에 대한 그들 나름의 특유한 교리 진술인 예정론을 옹호했기 때문에 그들은 칼뱅주의자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장로교가 가장 많다는 한국교회 역시 칼뱅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은 19세기와 20세기 초 미국교회의 신학을 주로 수입했다.

    물론 이후에 개혁주의 전통을 가리키는 이름으로서 칼뱅주의자로 불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여러 종교개혁가들의 사상과 개혁주의 신앙고백의 테두리 안에 있는 후기 신학자들 사이에는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발견되고 유사성과 차이점이 속출한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홀(Hall)은 칼뱅이 예정 교리를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바탕을 두면서 따듯하고 부드럽게 전개한 데 반해, 칼뱅주의자들은 예정 교리를 신론에 가까이 두면서 전체 교리의 바탕으로 삼는 바람에 매정하고 차갑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칼뱅의 신학이 기독론에 토대를 둔 무제한적 속죄라는 포용적인 성격이었다면, 칼뱅주의는 하나님의 신의에 토대를 둔 제한적 속죄라는 배제적인 신학의 모습을 띄었다. 그래서 튤립’(tulip)이라 불리는 칼뱅주의 5대 교리는 칼뱅과 동시대 다른 개혁가들에게 원천을 두는 사상도 아니고 도르트 신조의 입장도 아닌 19세기 영국과 미국에 기원을 두고 있는 축소된 형태의 사상이다. 이와 같이 본다면 한국교회에게 칼뱅주의는 혹시 칼뱅의 발바닥을 우리의 손가락으로 긁는 데 도움을 주는 설명서가 아니라, 도리어 왜소한 경험만 하게 만드는 밑창이 될 수도 있다.

 생각보다 넒은 종교개혁 지형도

    다음으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실은 종교개혁은 루터와 칼뱅만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 두 사람 외에도 츠빙글리, 부처, 외콜람파디우스, 파렐, 무스쿨루스, 베르미글리, 불링거, 아라스코, 우르시누스, 올레비아누스, 잔키, 폴라누스, 베자와 같이 종교개혁의 거성들이 당대에 즐비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는 마치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베푸신 엘림의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와도 같다. 결코 루터와 칼뱅이라는 불기둥과 구름기둥만 있지 않았다. 종교개혁의 길을 결단한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그 풍성한 물가에 하나님의 장막을 쳤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후예임을 자처하면서도 종교개혁의 불기둥과 구름기둥인 루터와 칼뱅의 신학과 실천에 대한 성찰도 피상적일 뿐 아니라, 물 샘 열둘 혹은 종려나무 일흔 그루와 같은 상당수의 종교개혁 선각자들에 대한 지식도 전무하다시피하다. 그들은 대부분이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출중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루터와 칼뱅보다 월등한 이들도 있었다. 그러니 우리는 종교개혁이라는 발바닥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넓고 크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루터와 칼뱅의 발바닥만 만지고서 밑창 문제를 다 해결했다고 과신할 수 있다. 사실은 종교개혁 전체를 만질 수 있게 밑창을 제거해야, 다시 말해 손실된 그 시절 악보를 다 복원해야 당시의 오리지널 사운드를 제대로 복원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와 종교개혁 거리재기

   돌이켜보면 한국교회는 유럽의 종교개혁 신앙을 직접 수입한 것이 아니라, 19-20세기 미국교회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 전수 받았다. 물론 영국교회, 캐나다교회, 호주교회의 영향도 받았다. 그런데 이것이 종교개혁과 한국교회 사이에 또 하나의 밑창으로 보인다. 초기 선교사들은 서구 중심의 섭리와 선민의식을 가진 보수적이고 복음주의적이고 청교도적인 인물들이었다. 그들과 종교개혁의 원천 사이에도 밑창이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초기 선교사 대부분은 미국의 학생자원자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을 통해 헌신한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선교지에서 대체로 보수적인 신학을 가르치며 도덕적 엄격함을 강조하던 장로교 구파에 속한 맥코믹 신학교와 근본주의 신학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미국 북장로교의 프린스턴 신학교 출신이 많았다. 그리고 상당수가 무디와 같은 부흥사에게 영향을 받아 여러 근본주의 신학교에서 공부했다. 성경 공부를 강조하고 감성적인 부흥운동과 전천년설 종말론에 기반을 둔 선교 소명에 천착했다. 청교도적이고 복음주의적인 신앙과 보수적 신학이 그들에게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더군다나 교리상의 차이로 분열하기보다는 선교를 위해 하나 되는 방향을 선택했기에 알미니우스든 칼뱅이든 관계없이 선교를 위해서는 일치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초기 한국교회 원형은 교리 중심적인 정통 보수주의 교회가 아니라 복음주의적인 교회의 모습을 띄었다. 부흥사경회를 통한 성서적이고 경험적인 신앙이 매우 강조되었다. 초기 선교사들과 그들의 영향을 받은 초기 한국교회는 근본적이고 경건주의적인 복음주의라는 평가를 받는다. 청교도적 도덕성이 유교의 도덕성과 교차하며 한국교회 특유의 신앙과 문화를 생성한 것이다.

    당시 한국교회의 신학교 교육은 표면상으로는 장로교 개혁주의 신학이었다. 하지만 초기 선교사들은 종교개혁 원전과 성서 원어와 인문주의 사상에 정통한 중견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영미권의 유수한 대학을 다니던 중 학생부흥운동에서 감화를 받고 이제 막 선교에 뛰어들기로 작정한 젊은 청년들이었다. 그들에게는 복음의 기초를 전하고 성서를 번역하고 찬송가를 만들어 보급하고, 교회를 세우고 신자들을 양육하고 병원과 학교를 설립하는 일만으로도 힘과 시간과 재정이 턱없이 부족했다.

    사학자 이만열이 평가했듯이, 한국교회는 초창기부터 지나칠 정도로 그러한 미국 선교사들에게 수동적으로 의존하는 경향을 띠었고, 반면에 한국교회의 자생력에 의한 신학의 적극적 형성은 부진했다. 특히 성서 원어나 현대적 의미의 성서신학은 당시 신학교육에 반영되지 않았다. 종교개혁 전통의 본류에 해당하는 루터와 칼뱅 등의 사상을 직접적으로 배우고 성찰하는 학문적 전통이 수립된다는 것은 초기 한국교회와 선교사들에게 요원했다. 더군다나 당시는 나라의 주권도 독립도 상실한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이처럼 초기 한국교회에서 선교활동을 주도하던 미국교회의 선교사들은 칼뱅과 루터와 같은 종교개혁 본래의 목소리보다는 19세기 후반의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교회와 세상에 대한 이분법적이고 분리주의적이고 반지성적인 근본주의 신학의 태도는 초기 한국교회가 지성적이고 사회개혁적인 신앙으로 형성되기보다는 개인주의적이고 수동적인 기복신앙의 성격을 띠게 만든 주요 원인이 되었다. 근본주의 신학에 근거한 교리와 신앙고백이 전면적으로 수용되면서, 개인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신앙 성향이 두드러져 갔다. 그만큼 공동체적이고 진보적인 신앙 성향은 위축되는 불균형도 고착되어 갔다.

    해방 후 경제성장이 가속화되던 1970-80년대에 대다수의 한국교회는 인문주의를 수용하면서도, 실상 지성적인 면모를 갖추고 민주화와 인권과 경제정의 등 당시의 시대정신을 영적인 차원과 사회적인 차원으로 풀어내지는 못했다. 500년 전 역사적 전환기에 있던 유럽 대륙을 선도한 종교개혁가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특히 1970년대 이후 미국교회의 근본주의자들은 세속화에 밀려 위축되었다가 다시 재등장하여 도덕을 강조하는 기독교 우파의 이름으로 활발해졌고, 이는 한국교회가 개발독재 시절에 경제성장을 찬양하며 보수 기독교가 한국교회 대다수를 차지하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반면에 종교개혁의 본산인 독일교회, 프랑스교회, 네덜란드교회, 스위스교회, 스코틀랜드장로교회가 한국교회에 끼친 영향은 미국교회의 그것에 미치지 못했다.

원음 찾기 1. 칼뱅은 자본주의의 아버지?

   예를 들어 한국의 보수적인 교회들은 칼뱅을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에 친화적인 인물로 소개하는 잘못된 역사해석에 대해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반대로 종교개혁가들이 민주주의와 경제정의, 보편적 인권의 여명으로 얼마나 소중한 역사적 자산인지를 부각하지 않았다. 종교개혁가들의 사회변혁적인 원음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으면서도 침묵했던 소수와, 그 원음을 전혀 들어본 적이 없어서 개혁가들과 우리 사이에 두껍게 끼인 밑창과 같은 근본주의 신학에 기대고 만 다수가 점차 한국 보수 기독교의 지형도를 채워나갔다. 이와 더불어 종교개혁과는 거리가 먼 성서에 대한 반지성적이고 문자적인 해석은 결국 종말론과 창조론에 대한 심각한 오류를 낳아 사회적 병리와 학문적 착오를 낳았다.

    이제 한국교회는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의 신칼뱅주의처럼 종교개혁의 본래 목소리에 다시 귀를 기울이며, 적합성 있는 학문 전통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의 다양한 영역에서 고유하게 발전시켰던 지성적인 신학을 진지하게 고민할 시점에 서 있다. 그 실례로 근대와 현대에 들어오면서 칼뱅의 사회경제 사상에 관한 다양한 시각이 등장했고, 다양한 시각에 바탕을 둔 논쟁들이 펼쳐졌다. 그중에는 밑창에 해당하는 것이 있고 밑창을 걷어낸 것도 있었다.

    먼저 독일의 종교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칼뱅주의와 현대 자본주의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보았다. 그는 칼뱅주의자들이 믿는 예정론으로 인해 그들이 개인의 내적 고립감으로 이끌렸고, 이것이 자신들의 직업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인식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칼뱅주의자들의 이와 같은 사고방식이 개인주의적이고 합리적인 자본주의 발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반면 스위스 제네바 대학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가르쳤던 앙드레 비엘레(Andre Bieler)는 베버의 논지를 반박했다. 비엘레는 18세기 칼뱅주의에서 예정 교리가 수행했던 우선적 역할에 대해서는 베버의 주장이 비교적 적절한 분석이었다고 인정하지만 칼뱅의 생각과 16세기 초 칼뱅주의에서 예정 교리가 압도적 역할을 하지 않았음을 베버가 간과했다고 말한다. 비엘레는 칼뱅의 원전을 직접 파고들었다. 그가 발견한 칼뱅은 현대 자본주의를 낳은 창시자일 수 없었다. 한마디로 비엘레는 베버가 넣어놓은 밑창을 제거하는 작업을 통해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했다.

    같은 맥락에서 월레스(Ronald Wallace)는 칼뱅이 강조한 공동의 이익에 공헌하는 일은 경쟁적 사회를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정신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한 자본주의적 성향은 개인적인 이익과 사회적인 이익 모두를 무너뜨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칼뱅의 가슴 속에는 제한된 경쟁과 자발적 박애 정신이 이끄는 사회의 모습이 피어나고 있었다. 결국 종교개혁의 원음을 얼마나 재생해내느냐에 따라 사회경제에 대한 교회의 입장과 가르침은 전혀 다르게 전개된다. 그렇기에 원음은 중요하다. 개혁가들의 원저를 포괄적이고 직접적으로 다루는 신학 작업은 앞자리에 놓일 만큼의 가치가 있다.

 원음 찾기 2. 일반은총의 바퀴 크기

   한국교회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반드시 밑창을 걷어내고 원음을 들어야 할 중요한 분야 중 하나가 일반은총(the common grace)에 관한 것이다. 이는 한국교회가 한국 사회의 다양한 종교와 문화, 학문과 기술에 대해 어떠한 신학적 입장을 취할 수 있는지, 취하지 않아야 하는지에 대한 중대한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은총에 대해 칼뱅과 같은 개혁가들이 본래 생각했던 의도를 복원하는 일은 그 의미가 크다. 이와 관련해서 칼뱅의 본래 저작에 일반은총 교리가 명백히 발견된다고 주장하는 카이퍼의 신칼뱅주의가 속한 지지자 그룹과 칼뱅과 일반은총 교리 사이의 관련성을 약하게 생각하는 반대자 그룹이 대립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칼뱅의 일반은총을 둘러싼 논쟁을 해결할 수 있을까?

    필자가 이 논쟁을 연구하며 칼뱅의 저작을 살펴보면서 느낀 점은 카이퍼가 이끄는 지지자 그룹이 일반은총의 교리와 칼뱅을 너무 근접하여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반해, 반대자 그룹은 칼뱅을 일반은총의 교리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뜨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만약 한국교회가 지지자 그룹의 신칼뱅주의 노선을 따르게 된다면 일반은총 교리는 대사회적인 소통에 있어서 독립적이고 중요한 신학적 범주로 강력히 다루어지게 된다. 반면에 칼뱅과 일반은총 교리 사이에 좀 더 느슨한 연관성이 있다거나 상반된 모순이 있음을 옹호하는 반대자 그룹의 입장을 따르게 된다면, 종교개혁 전통을 따르는 한국교회에서 일반은총이 차지하는 역할과 무게감은 다분히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혁가들의 일반은총 교리에 대해 탐색을 해보면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유행한 페니파딩 자전거’(an old penny-farthing bicycle)와 비슷한 그림이 나온다. 일반은총이라는 작은 뒷바퀴를 필요로 하면서도 특별은총이라는 더 크고 중요한 앞바퀴로 달리게 되어 있는 이 자전거는 하지만 지지자 그룹과 반대자 그룹 중 누가 그리느냐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진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칼뱅을 위시한 개혁가들이 본래 그 자전거의 바퀴 크기를 어떻게 그렸느냐 하는 점이다.

 원음 찾기 3. 프로테스탄트 공동선 윤곽

   필자는 종교개혁의 본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원음을 재생하는 방식이 한국교회가 종교개혁 정신을 오늘날의 시대에 맞게 되살리기 위해서 최우선 과제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을 마무리하며 이에 대한 샘플을 하나 제시해보려고 한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서 인적 자원, 지식, 물건, 사건들은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교환된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아도, 사실 안을 들여다보면 사람들은 점점 소원해지고 있다. 왜 그럴까? 예전보다 각자의 이익이 증가했는데도 왜 서로 상대에게 포기하라고 요구할까? 모두가 자기 이익을 중시하는 시대적 풍조가 지난 300년간 꾸준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상대주의 세계관에 기초한 자기중심적 개인주의에서 왔다. 하지만 급증하는 빈부격차와 화석 에너지의 고갈, 환경 위기 등은 인류가 과연 평화롭게 공존하며 생존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역사상 그 어느 시대보다 절실하게 던지게 한다.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21세기 초엽 우리의 자화상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일반학문에서는 공동선’(the common good)이라는 주제가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본래 공동선은 고대 그리스-로마 철학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주제이지만, 근현대 계몽주의, 자본주의, 개인주의 사조하에서 한동안 소홀히 다뤄졌다가 세계화의 현실 속에서 다시 부각되는 시대정신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 특히 한국 교계에서 공동선은 아직 생소한 용어이다. 이에 대한 인식 역시 턱없이 부족하다. 그 이유는 종교개혁 전통에서 내려오는 프로테스탄트 공동선 사상에 대한 연구와 가르침이 없었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필자는 장로교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스코틀랜드에서 칼뱅을 연구하면서, 그의 공동선 신학에 대한 연구가 그곳에서도 부재함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서구 신학계에서는 공동선에 대한 활발하고도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정작 종교개혁 연구가들은 칼뱅의 공동선(commune bonum) 사상의 내용과 실천적 적용에 체계적으로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다. 이 같은 모습은 공동선에 대한 한국교회의 인식 부족을 초래한 하나의 원인이 되어, 결국 한국 개신교는 아퀴나스의 공동선 사상으로 무장한 가톨릭교회보다 시대정신을 선점하는 일에서 뒤처지게 되었다.

    막상 프로테스탄트 개혁가들의 공동선에 대한 성찰과 실천을 그들 저작의 원전을 중심으로 포괄적으로 추적하면 어떠한 결론을 얻게 되는가? 종교개혁의 목적이 구원을 위한 복음의 원음을 되찾아 그것으로 교회를 위한 영적인 공동선(the spiritual common good)을 먼저 회복한 후, 이를 사회적인 공동선(the social common good)의 형태로 확대하는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프로테스탄트 신앙은 본래 공적인 세계를 최우선 순위로 삼으시는 하나님을 선포하는 믿음을 실천하고 있었다. 개혁가들은 설교를 마칠 때면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와 사회의 공동선을 위하여!”를 선포하곤 했다. 따라서 더 이상 공동선에 대한 개혁가들의 성찰이 세계개혁교회연맹의 아크라 고백이나 칼뱅 탄생 500주년을 기념하는 제네바의 각종 대회에서 요약된 내용으로만 제시된 것처럼 적당한 재생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하나님의 경제를 위한 개혁가들의 메시지 복원은 치밀하고도 끈기 있게 수행되어야 한다. 칼뱅의 진짜 초상이 자본주의의 아버지라는 오래되고 허구적인 이미지 안에서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오히려 자유와 정의와 공동선을 향한 오늘날의 사회경제적 노력에서 종교개혁가들의 진면목이 발견된다는 시각은, 오직 종교개혁의 원음을 재생하는 지난한 작업을 통해서만 드러날 수 있다. 더 이상 복원 작업이 단편적이거나 제한적이어서는 안 된다. 칼뱅의 라틴어 원전에 55, 프랑스어 원전에 87회나 등장하는, 그래서 아퀴나스에 필적하거나 오히려 능가하는 그의 공동선 용어의 맥락을 더욱 포괄적이고도 심층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종교개혁 밤하늘에 총총한 별들

   종교개혁에는 공동선이라는 별 외에도 수많은 별들이 찬연히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그 별들 하나하나에 담긴 이름들을 하나씩 불러보아야 한다. 자유와 해방, 성화와 칭의, 복음과 화해, 공평과 베풂, 은혜와 선물, 일치와 다양, 환경과 생명, 인권과 공동체, 정의와 저항, 고난과 참여, 박해와 순례, 십자가와 연대, 치유와 환대, 포용과 공생, 창조와 평화, 생명과 안식, 영성과 일상, 기도와 노동, 교회와 도시, 제자도와 박애! 500년이 지났어도, 아니 500년이 지났기에 오늘 우리는 그 별들의 이름 하나하나에 담긴 독특한 사연들, 다면적인 함의와 복합적인 실제를 복원해야 한다. 그리고 그 오리지널 사운드를 있는 그대로 한국교회의 강단에서 울려 퍼지게 해야 하며 모든 성도는 그 원음을 들어야 한다. 500년 전 가슴으로 했던 이야기를 똑같이 가슴으로 들어야 한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를 낱낱이 알아야 한다. 그런 다음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 물어야 한다. 어떠한 반향이 나오는지 살펴야 한다.

    로마서 10장에서 사도 바울이 고백했듯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 그 원음에서 말미암는 것이다. 그렇게 순종의 발걸음을 내딛을 때,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우리 주님께서 제2의 종교개혁을 위해 친히 준비하신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와 같은 개혁가들을 한국교회에도 벼락같이 허락하실 것이다.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15:27).

    송용원 |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B. A.),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미국 예일 대학교(S. T. M.), 영국 에딘버러 대학교(Ph. D.)에서 조직신학과 칼뱅을 공부했다. 온누리교회, 뉴저지 초대교회, 새문안교회에서 부목사로 대학·청년사역을 했으며, 미국 유학시절에는 보스턴 온누리교회와 뉴욕 맨하튼 뉴프론티어 교회를 개척했다. 현재 서울에서 은혜와선물교회를 개척하여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초빙교수로 있으면서 기독경영연구원 연구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기독교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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