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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acqjxmi | 2021.08.01 00:06 | 조회 286
                                 



                             

                          생명·생태·도(道)의 신학                                            

                                                                                      <하늘새의 땅 소리>
에큐메니안에서 발췌
2015년 07월 24일 (금)김흡영 교수
                                            

신·인간·우주(삼태극)의 묘합(1)1)

서론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기상이변들은 지구의 생태계가 위험수위를 넘어 악화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해주었다. 인간의 탐욕에 의해 자행된 무자비한 생태계의 파괴에 대해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가 크게 진노하고 있는 듯 계속되는 기상이변은 “이와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우리는 없어질 것이다”라는 전망과 “인간이란 절명위기에 처한 항성에서 생존할 수 있는 종인가?”(Thomas Berry)라는 질문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게 했다.2)

20세기 후반부에 이르러 신학에 던져진 최대의 화두는 단연 생태계의 위기일 것이다. 린 화이트(Lynn White)는 지구촌에 생태계의 위기를 초래한 “역사적 근원”이 자연보다는 신의 초월성을 강조하고 인간에게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함으로써 자연의 가치를 비하시키고 인간의 이익을 위하여 자연을 함부로 파괴할 수 있도록 사상적 기조를 제공한 유대-그리스도교 전통에 있다고 맹렬하게 비판하였다.3) 물론 그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해에는 많은 문제가 있지만, 오히려 과학자인 그가 생태관이 세계관, 특히 자연과 운명에 대한 믿음인 종교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 것은 신학자들과 종교인들을 크게 각성하게 하였고, 그에 대한 대안을 세계종교전통들에서 찾게 만든 한 결정적인 동기가 되었다.

또한 20세기가 그리스도교 신학에게 던져준 큰 주제들, 곧 맥락성은 사회정의 구현을 위한 해방(emancipation), 타종교들과의 대화(dialogue), 그리고 생태계의 위기(ecology)라고 압축할 수 있다(Peter Hodgson).4) 남미해방신학, 정치신학, 여성신학, 흑인신학, 제삼세계신학, 민중신학 등이 치열하게 주장한 해방 모티브와 프락시스의 강조는 그 동안 서양신학이 지녔던 교리적 공론과 계급적, 성적, 인종적 사유화에 대한 올바른 교정이었다.

또한 세계종교에 대한 종교학적 문맹을 겨우 극복하고 그리스도교외 세계종교 전통들의 탁월한 가치를 인식하게 된 서양신학자들은 다른 종교들이 제시하는 심오한 지혜와 도전들을 종교 간의 대화, 종교내적 대화, 종교신학, 비교신학, 종교다원주의 등의 방법을 통하여 극복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20세기 신학은 로고스(이론)와 프락시스(실천)라는 서양신학이 전승한 희랍적 이원론을 극복하지 못하고, 종교신학계열(로고스)과 해방신학계열(프락시스)로 이원화된 채 서로 분리되어 맴돌고 있었다.

생태계의 위기는 이러한 분열된 상황에 있는 20세기 신학자들 그리고 종교학자들에게 한 공동의 화두를 제공한 셈이다. 서양학자들은 앞장서서 종교(특히 그리스도교)들이 그동안 자연에 대해 취해왔던 “자폐성”을 극복하는 대안을 마련하고자 하였다(Thomas Berry). 자연과학의 “좁은 지혜(microphase wisdom)”를 가지고 지구촌 생태계 전체에 미치는 “큰 변화(macrophase change)”를 일으키고 있으므로 종교전통들로부터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보다 큰 지혜를 구해야 한다(Brian Swimme).5)

일반적으로 종교들이 지금까지 신-인간 또는 인간-인간의 관계에 대하여 집중해 왔는데, 이제 생태계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각 종교들은 이러한 제한된 세계관을 넘어서 적절한 인간-지구의 관계론(human-earth relation)을 탐구해야 한다. 특히 인간에게 윤리적 초점을 맞춰왔던 아브라함 종교전통들(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의 인간중심적 세계관은 극복되어야 하고, 오히려 자연친화적인 동양종교들(특히 유교와 도교)에 주목해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의 모임 하나가 1997년 하바드대학교의 세계종교연구소에서 개최되었던 「그리스도교와 생태학」컨퍼런스이다. 이 컨퍼런스에 참석한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적합한 생태신학의 구성을 위해서 세 가지의 신학적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한다(예컨대, Elizabeth Johnson, Sallie McFague, Mark Wallace).

첫째, 인간중심주의의 해체와 우주(지구)중심주의로의 전환(비전의 전환). 둘째, 전통적 근본메타포(상징)의 해체와 재구성(메타포의 전환). 셋째, 정론(orthodoxy)과 그리스도론 중심주의로부터의 탈피와 정행(orthopraxis)과 성령론의 강조(초점의 전환). 이 세 신학적 수정들은 구성신학적으로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나, 서양의 생태신학들은 아직도 그 희랍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듯하다. 신을 의인화하여 인간의 모습으로 그렸던 희랍인들의 사상을 기조로 하는 서양신학에서 인간중심주의 또는 신인간동형론(anthromorphism)의 탈피는 그 정체성의 해체를 의미하는 매우 어려운 것이리라.

그러므로 이제 새천년대의 지구촌을 위한 생명생태신학의 몫은 인간의 얼굴과 몸 등 외부의 모습보다는 산, 물, 나무 등 자연세계와의 조화에 더욱 관심을 가졌던 자연친화적 생명사상을 근본으로 하는 우리 동양인들에게 돌아 온 것이다. 특히 한국사상은 그 뿌리부터 우주중심적이고 생명중심적이었다.6) 한국생태사상은 “인(人)과 물(物)의 조화와 공생, 즉 “인물균(人物均)”을 추구하는 생태적 합리성”에 기초를 두고 있다.7)

21세기에 필요한 생명생태신학은 이러한 동양적 비전과 시각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구성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신학은 이제 일종의 동양적 각(覺)을 해야 할 것이다. 희랍문화를 기반으로 2천년 동안 번영을 누리던 양(陽)의 그리스도교는 그만 한계에 봉착했고, 생태계의 위기와 더불어 그리스도교는 이제 음(陰)의 패러다임으로 혁명적 모형전환(靜極動), 성령의 태극운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Bede Griffith).

생명․생태․신학이라는 주제들은 매우 광범위한 것이고, 그렇게 새로운 주제들도 아니다. 지난 수십 년간 많은 연구 자료들이 세계적으로 쏟아져 나왔고, 그들은 우리 신학계에도 비교적 잘 소개가 되어있는 편이다. 그러므로 나는 여기에서 이와 관련된 주제들을 모두 다루는 것보다 앞서 언급한 세 신학적 수정 작업들(근본비전, 근본메타포, 초점의 전환)에 관련하여 우리에게 보다 적절한 생명생태신학의 구성을 위해 세 가지의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곧 신(神)인간우주적 비전(theanthropocosmic vision), 도(道)의 신학(theotao), 억눌린 생명의 기(氣)사회우주전기(pneumatosociocosmic biography of the exploited life)가 바로 그것들이다.

요약하면, 첫째, “신우주인간적 비전”이란 동양적 세계관인 하늘땅사람(天地人)의 삼재 사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신학의 근본비전으로 채택하자는 것이다. 둘째, “도의 신학”은 문제가 되는 전통적 로고스나 근대적 프락시스보다 자연친화적인 동양적 메타포 도(道)를 신학의 근본메타포로 사용해서 새로운 도 패러다임의 신학을 구성해 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 “억눌린 생명의 기사회우주전기”란 ‘민중의 사회전기’를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해서 절명위기에 처한 생태계의 모든 억눌린 생명들을 포함하고, 우주생명력의 원기인 신기(神氣), 곧 성령의 기운을 타고 생명을 살리는 살림살이에 신학의 초점을 맞춰보자는 것이다.

하늘땅사람: 신우주인간적 비전 (Theanthropocosmic Vision)

  
 

첫째, 21세기에 적절한 생명생태신학의 구성을 위해서는 그 근본비전을 신우주인간적으로 패러다임 전환해야 한다. 비전이란 세계관보다도 더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의미를 가진 실재에 대한 종합적 통찰을 말하며, 비전의 변화는 곧 패러다임의 전환을 초래하게 한다. 근대신학은 구속사관의 영향으로 지나치게 신-인간 또는 신-역사 중심적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동안 신학은 하늘(神)과 사람(인간의 구원)만 강조하고 땅(자연, 우주)을 잃어버렸다. 생태계가 종말에 직면한 지금에 와서야 서양신학자들은 크게 반성하고 땅을 되찾자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그들이 좋아하는 둘로 나누는 습성 때문에 또 문제가 생기고 있다. 하늘이 아니면 땅, 인간이 아니면 자연하며, 그들은 습관적으로 둘 중에서 하나만 골라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 땅, 사람은 모두가 나누어 질 수 없는 실재의 존재론적 구성요소이고, 하늘과 땅과 연계되어 있는 사람이 참사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것을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라고 하였다. 나는 이 중에서 천(天)을 신(神)으로 바꾸고 신(天)우주(地)인간(人)의 삼재로 이루어진 신우주인간적 비전을 신학의 근본 비전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미국의 여성생태(eco-feminism) 신학자 존슨(Elizabeth Johnson)이 밝혀 준 것처럼 사실 그리스도교 전통에 있어서 창조세계(Creation)의 상실과 땅과 우주에 대한 기억상실증은 불과 최근 500년 동안 일어난 현상이며, 그 이전 1500년 동안에는 없었던 일이다.8) 히브리 성서는 땅이 하느님의 완전한 소유이며(시 24:1) 그 영광으로 충만하다고(사 6:3) 진술하고 있어 상당히 자연친화적이며 여기서 자연을 떠난 종교적 의미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스도교 성서에도 성육신, 몸의 부활, 성만찬적 분배, 우주적 구속과 소망 등 자연친화적 주제들이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다. 이와 같이 유대-그리스도교 성서들은 땅의 종교적 가치를 인정하고 있으므로 올바른 생태적 자연관을 추출하기 위한 성서의 재해석이 요청된다.9)

사실 초대 및 중세 신학들은 신우주인간적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자연을 당연히 신과 인간과 더불어 형이상학적 삼재(God-world-humanity)의 하나로 받아드렸다.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하느님은 두 가지의 책, 성서와 자연의 책을 인간에게 주었다. 12-13세기에 우주론, 인간론, 신론이 어울려 한 조화를 이루는 신우주인간적 신학사상은 정점에 이르렀고, 힐더가드(Hildegard of Bingen), 보나벤투라(Bonaventure), 아퀴나스(Aquinas) 등이 그 대표적인 신학자들이다.

힐더가드는 흙으로부터 만들어진 인간은 다른 창조세계와 근원적으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어 결코 그들과 분리될 수 없다고 역설하였다.10) 보나벤투라는 “피조된 만물의 장려함에 의하여 깨달음을 얻지 못한 이는 소경이요, 그들이 [신을 향해]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는 귀머거리요, 이러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찬양하지 않는 이는 벙어리요, 이러한 수없이 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제일원인(하느님)을 인정하지 않는 이는 바보다”라고 하였다.11)

토마스 아퀴나스는 오줌으로부터 불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연세계가 영롱한 신형상(imago Dei)이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우주전체는 모두 함께 더욱 완벽하게 신의 선함에 참여하고 있으며, 한 단일 피조물 어떤 것보다도 그것을 더욱 적절하게 기술하고 있다.”12)

존슨이 지적한데로 물론 초대 및 중세 신학사상들 속에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에 의해 “계층적 이원론(hierarchial dualism)”이 침투되어 있었다. 정신과 물질, 남성과 여성, 인간과 자연을 계층적으로 확연히 구별하는 이 존재의 계층(a hierarchy of being)적 사유는 엘리트 남자를 정점으로 창조세계 안에 지배와 종속의 억압적 체계를 허용했고, 결과적으로 반여성적이고 반생태적 태도를 초래하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 사상들에게 있어서 인간과 더불어 자연은 적어도 신 앞에 질서와 조화를 이루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일부분이었다. 이러한 1500년의 자연친화적인 유산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이후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은 자연에 대한 관심을 상실하고 신과 인간에게만 집중하여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케 하였다.

자연신학 전통을 가지고 있었던 가톨릭 신학이 자연을 상실하게 된 이유는 사실 지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정치적인 것이었다. 17세기의 갈릴레오 사건 이후 신학자들은 태양중심적이고 진화론적인 과학적 세계관과 결별하기 시작하였으나 사실상 중세의 지구중심적 세계관은 붕괴되었음으로 가톨릭 신학은 세속적 세계관의 변화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고립된 자유학문이 되어버렸다. 더욱이 가톨릭 신학의 프로테스탄트 신학과의 만남은 인간론으로 흡수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종교개혁 강령이 된 “오직”(그리스도로만, 신앙으로만, 은총으로만, 성경으로만)은 프로테스탄트 신학사상에 강렬한 인간중심적 전환을 가져오게 하였고, 하느님 앞에서 죄진 인간이 신학의 중심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사실 초기 프로테스탄트 신학은 비교적 자연친화적이었다. 칼뱅(John Calvin)은 자연세계 모든 곳에 신의 영광을 반사하는 불꽃이 있다고 말했다.13) 그러나 그 후 자연신학과 행위에 의한 칭의에 관한 가톨릭 신학의 교리에 대항하기 위해 개신교 신학은 자연은 신이 부재한 타락한 피조세계로서 오직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의 대상에 불과한 것으로 비하시키고 인간중심주의를 더욱 심화시켰다.

더욱이 개신교 신학은 과학과 철학, 역사 등 반자연적인 인문학의 영향을 받게 된다. 베이콘(Francis Bacon)은 “자연은 그녀의 모든 자녀들과 함께 너희들[인간]에게 봉사하고 너희들의 노예가 되도록 정해져 있다”고 서슴없이 말했다.14) 데카르트와 칸트 철학에 의한 “주체로의 전환(turn to the subject)”은 자연을 외부적이고 수동적인 객체로 규정하고 인식하는 인간주체로부터 분리시켰다. 더구나 근대 역사주의는 이 분리를 더욱 강화시켰다. 자연은 직선적 구속사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순환적 이교도의 신이 군림하는 영역으로 그리고 인간에 의하여 구출되어야 할 것의 한 상징으로 전락되었다.

쇠렌 키에르케고르부터 루돌프 불트만에 이르는 실존주의, 신정통주의, 정치-해방신학 등 20세기 신학조차도 이러한 자연을 열등하게 보는 자연관을 옹호하는 근본주의적 입장을 취했다. 인간만이 소유했다고 간주하는 선택하고 결정하는 자유는 우월한 것이고, 그렇지 못한 자연은 결정론적이고 기계적인 열등한 것으로 폄하했다. 그러므로 과정신학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신학들에서 창조세계는 신학의 동반자와 주체의 자리에서 실종했다.

지구멸망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오늘날 시대의 징조에 따라 그리스도교 신학은 과감하게 이러한 반자연적 장애물들을 제거하고 자연세계를 중심부분으로 재통합하여야 한다고 존슨은 주장한다. 지구중심적, 정체적, 계층적 질서에 의한 중세 우주관은 이미 붕괴되었으며, 자연을 결정론적이고 기계론적으로 보는 근대계몽주의적 편견도 지양되어야 한다. 현대과학이 발견한 역동적, 유기적, 자기조직적, 비결정적, 개방적 우주관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오히려 고대와 중세의 우주중심적 신학들을 재발굴하여 절대절명의 위기에 있는 지구를 살릴 수 있는 생태신학으로 구성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생태문제는 남성중심주의에 의하여 착취 당해온 여성의 입장과 깊은 유사성이 있으며, 그러므로 신학이 “땅으로의 회심(conversion to the earth)”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여성생태신학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존슨은 역설한다.15)

이러한 존슨의 기획은 생명생태신학의 구성을 위하여 매우 유익한 기조를 제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그녀가 서양신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넘을 수 없는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그녀의 서양 여성생태적 기획도 아직 희랍적 사고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주장의 핵심은 한마디로 신학이 인간중심주의를 탈피하여 자연중심주의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주장하는 전환에는 인간과 자연이라는 변증법적 이원론의 배경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중심”이라는 본질론(essentialism)이 전제되고 있으며(또한 이것은 환원주의이기도 하다), 인간과 자연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이원론적 일원론(either-or)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 이원론과 실체론이 바로 여성신학이나 생태신학이 극복하고자 하는 사상적 올무이었지만,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생태신학자 존슨마저도 그 올무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고, 아직 한 발을 엉거주춤하게 그 안에 머물러두고 있는 상태이다. 틸리히가 분석한대로 이원론과 일원론은 결과적으로 같은 것이다.16) 인간과 자연을 분리해서 어떤 것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식의 이원론적 일원론은 분석적 본질론(essentialism) 또는 실체론(substantialism)에 연관되며, 이러한 방법으로는 생명생태신학이 갈망하는 진정한 호혜적 관계론에 도달하기 어렵다.

이것보다는 천지인삼재의 통전적 관계론이 적절한 것이고, 그것의 재해석을 통한 적극적 수용은 우리 신학의 토착화를 위해서만 아니라 현대신학 전체를 위해서도 유용한 것이다. 파니카(R. Panikkar)가 통찰한대로, 세계종교사에 있어서 고대의 우주중심주의, 중세의 신중심주의, 그리고 근대의 인간역사중심주의는 모두 환원주의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17) 이것들도 실재에 대한 허구적 진술이며, 마찬가지로 일원론과 이원론에 매여 있는 사고가 낳은 논리적 오류이다.

신과 인간과 우주는 서로 불가분의 세 축으로 통합적 실재를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이 세 구성요소들을 함께 아우르는 신우주인간적(theanthropocosmic) 또는 우주신인간적(cosmotheandric) 비전이 진실에 훨씬 근접한 것이다. 중세신학조차도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더욱이 삼위일체론의 탁월성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희랍사상의 일원론과 이원론이 가진 모순을 극복하고 다원적(pluralistic)이고 동중심적(concentric)인 실재를 파악할 수 있는 사유의 틀을 제공했다는데 있다.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하늘땅사람(天地人)의 삼재(三才) 또는 삼극(三極)으로 구성된 다원적이고 동중심적인 실재를 믿어왔다. (훈민정음의 닿소리와 홀소리의 구성에서 뚜렷이 돌출되었듯이 “한국 전통 문화의 구성원리”를 “삼재론 중심의 음양 오행론”이라고 볼 수 있다.)18) 동양사상의 근간이 되는『주역』에 이 천지인삼재의 사상이 현저하게 나타난다.

“역이란 책은 말하는 범위가 넓어서 모든 것을 다 포함하고 있다. 인도도 있고, 천도도 있고, 지도도 있어서 삼재를 합하여 두 배로 하면 6이 된다. 육효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삼재의 도이다.”19)

그러므로 육효(六爻)로 이루어진 대성괘(大成卦)는 천도(天道)와 인도(人道)와 지도(地道)의 민감한 변화를 천우주인간적 비전에서 패턴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주역괘의 묘사는 인과율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천지인을 한꺼번에 파악하는 통시적(synchronistic)인 통찰이고, 화살과 같은 직선적 시간관의 아날로그적인 것이라기보다도 동시다발적인 디지털적인 것에 근접한다는 점이다. 이 디지털적인 삼극의 움직임(道)을 근원적으로 상징화 한 것이 삼태극이요, 그것을 음양의 변화로 단순화 한 것이 태극인 것이다. 오히려 유학자인 쳉충잉이 “성자는 이상적인 사람으로, 성부는 창의적인 영으로서 하늘로, 성령은 수용적인 영으로서 땅으로” 주역적인 재해석을 통하여 생태적 삼위일체론을 제안한 적이 있다.20)

더욱이 한국 그리스도교에서는 그리스도교의 신-인간적(구속사) 비전이 전통사상인 유교의 인간-우주적(anthropo-cosmic) 비전과 부딪쳐 신우주인간적 비전으로 해석학적 지평융합이 일어나고 있다.21) 그러므로 신우주인간적 비전에 의한 신학 구성은 한국신학의 한 특성이 될 수 있고, 한국신학이 세계신학적 가치를 자리매김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인 것이다.

그리스도교와 동양사상뿐만 아니고 나아가서 생태문제가 함께 어울리는 가장 생생한 역사적인 현장에 있는 한국 그리스도교는 이 신우주인간적 사유 속에서 삼천대에 적절한 생태신학의 패러다임을 구상할 수 있는 풍부한 자원들을 가지고 있다.

신학이 성부와 하늘(天)에 대해서는 가장 오래되고 심오한 인류의 사상이라고 한다면, 동양학(유학) 또한 성자와 인간사회(人)에 대해서 그러할 것이다. 생태학(과학)은 성령과 생태계(地)에 대한 가장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신학, 동양사상(유학), 그리고 생태학(과학)의 삼극을 삼태극처럼 어우르면(묘합) 멋들어지고 실천적인 경건과 사랑과 자비의 신-우주-인간적 생명생태신학 패러다임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22)

신학 신   천(天)  하늘 숨   기(æ°£) 성부 신학   해방 경건(敬天)
생태 우주 지(地)  땅   í•œìš¸ 우주   성령 생태학 생태 자비(愛物)
생명 인간 인(人) 사람 두레 사회   성자 동양학  대화 사랑(人仁)

1) 한국기독교학회 2003년 총회에서 주제 발표한 논문이다. 앞으로 세 번에 나누어 게재할 예정이다. 전문은 김흡영, 『도의 신학 II』(동연, 2012), 220-53 참조.

2) Daniel Maguire, The Moral Core of Judaism and Christianity: Reclaiming the Revolution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93), 13.

3) Lynn White, Jr., "th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al Crisis," Science 155 (1967), 1203-1207.

4) Peter Hodgson, Winds of the Spirit: A Constructive Christian Theology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4), Part 2 참조.

5) Mary Evelyn Tucker and John Grim, "Series Foreword," in Christianity and Ecology: Seeking the Well-Being of Earth and Humans, ed. by Dieter T. Hessel and Rosemary Radford Ruether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00), xxiv.

6) 이경숙·박재순·차옥숭, 『한국 생명사상의 뿌리』(서울: 이화대학교 출판부, 2001), 194-207 참조.

7) 박희병, 『한국의 생태사상』 (서울: 돌베개, 1999) 참조. 

8) Elizabeth A, Johnson, "Losing and Finding Creation in the Christian Tradition," Christianity and Ecology, 3-21.

9) 선순화,「인간, 자연, 신의 생명커뮤니케이션」,『선순화 신학문집: 공명하는 생명신학』(서울: 다산글방, 1999), 59-78 참조.

10) Hidegard of Bingen, Scivias, tr. Columna Hart and Jane Bishop (New York: Paulist Press, 1990), 94. 또한 Johnson, 6 참조.

11) Bonaventure, The Mind's Journey to God, tr. Lawrence S. Cummningham (Chicago: Franciscan Heral Press, 1979), chap. 1, no. 15.  Johnson, 7 재인용.

12)  Thomas Aquinas Summa Theologogiae (New York: Benziger Bros., 1947) 1.47.1. Johnson, 7 재인용.

13) John Calvin, Institutes of Christian Religion, 1.5.64.  Johnson, 9; 또한 김흡영,「존 칼빈과 이퇴계의 인간론에 관한 비교연구」,『도의 신학』(다산글방, 2000), 231-91 참조.

14) Francis Bacon, The Masculine Birth of Time, Johnson, 앞의 책, 10에서 재인용.

15) Johnson, 앞의 책, 17.

16) Paul Tillich, Systematic Theology, Vol. I (Chicago: Chicago University Press, 1951).

17) Raimond Panikkar, The Cosmotheandric Experience: Emerging Religion Consciousness (Maryknoll: Orbis, 1993) 참조.

18) 훈민정음의 제자원리는 “태극과 음양과 삼재와 오행의 원리”이다(이정호, 『해설역주 훈민정음』[서울: 보진제, 1972]). 또한 우실하,『전통문화의 구성원리』(서울: 소나무, 1998).

19) 「계사전」, 고회민, 『주역철학의 이해』, 정병석 역(문예출판사, 1978), 249에서 재인용.

20) Cheng Chung-ying, "The Trinity of Cosmology, Ecology, and Ethics in the Confucian Personhood," Confucianism and Ecology: The Interpretation of Heaven, Earth, and Humanity, ed. Mary Evelyn Tucker and John Berthrong (Harvard University Press, 1998), 225.

21) 간단하게 설명하면, 인간-우주적 비전은 유학의 천인합일사상, 신역사적 비전은 개신교 신학의 구속사(salvation history)를 말한다. Heup Young Kim, Wang Yang-ming and Karl Barth: A Confucian-Christian Dialogue (Durham: University Press of America, 1996), 175-80 참조.

22) 김흡영, 「신․인간․우주(天人地): 신학, 유학, 그리고 생태학」,『도의 신학』, 292-335 참조,

 

                

<필자 소개>

김흡영 교수는 서울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을 거쳐 미국 Graduate Theological Union 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바드 대학 세계종교연구소, GTU 신학과학연구소(CTNS), 영국 캠브릿지 대학 고등신학종교연구원, 일본 도시샤대학 객원연구원이었다. 이후 강남대학교 조직신학 교수이자, 동 대학 제 1대 학장, 신학대학원장, 교목실장, 우원연구소장을 역임하였다. ìµœê·¼ì—ëŠ” 중국 복단대학 초빙교수를 지낸 바 있다. 그는 종교와 과학간의 화에 있어서 세계최고의 권위를 가진 International Society for Science and Religion(ISSR)의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한 창립회원이자 정회원이다. 종교 과학, 종교 간의 대화, 문화, 종교신학, 조직신학 분야에서 왕성한 저자활동을 하고 있으며 특히 해외 출판업적이 눈부시다. ê·¸ 연구업적을 인정받아 John Templeton Foundation의 GPSS Award 를 비롯하여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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