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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앞에서(본 훼퍼)

하늘기차 | 2015.12.05 12:20 | 조회 1008


선한 사람은 내가 만날 수 없을 테니 항심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구나!” (논어, 술이 26)

논어의 한 구절이다. 

문화 평론가 박민영 씨는 자신의 책 ‘논어는 진보다’에서 이렇게 풀어쓴다. 

"선한 사람(善人)은 관념 속에는 존재하는 사람이므로 만날 수 없다. 

반면에 항심(恒心)이 있는 사람, 즉 항상 선에 머무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현실 속에 존재한다." (논어는 진보다 / 박민영 지음 / 포럼 / 309쪽) 

그러므로 공자는 관념 속의 선인이 아닌 삶 속에서 선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불교계에서 돈오돈수(頓悟頓修 - 단번에 깨우쳐 끝내는 것)와 돈오점수(頓悟漸修 - 깨우친 후 차근차근 자신을 닦아나가는 것)의 논쟁이 있었다. 

도를 깨달아 가는 과정에 대한 논쟁이다.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은 마음이 부처임을 깨닫고 나서라도 이전의 나쁜 버릇들을 일시에 제거하기 어려우므로 점차 자신을 갈고닦아 온전한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성철(1912~1993)은 '더 이상 수행할 것이 없을 정도로 단번에 도를 깨우치지 못하면 어찌 도를 깨우쳤다고 말하겠느냐?’ 하면서 돈오돈수를 주장하였다. 

나는 불교계의 논쟁에 대해서 깊이 알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지만, 항상 자신을 갈고닦아 나가는 돈오점수의 사상에 더 호감이 간다. 


나치 치하에서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고난받기 위하여 미국에서 다시 독일로 돌아온 본회퍼 목사는 본격적으로 히틀러 반대 운동에 가담한다. 

그는 순교의 각오를 하고 히틀러 암살 운동에 가담하였다. 

1943년 4월 5일, 본회퍼는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독방에 수감되었다.

정치적인 문제로 잡혀 온 사상범이기에 처음에는 누구도 만날 수 없었다. 

그가 핑켈발데 신학교에서 가르칠 때 제자들에게 언제나 홀로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훈련을 시켰다. 

그런 그가 이제 독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조용히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본회퍼 목사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정말 가르침 대로 홀로 침묵하며 조용히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가졌을까?

사실 그는 불안에 떨었다. 

이제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교인들을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절망하였다. 

그는 심문과정에서 동지들을 배반할까 두려웠다. 

처음에는 자살이 동지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책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본회퍼의 이런 인간적인 모습을 보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도 인간이다. 

조금의 두려움도 없고, 오직 하나님만 묵상하며, 신실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이는 것만이 훌륭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머리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고뇌하며 기도하지 않았던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다행히도 본회퍼에게 면회가 허용되었다. 

탄넨바움(Tannenbaum) 목사는 그를 찾아와 성경을 읽어주고 그를 위하여 기도해주었다. 

하랄드 포엘하우(Harold Poelchau)목사는 위험을 무릅쓰면서 그를 지원하여주었다. 

본회퍼는 이러한 만남과 교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였다. 

함께 해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그는 회복할 수 있었다. 

그는 파울 게르하르트(Paul Gerhardt)의 찬송을 외워 부르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Dietrich Bonhoeffer (right) and a friend at the Baltic Sea, ca. 1932.

성경은 말한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So, if you think you are standing firm, be careful that you don't fall!.)"

사람은 누구나 다 쓰러질 수 있다. 

그렇지만 다시 일어서서 자신을 갈고닦아 온전한 단계로 나가야 한다. 

본회퍼는 그렇게 자신을 세워갔다. 

그는 곧 감옥 안의 모든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영적 지도자가 되었으며, 죽음 앞에서도 담대히 설 수 있는 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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