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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교회는 왜 히틀러를 옹호했나?

하늘기차 | 2016.02.13 15:34 | 조회 1131


<권력과 신앙(Macht und Glaube )> 저자 추태화 박사 파워인터뷰
"(독일교회는) 나치 정권에 협조하면 국내선교도 원활할 것이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도 제공받아 교회가 부흥할 것이라는 직, 간접적으로 인센티브를 얻을 수 있다는 감언이설에 교역자들이 전적으로 오판(誤判)하였다."

 

왜 독일의 교회가 히틀러 정권을 옹호하게 되었는지를 다룬 <권력과 신앙(Macht ung Glaibe)>을 집필한 추태화 박사(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는 "히틀러 시대 당시의 독일 교회는 그 당시만 해도 상당히 교권주의적이고 제도화되어 있었으며, 교역자와 평신도 사이가 복음으로 긴밀하게 맺어지기보다는 교역자는 마치 공무원과 같고, 평신도의 삶에 관심이 없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러한 모습에 비판을 가한 철학자가 바로 니체"라며 "그의 언어는 당시 상당한 스캔들을 뿌렸다. ‘신은 죽었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 ‘교회는 신의 무덤이다.’ ‘기독교는 노예의 도덕이다.’ ‘기독교는 유죄다’라는 등의 표현이 나오게 되었는데, 이는 니체가 그 당시 기독교의 모습을 신랄하게 폭로한 것"이라고 말했다.

   추 박사는 특히 "교회는 그 당시 체제와 문화는 가지고 있었지만, 복음의 능력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현하고 있지는 않았다."며 "그러던 중 히틀러가 '우리가 교회를 보호해 줄테니 나치를 지지해주고, 나치가 하는 정책에 대해 기독교인들이 따라 달라'라고 주장하자 이에 개신교나 가톨릭이 이러한 조건에 순응하고 악수하게 된 것"이라며 기독교가 정권과 타협하는 단계에 들어선 배경을 밝혔다. 
    히틀러 정권은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유태인 600만 명 학살을 자행했다. 이에 대해 추 박사는 "히틀러가 말하는 민족주의와 루터파 기독교인들의 민족주의가 합쳐져 하나의 새로운 민족주의라는 신화를 만들어 냈고, 그러다보니 독일의 통합을 방해하는 것은 누구냐를 막론하고 제거의 대상으로 보게 되었다."며 "나치는 통합을 방해하는 세력이 바로 유대인이라고 선전하므로 몇 가지 이득을 챙긴다. 나치는 신학적으로 보면 유대인은 구원자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친 자들이고, 신앙이 없는 이들의 입장에서 봐도 독일 사회에서 통합을 거부하고 자기만의 문화와 민족을 주장하는 이들이 유대인이라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추 박사는 이어 "그 당시 유대인들은 사회 각층, 미디어, 언론, 학문계 등 상류사회에서 중요한 요직을 많이 차지하고 있었다."며 "그러니 ‘이들을 축출하고 나치 정권 사람들이 그 자리에 들어선다면……’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유대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일본의 관동대지진 때 재일동포들이 핍박받고 살해당했던 것처럼 유대인을 희생양 삼아 민중의 관심을 돌렸던 것이라는 것이다.
   추 박사는 히틀러 정권이 기독교의 절기까지 정권에 이용한 사실도 밝혔다. 그는 "히틀러 정권은 기독교 문화를 자신들의 정치에 최대한 이용했다."며 "예를 들어 성탄절은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축하하는 날이 아니라 나치 사상이 탄생한 날이다라고 했다. 히틀러를 통해 나치사상이 응집되고 인격화 된다면 히틀러가 곧 구원자라는 주장이다. 성령강림절은 성령을 받아서 교회가 이뤄진 것이며 구원의 역사가 새롭게 이뤄진"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성령강림에 내린 뜨거운 불의 역사를 이미지로 바꾸었다. 즉 나치 정신으로 다이나믹하게 살아가자는 식으로 변질시켰다."며 "추수감사절은 독일 조상에게 감사하는 날이라고 했고, 히틀러에게 감사하는 변질된 추수감사절 행사들을 만드는 등 기독교를 왜곡하고 정치에 적극 이용했다."고 밝혔다.
    추태화 박사는 이 책을 읽게 될 독자들에게 독서토론회를 추천하고 싶다고 했다. <권력과 신앙> 안에 있는 많은 소재들을 위의 질문들처럼 다양한 각도에서 읽고 토론하면 신앙적, 신학적, 역사적, 실존적인 면에서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으며, 시대에 대한 책임 있는 신앙관을 세우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말했다. 독서토론회에 관심 있는 독자들은 씨코북스 출판사 홈페이지(www.ckobooks.com)를 참고하면 된다.
   추태화 박사는 단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 뮌헨대학교에서 독일문예학/기독교문학, 철학, 사회학(m.a)을, 그리고 아우그스부르크 대학교에서 독일문예학과 신학(dr. phil.)을 공부했다. 문학과 문학 비평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일생의 사명으로 삼고 있는 그는, 우리 사회가 건강한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맑고 풍요로워지기를 꿈꾸는 기독교 문화운동가이다. 현재는 안양대학교 신학대학 기독교문화학과 교수로 있으며, (사)기독교윤리실천 문화소비자운동본부, 기독교학문연구소에서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 그 의미에 길을 묻다』, 『상상력의 유혹』,『대중문화 시대와 기독교 문화학』,『기독교 영성에 비추어 문학 새롭게 읽기』,『21세기 기독교 인문학의 전망』,『광장에서 문화를 읽다』,『101가지 이야기 신학』, 『영화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등 다수가 있다.

▲ 추태화 박사(2012)『권력과 신앙(히틀러 정권과 기독교)』,CKoBooks     ©뉴스파워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권력과 신앙>, 부제 히틀러 정권과 기독교라는 책을 내셨다. 한국의 상황을 봤을 때 미묘한 시기에 책이 나왔는데 전체적인 내용을 소개해 달라.

1930년대에는 나치라는 이름의 정권이 독일에서 횡행했다. 1933년에는 히틀러를 수상에 앉히게 되면서 2차 세계 대전으로 진행되는 역사적 전환기를 맞았다.
   독일은 종교개혁의 나라이고 문화와 교양이 깊은 나라이다. 인류의 교양을 책임졌던 문학가, 시인, 철학과 예술 등에서 걸출한 인물을 내었다. 모두 알다시피, 괴테, 쉴러, 칸트, 헤겔, 훔볼트, 바하, 베토벤, 모차르트 등등... 그와 같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구연한 나라에서 어떻게 히틀러라는 독재자를 수상으로 뽑았으며, 과연 어떻게 이런 일들을 행할 수 있도록 독일 사람들은 방관했는가? 어떻게 기독교 국가라 할 수 있는 독일에서 이런 사악한 독재주의 정권이 탄생할 수 있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기독교인들이 나치를 잘못 이해하고 이에 동참했는지, 반대로 복음과 교회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저항하고 헌신하며 순교했는지에 대해, 그리고 독일 역사와 교회의 전통은 누가 지켰는지에 대해 궁금증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우선 일차적으로 나치 정권과 기독교 관계를 조사한 결실이 이 책이다.
   우리에게 시사성이 많은 것은 1930년대 우리나라는 일제 식민지 치하에 있었고, 1938년도에 신사참배를 장로교 교단지도자들이 인정하지 않았는가. 기독교가 신사참배와 황국식민이라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일부 기독교인이 복음의 진리를 왜곡하고 누를 범한 반면, 주기철 목사님과 같이 이에 저항한 목사님들이 처한 상황과 유사한 점이 많다. 따라서 우리 기독교의 정체성을 정립하는데도 시사점이 많다고 본다. 
  

독일의 다수 국민이 종교개혁의 역사를 전승하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나치 정권의 독재를 인정하고 지지하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그러나 소수의 양심적인 목회 지도자들은 그러한 독재권력에 저항을 했다. 어떻게 나치시대에 교회, 특히 영적지도자들이 이런 권력에 굴종해서 어둠의 역사를 만들게 되었는가?
   그 비밀은 한 마디로 ‘위기’라 하겠다. 독일의 1930년대는 1910년대 일어났던 1차 세계대전에 휘말려 패망하면서 전범국가가 돼버린다. 독일은 민족적인 열등감과 함께 전범국가라는 오명, 야만적 호전민족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유럽사회에서 전쟁을 일으킨 나라라는 딱지가 붙으면서 민족적 열등감이 깊어지게 되고, 이에 국가적인 통합을 위해서 바이마로 공화국이 생기게 된다. 이 때 40개 이상의 정당들이 생겼다고 한다.
   그 중에는 소련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은 극진 좌파라든가, 개신교와 가톨릭 성향의 정당, 사회주의 정당 등 여러 군소정당들이 생겨났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이상적인 헌법을 가졌지만 정당간의 다툼으로 국민들이 정당을 신뢰하지 않고, 국민들도 통합으로 가는 길에 스스로 저항을 많이 받았다. 그러면서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내적 열망이 솟아올랐다. 이 때 미국의 경제공항이 유럽을 덮치고, 독일도 경제적으로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는 등 어려워지면서 실업자가 600만 명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독일이 정체, 경제, 정신적으로 상당히 침체된 상태에서 나타난 것이 바로 나치 정당이다. 나치 정당은 독일 민족의 새로운 부흥과 민족주의의 부흥을 주도하면서 국민들을 규합하게 되었다. 그때 같이 가담하게 된 사람이 바로 히틀러다. 나치 운동 초기에 히틀러는 그다지 주요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정당에서 점차 활동을 넓혀가면서 고위층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이후 뮌헨에서 봉기가 일어난다. 이를 통해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에 대한 보수정권 군인들이 맞서게 되고 이 과정에서 보수파에 속한 사람들이 숨지게 된다. 이로 인해 히틀러와 몇몇 동지들이 감옥에 가게 되었다. 감옥에서 쓴 “나의 투쟁(Mein Kampf)”이라는 책이 나치 사상을 정리하면서 독일 게르만족의 이상, 신화를 재현할 세계관으로 떠받들게 된다.

나치 히틀러가 주창하는 나치 민족주의를 통한 국민의 통합, 경제의 번영에 독일교회가 동조했다는 것은 독일교회가 정치권력에 기대었다는 것 아닙니까? 나치 시대의 독일 기독교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나?
   독일 교회는 그 당시만 해도 상당히 교권주의적이고 제도화되어 있었으며, 교역자와 평신도 사이가 복음으로 긴밀하게 맺어지기보다는 교역자는 마치 공무원과 같고, 평신도의 삶에 관심이 없었다. 이러한 모습에 비판을 가한 철학자가 바로 니체이다. 그의 언어는 당시 상당한 스캔들을 뿌렸다. ‘신은 죽었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 ‘교회는 신의 무덤이다.’ ‘기독교는 노예의 도덕이다.’ ‘기독교는 유죄다’라는 등의 표현이 나오게 되었는데, 이는 니체가 그 당시 기독교의 모습을 신랄하게 폭로한 것이다.
   교회는 그 당시 체제와 문화는 가지고 있었지만, 복음의 능력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현하고 있지는 않았다. 이러한 때 탈출구를 생각하게 된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그러던 중 히틀러가 “우리가 교회를 보호해 줄테니 나치를 지지해주고, 나치가 하는 정책에 대해 기독교인들이 따라 달라”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개신교나 가톨릭이 이러한 조건에 순응하고 악수하게 된 것이다. 기독교가 정권과 타협하는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나치 정권하면 유태인 600만 명 학살이 떠오르는데요. 어떻게 히틀러가 600만 명에 달하는 유태인을 학살하게 되었는가? 독일교회가 히틀러 정권을 지지하는 백그라운드가 되었음에도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이러한 사실 뒷면에는 ‘민족주의’가 있다. 히틀러와 민족주의자들은 개인의 상황을 돌볼만한 여유가 없고, 게르만 민족의 부흥을 위해 몰입해야 되는 시점이었기에 ‘국가에 헌신하는 것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국가, 민족, 당은 절대적이었다.
   독일의 루터파 개신교인들이 왜 동조했는지를 보면 아이러니컬하다. 친나치 기독교인들은 당시 루터의 종교개혁을 순수한 복음적인 회복, 말씀으로 돌아가고, 교회로 돌아가고, 하나님의 영광을 재현하는 그런 신앙 운동만으로 본 것이 아니다. 종교개혁을 이해하는 다른 시각이 있었다. 루터를 알프스 남쪽의 라틴 문화를 다스리고 있는 가톨릭으로부터 알프스 북쪽 지역을 해방하는 해방자로 본 시각이 그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부 사람들은 나치 정권의 해방도 일종의 종교해방으로 이해하게 했다.
   히틀러가 말하는 민족주의와 루터파 기독교인들의 민족주의가 합쳐져 하나의 새로운 민족주의라는 신화를 만들어 냈고, 그러다보니 독일의 통합을 방해하는 것은 누구냐를 막론하고 제거의 대상으로 보게 되었다. 나치는 통합을 방해하는 세력이 바로 유대인이라고 선전하므로 몇 가지 이득을 챙긴다. 나치는 신학적으로 보면 유대인은 구원자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친 자들이고, 신앙이 없는 이들의 입장에서 봐도 독일 사회에서 통합을 거부하고 자기만의 문화와 민족을 주장하는 이들이 유대인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 유대인들은 사회 각층, 미디어, 언론, 학문계 등 상류사회에서 중요한 요직을 많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들을 축출하고 나치 정권 사람들이 그 자리에 들어선다면……’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유대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일본의 관동대지진 때 재일동포들이 핍박받고 살해당했던 것처럼 유대인을 희생양 삼아 민중의 관심을 돌렸던 것이다.
   그리고 유럽에 팽배해있던 반 유대주의는 1800년대 중엽에 이미 하시디즘이라는 유대 신비주의를 중심으로 동유럽 지역에 유대 국가를 세우겠다는 독립에 대한 움직임이 있어왔다. 그것이 만약 독일 안에서 이뤄진다면 독일은 통일될 수 없다는 음모론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치주의자들이 꾸민 음모다. 다른 한편에서는 생물학적으로 다윈식 적자생존을 인용해 독일 인종의 우수성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우수한 종족인 게르만, 아리안족의 발전을 위해 순종을 만들어야했고, 이러한 순수성을 방해하는 잡종 유대인 피를 제거해야한다는 방향으로 다윈 이론을 악용했다.

히틀러 시대에 대부분의 독일 교회의 지도자들이 나치 정권에 편승했는데, 아리안 법과 강제 권력에 저항한 이들에 대해 소개해달라.
   교계에 속한 상당수는 히틀러 정권 초기부터 이들이 제대로 된 정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히틀러의 정치적 권력이 너무나 강했기에, 또한 일부 기독교인들이 히틀러 정권을 극렬히 지지했기에 이를 뒤집기는 어려웠다. 라인 강을 따라서 상류 지역에 있는 많은 기독교인들은 히틀러 정권을 반대했다. 많은 수의 목회자와 평신도들이 반대했지만 나치 정권은 너무나 강력했고, 돌격대, 친위대, 일반 경찰, 비밀경찰(일명 게쉬타포), 나치당원, 군대 등 수백만의 열성분자들이 실제적 무력을 행사하고 있었기에 나치의 잘못됨을 알아도 제대로 저항하기 어려웠다. 나치 정권을 가장 열렬히 지지한 기독교인들은 루터파였다. 정치적 민족주의와 종교적 선민사상이 연결되면서 희한한 민족주의로 변질되어 간 것이다.
   본회퍼 목사님 같은 경우에는 처음부터 나치정권이 잘못된 것을 알았고, 1933년 목사긴급동맹을 개설했다. 이들은 개혁파 목사님들과 루터파 목사님들 중 나치 정권의 오류를 아는 이들이 모인 자리었다. 그러나 1933년에 이미 나치 정권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에 조직적으로 대응하기에는 실제적인 면에서 너무나 부족했다. 또한 정치적으로 저항하기에 이들은 너무 순수했다. 그 결과 나치와 히틀러를 제거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기독교 안에서도 히틀러 정권에 구체적으로 저항하는 이들이 늘어갔다.

나치 정권 당시의 기독교를 보면 한국 기독교의 역사와 겹치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 한국교회가 결국 독일의 나치 시대 교회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은?
   시대를 분별하는 영적인 분별력이 있어야한다. 1930년대 독일과 우리나라의 유사점을 보면 독일은 나치, 우리나라는 일본제국주의의 지배를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독일은 신비주의의 토착화로 사이비 신앙운동에 빠진 교인들이 있었다. “우리가 독일의 크리스천인데 왜 유대인의 종교를 따라야 하는가?”라며 구약을 없애야 한다는 이들도 있었고, “우리는 유대식 기독교가 아닌 독일식 기독교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들도 있었고, 창조의 개념과 인간의 개념을 혼합해 “독일신앙운동”을 벌인 이들도 있었다. 또한 기독교 안에 유대적인 것이 많으니 이것을 빼버리고 신약적인 것만 믿자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나라도 보면 일제시대에 신비적, 또는 체험위주의 신앙 상태로 빠지다 이단으로 몰락한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주기철 목사님과 한상동 목사님처럼 일제에 저항하거나 순교하신 분들이 있었던 것처럼 독일도 역시 히틀러 정권에 저항하고 순교하신 분들이 있다. 파울 쉬나이더, 본회퍼 목사님은 순교하였고, 죽임을 당하진 않았지만 나치가 지배하던 시대에 오랜 세월 수감되었던 니묄러 목사님 같은 이들은 모두 영적인 분들로 본받지 않을 수 없다.
   교회와 복음을 지켜냈던 분들은 모두들 정권에 타협하거나 정권과 손을 잡아 권력을 유지하려 했던 기독교인들이 아니었다. 핍박받고 탄압받았던 이들이었다. 이러한 분들이 신앙을 이어가고 교회를 사수했다. 이러한 점이 한국과 독일의 비슷한 점이다.

한국교회가 일제시대에 신사참배를 했던 것에 대해 교회적으로 참회 선언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독일 교회가 히틀러 정권 하에서 행했던 일에 참회한 적은 있는가?
   적응과 순교라는 것은 개신교에서도 많이 있었다. 가톨릭에서도 평신도들이 목숨을 바쳐 저항하며 교회와 복음을 지켜낸 일들이 많이 있다. 나치가 정권을 잡았던 1933년에 목사긴급동맹이 열리고 선언문을 발표함으로서 그 당시 영적인 상황을 드러냈다. 그 뒤 칼 바르트 교수가 기초하고 개혁주의와 루터파 교회지도자들이 모여 바르멘 신학선언을 통해 ‘우리 시대에 복음이 어떻게 변질됐고, 뭐가 잘못되었는가, 어떻게 복음을 지켜야하는가’에 대해 1935년도에 발표했다. 전쟁 후 1945년에는 독일 복음교회 지도자들이 모여서 슈투트가르트 참회 선언을 했다. 왜 나치 시대 당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는가, 악에 대해 빛의 전선으로 대응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참회선언이 공개적으로 이뤄졌다. 1947년에는 독일 교회지도자들이 슈투트가르트 참회 선언에 부족했던 면을 보충하면서 공개적으로 다시 한 번 참회하였다.

독일 나치 시대의 교회를 보며 정치권력과 교회, 국가와 교회의 관계에 대해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이 던져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무엇인가?
   그 당시 독일의 일부 교회와 교역자들은 큰 실수를 범했다. 나치를 옹호하고 히틀러를 찬동했고, 하나님의 역사를 잘못 이해했다. 나치 정권이 국가와 나치 정권에 협조하면 국내선교도 원활할 것이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도 제공받아 교회가 부흥할 것이라는 직, 간접적으로 인센티브를 얻을 수 있다는 감언이설에 교역자들이 전적으로 오판(誤判)하였다.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가 정치권력에 의해 이뤄질 수 있다고 판단한 오판이 큰 문제였다. 또한 정치권력을 개입시켜 ‘쉽게 가자’라는 태도가 있었는데 이것이 사탄의 계획이라는 점을 몰랐다.
   사탄은 사람들에게 자기가 사탄임을 보여주지 않고, 사람들에게 ‘사탄은 없는 것이다. 공허한 것에 불과하다’라는 것을 보여주며 자기를 부인하는 방법으로 활동한다. 파울 쉬츠라는 신학자가 당시 “사탄의 자기부정(自己否定)”이란 개념을 들어 주의를 당부했다. 그것을 기독교인들이 또 오판하여 ‘사탄은 없는 것인데...’라는 식으로 쉽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히틀러가 사탄의 인격이다’라고 미리 생각하고 파악했더라면 유대인들이 덜 죽음을 당하도록 방어전선을 펼칠 수 있었을 텐데 너무나 안일했다. 이러한 점들이 독일교회가 정책적으로 ‘나치정권에 굴복 당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

독일교회가 히틀러 정권을 옹호한 것에 대한 결과는?
   결국은 악의 정권이 독일 정부가 되게 한 잘못을 범했다. 그리고 결국 나치에 협조했느냐, 저항했느냐에 따라 독일교회가 양분되었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전쟁을 통해서 독일이 엄청난 패전의 아픔을 겪게 되었고, 2차 대전의 책임을 지게 되었으며, 큰 수치와 민족적 아픔을 겪게 되었다. 인명 살상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유대인 6 백만 명, 러시아인 천 만명 등 수천만 명의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독일은 이후에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되었다. 그 중 동독지역은 히틀러를 가장 옹호했던 제국기독교인들이 많던 지역인데 소련군이 연합군의 형태로 점령한 후 공산주의의 탄압을 받는 지역이 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 이사야와 같은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하신 것처럼, “남은 자는 구원을 받는다”는 “남은 자”(the remnant) 사상처럼 동독 교회는 중 탄압 속에서도 신앙을 지킨 이들이 월요기도회를 시작하였다. 그 월요기도회가 시작된 지 10년 즈음, 1989년 11월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1990년 10월에 통일을 하게 되는 놀랍고 신비한 역사가 이뤄지는 것을 보았다. 우리 한국교회도 통일의 큰 숙제를 안고 있는 만큼 분열하고, 사회적 지탄을 받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제 하나님 말씀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독일교회가 하나님께 쓰임 받은 것처럼 그렇게 역사적 소명을 다해야 하겠다. 

한국교회가 정치권력과 가까운 면이 있다. 이를 한쪽에서 비판하기도 하고, 우려하기도 하는데, 현재 한국교회의 정치권력과 신앙의 관계를 본다면?
   교회의 전통은 누가 가지고 있는가? 물질적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전통과 하나님 나라의 통로로서의 역할을 하는가, 아니면 압제를 받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전통을 가지고 있는가를 놓고 본다면 후자가 더 그렇다고 생각한다. 신앙과 교회의 전통을 지킨 독일 교회 크리스천들이 이루려고 했던 정의는 정치적인 것보다는 하나님 말씀의 정의, 그리고 그러한 정의와 공의가 강물처럼 흘러넘치는 사회를 이뤄야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우리 한국교회가 배워야할 것은, 어떤 정치적인 구조, 시스템을 활용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겠다는 욕망보다는 복음적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우선이라 본다.

나치 히틀러 정권이 기독교 절기와 기독교 문화까지도 정치에 이용했다는데?
   히틀러 정권은 기독교 문화를 자신들의 정치에 최대한 이용했다. 예를 들어 성탄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축하하는 날이 아니라 나치 사상이 탄생한 날이다라고 했다. 히틀러를 통해 나치사상이 응집되고 인격화 된다면 히틀러가 곧 구원자라는 주장이다. 성령강림절은 성령을 받아서 교회가 이뤄진 것이며 구원의 역사가 새롭게 이뤄진 것이다. 성령강림에 내린 뜨거운 불의 역사를 이미지로 바꾸었다. 즉 나치 정신으로 다이나믹하게 살아가자는 식으로 변질시켰다. 추수감사절은 독일 조상에게 감사하는 날이라고 했고, 히틀러에게 감사하는 변질된 추수감사절 행사들을 만드는 등 기독교를 왜곡하고 정치에 적극 이용했다. 

이 책의 독자들에게는 나치 정권의 관련된 내용이라 딱딱하게 읽힐 수 있을 것 같은데 독자들이 핵심적으로 봐야할 독자 포인트는?
   그 당시 나치정권이 어떻게 기독교를 왜곡했는가. 그리고 나치 정권에 환호했던 교역자들이 어떻게 복음을 변질해서 전달했는가가 중요한 부분이다. 당시 이런 방법으로 이단이 생겨났고, 변질된 민족주의가 판을 치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복음을 변질시켜 이단이 되거나 사이비가 되는, 왜곡현상이 심각하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나를 삼키리라’라는 하나님을 향한 긍정적인 열심이 있는 반면, 그 반대인 부정적 열심도 있다. 이 부정적 열심이, 왜곡된 열심이, 오히려 교회와 복음을 훼손하고, 복음을 변질시키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열심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하나님을 향한 열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열심이라야 한다.
   또한 위기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도 심각히 살펴야 한다. 베드로가 물위를 걷다 파도를 볼 때 물 속에 빠졌던 것처럼, 위기 때문에 근시안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오판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대한민국은 올해 국제적, 국내적 정세로 보건데 위기관리를 잘해야 할 때이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독자 여러분들이 주의 깊게 봐야할 대목이라고 본다.
   지금은 비록 정치적인 탄압과 핍박은 없는 시대이지만 문화적으로 기독교세계관을 훼손하려는 많은 현상들이 산재해 있다. 다원적인 위기의 시기에 성도들은 어떻게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오판하지 않아야 하는가. 잘못한 것은 인정하고 속죄하는 삶을 살며, 독일교회가 하나님 앞에, 그리고 독일 사회 앞에 복음적으로 행하지 못한 과오를 잘못했다고 참회한 것처럼 우리도 교회가 과거에 잘못한 부분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 하나님과 역사 앞에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 한다. 그리고 통일까지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이 시대의 남은자로서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를 고뇌하는 신앙이 된다면, 이 책을 쓴 저자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뉴스파워(이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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