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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이커, 내면의 빛을 찾아가는 평화주의자

하늘기차 | 2015.10.16 09:22 | 조회 1287


▲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후문 인근에서 50년째 계속된 퀘이커 서울모임

 

   이화여자대학교 공과대학 후문을 지나 주택가 골목 막다른 곳에 이르자, 녹색 대문을 단 오래된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햇빛이 가득 쏟아지는 널찍한 방 안에 십여 명의 사람이 둥글게 자리를 잡고 편안하게 앉아 있다.

시작을 알리는 어떤 신호도 없이, 앉은 이들은 함께 침묵 속으로 빠져든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 자연스레 말을 꺼낸다.

“지난주 강정 후원 음악회와 밀양 유한숙 씨 추모 미사에 다녀왔어요. 신앙이라는 건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계속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침묵. 잠시 뒤 다른 이가 이야기한다. 이야기의 주제는 민주주의, 권력, 마리아의 찬미. 긴 침묵 끝에 나누는 이야기들은 예상보다 훨씬 정치적인 내용이다. 한 시간이 지나자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함께 일어나 손을 잡고 원을 만들더니 인사를 나눈다.

벌써 50여 년째 일요일 오전 11시면 이 아담한 집에 모이는 이들은 종교친우회(The Religious Society of Friends), 즉 한국 퀘이커(Quaker)들이다.

17세기 영국 공교회 성직자의 부패와 형식적 예배에 반대해 시작된 퀘이커,
신비주의 전통에서 ‘직접 체험하는 하느님’을 강조

퀘이커는 17세기 중반 영국에서 시작됐다. 창시자로 알려진 조지 폭스(George Fox)는 당시 영국 공교회 성직자의 부패와 타락, 형식적 예배 등에 반대하며 모든 인간에게 ‘내면의 빛(Inner Light)’이 있음을 강조했다. 이들은 교리에 앞서 신앙의 체험을 중요시했고, 하느님의 신성을 직접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신비주의 전통을 받아들이며 성직자 없는 평등한 모임을 시작했다. ‘퀘이커’란 ‘하느님 앞에 전율하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초기에는 조롱하는 의미의 별명이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제도가 지니는 경직성을 거부한 퀘이커 모임은 형식이 없는 게 특징이다. 이들의 모임에는 성직자도 없거니와 ‘준비’도 없다. 그저 ‘내면의 빛’에 인도되길 바라며 침묵할 뿐이다. 퀘이커 모임에서 침묵은 ‘말에 의지하지 않는 기도’이며, 자신의 자아를 내려놓고 깊은 내면에 도달하기 위한 시간이다. 이런 비움과 경청의 시간 속에서 빛이 주는 무언가에 감화 받은 이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깨달음을 벗들과 나눈다. 이날 모임에서는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였지만, 평상시 나눔은 성서 묵상, 일상의 이야기, 시, 노래 등 방법과 내용에서 매우 다양하다고.

하지만 퀘이커의 침묵은 오롯이 개인의 몫인 것은 아니다. 1960년대 퀘이커가 된 함석헌 선생은 퀘이커의 명상이 동양의 참선과 다른 점을 ‘공동체성’이라고 강조했다.

“퀘이커의 명상은 동양의 참선과 다릅니다. 퀘이커의 명상은 동양의 참선처럼 개인적인 명상이 아니라 단체적인 명상이지요. 퀘이커들은 그들이 단체로 명상할 때 하느님이 그들 중에 함께 임재한다고 믿습니다. 동양의 참선은 비록 열 사람이 한 방에서 명상하더라도 개인주의적입니다. 나는 내 참선이고, 저 사람은 저 사람 참선이기 때문에 모래알처럼 되는 것입니다.” (함석헌, ‘The voice of Ham Sokhon’, Freinds Journal, 1984)

곽봉수 씨는 처음 모임에 참석 했을 때 “함께하는 침묵 가운데에서 느꼈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1983년 <마당>지에 실렸던 함석헌 선생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퀘이커 모임을 찾은 이래 꾸준히 모임을 지키고 있다.

  
▲ 시작을 알리는 신호도 없이 모든 친우(friend)가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문양효숙 기자

교리도 신학도 없지만, 단순 · 정직 · 평화 · 평등의 원칙 지켜야
신앙과 삶의 실천은 분리될 수 없어

공동체성과 더불어 퀘이커의 중요한 원칙은 단순, 정직, 평화, 평등이다. 퀘이커는 형식이나 교리는 없지만, 이런 것들이 진리를 체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하게’ 지켜야 하는 원칙이라 믿는다. 곽봉수 씨는 “퀘이컬리(Quakerly)란 말이 있다”고 설명했다.

“‘퀘이커다운’이란 의미인데요, 예를 들면 평화 선언을 반대하는 사람은 퀘이커가 아니에요. 전쟁을 옹호하면 퇴출시키죠. 닉슨 대통령도 거짓말을 해서 퇴출됐어요. 정직이라는 중요한 원칙을 지키지 못한 거니까.”

체험적 신앙을 중시하는 퀘이커에게 이런 원칙은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 퀘이커들은 소리 없이 강정마을을 후원하고, 대한문 미사에 간다. 얼마 전에는 종교친우회 서울모임 이름으로 박근혜 대통령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씨알여성회 상임이사인 곽라분이 선생은 “이름을 내놓지 않을 뿐, 늘 관심을 갖고 활동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가 한다’에서 ‘우리’보다는 ‘한다’에 더 중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아요.”
“그렇죠. ‘나’뿐만 아니라 ‘퀘이커가 한다’는 자국도 남기고 싶어 하지 않아요. ‘우리’가 드러나는 것보다 힘을 보태는 게 중요하지. 그러니 이슈에 더 집중해요. 그게 우리 성향이죠. 퀘이커는 아주 조용히 일해요. 그러면서도 가장 진보적이죠. 역사적으로 보면 노예해방 문제, 감옥 개선 문제, 여권운동 등을 아주 초기부터 해왔으니까.”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무엇이 있다(That of God in everyone)’는 퀘이커 신앙은 자연스럽게 평등운동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초기부터 남부 흑인노예를 북쪽으로 탈출시키는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 운동을 비롯해 여성참정권 운동, 교도소시설 개선운동 등에 앞장섰다. 뿐만 아니라 퀘이커는 전쟁을 반대하고 분쟁지역의 복구 및 재건사업을 돕는 등 평화를 위한 활동도 활발히 펼쳤다. 1 · 2차 세계대전에서의 구호 및 복구활동에 힘입어 1947년 퀘이커 단체인 AFSC(American Friends Service Committee, 미국 친우 봉사단)는 개인이 아닌 단체로는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초창기 친우 이행우 선생, 미국 퀘이커단체에서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함께해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한 퀘이커도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전북 군산도립병원(현 원광대병원)에 5년간 의료봉사를 하러 온 의사와 간호사들이었다. 이들이 떠난 뒤, 감명을 받은 한국인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모임이 한국 퀘이커의 시작이었다.

모임에서 만난 이행우 선생은 1960년 12월 서울에서의 첫 번째 모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퀘이커로 살아온 종교친우회의 산 증인이다. 그는 미국 생활 45년간 미국 NGO로는 최초로 북한을 방문한 AFSC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등 평생을 한반도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위해 바쳤다. 이행우 선생은 1970년대 민주화운동 인사와 수감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 메리놀 선교회를 통해 지학순 주교에게 송금을 하기도 했고, AFSC 대표로 방북하고 북한과 교류해온 경험으로 1989년 문규현 신부와 함께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행우 선생은 자신이 활동한 AFSC와 함께 대표적인 국제 퀘이커 평화기구인 FCNL(Friends Committee on National Legislation, 국민 입법을 위한 친우위원회), QUNO(Quaker United Nations Office, 퀘이커 UN 사무실)등의 활동을 소개했다. 우리에게 생소한 이 단체들은 이미 활동한지 70년도 넘은 국제 로비단체들로 미국과 UN에서는 법률을 검토하고 제안하는 역할을 활발히 하고 있다. 이행우 선생은 “분쟁지역에서 갈등 양국을 편들지 않는 무조건적 구호활동으로 신뢰감을 쌓은 퀘이커 단체들은 국제회담을 주선하기도 하고, 이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 1960년대 첫 모임부터 퀘이커로 살아온 이행우 선생. 그는 평생 한반도 통일운동과 한국 민주화 인사를 도왔다. ⓒ문양효숙 기자

케이커 모임의 모든 결정은 만장일치제,
개인의 욕구를 넘어서 참 자아와 만난 공동체의 선한 결정을 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이행우 선생은 “퀘이커 모임은 모든 결정을 만장일치제로 한다”고 말했다.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요?”
“휴회하고 다음 모임으로 결정을 미룹니다. 모임에서 한 사람이 반대하면 그 사람이 반대하지 않을 때까지 기다려요. 대신 누군가 발언할 때 경청해야 합니다. 즉시 반대 의견을 표명하지 않고, 발언을 독차지하지도 않습니다. 명상을 한 후 토론하고요.”
“시간이 엄청나게 걸리겠네요. 영원히 결정 못 하는 것들도 있을 수 있고요. 지금은 20여 명의 모임이니까 그렇다 쳐도 모임이 100여 명이 되어도 그렇게 결정하나요?”
“그럼요. 서두르지 않아요.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친우회 모임이 커지면 나누기도 합니다.”

의견 일치를 위해 한 세기를 기다린 것도 있다. <퀘이커 300년>(하워드 브린턴, 함석헌 역, 한길사, 2009)의 저자 하워드 브린턴은 1696년부터 흑인노예를 사는 것을 경고해 왔던 연회(1년에 한 번 열리는 총회 격의 퀘이커 모임)가 1776년에 이르러서야 노예를 지닌 사람을 모임에서 제명한다고 선언한 과정을 기록했다. 이 책에서 브린턴은 “언제나 어떤 사람도 혼자서는 진리 전체를 볼 수가 없고, 개인보다 모임 전체가 더 많이 진리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며 진리를 깨닫는 주체로 개인이 아닌 공동체를 강조한다. 또한 만장일치체가 권력과 욕망을 넘어서는 방법이라 설명한다.

“얼핏 보아 우리가 원하는 것이라 여겨지는 것보다 정말 우리가 원하는 것을 발견하려면 표면에 있는 자기중심의 여러 욕망보다 더 깊은 데 숨어 있는 참 자아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모든 사람의 맨 밑바닥에 있는 참 자아는 서로 더불어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아입니다. …… 투표법은 큰 힘이 작은 힘과 맞서서 거기 어떻게 맞춰갈까 하는 억누르기 위한 수단입니다. …… 투표를 하면 대체로 일이 빠릅니다. 하지만 유기적인 자람은 느립니다. 투표법에서 각 개인은 단 하나 또는 일정한 수의 표를 가질 뿐입니다.” (위의 책, 188~190쪽)

퀘이커는 모두 친우(friend)…나이나 신분, 지위와 상관없는 자유로운 교제
절차나 형식보다는 ‘그렇게 사는 삶’을 중요시 여겨

55년 전 처음 친우회 모임에 참석했을 때의 느낌이 어땠는지 묻자, 이행우 선생은 “누구나 평등하게 이야기하고, 위계가 없는 게 참 좋았다”고 답한다. 옆에 있던 이는 “처음 모임에 왔던 날, 어떤 사람이 ‘하안거 다녀왔다’고 하자, ‘아, 그랬어요?’ 하며 모두 긍정하더라”며 “관용과 인정이 좋았다”고 덧붙였다.

퀘이커는 모임에 참석하는 모든 이들을 ‘벗(friend)’이라고 부른다. 요한 복음서 15장의 “내가 명하는 것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벗이 된다. 이제 나는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고 벗이라고 부르겠다”는 예수의 말씀에 기초해, 모든 이가 나이나 신분, 지위 등으로부터 자유롭게 서로 교제를 나누는 평등한 관계임을 말한다.

벗(friend)은 회원(member)과 참석자(attender)로 나뉜다. 외국에서 “Are you Friend?”는 “당신은 퀘이커인가요?”라는 질문이다. 회원이 되고자 하면 자신이 참석하는 모임에서 의사를 밝히고 나름의 절차를 밟는다. 하지만 참석자(attender)라 해도 모임이나 활동에는 아무런 차별이 없다. 회원이 되면 공식 회의에 참석하는 의무가 있을 뿐이다. 모임에 참석하는 이들은 모두 그저 벗이다.

하지만 퀘이커에게 중요한 것은 이런 절차나 형식보다 자신의 내적 인정이며, 진리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1962년에 예순둘의 나이로 미국 퀘이커 학교인 펜들힐에 머물렀던 함석헌 선생이 “이제 퀘이커가 되어야겠습니다” 하고 결심을 밝혔더니, 주변의 퀘이커들이 “당신은 이미 퀘이커인걸요”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는 이를 잘 드러낸다.

  
▲ 1960년대 초창기 모임 때의 기념사진. 가운데 함석헌 선생이 있고 그 왼쪽 뒤가 이행우 선생이다. ⓒ문양효숙 기자

신조가 없으니 누구도 퀘이커리즘이 무엇인가 정답을 줄 수 없다
“퀘이커는 기본적으로 찾는 사람(seeker)”

이행우 선생은 “우리는 신조(Creed)가 없기 때문에, 자신이 친우(friend)라고 말하는 사람도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다 다르다”면서 “그게 당연하다”고 말한다.

“누구도 퀘이커리즘이 무엇인가에 대하 정답을 줄 수 없어요. 단지 자기가 이해한 퀘이커리즘이 무엇인가를 표현할 뿐이지요. 자기가 믿는 것만이 퀘이커라고 하면 잘못됩니다. ‘내가 배운 건 이런 거야. 하지만 미세하게 각자의 삶에서 다 달라’, ‘나는 이렇게 보지만 다른 사람은 이렇구나’ 해야죠. 경계가 없어야 해요.”

평생을 퀘이커로 살아온 이행우 선생에게 퀘이커로 배운 가장 소중한 깨달음이 무엇인지 물었다. 선생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대답했다.

“나는 아직 찾고 있어요. 퀘이커는 기본적으로 Seeker(찾는 사람)니까.”
                                                                                                          2014년 케톨릭 뉴스에서

 

 

퀘이커의 기원

필자 : 이리에 유끼꼬/역자 : 조 동 설
 ‘퀘이커'(Quaker, 떠는 사람)란 어휘는 조지 폭스(George Fox, 1624-1691) 및 그와 신앙을 같이 한 사람들이 영감을 느낄 때 부들부들 떨었기 때문에 그것을 본 사람들이 붙인 별명이며, 그 신도들은 자기들 스스로를 friends(친우, 그리스도의 벗)라고 불렀다. 오늘에 있어서도 ‘친우'가 정식으로 불리우는 이름이지만 그들은 별명이 불리어져도 조금도 꺼리지 않고 후에 자신들이 수시 ‘퀘이커'란 명칭을 사용하였다.

퀘이커의 시조는 조지 폭스(George Fox)이다. 그는 1624년 7월 영국 레스터셔(Leicestershire)의 이름도 없는 직조업자인 크리스토퍼 폭스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그러나 양친이 다 신앙심 깊은 청렴결백한 분들이어서 본래 성품이 조용하고 조심성 깊은 조지는 그 양친의 손에 청결함과 바른 것을 사랑하는 어린이로서 자랐다. 학교교육은 받지 않았으나 비상한 감수성, 통찰력, 인간으로서의 깊이, 강건불굴의 기상 등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폭스의 일기에 의하면, 그가 11세 때 안으로는 하나님께 대하고 밖으로는 사람을 대하여 성실하게 살며 여하한 일에도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반드시 말해야 하는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깨우침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조지가 처음으로 받은 계시였으며, 그의 일생을 통한 생활의 원리가 되었다. 그러나 조지가 출생한 그 당시는 영국사상 유래가 없는 내란 정변이 계속되는 소요와 혼돈의 시대로서 종교계・사상계의 동요가 심하였다. 본래 민감하고 순수성을 사랑하는 조지는 그 시대의 파도에 심한 우롱을 당하기에 꼭 알맞는 운명의 소유자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심양면으로 점차 깊이 들어가게 된 인생의 고민과 의혹을 어떻게 할 수 없어 결국 19세 때 근본적인 해결을 구하기 위하여 집을 나와 거리에서 방황하였다. 그러나 어떠한 목사나 학자도 그에게 납득이 갈만한 해답을 줄 수는 없었다. 그는 이로 인하여 신앙의 충실성이 어떠한 교회 제도나 의식, 학력, 신학, 신조와도 별개의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혼미한 가운데 있을 때 그를 구하고 인도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가슴 속 깊은 곳에 있는 그리스도와 바로 곁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 뿐이었다.

고난이 더 해지면 더 해질수록 점점 더 하나님의 은혜는 깊어지고 잇달아서 계시를 받아 결국 23세 때에 사명감을 느끼어 전도에 몸을 던질 것을 결심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 교회에 살지 아니하고 사람의 참 마음 속에 사신다고 부르짖고 참의 스승은 전도를 업으로 삼는 목사가 아니라 각자의 참 마음의 구석에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외치는 그가 세상에 받아들여질리 없어 영국 국교회, 장로교회, 카톨릭교회, 침례교회 등의 증오를 사서 67세를 일기로 하여 하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박해가 그칠 날이 없었다. 시세가 어떻게 변하여도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른 것으로서 세속의 여하한 권위로도 그의 진리를 보는 눈,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따르는 순수하고 철저한 정신을 조금이라도 굽힐 수는 없었다. 그 권세를 마음대로 구가한 크롬웰까지도 폭스와 그의 신도를 가리켜 “내게는 두려운 자가 따로 없으나 단지 하나 명예도 지위도 물건도 무엇으로도 이길 수 없는 일파가 생겼다”고 탄식할 정도였다.

폭스의 신앙의 입장을 약술하면 이러하다.

하나님은 만물의 근원인 항상 살아있는 성령이어서 일체의 유한된 인간 지성의 영역을 초월한다. 그 앞에서는 여하한 신학이나 종교제도・의식・신조도 인간적 조작에 불과하다. 구원은 순수하게 성령을 느끼고 그 인도함에 따라 일체를 내어놓는 일이며, 다른 여하한 것으로도 대치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순수한 신앙이 여하한 뜻으로도 물질이나 형식에 의하여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 인생의 순간 순간이나 이 세상의 일체가 전부 하나님 안에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 교회만을 성지라고 부르고 특정한 때 특정한 형식에 의하여서만 예배를 행하고 평상시에도 은밀하게 존재하여 세상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무서워할 줄을 모르는 세상의 많은 기독교인의 생활 태도에 참을 수 없는 그 무엇을 느꼈다.

성서도 하나님의 뜻을 기록한 귀중한 문헌이기는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문헌일 뿐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성서를 쓴 사람의 정신에 상통하는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며, 성서를 쓴 사람들을 인도한 같은 하나님이 지금도 엄연히 사람들을 직접 인도하고 있다고 본다.

friends가 신앙은 곧 생활이라는 신념에 살며, 교회도 가지지 아니하고 목사도 가지지 아니하고 종교적 의식도 가지지 아니하고 단체로서의 예배도 다만 조용한 가운데 회중의 마음을 하나로 하여 성령의 인도함을 기다리고 바라는 것을 취지로 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살아있는 성령을 느끼고 지상의 여하한 의도도 초월하여 순수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하는 인간의 참 마음을 폭스는 ‘속의 빛' 또는 ‘하나님의 씨', ‘내적 그리스도' 또는 경우에 따라 ‘가슴 속 깊이 숨겨져 있는 사람' 등등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것은 사람과 경우에 따라서 흐려져 있는 수는 있어도 본래 만인에게 주어진 본질로 보는 것이다. 폭스를 비롯한 friends가 절대 비폭력의 평화주의의 입장을 취하여 인종・종교・국적・성・직업의 차이가 어떠하던지 간에 세계 인류의 자유・평등과 우애를 위하여 생명을 건 노력을 계속해온 것은 여하한 사람도 하나님에게 통하는 본질을 가진다고 하는, 즉 인격의 존엄에 대한 절대 신앙으로부터 나온다. friends의 이 신앙의 본질로 인하여 전도의 방법도, 신도가 생기는 방식도 또한 특이하였다. 폭스는 23세 때부터 44년간 전도에 종사하였으나 대사원도, 감옥의 한 구석에서도, 궁정도, 가두도, 박해의 도중도, 문자 그대로 어떠한 곳이든지 가릴 것 없이 성령의 움직임을 가슴 속에서 느끼는 대로 전도하였다. 전도의 목적은 만인이 본래 주어진 진정한 스승 ‘내적인 빛'에 만인의 눈을 향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길에 눈뜨게 하는 것이며, 그것은 인간을 인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었다. 또한 따라서 소위 말하는 나의 편에 들어올 사람을 모집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또한 새로운 종파를 만드는 생각조차 가지지 않았다.

폭스가 미국의 로드 아일랜드(Rhode Island)에서 여행하고 있을 때 어떤 거리에서 그 전도 내용에 감동한 많은 사람들이 돈을 모아 폭스를 스승으로서 머무르게 하고 싶은 뜻을 제의하였을 때, 폭스는 한 마디로 “그러한 생각이 있다면 나는 잠시라도 더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내가 머물러 있어서는 여러분께서 내적 스승에 따르고 여러분 자신의 힘을 자라게 하는 것을 방해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즉시 자취를 감춘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friends가 된다고 하는 것은 friends의 신앙이 그 사람의 속에 들어가 살고 있는 것을 뜻하는 것이며, 본래부터 인간적인 조직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정신이 그 사람 속에 살고 있는가 없는가가 그 사람이 friends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엄숙한 사실이며, 회원인가 비회원인가는 이차적인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friends는 사람에게 결코 입회를 권유하지 않는다. 그러나 혼은 혼에 통하여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네덜란드, 독일, 미국으로 폭스의 전도하는 도처에 박해의 장벽을 넘어 같은 신앙으로 살아 나가자고 하는 신도의 무리가 생겼다. 개인 주택이나 산그늘 밑에서 침묵의 예배를 하는 조그만 무리가 생기고, 그것이 세상의 박해를 참아가며 상호의 수양・봉사・전도에 열중하기 위하여 지역마다 서서히 모임의 조직을 이루게 되었다. 이것이 월회(月會, Monthly Meeting), 계절회(季節會, Quarterly Meeting), 연회(年會, Yearly Meeting)의 시초이며, 얼마 후에는 독자적인 학교까지도 건설하게끔 되었다.

또 폭스 자신은 이름도 없는 가문의 무학한 분이었으나, 그 논설은 동서고금의 성자(聖者)・현철(賢哲)에 못지않은 것이었으며, 영국 교회의 대개혁을 갈망하고 있던 제 종파의 많은 귀족 및 학자들 간에도 깊이 침투하여 그 중에서 많은 걸출한 신도들을 얻었다. 그 현저한 예는 퀘이커의 이념에 따라 펜실베니아를 건설한 윌리암 펜(William Penn), 학자이며 신학자인 로버트 바클레이(Robert Barclay), 신비주의자이며 성자인 아이작 페닝턴(Isaac Penington) 등이다. 그러나 폭스 및 초기 퀘이커 신앙의 본질은 조리 정연한 신학이나 철리에 맞는 것은 아니고, 일체의 언어를 압도하는 직접 느끼는 하나님의 사랑과 힘, 신앙과 생활의 일치성, 지상에 있으면서 영원의 생명 속에 사는 사랑과 겸손,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하여는 어떠한 세상의 고난도 감수하려고 하는 진실과 용기, 바로 그것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퀘이커의 길은 폭스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도,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도 아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신 바와 같이 남모르게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듣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수하게 따르는 것이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서를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 인간의 참 마음의 길이며, 종교・종파・인종・국적 등 일체의 차별을 초월하여 만인에게 호소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폭스가 출생하여 300년이 되지만 이 신앙은 세계 인류가 고난을 겪을 때마다 점점 더 빛을 내어 오늘날 퀘이커라고 자칭하는 자는 세상에 불과 16만명을 넘지 못하나 세상 도처에 무수한 협력자를 가지고 점점 더 강력하게 사랑과 창조의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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