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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늑대의 시간((대림절세번째주일, 2023년12월 17일)

만지다 | 2023.12.20 13:56 | 조회 127

개와 늑대의 시간

(마태복음 112-18절)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15년 전, TV로 방영된 드라마의 제목으로 익숙하실 수도 있으실텐데,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고요.

해질녘 무렵 또는 해가 뜨기 전,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그 시간, 황혼과 여명의 시간을 의미하는, 프랑스식 표현이라고 합니다. 완전히 어둡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밝지도 않은, 낮과 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그때. 저기 저 멀리서 나에게 다가오는 그림자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내가 기르던 강아지가 반갑게 달려오는 것인지 아니면 야생의 늑대가 나를 공격하기 위해 달려오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그러한 이 황혼과 여명의 때를, 프랑스인들은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표현한 것이죠. 어둠과 빛이 공존하는 그 시간에는 그림자 밖에 보이지 않아서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고 그저 무엇인가 다가오고 있다라는 사실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것이 나를 공격할 것인지 아니면, 나를 환영하며 반겨줄 것인지가 매우 혼란스럽고, 그래서 경계를 늦출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2000년 전,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 바로 예수님 또한 마치 그러한 개와 늑대의 시간 속 그림자처럼 오셨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의 야이기를 떠올려보면, 헤롯왕은 그 아기를 자신의 왕위를 빼앗을 반역자로 여기며 두려워했지만 반면,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과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그 아기를 새로운 왕으로 기뻐하며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그 아기 예수님이 자라서 공생애를 시작했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그를 거짓교사, 신성모독자로 생각해 죽이려고 했던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원을 주실 분으로 믿고 따르던 제자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똑같이 예수님을 보았지만 누군가는 그를 거짓과 위험으로 여겼고 또 다른 한편의 누군가는 그를 빛과 진리, 생명으로 여겼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진정 누구이신가를 똑바로 정확히 알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서 따르던 제자들조차도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그의 그림자만 보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2000년 전, 예수님의 오심은 개와 늑대의 시간이었고 예수님이라는 그림자가 사람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혼란과 경계의 때에 그 어떤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예수님을 구원자로 알아보고 확신했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세례자 라는 별명을 가진 요한이라는 사람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일찍이 유대 광야로 나가서 사람들에게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라고 외치며, 세례를 주고 그렇게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신 예수님을 만난, 세례자 요한은 곧장 그가 자신이 그동안 예비하고 있었던 주님의 길의, 그 주님이심을 알아보고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은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이 물 위로 올라오셨을 때, 하늘이 열리고 그 위로 하나님의 영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라는 하늘의 소리를 듣게 되었을 때 큰 확신과 믿음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에게서 그림자가 걷히게 되었고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아무도 주님을 알아보지 못할 때 혼자서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알아봤던 그 세례자 요한. 하나님의 영을 보고, 하늘의 음성까지도 들으며 분명한 확신과 믿음을 가졌던 그 세례자 요한이 오늘의 본문 말씀 속에서, 예수님께 당신이 구원자 입니까?”라고 질문을 합니다. “오실 그분이 당신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심지어는 이렇게, ’그렇지 않으면 다른 분을 기다리겠다라고까지 말을 합니다. 사실상, 세례자 요한은 여전히 개와 늑대의 시간 속에 있었습니다. 믿음이 흔들리고, 의심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다시 혼란과 경계의 순간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다시 개와 늑대의 시간으로 돌아가게 한 것일까요?

 

우선, 오늘의 본문 속 요한의 상황을 살펴보면 그는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감옥에 갇혀 있는 그 상황 자체가 그를 돌이킨 것은 아닙니다. 그는 감옥에 갇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스스로 외치는 이의 소리가 되어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평온한 삶을 버리고 광야로 나섰던, 그런 용기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잘못된 권력자들을 향해서 회개하라며 쓴소리를 내뱉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거리낌 없이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에게 세례를 받고 따르던 사람들, 그 민중들의 수가 어마어마 했기에, 그 당시 위정자들이 당장에 요한을 함부로 대하거나 하는 일이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될 것란 것도, 세례자 요한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오는 두려움은 결코, 그의 믿음을 흔드는 원인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에 정말로 그의 믿음을 흔들어 놓았던 것은 그 자신이었습니다. 정확히는 그의 소망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구원자를 기다리던 수많은 사람들은 이 땅에 구원자가 오시면 불의한 사람들, 악을 행하는 사람들을 모두 심판하실 거라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세례자 요한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마태복음 37-12절 말씀을 보면, 그중에서도, 10절과 12절 말씀만, 제가 읽어 드려보면,

10 도끼를 이미 나무 뿌리에 갖다 놓았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어서, 불 속에 던지실 것이다.

12 그는 손에 키를 들고 있으니, 타작 마당을 깨끗이 하여,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다.“

이렇듯, 요한의 기대, 요한의 소망은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나 쭉정이를 다 불 속에 태워버리는 것이었고, 그러한 심판의 일을 하실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특히나, 그 당시의 가장 큰 불의이자 악이었던 로마제국의 통치를 뒤엎고 예수님이 새롭게 하늘나라의 통치를 가져와 다스리실 것이라고 요한은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러한 생각 때문에, 요한은 감옥에 갇히는 것을 더더욱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었습니다. 자신이 감옥에 오래 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니까요. 곧 자신이 알아챈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활동하셔서 혁명이 일어나고, 심판이 시작되고, 그러므로 그 불의하고 악한 것들이 싹 다 사라지게 될 것이니까요.

그런데, 심판이 시작되지가 않는 것이었습니다. 요한 자신의 생각, 기대와 소망과는 다르게,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께로 보내서 어찌된 것인지 알아보니, ,, xx 예수가, 한가하게 병든 사람을 고치러 다니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고, 산에 올라가서 사람들에게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이런 거나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당장에라도, 힘쎈 사람들을 모으고 훈련시켜서 군대를 만들고 돈 많은 사람들의 후원을 모아서, 혁명의 자금을 대고 감옥에 갇혀있는 자신을 꺼내주고 해서 그렇게 악한 세력을 몰아내야 하는데, 시간이 없는데, 세례자 요한의 눈에는 예수님이 하고 계신 일이 너무나도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세례자 요한의 개와 늑대의 시간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소망, 자신의 기대, 자신의 생각에 맞춰서 예수님을 바라봤습니다. 그러니 다시 예수님의 그림자가 늑대로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때에, 오늘 본문에서의 예수님은 자신을 늑대로 보고 있는 요한에게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6절 말씀인데요.

6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어쩌면 요한은 너무나도 성급했던 것 같습니다. 분명, 오늘 본문 말씀의 앞뒤로 있는 말씀들을 보면,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의 소망과 다르지 않는 것들을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지금 한 번 성경을 찾아서 마태복음 1026절부터, 1124절까지에 있는 말씀의 표제들을 하나하나 살펴 보실까요?

-마땅히 두려워 하여야 할 분을 두려워하여라.

-사람 앞에서 그리스도를 안다고 하면

-칼을 주러 왔다

...

-회개하지 않는 도시에 화가 있다

분명 이러한 말씀들은 세례자 요한의 기대와 소망과 일치하는 말씀들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기대와 소망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들이었습니다. 다만, 그 기대와 소망이 이루어질 때는 세례자 요한이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대와 소망은 반드시 이루어질 텐데 그것이 세례자 요한이 원하는 때가 아니었던 것뿐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하늘나라가 가까이왔다!“라고 외쳤지만 그 가까이는 오직 하나님만 아시는 일이고, 아직 그때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걸려 넘어져서는 안될 일이었습니다. 그때에 당장 예수님께서 하실 일은 본문의 5절 말씀에서처럼,

5 눈 먼 사람이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하게 되며, 듣지 못하는 사람이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며,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

심판보다 앞서서 있어야 할 회복과 구원의 일이었습니다. 하늘 나라, 하나님 나라를 사람들이 미리 맛보아 알게 하는 일이 바로 그때에 예수님께서 하셨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오늘 말씀 속 세례자 요한의 모습 속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들 역시 세례자 요한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불의한 행태들과 악한 구조들이 사라지길 바라는 그런 소망을 품고 있고 그것이 당장에,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때에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물론 그렇게 된다면야 너무나도 좋겠지만 현실은 당장에 그렇게 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들 역시 세례자 요한처럼, 예수님을 향해 당신이 오실 그분이 맞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왜 당신이 하실 일과 우리의 소망이 다른 것인지를 따져 묻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틀렸습니다. 우리의 기대가 부와 권력, . 그러한 세상의 불의와 악에 결탁한 무언가를 탐하는 것이 아닌 이상 예수님이 하실 일과 우리의 소망은 일치합니다. 예수님은 오실 그분입니다. 부디, 걸려 넘어지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란 표현 속에서 저기 저 황혼과 여명으로부터 걸어오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단지 사람이 그것을 개인지 늑대인지 제대로 분간할 수 없을 뿐이지, 다가오는 것 그 자체는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대와 소망인 그 하나님 나라는 반드시 이루어 집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기대하고 소망하는 때가 아닌 것 뿐입니다.

지금 우리의 할 일은 예수님께서 당시에 하셨던 일을 이어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 완전히 올 때까지, 오늘날의 아픈 사람들, 슬픔에 있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핍박받고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가서 위로와 격려, 희망을 전하며, 복음, 기쁜 소식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미리 맛보아 알게 하는 것입니다.

 

다가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는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고 걸려 넘어지지 않으며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를 기다릴 뿐입니다. 물론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닌 세례 요한처럼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서, 예수님처럼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면서,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를 준비해야 하겠죠.

 

특별히, 이 시간, 우리는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을 기억하고 기다리며, 또 그때처럼 이 땅에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대하는 대림의 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곧 다시 오겠다!‘ 하신 예수님의 약속이 200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분명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오랜 긴 시간이죠. 그리고 그 약속 이후에, 세상에는 불의와 악이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었고 점차 그것들은 더 정교하고 악랄해져서, 이제는 경제위기, 기후위기, 전쟁위험 등 모든 것에 위기위험이라는 단어를 붙였을 때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시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정말 오랜 기다림,일 뿐만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기다림입니다. 사실, 그것들을 그냥 가만히 두고만 보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힘과 최선을 다해 그 불의와 악에 맞서는 사람들이 있었고, 있고, 또 있을 것이지만, 그러나 좀처럼 나아지지 않음에 좌절과 분노, 무력감이 우리를 집어 삼키려 듭니다.

대체 주님은 언제 다시 오시는 걸까요?“

오시긴 하는 건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는 건 아닐까요?“ 하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우리 안에 그러한 질문들이 자라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오늘 이 말씀 시간 가운데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께는 오늘의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나셨으면 좋겠습니다.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걸려 넘어지지 마십시오.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뿐 우리의 소망인 하나님 나라는 우리를 향해 오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때까지 맡겨진 일이 있고 준비해야 합니다. 소망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은 우리의 개와 늑대의 시간인 것입니다. 정확히는 여명의 개와 늑대의 시간입니다. 긴 어둔 밤을 지나고, 빛이 떠오르는 때로서 주님은 오고 계십니다. 그 다가오시는 주님은, 다른 분이 아닙니다, 변함없이 오직 예수님이 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우리를 향해 걸어오시는 그 주님이 예수님이심을 제대로 바라보시길 원합니다. 그러므로, ’개와 늑대의 시간이 지나서 밝은 빛이 비추는 아침의, 하나님 나라의 소망, 예수님을 만나시는, 우리 고기교회 성도님들 모두가 되시길 이 시간,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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